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는 천사가 걷고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린 채.
밤바다의 지겨운 바람이 눈 앞에서 차게 일렁였다.
뚝,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바닷속 저 멀리서 반짝이는 작은 형체가 보였다.
혹시 말야, 천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물밀듯 몰려오는 두려움에 다시 집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떨어지듯 열리는 문이 서서히 그림자를 만들어 내 나를 감싸안았다.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을 때, 형체는, 아니 천사는 해변가를 걷고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린 채.
준회야,
엄마의 작고도 여린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조용히 잠에서 깨곤 이불을 꼭 그러쥐었다. 마치 밤새 본 것이 허상이라고 느껴질 만큼 아무것도, 심지어 나 까지도 전혀 별다를 게 없었다. 난 그저 일어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세수를 하곤 대충 끼니를 때울 뿐이었다. 엄마는 나를 흘깃 보더니 아주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학교. 갈 거니?
난 그저 조용히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 흔한 다녀오겠습니다 한 마디도 없이 가방을 챙겨 유유히 문을 열었다. 창문새로 날 보는 엄마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주 기쁜 듯 하면서도 불안한 눈이 햇살을 받아 반짝, 하고 빛났다.
학교 가는 길은 즐겁다 못해 신이 난다. 지겨운 집안에서 뛰쳐나와 더러운 학교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나만의 길이었다. 문득 어젯밤이 생각나 바닷가를 한번 쳐다보니, 평소와는 정말 다를 게 없는 바닷가일 뿐이었다. 이내 고개를 돌리곤 다시금 걸었다. 몇 주 만의 학교였나, 기억도 안 나지만 구역질나는 학교를 다시 가야된다는 생각은 잠시 머리를 스칠 뿐이었다.
교실 문을 거칠게 열고는 아무렇게나 보이는 빈자리에 막 앉았다.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지만 하나같이 더러워 보였다. 끔직한 것들. 속으로 몇 번을 되뇌이었다.
잠깐 창문 쪽을 응시하는데 유독 빛나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누구더라, 낯익은 얼굴은 아닌 것 같았다.
계속해서 그 아이를 쳐다보다 결국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눈이 마주친 뒤 나는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