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마고
그 년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건 전혀 몰랐던 사실이였다.
“소희누나.다음주에 결혼한대.”
놀랄만한 일은 아니였다.
어쨌든 그럴려고 내 곁을 떠나간 년이였다.
“그렇구나.”
다만 입맛이 뚝 떨어져 들고있던 치킨을 떨궜을 뿐이였다.
“상태 괜찮네?”
앞에선 김종인이 떨어트린 치킨을 줏어들며 깔짝된다.
“예상했던거였는데.뭐.”
“난 니가 이거 들으면 테이블 엎고 생지랄할줄알았는데.”
“그래서 아쉽다는거야?”
해줘?
테이블을 살짝 들어올리자 손사래를 치며 만류한다.
“청첩장 보여줄까.”
“...응.”
손에 묻은 기름기를 쪽쪽 빨며 김종인이 가방을 뒤적인다.
“여깄네.누나 겁나 이쁘게 잘 나왔더라.”
“본판이 되니까 이쁘겠지.”
역시나.
청첩장엔 과시하듯이 행복해보이는 웨딩화보가 붙어있다.
“신랑이 대형로펌 변호사래.”
너랑 스펙부터 차이나잖냐.
김종인이 목뼈를 들고 내 이마를 툭툭 친다.
“죽을래?”
“그러니까 아까워하지말라는거야.너랑은 애초부터 다른세계 사람이였어.”
그런가.
쪼르르 투명하게 채워지는 소주잔을 봤다.
돼지껍데기 못 먹는 안소희.
닭발도 못 먹는 안소희.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 먹으면 알러지 올라오는 안소희.
레즈비언 안소희.
“야!정수정!“
어느새 테이블은 투명한 소주로 질펀하게 적셔져있다.
앞에서 아깝다며 넘치는 소주잔을 들이마시는 궁상맞은 김종인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보다.”
“응?”
“우리하곤 다른 세계였어.”
그런 안소희가 이때까지 버틴거면 많이 버틴거지.뭐.
알싸하게 소주향이 피어오른다.
너 없으면 죽겠다며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내 반지하 자취방으로 사랑의 도피를 시도했던건 지난 해 여름이였다.
생각이 없다며 타박을 했던 건 내쪽이였지만 내심 기뻤던건 사실이였다.
좁은 방을 핑계삼아 꼭 붙어있던것도 돈이 없어 눈물 젖은 라면을 나눠먹었던것도 난 추억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곱게 자란 공주님에겐 높은 홀로 갇힌 탑보다도 더한 형벌이였을것이다.
그러니 일년을 겨우 채우고 스스로 얌전히 돌아갔겠지.
성으로 돌아가기 전 공주님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련한 얼굴로 내 손을 꼭 부여잡았다.
나는 못 참겠어.미안해.수정아.
미안해.미안해.미안해.
뜻모를 사과만 연신 해대던 공주님은 해가 뜨자마자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내 동화의 잔혹한 결말이다.
그리고 떠난 공주님은 멋드러진 왕자님을 만나 백마를 타게되겠지.
“종인아.한낱 쥐새끼가 공주님을 바라면 안되는거지.”
“쥐새끼는 쥐새끼를 만나야지.”
“이상하다.디즈니에 나오는 공주년들은 죄다 동물들 품에 끼고 놀던데.”
“노는거잖아.넌 그냥 엔조이야.병신아.디즈니에 나오는 공주년들도 결국엔 왕자님 만나 띵가띵가한다고.”
“아,좆같은 세상.”
쓸데없는 미사어구를 내뱉으며 김종인과 농담따먹기를 하는걸보니 아마 내가 거하게 취한 모양이다.
“여보세요.”
“야 이 못된 년아.”
“..수정이니?”
“그래,나다.”
“언니라고 불러야지.수정아.”
조곤조곤 예쁘게도 말해온다.
“결혼하니까 좋냐?”
“응.좋네.”
“난 죽겠는데.”
“.....미안해.”
“미안하긴 해?”
“응.”
“그럼 나 두고 결혼하지마.언니.”
“.....”
“안되는구나.아,쪽팔려.”
“수정아.술 마셨어?”
“어.존나 취했는데 나 데리러올래?”
핸드폰 건너편은 또 말이 없다.
“언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결혼하냐?결혼하면 니 정체성이 스트레잇으로 확 변할거같아?”
“아니.평생동안 후회할거야.혼자서 겉돌고 울고 미쳐가겠지.근데 난 버틸거야.수정아.
이 악물고 버틸거야.”
그래야 내 성이 안 무너져.수정아.
“..언니가 불행하길 빌어.”
“그만큼 넌 웃어줘.수정아.”
전화가 끊기고 저 멀리 유리성이 녹기 시작한다.
마고의 말
주변 지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쓴 클희조각이네요
막 내가 슬퍼지고 난리ㅠㅠ
그냥 아련한 클희가 보고싶었어요.
근데 돈없는 대학생설정인 수정이가 미스.
수정이는 고귀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