나에게는 나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굉장히 개성이 있는 것들인데..
"준면이 귀 만지지 말라고! 하지 말라면 좀!!"
"경수한테 손 올리지 말라고 했지! 그만 싸워 좀!!!!"
"백현아 장난치지마.. 칼 내려놔. 민석이 놀라잖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집 애완동물들은 사람이다.
애완사람이라고 아시나요?
폭풍
그동안 안아프다 했지.
이렇게 한꺼번에 아플거면 자잘하게 아픈게 나았을텐데..
새벽에 잠에서 문득 깼다.
악몽을 꾼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큰 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다.
난 곧 왜 이렇게 갑자기 깼는지 알 수 있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비린 맛에 참지 못하고 침대밖으로 토해냈다.
손을 뻗어 스탠드를 키니 바닥에 붉은 피가 퍼져있었다.
너무 놀라 들이쉰 숨에도 피 비린내가 섞여있었고 그게 또 역겨워
한번 더 쏟아 냈다.
그리고 아득해진 정신에 잠인지 기절인건지 모를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주인!!! 밥!!!! 먹어!!!!"
종대가 뛰쳐 들어왔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들이 걱정할까봐 안 아픈 척 이라도 해야하는데
그러기엔 온 몸이 너무 무겁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목 깊숙한 곳에서 다시금 올라오는 피를 뱉으려 침대에서
내려가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새벽보다 더 아픈것 같았다.
결국 그 피를 다시 목 안으로 삼키며 종대에게 말했다.
"조금만.. 나중에 먹자.."
사정없이 갈라지는 내 목소리에 가만있던 종대가 울먹였다.
"주인.. 주인 아프지..? 그치??"
문을 닫고 잠근 종대가 곧 나에게 힘겹게 다가왔다.
목 뒤로 삼켰던 피가 다시 올라오는 그 역겨움에
간신히 침대 밑으로 그것을 쏟아냈다.
종대 앞에서 쏟아버린 붉은 피에 나도 놀랐으니 종대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 종대를 확인하기도 전에 몸이 다시 무거워졌다.
기울어지는 날 받아준 종대가 침대에 바르게 눕혀주며 말했다.
"...이거 피 굳은거 아니야? 새벽에도 이랬어 주인?
정확히 어디가 아파? 그 의사들 부를까? 아냐. 부르자."
"종대야.."
"모.. 목이 아픈거야? 식도가 아픈 걸까? 합병증..?
TV가 저번에 합병증 같은 거 조심하라고 했잖아. 그치?"
"종대야아.."
"왜.. 왜 주인은 안 아픈척 해.. 빨리 아프다 해..
죽을 것 같다고 해.. 불안해서 내가 죽을 것 같잖아.."
결국 훌쩍이며 울어버린다.
문 밖에선 부신다 어쩐다 하는 백현이 목소리가 들렸고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종대는 내 손을 잡고 계속 흐느꼈다.
결국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이닥친 백현이가 종대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고
곧 나와 종대를 번갈아 보다 코를 킁킁 거리더니 침대 밑에 있던 피를 가만히 본다.
"주인이 붕어새끼 강냉이 때려서 나온 피는 아닐 거 아니야. 그치?"
"백현아..흐...주인 아파.. 피 쏟았어..."
다시 흐느끼는 종대를 옆으로 치워버린 백현이가 가만히 날 본다.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나를 안심시키듯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뭔가가 생각난 듯 거실로 나가버렸다.
문으로 빼꼼 들어온 세훈이가 나를 본다.
나도 그런 세훈이를 보았다.
"꿈이야. 꿈일거야. 맞아.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거야."
혼잣말을 하며 눈을 꾹 감았다 뜬 세훈이의 눈이 붉어져있었다.
이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세훈이의 눈물 방울에
종대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다른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아오.. 이게 그렇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몸은 무겁고 아직 비린 맛이 가시지 않았는데 백현이가 들어왔다.
묵묵히 바닥을 닦는 백현이의 눈도 붉다.
애써 아무렇지 않아 하는 아이들 몇 명.
훌쩍이거나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들 몇 명.
이제 막 소식을 접하고 믿을 수 없어 하는 아이들 몇 명.
"...죽 해줄게. 먹을 수 있겠어?"
찬열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곧 경수가 애들을 헤치고 들어왔다.
나를 가만히 내려다 보던 경수가 내게 다가와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너 피 얼마나 쏟았어? 저게 다야?"
"어.."
"주인 새벽에도 쏟았나봐. 굳어있어."
백현이의 말을 가만히 듣던 경수가
서랍을 뒤져 체온계를 찾더니 내 체온을 젠다.
"인간이 몇 도지?"
"36.5도 정도."
"그 아래로 넘어가면 어떻게 돼?"
"쓰러지고 더하면 죽지. 저체온이니까."
찬열이와 대화를 하던 경수가 내 이불을 걷더니 내 옆에 눕는다.
곧 자신과 나에게 이불을 덮는 경수.
"뭐해 쥐새끼. 내려와."
민석이의 말은 안들리는 듯
내 머리 밑으로 손을 넣더니 그대로 끌어안는 경수였다.
"뭐하는 건데."
"저체온이라며. 따뜻하게 해야할 거 아니야."
"근데 왜 니가 그러고 있는데."
"나는 적어도 인간보다는 따뜻하니까."
경수가 더 날 끌어안았다.
거의 경수한테 갇혀 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 숨 잘래? 나랑 한 숨 자자."
등을 토닥이며 속삭이는 경수의 말에 아픈 것은 그대로였지만
어쩐지 편안해졌다.
그렇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계속 머리가 아파왔고 울컥이며 피가 올라왔다.
나아지긴 커녕 식은땀이 흘렀고 경수는 계속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거 치워. 차가운 거 안좋아."
"그치만.. 아플때 항상 이거 했잖아."
세훈이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경수에게 조금 떨어져 고개를 돌려 세훈이 쪽을 보았다.
물수건을 들고 나를 보는 세훈이. 계속 못 보겠는지 고개를 숙인다.
그런 세훈이의 어깨가 또 들썩였다.
"나는.. 난 멍청해서.. 쟤한테 해 줄 수 있는게 없단 말야..
뭐라도 하게 형아가 뭘 줘봐. 불안해서.. 너무 불안해서.."
세훈이의 말을 가만히 듣던 찬열이가 말했다.
"주인 식은땀 흘리지?
주인 혼자 옷 갈아입을 수 있겠어?"
"옷..?"
"저체온증에는 젖은 옷 안좋아.
갈아입어야 할텐데, 마침 세훈이가 일거리 찾잖아."
"야 오세훈이 갑자기 발ㅈ...!"
"제발 꺼져 망할 똥고양이 새끼야."
웃음이 나왔다.
아픈 와중에 그래도 아이들 덕분에 웃음이 나오는 것 같다.
나를 앉힌 경수. 세훈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 나가.. 옷 갈아입게.. 도와줘 세훈아.."
최대한 갈라지지 않게 말한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경수도 침대 밑으로 내려갔고 아이들도 하나둘씩 나갔다.
"....허튼 짓 하면.. 옥상에서 밀어버릴거야."
협박도 빼먹지 않고 한 백현이가 마지막으로 나갔고 문이 닫혔다.
손을 뻗은 나를 잡아주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보이는 세훈이.
갑자기 앉아서 인지 머리가 어지러워 고개를 숙였다.
"아무.. 아무것도 안보고 할게."
"그러다가 만지면.. 어쩔려구.."
"뭔 소리야!!!! 안 그래!!!"
귀여운 세훈이 모습에 웃음이 또 나왔다.
"저기서.. 옷 좀 꺼내줄래..?"
쭈뼛거리며 옷장으로 간 세훈이가 옷을 골라서 가져왔다.
간신히 손가락에 힘을 주며 팔을 빼냈다.
한쪽 팔만 뺐을 뿐인데도 힘들다.
"도.. 도와줄게. 가만있어봐."
반대쪽 팔을 손쉽게 뺀 세훈이. 그러나 옷을 벗기지는 못한다.
"내가 할게.."
옷을 벗으니 바로 뒤로 도는 세훈이. 귀가 붉다.
"아오.. 시발 내가 왜 그런말을 해가지고는.."
세훈이가 벽에 기대서 자책할동안 나는 윗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제법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지는.. 혼자 할 수 있겠다.."
"정말?"
"그럼.. 너가 해줄려고..?"
".....화이팅해."
웃으면 안되는데 왜이렇게 웃음이 나오는 걸까.
피식피식 웃으며 바지를 갈아입었다.
옷 한번 갈아입기 이렇게 힘들었나.
옷을 다 갈아입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세훈이가 문을 여니 우루루 몰려 들어오는 아이들.
"이제 괜찮아 주인?"
"응."
"뻥치시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우리가 아프다고 욕을하냐
돌을 던지냐."
"형아는 눈물이나 닦고 말해."
"닥쳐 새대가리야. 옥상 구경하고 싶냐?"
"경수형. 주인 안아줘요."
종인이 말에 주섬주섬 들어오는 경수.
경수쪽으로 돌아누워 품으로 파고 들었다.
잠시 놀라더니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안아주는 경수였다.
"저.. 저 꼴 보기 싫어.. 후..."
백현이의 질투를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잠에 빠졌다.
"깼어? 오래도 잔다."
경수도 방금 일어난 듯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더워.."
"참아. 아직도 차."
"뻥치지마!!! 이제 비키란 말이야!!! 주인한테서 떨어져 쥐놈새끼야!!!"
"저거 죽이고 다시 올게."
차분히 말하며 일어나는 경수.
나도 그런 경수를 따라 일어났다.
그러나 어지러워서 다시 누웠다.
낮보다는 괜찮은데 그래도 아픈가보네.
그런 나를 보더니 천천히 일으켜주는 경수.
"밥 먹자. 먹고 다시 눕든 돌아다니든 하자."
나를 부축한 경수가 날 식탁에 앉혔다.
서툰 솜씨로 이것저것 준비하는 경수와 조수들(종인, 세훈)
경수의 지휘아래 열심히 나른다.
반찬이란 반찬은 다 꺼내더니 밥도 대충 퍼서 내 앞에 놔둔게 다였지만
아이들의 정성이 녹아있었다.
"그냥 밥이 넘어가겠냐?"
뭐, 결국 찬열이가 해결했지만.
찬열이가 만든 미음을 다 먹었다. 더럽게 맛이 없더라..
반찬 다 치워버린 찬열이가 미음이랑 간장만 줬다..
벌러지 주제에 그런 것은 어떻게 아는 건지..
그것도 그거지만 하도 잠을 많이 자서 잠이 안온다.
그래서 소파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종대가 옆으로 슬쩍 오며 말했다.
"주인, 나 주인 잘 때 계속 옆에 있었어."
"그랬어?"
"응. 종인이도 옆에 계속 있었어."
"내가 언제."
"종인이 주인 몰래 울었ㅇ..! ㅇ으븝!!!"
급하게 종대 입을 틀어막은 종인이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허튼 말 하기만 해. 그땐 내가 형 부셔버리겠어요."
"으븝..."
겁에 질려 대답한 종대가 내일없이 깝쳤다.
"종인이 주인 몰래 울었데요!!!!! 에베베!!!"
"에베베베베!! 종인이 우는 거 나도 봤지!!"
"나도 봤는데 어쩌나! 커튼 뒤에서 숨죽여서 울던 걸??!"
종대의 토스를 받은 백현이 말에 스파이크를 날린 찬열이까지.
하지만 강한 반격을 때리는 종인이.
"종대형 남말할거 없거든여. 그리고 백현이 형도 울었잖아.
찬열이 형은 왜 안울어요? 형이 이상한 거 거든요?"
3명을 한번에 닥치게 한 종인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피했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싸쥐고 고개를 숙이는 종인이.
귀엽다.
"종인아."
손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대는 종인이.
그런 종인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벌러지는 감정이 없나봐. 울어줘서 고마워."
"내가 왜 감정이 없어? 나도 울었거든!"
"넘어왔다. 들었지? 다 똑같은 녀석들이야."
잘 걸려든 찬열물고기를 종인이에게 건네주니 시원스럽게 까더란다.
아이들이 다 잠든 새벽.
왠일인지 지금까지 깨어있던 준면이가 날 재워준단 핑계로
방으로 들어왔다.
"주인님."
"응?"
"아프지마요."
침대에 누운 나에게 진지하게 말하는 준면이.
웬지 준면이가 이런 말 하니까 느낌이 이상했다.
원래라면 속 박박 긁을 아이인데.
"주인님 되게 오랜만에 아파서 더 놀랐잖아요.
애들도 장난은 치는데 엄청 놀랐었어요."
"다음부터는 안 아플게."
"아니요. 아프더라도 티를 내줘요.
오밤중에 소리를 질러도 짜증안내고 받아 줄 수 있으니까."
"오, 준면이가 웬일이야."
"그냥, 새삼 느꼈어요.
나를 살려주신 주인님이 사라진다는 그 느낌을.
아마 나도 못 살거에요."
"고백이야? 부담스러운데?"
"....난 쭉쭉빵빵한 바니걸 만날겁니다."
"쭉쭉빵빵한 바니걸이 너를 왜 좋아해. 밥 밝히는 돼지토끼인데."
"...주인님 아파서 봐드리는 겁니다."
"응...ㅎㅎ"
내 손을 꼭 붙든 준면이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주인님 아프지 말라고 맨날 기도하거든요.
근데 어제는 백현이랑 종대가 유난히도 오래 싸워서 역정을 내느라
못하고 잤거든요? 그래서 그랬나봐요. 이제 하루도 안 빠지고 기도하겠습니다."
이쁜 마음을 가진 준면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말을 하는지.. 준면이가 아닌 것 같았다.
"예쁘네 우리 준면이. 준면이 간식이나 사야겠다."
"..제 간식 사 줄 돈으로 주인 건강챙겨요.
지금 먹는 것도 충분히 맛있으니까."
이.. 준면이 이자식.. 날 감동먹게 했어..
혹시라도 감동의 울음을 들킬까봐 고개만 끄덕였다.
준면이도 눈치 챈 모양이었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자요. 오늘은 기도할거니까 내일은 안 아플거에요."
"응. 먼저 잘게. 준면이도 빨리 가서 자."
"네. 주인님이 빨리 자야 나도 자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준 준면이는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속 엄청 긁는 아이더라도 이렇게 날 위해주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오늘의 건강 일기
날짜 : 2015년 3월 6일 금요일
날씨 : 강한 바람, 눈보라
토혈, 저체온증,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
아프다. 너무 아프다.
이렇게 아플바엔...
ㅠㅠㅠㅠㅠ |
역시 폭풍전야라는 말이 괜히 있지는 않네요.. 그나저나 아픈것도 왜 좋지? 애들 다정해지는거.. 겁나 좋은데..?(ㅇㅅㅁ)
암호닉입니다! 치노/엑소영/쉬림프/뭉이/쌍수/구금/코끼리/모카/규야/게이쳐/나호/죽지마 정동이/양양/캐서린/우리니니/빵/체리/안녕/밍블리와오덜트/메리미/니니랑 꾸르렁/바람둥이/매매/종대덕후/여리/나도동물/테라피/차니/부농/luci/알콩 새벽/꽯뚧쐛뢟/바닐라라떼/lobo12/그레이/젤리냠냠큥/똥잠/쪙만보/완치병/잇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