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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오나…"   

   

"미안하다."   

   

그 한 마디를 남긴 그의 아버지는 사랑채의 문을 열고 나갔다. 방 안에는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 혼자 남아 있었고, 공허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물기 없이 마른 세수를 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일들은 다 제 죽은 누이 때문이었다. 그녀, 즉 로빈의 누이는 조선에서 최고라 불리우는 집안과 혼인을 약속 했었다. 그리고, 바로 사흘 후가 혼인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헌데 한달 전 그녀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온 집안은 태풍이 몰려오기라도 한듯 혼란 그 자체였다. 로빈의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과 혼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며칠을 지새우다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18세라는 나이에 혼인에다, 상대는 사내라니……."   

   

그는 자신의 누이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허나 죽은 사람을 탓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결론에 몇 번이고 반박했으나, 아버지의 입장은 완강했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슬픈 표정과 강한 입장에 로빈은 혼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후회는 곧 찾아왔다. 결국 그는 해서는 안 될 자살기도를 시도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중얼거린 그때의 로빈은 보여서는 안 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준비는 되었느냐."   

   

"……."   

   

"되었느냐 물었다."   

   

짧게 울리는 문고리 소리와 함께 한 여성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원하지 않는 혼인을 슬퍼한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또한 그의 혼인을 마치 자기의 일인 마냥 안타까워했으며, 어떻게든 그의 아버지의 입장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은 이 암울한 상황에서 한 줄기의 빛처럼 느낄 수 있게 해주었지만, 수많은 어둠 가운데 빛이 살아남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준비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   

   

"이대로 얼굴도 모르는 사내에게 혼인을 가 평생을 계집처럼 행동하고 살 테니……."   

   

덤덤한 척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런 로빈을 보고 그녀는 가슴 아파했다. 딸을 잃은 슬픔도 컸지만, 이대로 로빈을 보내야 하는 슬픔도 컸다. 그녀는 결국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려보냈다.   

   

"달이 참 밝습니다, 어머니."   

   

"그렇구나."   

   

"이게, 제 생의 마지막 달이 될 것입니다."   

   

"……."   

   

"더이상, 하늘을 바라보는 게 죽기보다 힘들어질 테니 말이에요."   

   

로빈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고, 그의 어머니는 발길을 돌렸다.   

   

*   

   

원하지 않을 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법, 어느새 시간은 사흘이 흘러 혼인식 준비를 위한 소동이 일어났다. 그 혼란스러운 공간 속에 상투를 틀었던 머리를 풀어 내고 그 머리를 몸종에게 맡겨둔 채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로빈이 있었다. 제 머리가 풀어 헤쳐지고, 솔로 빗기는 모습이 참으로 처참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손엔 단아하고 아름다운 댕기가 들려 있었고, 이내 제 머리를 곱게 땋기 시작했다.   

   

"네가 봐도, 난 참 보기 안 좋지?"   

   

"……."   

   

"알아, 충분히 그럴만 한걸."   

   

"도련님은 충분히 아름다우신 걸요."   

   

하지만, 현재 도련님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절대로 아름다움을 유지하실 수 없으실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내들이었다면 발끈하여 당장 그 몸종을 죽이려 했을 터였다. 그러나 로빈은, 예쁜 색조 화장을 끝낸 얼굴을 결국 물기로 적시고 말았다. 그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려 툭, 하며 떨어졌다.   

   

행차하실 시간이옵니다. 원하지 않던 순간이 찾아왔다. 현실을 부정해 봤자 달라지지 않는다. 그 결론은 로빈의 발을 거칠게 떼어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가자 보이는 것은 혼인식 행차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로빈은 익숙하지 않은 치맛자락을 이끌고 제 몸종의 시중을 받으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상 가득히 차려져 있는 음식들은 색조로웠고, 탐스러웠다. 그 음식들을 보며 잠깐 혹했던 그는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채 제 아버지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 … 왔습니다, 아버지."   

   

"그래, 왔느냐."   

   

제 아들을 혼인 시키는 아버지의 표정은 남들과 달랐다. 식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날인 마냥 웃고 떠들며 즐기고 있었지만 당사자들은 초상집이라도 온 듯 분위기가 암울했다. 그 분위기를 느낀 로빈이 몇 가지 농을 던져대었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돌아오는 건 어머니의 슬픈 표정 뿐이었다.   

   

"어찌 그런 표정을 지으시옵니까."   

   

"……."   

   

"소자, 아니... 소녀가 혼인을 하는 게 그리도 섭섭하신 것인지요."   

   

야속하게도, 그녀는 로빈이 원했던 표정 대신 눈물을 흘려대었다. 그에 놀란 로빈은 주변의 눈치를 살핀 후 몰래 제 어머니의 눈물을 닦았다. 울지 마세요. 그 한 마디와 웃음을 남긴 그는 곧 식이 거행 된다는 말에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젠 따라오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몸종을 돌려보낸 로빈은 그대로 걸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제 본가를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눈에 새겨두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 벚꽃나무 아래에 위치한 연못… 평소엔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까.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던 도중, 머리카락엔 고운 벚꽃 한 송이를 꽂고 돌아다니던 로빈의 앞에 한 인영이 드리웠다.   

   

"헉…"   

   

금발의 머리카락, 백옥 같이 흰 피부… 마치 서양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그의 눈은 청아하게 빛났다. 그 수려한 외모에 잠시 넋을 잃은 로빈은 제 상태를 인지하고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연못가를 급히 빠져나왔다.   

   

그 남자의 곁을 빠져 나왔음에도 그의 심장은 뛰어대었다. 창피했던 건지, 당황했던 건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를 둘러쌌다.   

   

"방금 그 분은,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혹시 잘못본 게 아닐까, 하며 그는 제 볼을 툭툭 쳐대었지만 꿈은 아니었다. 아니,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방금 그 다사다난한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돌려보냈던 제 몸종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돌아왔다. 저를 찾고 있다는 소리에 상황을 정리할 새도 없이 그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달리듯 걸었다.   

   

그가 도착했을 땐, 아까보다 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로빈이 돌아왔다는 소리에 그의 어머니가 다가와 그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조차 모른 채 그는 제 어머니의 손길에 끌려갈 뿐이었다. 로빈이 어디로 가는 것이냐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오직 목적지로 향했다.   

   

"들어가자꾸나."   

   

도착한 곳은 건넌방이었다. 안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 조금 소란스러웠다. 이 문을 열면... 벌써부터 예상 되는 훗날을 생각하며 발을 떼려고 하는 순간, 그의 어머니가 그를 멈춰 세웠다.   

   

"배운대로 하면 된다."   

   

"……."   

   

"긴장하지 말고, 배운 대로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빈은 문고리를 잡았다.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꼭 감은 채로. 그것을 잡아 당기자, 소리 없이 열리는 문 사이로 들어섰다. 로빈은 저고리 끝동으로 눈 아래를 모두 가린 채 발걸음을 떼 내었다. 발걸음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 되었고, 그는 애써 담담한 척 걸었다. 그렇게 식이 거행 되었고, 드디어 그의 지아비가 될 사람을 만날 차례였다. 예의 상 서로의 면모를 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그는 궁금증이 치솟아 결국 제 눈을 가리고 있던 끝동을 살짝 내리었다.   

   

로빈의 눈에 띄인 사람은 낯이 좀 익은 사람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고민하는 순간, 연못가에서 만난 그 서양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마터면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잊고 벌떡 일어날 뻔 하였다. 그 화려한 금발은 얼굴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아름답게 빛났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로빈은 그와의 만남이 생각이 나 자꾸 얼굴이 붉어지려 해 혼례에 집중하지 못했다.   

   

첫화입니다! 글잡 처음인데 떨리네요(?) ㅠㅠ ㄱㅊ에서 써봤는데 예상 외로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연재 한 번 해보려고요...!! 헷♡♡ 언제나 댓글은 힘이 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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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여기 있으면 된다구요 작가님? 흐 역시 그 남자가 그 남자일 줄 알았슴미다. ㅠㅠㅠㅠㅠ 강제로 시집을 갔지만 줄랸에게 반한 로빈은 어떨까요 *-* 기다릴게용
9년 전
쥬에
로빈은 되게 아련하면서 귀여운 캐릭터로 나올 것 같아요~ ㅎㅅㅎ 그 남자가 그 남자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3
사실 이야기가 어찌되던 행쇼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턱괴고 기다림
9년 전
쥬에
열심히 행쇼시키겠습니다!
9년 전
독자2
헉 작가님 ㅜㅜㅜㅜㅜㅜ 그취에서 봤을때도 정말 취향저격이어서 넘 좋았는데 글잡에서 연재하신다니 ㅜㅜㅜ 너무 기쁩니다!!! 다음편 기다리고 있을께요! 신알신 꾸욱 누르고 갑니다.
9년 전
쥬에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취향저격이라니... 과찬이십니다 ㅠ_ㅠ 신알신 감사해요♡
9년 전
독자4
아 역시 그 남자가 당연히 로빈의 지아비가 되어야지요!!!!!!!! 힝힝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9년 전
쥬에
감사해요!!! 그 남자가 그 남자죠 역시! 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5
취저....♥작가님기다리고있을께요!
9년 전
쥬에
취저라니... 과찬이세여 ㅠㅠ 감사해요♡
9년 전
독자6
헐 우와ㅜㅜㅜㅜㅜ 정략결혼은 언제나 옳죠 그취에서는 못뵜는데 여기서 뵙네요!! 잘 읽고 갑니다 금글 감사해요 작가님!!!
9년 전
쥬에
금글이라뇨 ㅠㅠㅠ 흑흑 칭찬 감사합니다...♡ 다음 화 최대한 빨리 찾아뵙도록 할게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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