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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교실 뒷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자 문 옆에 고정된 커다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던 여자아이 하나가 교실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며 나를 껴안는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것도 잠시, 제 품에 나를 껴안고 놓질 않는 여자아이에 금방 숨이 막혀온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거기에는 여자아이의 짙은 향수 냄새도 한 몫 했다. 이것 좀 놓아 보라고 주먹으로 여자아이의 등을 툭툭 치자, 여자 아이는 그제야 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내게서 떨어진다. 나는 내게서 떨어진 여자아이의 얼굴을 가만 쳐다봤다. 얼굴은 하얗고, 입술은 새빨갛다. 얼굴만 보면 20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화장이 짙었다. 여자아이는 내 손을 꼭 부여 잡고는 입을 열었다.



"유주야. 너 어디 갔다 이제 왔어? 문자는 왜 다 씹었구?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아, 잠깐 여행. 별건 아니고 그냥 답답해서 프랑스 별장 좀 다녀왔어."

"말도 없이 학교 안 오길래 걱정했잖아! 담임한테 물어봐도 모른 대지."


비서실장이 일러준 그대로 말하자 여자아이는 제가 내 걱정을 했다며 울상을 짓는다. 문자는 왜 씹었냐며 재차 물어오는데, 내가 서유주가 아닌지라 하나하나 답해주기도 애매하다. 호들갑을 떨며 말하는 아이에 자리에 앉아있던 네 다섯의 다른 여자아이들도 다가와 나를 에워싸고 한 마디씩 물어온다. 너희 엄마 화는 안 내? 염색했네? 갑자기 왜 했어? 그럼 너 삼촌 집에서 경호한테 끌려 온 거야? 서유주 성격이 이 정도로 좋았나? 이어지는 질문 공세에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내 미소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뭐야, 너 어디 아파? 좀 야위었네? 거기 음식이 별로였어? 미소 한번 지었을 뿐인데 확대 해석들이다. 서유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서주 후계자에게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심산들인 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유주야, 너 오랜만에 왔는데 오늘은 어떻게 할까?"

"뭘?"

"뭐긴 뭐겠어? 쟤 말야. 이화인 말하는 거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조잘거리며 손가락으로 창가에 앉아 있는 야윈 여자 아이를 가리킨다. 지금 날더러 뭘 어쩌라는 건지. 독한 화장품 냄새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내 표정을 못 봤는지, 아니면 내 찌푸린 표정이 촉매제의 역할을 한 건지 내 앞의 아이들은 깔깔대며 말을 이어간다.



"너 없을때 우리가 화장실에서 걸레물 쏟았었는데, 확실히 그건 좀 약했어."

"익숙해졌다고 이제 저 년이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거 있지? 존나 웃겨 진짜."

"실컷 체육복 숨겨 놨는데 변백현이 빌려주고. 아 지금도 빡치네."

​"그니까! 변백현이 챙겨주는거 보면 진짜 꼴사나워 죽겠…, 유쥬야?"

걸레물을 쏟고, 체육복을 숨기고. 말을 들어보니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다. ​누가 서유주 친구 아니랄까봐 나쁜 짓들은 다 골라서 하는 모양이다. 이 무리를 주도했을 서유주도 눈에 훤했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서유주 또한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었다. 어렸을 때 부터 제 위에 누가 있는 꼴을 못 봤다. 저를 거스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야 했다. 모두 제 발 밑에 둬야 속이 편해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서유주는. 갖고 싶은 건 꼭 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고, 거슬리는 건 눈 앞에서 당장 치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미쳐버렸으니까.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다. 꼭 쓰레기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쓰레기통이 몇 배는 나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쓰레기들의 대화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잘대는 여자 아이들을 보며 조근조근 말했다.


"걸레물을 붓든, 체육복을 숨기든 너희나 실컷 해.​ 난 이제 재미없어."

여자 아이들은 내 말에 꽤나 놀랐는지 벙진 얼굴로 눈만 꿈뻑였다. 나는 내게 시선을 고정 시킨 여자 아이들을 헤치고 나와 반을 쓱 둘러 봤다. 서유주 친구들이 시끄럽긴 했는지 반 아이들과 심심찮게 눈이 마주쳤다. 웃긴 건, 모두 시선이 마주치자 마자 고개를 푹 숙이거나, 아예 눈을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서유주가 뭐라고 눈도 못 마주치는 걸까, 뭐가 무섭다고 시선을 피해? 서주의 유일한 후계자라서? 서유주 말 한 마디, 손짓 한 번이면 안되는게 없어서? 참 웃기는 일이었다. 결국 시선이 멎은 곳은 창가 맨 뒷자리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 오세훈이 있었다. 그 옆 자리는 텅 비었다. 아마 저기가 서유주 자리겠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자리에 가 앉았다. 게임을 하는지 휴대폰을 만져대던 오세훈이 나를 흘끗 보곤 다시 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유주야 오늘 기분 안 좋아? 혹시 무슨 일 있어?"

"그냥 말만 해! 뭐, 어쩔까?"

"우리가 알아서 해? 어떻게 해야 서유주 기분이 좋아질까?"

지치지도 않는지 여자 아이들은 나를 졸졸 따라와 내 자리를 둥글게 둘러쌌다. 서유주가 굳이 나서서 내외할 필요 없는 부류였다. 그냥 있는 집 양아치들에 불과했다. 그런데 서유주는 이런 애들은 도대체 왜 줄줄이 달고 다녔던 걸까? 의문이 차올랐다. 여자 아이들은 다시 시끌벅적하게 굴어왔다. 나는 그에 한숨을 푹 내쉬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김종인이 어제 가져다 준 서유주의 가방이었다. 계속 말을 거는 여자 아이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책을 꺼내 책상에 올려 놓는데, 어쩜 이렇게 깨끗할까? 서유주가 평소에 쓰던 책이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교과서가 빳빳했다.


"오늘 재미없게 왜 그래 유주야!"

"저기 있잖아, 되게 미안한데."

"응? 말해, 유주야!"

​"그딴 짓 너희나 실컷 하라니까? 짜증나니까 좀 꺼져달라고."

아이들의 표정이 오묘하다. 옆에서 ​게임에 심취해 있었던 오세훈은 휴대폰을 내려 놓고 나를 거든다. 



"지금 꺼져달라는데, 우리 유주가." 


내게 뭐라 말하려고 했는지 입을 달싹이던 여자 아이들은 오세훈의 한 마디에 얼굴이 잔뜩 새빨개져서는 다들 제 자리로 흩어졌다. 오세훈을 잠깐 바라보다, 그 책상에 널브러진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면 안에서는 아직도 게임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오세훈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금세 휴대폰을 뒤집어 버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웬일이야? 이화인 괴롭히는 낙으로 학교 온다던 애가."

​"그냥,"

"그냥?"

"유치하잖아."

​말을 마친 나는 책상 서랍을 뒤적였다. 서랍은 텅 빈 상태였다. 책은 고사하고 하다 못해 유인물 한 장 조차도 없는 듯 했다. 마치 원래 이 자리의 주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처럼, 그렇게. 나는 서랍을 뒤지며 고개를 들었고, 한 남자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남자 아이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순한 느낌을 주는 눈매는 지지 않고 나를 올곧게 쳐다 보았다. 그리고 혹시 작은 종이 쪽지라도 있을까 싶어 계속 서랍을 뒤지던 내 손에는 구석에 있던 작은 상자가 감겨 들어왔다. 뭐야?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 아이는 시선을 돌려 버린다.



​"내가 말했지? 변백현 아직도 너 좋아한다니까?"

"...쟤가 나를?"

"얼굴에 다 써 있잖아. 나 아직도 미련 있어요. 제발 한 번만 쳐다봐 주세요, 하고."

"......"

​"하여튼 호구지 변백현도."

오세훈은 변백현의 뒷통수를 가리키며 킥킥댔다. 나 또한 가만히 그 뒷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저 남자애가 변백현이었구나, 아침에 오세훈이 도경수랑 같은 부류라며 흘러가듯 말했던, 그 변백현이었구나. 또 서유주랑 무슨 관계일까, 넌. 잠깐 마주쳤던 눈빛은 적대적이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 했다. 변백현이 나를 보는 눈빛은 도경수와는 또 달랐다. 그건 오세훈 말 대로, 미련을 가득 품은 눈빛에 가까웠다. 오세훈이 하품을 하며 다시 책상에 엎어져 버리고, 나는 책상 서랍 구석에 박아뒀던 상자를 조심스레 꺼냈다. 반지 케이스였다. 케이스의 뚜껑을 여니, 반지와 함께 쪽지가 들어있다.

사랑하는 유주야.​ 처음 봤던 날 부터 난 네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

내용은 놀랍지 않았다.​ 단지, 쪽지 아래 써있는 이름이 조금 놀라웠을 뿐이었다. 쪽지의 주인은 변백현이었다. 언제 보냈던 쪽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서유주에게 보내는 변백현의 진심임에 틀림 없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반지 케이스를 닫아 서랍에 다시 밀어 넣었다. 내가 모르는 사실들에 다시 마음 한 켠이 답답해져 왔다. 지금 내게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비서 실장도 서유주의 학교 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애초에 내가 완벽한 서유주가 될 수가 없었다는 소리다. 확실하지 않으니 확신을 가질 수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까 마주했던 도경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현재로서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내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EXO] 나쁜 피 ② | 인스티즈

 

 



​/ Bad Blood 

수업을 듣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저택에서 지겹게도 끼고 살았던 것이 책이었던 만큼 언어야 들을만 했지만, 수학이나 외국어는 분명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수업 내용을 못 알아듣더라도 수업을 같이 듣고 있으면, 뭔가 나도 이 곳의 일원이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내 기분은 한 마디로 말해 황홀했다. 나도 드디어 어느 집단의 구성원이 된 것만 같다는 알 수 없는 소속감이 나를 붕붕 뜨게 만들었다. 다음 시간은 체육이었다. 아까 가방 속 내용물은 다 봤었는데, 따로 체육복을 챙겨주지는 않은 것 같았다. 체육 시간인데 체육복을 입어야 하나? 교실 수업은 아닐테고, 또 어디로 가야하지? 고민이 이어지는데, 마침 지난 교시들 내내 아무런 미동없이 잠만 자던 오세훈이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목이 찌뿌둥한지 고개를 돌리던 오세훈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묻는다.



"가자."

"어디를 가?"

​"운동장. 안 나가게?"

"...아, 가야지.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고." 



내 변명에 오세훈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피곤하게 굴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 재촉하는 듯한 그 눈에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세훈은 일어선 내 손을 꽉 잡고 걸음을 옮겼다. 손이 참 차가웠다. 복도로 걸음을 내딛자, 지나가던 몇몇 아이들이 나와 오세훈을 보고 깜짝 놀라 걸음을 재촉한다. 오세훈은 제 눈 앞의 광경이 우스운지 내 손을 꽉 잡아 오며 말한다.

"쟤네 진짜 재밌다."

"뭐가?"

"저거 봐. 다 피해가잖아. 우리가 무서운가?"

"......"

"왜. 넌 재미없어?"



내게 물어오는 오세훈에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아직까지 내가 서유주가 아님을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다. 오세훈이 서유주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유주야."

"어?"

"너 손 되게 따뜻하다. 계속 잡고 싶어지게."

"......"

"아, 좋다."



다른 아이들이 흘끔 거리며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 적어도 지금 나를 내려다 보는 오세훈의 눈은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오세훈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나는 그런 오세훈에게 화답하듯 미소 지었고, 오세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런 내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깍지를 껴 맞잡은 손이 조금 어색했다.




 


 ​/ Bad Blood 


 

​체육 시간이다. 오세훈과 손을 맞잡고 도착한 곳은 운동장이었다. 오세훈이 아니었으면 홀로 강당을 찾아 다닐 뻔 했다. 바깥 날씨는 딱 좋았다. 기분 좋게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아, 체육복. 오세훈에게 끌려 오느라 체육복 문제는 잠깐 잊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오세훈과 나를 제외하고도 체육복을 입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서실장이 이 부분까지 염두하고 가방을 챙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간단한 체조를 끝낸 뒤, 체육 선생님은 각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운동을 하라는 말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여태 늘 그래왔었던 건지, 여자 아이들은 익숙하다는 듯 조회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자 아이들은 축구를 하려는 건지 가위바위보에 진 몇몇이 공을 가지러 창고로 향했다. 나는 가만히 제 자리에 서 있는 오세훈을 멀뚱히 올려다 봤다. 

​"왜?"

"그냥. 축구 잘 하고 오라고!"

"아, …축구 잘 하라고?"

"응. 나 그럼 조회대에 가 있을게."



오세훈에게 방긋 웃으며 말하자, 오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걸음을 옮겨 조회대로 향했고, 내가 조회대에 걸터 앉자마자 창고로 뛰어갔던 남자 아이가 돌아왔다. 곧 남자 아이들이 편을 가르는 듯 하더니 축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변백현과 오세훈은 다른 팀이었다. 잘 하고 오라고 나름대로의 응원까지 건넸건만, 정작 오세훈은 경기에 별 흥미가 없는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조회대 기둥에 몸을 기댄 채로 막 시작된 경기를 찬찬히 눈에 담던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오세훈은 서주와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어쩌면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재원의 후계자다. 오세훈이 지금 후계자에 불과하다고 얕볼 수만은 없다. 비서실장에게 받았던 서류에서도 분명 오세훈이 재원 회장의 외동 아들인지라 벌써부터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적혀 있었다. 회장 부부도 금지옥엽으로 키운 아들이라, 오세훈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다 들어준다고 했었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유주가 돌아오기 전까지 오세훈은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서주가 다시 나를 버려도 기댈 수 있는 그늘이 생기는 것이다.


"와. 오세훈 대박이다. 공이 다 오세훈한테 가."

"아닌데? 이상한데? 쟤 다른 팀인데 오세훈한테 패스하는데?"



그 다음은 변백현이었다. 아까 봤던 쪽지가 계속 머릿 속을 빙빙 맴돈다.


사랑하는 유주야.​ 처음 봤던 날 부터 난 네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분명 변백현은 서유주를 사랑했다고 했다. 쪽지의 내용은 분명 거짓이 아닐 것이다. 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지까지 줄 정도면 변백현이 서유주를 꽤나 절절하게 좋아했다는 것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변백현은 서유주를 짓밟기 위한 수단으로 적격이었다. 제 발 밑에 두고 하찮게 여기던 호구 변백현이 제게서 등을 돌려 버리면, 늘 그에게 군림하던 서유주는 분명 울화통이 터질 것이다. 거기다가 변백현이 보는 대상이 서우주가 된다면 서유주의 분노는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번져 나가겠지. 변백현을 이용한 복수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세훈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뭐라고 그러는 거야?"


일단 그 전에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도경수였다. 도경수에게 내 정체를 오픈하고 오세훈과 변백현을 비롯한 서유주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했다. 물론 내가 도경수를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다. 도경수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다시 도경수를 되찾아 오기 위함이기도 했다. 많이 보고 싶었던 내 친구 도경수를.



"…어? 공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입 모양 봐! 딱 그거잖아. 야, 공 내놔. 이거 맞지!"

"진짜네? 근데 뭐야. 지금 무슨 상황인데?"

눈을 떴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운동장에서는 오세훈과 변백현이 골대 앞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변백현이 오세훈의 공을 뺏은 모양이었다. 변백현은 오세훈을 피해 오세훈 팀 골대 쪽으로 공을 몰아갔다. 오세훈은 어이가 없는지 삐딱히 서서 변백현의 뒷모습을 주시한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변백현이 요리조리 상대 팀 수비수들을 뚫고 공을 골대에 밀어 넣었다.​ 오세훈 팀의 골키퍼는 엄한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골이었다. 변백현은 웃는 얼굴로 운동장을 가로 지르며 세레머니를 해댔고, 오세훈은 그런 변백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활짝 웃으며 운동장을 누비는 변백현은 조회대 쪽을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자 아이들은 변백현을 바라보며 환호했고, 변백현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변백현과 내 시선이 얽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변백현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워내고 고개를 휙 돌려 버린다.

변백현 팀이 승점을 따낸 뒤로도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됐다. 경기 초반에는 뛰는둥 마는둥하며 반 협박으로 공을 갈취하던 오세훈은 변백현의 골 이후, 열이 제대로 받았는지 꽤나 열심히 필드를 뛰어 다녔다. 상대 팀을 향한 오세훈의 협박이 멈추자 제대로 된 경기가 이루어졌다. 공을 몰고다니는 오세훈은 꽤나 빛났다. 그냥 금수저도 아닌, 어마어마한 부잣집 도련님이라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젬병일 줄 알았는데, 내 판단이 완전히 틀렸던 모양이다. 오세훈은 축구를 못해서 공을 뺏고 다닌게 아니라, 귀찮아서 공을 뺏고 다녔던 걸지도 모른다. 엎치락 뒤치락 공을 뺏고 뺏은 끝에 오세훈의 마지막 골과 함께 경기가 종료 되었다. 수업 종료 종이 쳤기 때문이었다. 경기는 1:1 동점으로 무승부였다.


  

경기가 끝나고, 치마를 털며 조회대를 빠져 나왔다. 오세훈은 더운지 넥타이를 풀어내고 조끼를 펄럭댄다. 명색이 정혼자에 여자친군데 골 넣은 거 멋있었다고 축하라도 해줘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일단 걸음을 옮기는데, 식수대 옆에 여자 아이 하나가 넘어져 있다. 발목을 삐었는지 계속 끙끙 앓는 소리만 내고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다가가서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화인, 서유주가 그렇게 괴롭혔다는 아이였다. 괜히 내가 더 미안한 마음에 몸을 일으켜 부축해 주려 팔을 잡았는데, 여자 아이가 내 손을 팍 뿌리쳐 버린다.



"…너 보건실 가야될 것 같은데. 괜찮아?"



내 물음에 이화인은 눈물을 퐁퐁 쏟아낸다. 왜 울어? 내가 지금 손찌검을 했어, 폭언을 했어? 아니면 그냥 서유주 얼굴만 봐도 무서워 죽겠다, 뭐 그런 거야? 여자 아이의 반응에 기가 찼다. 도움이 싫다면 말아야지. 내 갈 길 가려고 이화인에게로 뻗었던 팔을 거두려는데, 내가 미처 팔을 거두기도 전에 누군가 내 팔을 툭 쳐내 버린다.



"야, 너 꺼져."



누군가는 변백현이었다. 얼굴을 싹 굳힌 채로 나를 노려보며 말하는데,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화인은 변백현을 마주하자 마자 뭐가 그리 서러운지 갑자기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대고, 나는 멍하니 그런 이화인을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반쯤 앉은 채로 나를 내려다 보던 변백현은 한숨을 내쉬고 이화인을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이게 다 뭐야? 변백현이 서유주를 싫어하는 건 충분히 알겠는데, 방금 건 좀 억울했다. 나는 멀어져 가는 이화인과 변백현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EXO] 나쁜 피 ② | 인스티즈



 ​/ Bad Blood  




도경수 몇 반인지 빨리 알아봐요.

-3반입니다

도경수 점심 먹을까요?

-그건 저도 잘.



내가 학교에 있으니 김종인도 할 일이 없는지 답장이 칼 같았다. 도착한 메세지를 곁눈질로 확인한 뒤, 다시 휴대폰을 서랍 밑으로 밀어 넣었다. 아. 휴대폰은 비서실장이 건넨 것이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꼭 가지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주소록에는 김종인의 번호와 비서실장의 번호가 전부였다.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듯 보였지만, 그들이 내게 휴대폰을 쥐어 준 실질적인 목적은 감시였다. 비서실장이 가고 난 뒤, 김종인은 내 휴대폰이 실시간으로 위치 추적이 되고 있을 거라며 내게 서주의 눈 밖에 나지 말 것을 거듭 당부했다. 휴대폰이 나를 감시할 도구라는 것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김종인의 입을 통해 들으니 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서유주만 돌아오면 바로 내쳐질 운명이라는 게 실감나서 그랬던 걸까.



급식을 먹으러 가는 건지, 반 아이들은 하나 둘씩 반을 빠져나갔다. 점심 시간도 꽤나 흘렀다. 잠을 자거나, 이어폰을 끼고 공부하는 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나면 반에는 나와 오세훈이 전부였다. 대의를 위해 점심은 거를 생각이었다. 저택에서 끼니 거르는 것을 거의 밥 먹듯이 해왔던지라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일단은 오세훈이 반에서 나간 뒤, 도경수를 찾으러 갈 생각이다. 오세훈은 빨리 반에서 나가 줬으면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게임에 심취해 있다. 국내 최정상 기업의 후계자 정도면 세상이 제 발 밑에 있으니 게임은 눈에 차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세훈을 보면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는 거야? 흘끔 오세훈의 휴대폰 화면을 보니, 시선이 느껴졌는지 오세훈이 이름을 불러 온다.



"유주야."

"왜?"

"밥 안 먹어?"

"오늘은 별로 생각 없어."

"아. 진작 말하지."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세훈은 꼴에 정혼자라고 나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점심 생각이 없다는 내 말에 다리를 달달 떨며 대답한 오세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특유의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나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천천히 그려졌다. 오세훈이 반에서 나간 뒤, 시계 초침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이 정도면 오세훈이 갔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김종인에게 문자를 받았던 대로 3반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도경수가 반에 없어도 상관은 없었다. 지리도 대충 익힐겸 학교 곳곳을 다 뒤지고 다닐 생각이었으니까. 도경수의 반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3학년 교실은 같은 층에 일렬로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걸음을 바삐 옮겨 3반에 도착해 창문 틈으로 교실 안을 훑어 봤다. 역시나 도경수는 없다. 아침에 보니까, 학교 선도부인 것 같던데 학생회실에 한번 가볼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며 몸을 돌리려는데, 마침 뒤에서 잔뜩 날이 선 음성이 들린다.



"뭘 기웃거려. 며칠 학교 빠지더니 또 내 쌍욕이 그리웠나?"

"......"

"야. 나 지금 꺼지라는 소리 돌려 했는데."



날카로운 음성이 괜히 반가웠다. 분명 도경수였다. 그것은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서주의 사람이 아닌 외부인에게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게 뭐라고 괜히 긴장이 되는지, 괜스레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심호흡을 한 차례 거친 후, 천천히 뒤돌아 입을 열었다.



"경수야."



경수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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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이화인? 걔 뭐죠...놀라서 운건가...유주가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르니 원... 이 글 진짜 취저예요... 진짜ㅠㅠㅠ정말류ㅠㅠㅠㅠ
8년 전
가벼움
댓글 감사합니다...T▽T 답글이 많이 늦었죠? 곧 궁금하신 거 다 알게 되실 거에요...! 부족한 글에 이렇게 예쁜 댓글 달아주셔서 넘넘 감사해요. 독자님 덕분에 힘이 납니당...♡
8년 전
비회원49.183
으헝..ㅠ 작가님 글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 아 담편 빨리 보구싶다 아 궁금해..ㅠㅠㅠㅠ
8년 전
가벼움
예쁜 댓글 감사해요~~~♡ 요즘 너무 바빠서 글 쓸 시간이 나지를 않네요T-T... 정말 죄송하지만 업데이트가 조금 늦어질 것 같아요... 그래도 틈틈이 글 쓰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8년 전
비회원143.69
ㅠㅠㅠ 작가님 꿀잼....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8년 전
가벼움
죄송해요 독자님! 답글이 정말 많이 늦었습니다ㅠㅠ.... 다음 편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요! 아마 수요일 안으로 올라갈 것 같아요. 항상 부족한 글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전 독자님 볼 수 있어서 넘넘 좋답니다♡-♡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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