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들의 시간 04
w. 하프
충격 후에 이어지는 정적은 길었다.
굳어버린 루한은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민석은 재촉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 없이 차분한 표정으로 루한을 바라보는 민석의 눈엔 어떠한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열 마디 말보다 그 차가운 눈빛 하나가, 더욱 깊게 살을 찔러 상처가 되었다. 이를 악 물고 감정을 억누른 민석의 의지는 굳건했다. 휘둘리고 상처받는 것은 모두 이 쯤에서 끝마치고 싶었다. 잠든 루한을 위해 준비했던 식사는, 그간 제 옆을 지키며 힘이 들었을 루한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죽은 듯 굳어버린 루한에게로 민석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게로 다가오는 민석을 보며, 루한은 처음으로 그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길다면 길었던 시간을 민석과 함께 보내며 민석의 날이 선 말도, 싸늘한 눈빛도 지겹도록 버텨야 했었다. 그래도 루한은 민석이 좋았고, 그쯤이야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잊고 다시 견뎌낼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의 민석은, 그 어떤 날보다 차분했다. 루한을 바라보며 괴로워 하던 아픈 눈조차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래서 루한은 더욱 그가 무서웠다. 울며 떼를 쓸 수조차 없을 만큼, 민석의 표정은 차분했다. 몇 걸음의 끝엔 루한이 있었다. 걸음을 멈춘 민석이 가만히, 루한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눈을 맞추는 커다란 두 눈은 더 이상 무한한 애정을 담고 있지 않았다. 어미를 잃은 새끼마냥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 눈빛이 애처로웠다.
“ 미안해. ”
“ ……. ”
“ 배웅은 힘들 것 같아. ”
“ ……. ”
“ 몰랐는데, 나 되게 속이 좁나봐. ”
“ ……. ”
“ 마지막 가는 길 함께 해주는 거, 그게 뭐 대수라고 좀 해줄 법도 한데. ”
“ ……. ”
“ 미안. ”
“ ……. ”
“ 나는, 못할 것 같아. ”
차라리 민석이 언성을 높이고 욕을 했더라면, 서럽게 눈물이라도 쏟아낼 수 있었을까. 어린 아이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뚝뚝 흘려대던 그 눈물이라도 속 시원히 흘려보낼 수 있었을까. 루한은 정말 호흡을 멈춘 사람 같았다. 규칙적으로 들썩여야 할 몸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지 오래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은 시체마냥 창백했다. 루한은 정말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몰골로, 그렇게 자리를 지켰다.
다양한 루한의 반응을 예상했었다. 세상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울음을 터트리려나, 아니면 제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려나. 그러나 루한의 반응은 그 둘 중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민석은 더 이상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 못했다. 그가 다시 정신을 붙잡고 숨을 쉴 틈을 내어주고 싶었다. 넓직한 집을 가득 채웠던 온기가 모두 빠져나간 듯, 불 꺼진 집은 서늘했다. 일찍이 시작했던 그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머지않아 해는 저물었다. 형광등 없이도 밝던 실내는 눈 깜짝할 새에 어두워졌다. 그러나 민석과 루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금새 집을 장악한 어둠에도 두 사람은 흔들리지 않았다.
과연 당신과 나, 둘 중 더 잔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창백한 루한을 지켜보며, 민석은 어둠과 함께 쓴웃음을 삼켰다. 세상의 쓴맛을 알게 해 주었던 사람이 제 말 한 마디에 상처 받아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민석의 마음도 검게 물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 상처 받는 것은 이 쯤이면 충분했다. 그와의 관계는 애초부터 옳지 못 했다. 누가 더 나빴었나, 잘잘못을 가리기엔 모두가 너무 잔인했었다.
“ 옷, 갈아입어. ”
“ ……. ”
“ 너 되게 멋있을거야. ”
“ ……. ”
“ 애초부터 이건, 네 옷이였으니까. ”
“ ……. ”
“ 나는 방에 들어가 있을게. ”
“ ……. ”
“ 다시 제 옷을 찾은 너를……. ”
“ ……. ”
“ 나는, 지켜볼 자신이 없어. ”
그 앞에서 꺼내 보인 첫 번째 진심이었다. 루한의 앞에선 언제나 이를 악물고 넘실대는 감정을 참아냈었다. 행여나 미소 한 자락, 눈물 한 방울이라도 새어나갈까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욱 루한이 야속했는지도 모른다. 루한은 언제나 솔직했으니까. 제 마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천사같은 얼굴로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닐 때면, 괴로운 사람은 이 쪽이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모두 져버린 채 처음으로 꺼내보인 진심은, 기대보다 더윽 답답한 속내를 덜어내 주었다. 너는 참 좋았겠다. 혼자 참고 아파할 필요가 없어서. 민석은 그를 향한 부러움을 꾹, 눌러 담았다.
루한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터질 듯 복잡한 머리 속을 잠재우려 두 눈을 꾹, 감았다. 그렇다고 나아질 두통이 아님을 알면서도, 민석은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만에 눈을 뜬 민석은, 더 이상 루한을 바라보지 않았다. 손에 들려있었던 옷을 그의 품에 내려놓았다. 그동안, 수고했어. 마지막 인사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서로를 붙잡고 눈물의 작별 인사를 할 만큼, 우린 더 이상 애틋한 사이가 되지 못했으니까. 옷을 놓은 민석이 몸을 돌렸다. 무거운 발걸음은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은 민석은 짙은 한숨과 함께 간신히 첫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첫 걸음은 채 떼어지지도 못한 체 그 자리에 다시 멈추어 버렸다. 우뚝, 멈춰 선 민석은 제 팔목을 붙든 그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어찌나 세게 붙잡았는지, 힘을 준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솟아올라 있었다. 사내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것과는 상반되게도, 루한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힘겹게 떨리고 있었다.
“ 민, 민석아, 그, 그러지마……. ”
“ ……. ”
“ 나, 나 이제 민석이 싫, 싫어하는 거 다 안 할게. ”
“ ……. ”
“ 밤, 밤에 몰래 찾아가고, 그, 그런 거 안 할게. ”
“ ……. ”
“ 민석 귀, 귀찮은 일 절대 안 할게……. ”
“ ……. ”
“ 그러니까 그러지마……. ”
“ ……. ”
“ 민석아……. ”
힘겹게 이어가던 목소리는 결국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채 흐려졌다. 제 입으로 뱉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루한은 목까지 차오른 울음을 삼켰다. 등을 돌린 민석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붙들린 팔을 뿌리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민석에게로부터 호응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였다. 악착같이 민석을 붙잡았는데도 숨이 막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를 고쳐잡으면서도 루한은 가슴을 꽉 채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루한은 애처롭게 붙잡은 그 팔을 그대로 끌어당겼다. 휘청, 균형을 잃은 민석의 허리를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무릎 위에 어설프게 얹어져 있던 옷이 바닥에 떨어져 간신히 균형을 잡은 민석의 발 밑에 즈려밟혔다. 행여나 놓칠세라 단단히 허리를 끌어안은 루한이 그대로 민석의 등에 이마를 묻었다. 토하듯 터져나오는 음성은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민석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
“ ……. ”
“ 내가, 내가 민석을 좋아하니까……. ”
“ ……. ”
“ 그, 그냥 옆에만 있게 해줘……. ”
“ ……. ”
“ 나, 나는 민석이가 좋, 좋으니까……. ”
등을 끌어안은 남자는 오늘도 대책없이 진심을 꺼내들었다. 울음을 삼켜낸 목소리는 정처없이 흔들려 그의 쓰라린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아픈 그의 마음이 넘쳐 흘러 민석의 살갗을 적시고 있었다. 허나 그런 것 하나하나 함께 아파해주기엔, 민석은 너무 지쳐있었다. 충분히 예상했었던 그의 반응이였기에, 오히려 민석은 더욱 차분했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그가 진정되기까지, 민석은 말을 아꼈다. 그리고 지나치게 길게 이어지는 민석의 무반응에 점차 루한의 호흡이 제자리로 돌아갈 무렵, 민석은 손을 들었다. 허공의 들렸던 손은 머지않아 허리를 끌어안은 루한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손 하나로는 차마 다 감싸지도 못할 만큼, 루한의 손은 듬직했다. 그 듬직함 위로 손을 얹은 민석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 루한. ”
“ ……. ”
“ 그건, 이기적인 일이야. ”
입 안에서 둥글게 굴러가는 그의 이름은 오늘따라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민석은 공연히,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루한. 차분히 입에 담기는 그 이름에 그의 몸이 다시금 떨려오기 시작했다.
“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것만 보면서 살 수는 없는 거야. ”
그랬기에 민석은, 루한을 포기했다.
“ 그리고, ”
“ ……. ”
“ 그런 이기심 때문에 두 사람 모두가 힘들어지는 건…. ”
“ ……. ”
“ 바보 같은 짓이야. ”
그랬기에 민석은, 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힘겹게 지워냈다.
“ 그러니까 우리는…. ”
시작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였는지, 민석은 뼈저리게 경험했었다.
“ 여기까지 하는 게……. ”
“ ……. ”
“ 맞는 거야. ”
그리고 그 힘겨움을 견뎌냈기에, 그 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도, 민석은 알고 있었다.
“ 루한. ”
“ ……. ”
“ 나는 더 이상, ”
“ ……. ”
“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
끝내 입 밖으로 꺼내어진 그 말에, 민석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그 팔에 힘이 풀렸다. 민석의 손 아래에 자리하던 그의 든든한 손도, 그렇게 힘을 잃고 바닥을 향해 한없이 곤두박질쳤다. 민석은 그 손을 다시 붙잡아 주지 않았다.
“ 그럼, ”
“ ……. ”
“ 조심히 가. ”
그렇게 민석은 발걸음을 옮겼다. 루한은 다시 민석을 붙잡지 않았고, 민석은 주저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열려있던 방문이 굳게 닫히자, 유독 더 넓게 느껴지는 거실에는 루한이 홀로 남았다. 방으로 돌아온 민석은 그대로 문을 등진 채 털썩, 주저앉았다.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더 이상 서있을 자신이 없었다. 무릎을 끌어안은 민석은 그대로 얼굴을 묻었다.
어쩌면, 가장 잔인한 사람은 바로 자신 일지도 모르겠다고, 민석은 생각했다.
::
그 날 루한이 떠나는 모습은 끝내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게 방문을 걸어 잠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때에야, 문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열리고, 곧이어 문이 닫혀오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익숙한 잠금음은, 그날따라 유독 서글펐다. 민석은 루한이 집을 떠났음을 알아차린 후에도, 쉽사리 방문을 열지 못했다. 눈 앞에 펼쳐질 풍경이 두려웠다. 모순되게도, 그것이 어떤 풍경이었든 말이다. 루한이 떠나지 않아 다시 반복될 일상도, 그가 떠나 이제는 비어버릴 집을 맞이해야 할 현실도. 그래서 민석은, 밤이 깊어지도록 그렇게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못했었다. 그날의 하루는 길었다. 홀로 보내야 할 일분일초가 끔찍하게 느껴질 만큼.
루한은, 제 옷을 가져가지 않았다. 용기내어 밖을 나선 민석이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은, 제 발 밑에 밟혀있던 그 모습 그대로 볼품없이 떨어져 있는 그의 옷이였다. 멍하니 그 옷을 바라보던 민석은 주먹을 꽉 쥐고서 그것을 집어들었다. 더 이상 집에 남아있는 그의 물건을 용납할 수 없었다. 곱게 다렸던 옷이 구김이 갈 만큼 꽉 잡아쥔 채로 민석은 쓰레기통 앞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미련없이 옷을 내던지려던 민석은, 차마 옷을 쥔 손을 놓지 못했다. 그깟 옷 한 벌이 뭐라고, 마지막까지 제 허리를 붙잡고 울음을 삼키던 루한이 눈 앞에 아른거렸기에, 민석은 끝내 그 옷을 버리지 못했다. 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그 옷은 다시 오래도록 걸려있었던 옷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옷장 구석에 옷을 걸어둔 민석은 문을 단단히 걸어잠궜다. 마치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사람처럼.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일상은, 놀라울 만큼 변한 것이 없었다. 바쁜 일상은 보란듯이 지속되었으며, 밥 한 끼 제대로 챙겨먹을 겨를조차 없는 바쁜 회사원의 처지도 변한 것이 하나 없었다. 허나 그 중 단 하나, 변한 것이 있다면 단연 그것이였다. 피곤하던 하루를 끝마치고서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가던,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막차에 몸을 싣고 한밤 중에야 간신히 집에 돌아가던, 집을 지키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귀찮으리만큼 달려들어 온기를 나눠주던 사람은 이제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그를 떠나보낸건, 바로 민석이였다.
그가 떠난 후의 일상은 쉽게 자리를 잡을 줄만 알았다. 지겹도록 저를 쫓아다니던 스트레스성 잔병치레도, 턱 끝까지 내려앉은 짙은 다크서클도, 그 하나만 떠난다면 모두 종적을 감추고 제자리를 찾을 것만 같았다. 허나 모든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잦게 감기를 앓았다. 날씨가 조금만 휘청거려도 기침을 달고 살아 부서의 모든 이목을 끌고 다닐 지경이였다. 평일내내 일에 치인 후 찾아온 주말엔 언제나 앓고 지냈다. 홀로 지내는 집에는 더 이상 어줍잖게 병간호를 해준답시고 낑낑대는 덩치 큰 강아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혼자 앓는 주말은 길었고, 어떤 약도 쉽사리 들지 않을만큼 지독했다.
시간이 꽤 흘렀을 쯤엔 종대와의 술자리를 잡았다. 답지않게 먼저 건넨 제안에 의아해하던 종대를 앉혀놓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민석은 그동안 숨겨왔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행 후 이어진 그와의 동거아닌 동거부터, 잔인하게 그를 내쫓았던 그날의 이야기까지. 생각치도 못했던 이야기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종대는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느리게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종대는 말 한번 끊지 않고 묵묵히 민석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끝이 난 민석의 이야기 후에 종대는 그에게 딱, 한 마디를 건넸다.
‘ 그래. ’
‘ ……. ’
‘ 고생했네. ’
그리고 그 간단했던 말 한 마디가 뭐였다고, 민석은 그대로 무너져 오래도록 참았던 눈물을 토해냈었다. 루한의 앞에선 마음 편히 쏟아내지 못하던 그 서러움을, 하염없이 토해냈었다. 모든 걸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고 이겨낼 만큼, 민석은 강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석은 모든 것을 버텨냈었다. 안에선 상처가 터져 피가 흐르고 진물이 고인다 한들, 고함 한 번 내질러보지 못했던 민석이였다. 그랬기에 썩어 문들어진 마음은 유독 더 쓰라렸었다. 민석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응석부리며 떼를 쓰고 싶었다.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주던 종대는 깊은 위로가 되었다. 민석은 그렇게, 오래오래 눈물을 쏟아냈었다.
::
“ 김민석, 미안한데 오늘 먼저 갈래? ”
퇴근 시간에 맞춰 가방을 챙기던 민석은 난처한 종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참 동안 상사의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던 종대가 방을 나서자마자 꺼낸 말이라, 뜬금없던 말에도 이유는 금새 짐작할 수 있었다.
“ 왜, 야근해? ”
“ 어. 내가 마지막이라서 좀 아슬아슬 하더니 결국 터졌지, 뭐. 오늘 부장 기분 완전 쓰레기잖아. 누구 하나 꼬투리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더만. ”
“ 그래도 퇴근 시간인데 너무 한다. 어디부터 다시 손 봐야 되는데? ”
“ 이거 고쳐라, 저거 고쳐라 뭐 말은 많은데 결국 다 정리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갈아엎어 오란 소리지. ”
체념한 듯 덤덤하게 말하는 종대의 목소리에 민석은 오히려 제가 더 기겁을 하고 혀를 내둘렀다. 당사자인 종대는 이미 마음을 놓은 것인지 구겨진 종이뭉치를 책상 위로 내던졌다. 민석은 고생할 종대가 안쓰러워 어깨를 두어번 토닥여주었다. 허나 종대는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한 표정을 한 채 민석에게 말을 붙였다.
“ 아무튼 미안. 퇴근 시간 지하철 진짜 끔찍한데. ”
“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너 차 뽑기 전에는 원래 지하철만 타고 다녔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
“ 그래도 안 타다가 타면 더 끔찍한거야. ”
“ 됐다. 너야말로 밤 늦게까지 부장이랑 얼굴 맞대고 있을 거 안 끔찍해? ”
“ 아…, 그게 제일 끔찍하긴 하다. ”
걱정스럽던 종대의 얼굴이 금새 하얗게 질리는 모습에 민석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먼저 간다, 고생해. 나머지 짐을 챙겨들고 일어선 민석의 위로 아닌 위로에 종대는 씁쓸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퇴근 시간이라 칼 같이 꺼두었던 컴퓨터의 본체를 다시 키며 종대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허나 해줄 것이 없는 민석은 그저 방해가 되지 않으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뿐이였다.
종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종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민석이 루한을 보내고 난 후 외로움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대는 더 모른척 민석을 불러냈었다. 민석이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피곤한 날에도 민석과 시간을 보냈고, 저녁을 함께 했다. 그랬기에 민석은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사 일에 치인 후 종대와 술 한잔에 모두 털어버리고 나면, 집에 돌아올 무렵 쯤에는 쓰러지듯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힘겹던 날도 어느새 지나가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현관문을 여는 횟수도 잦아들었다. 버릇처럼 신발장 앞에 시선을 두는 날도 줄어들었다. 홀로 돌아가는 집은 여전히 숨을 조여왔지만, 시간이 흐르고 뜨겁던 감정이 식어가자 점점 괴로움이 줄어들었다. 행여나 눈을 뜨면 루한이 저를 안고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날들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기분이 새롭다. 넓은 집은 언제나 고요했고, 불 꺼진 그의 방은 언제나 굳게 닫혀있었다. 그의 방을 신경쓰며 지나가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민석은,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 가슴에 진 응어리도 녹아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야 정말, 그를 완전히 비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나 쾌활하던 종대 없이 홀로 내려선 로비는 오늘따라 유독 더 크게만 느껴졌다. 어깨에 짊어진 피로를 견뎌내며 민석은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소음없는 일상이 신선했다. 홀로 잡념에 잠겨 의식없이 옮기는 발걸음조차 좋았다.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끝없이 덧이 나 피가 흐르던 상처가 아물자, 민석은 다시 숨을 쉬고 있었다. 홀로 옮기는 걸음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 김민석씨. ”
그리고 길었던 잡념이 끝이난 것은, 덤덤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낯선 자의 음성 탓이었다. 땅을 향해 고개를 처박은 채 발 끝을 바라보고 걸음을 옮기던 민석이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고, 바닥을 향해 숙여졌던 고개가 들려졌다. 그리고 제 앞에 자리한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눈 앞의 남자는 그대로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상체를 숙인 남자의 머리를 내려다보던 민석의 의아함이 풀린 것은, 허리를 숙였던 남자가 다시 몸을 일으켜 민석과 눈을 마주쳤을 무렵이였다.
“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 ……. ”
“ 오랜만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형식적인 인사치레에도 민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는 덤덤한 얼굴로 민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 괜찮으시다면, ”
“ ……. ”
“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나요. ”
“ ……. ”
“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
공손하게 건네 온 제안을, 민석은 차마 거절 할 수 없었다. 깍듯이 베어있는 예절은 예전과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루한이 자리를 뜨고 나면 언제나 덤덤한 얼굴로 저를 찾아와 허리를 숙이던 남자. 차마 몸을 싣기도 죄송스러울 만큼 값이 나가던 외제차에 저를 태우고, 홀로 뒷자석에 앉아 눈물을 삼켜낼 때면 말없이 휴지를 밀어주던 자상한 남자였다. 그래서 민석은, 그를 차갑게 내치지 못했다.
“ ……잠깐, 정말 잠깐이에요. ”
남자는 민석에게 한번 더 깍듯이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1편을 그냥 저능아라는 제목으로 올릴때 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연재를 생각했었던 글이 아니기 때문에
쌓아놓은 비축분도 없고, 그냥 그날 그날 짬 날때 글 쓰고, 수정한 후에야 올리는 글이라 올리는 텀이 들쑥날쑥 하네요ㅜㅜ
그래서 언제언제 오겠다 확실한 답은 못 드리겠으나, 최대한 빨리 올 수 있도록 할게요!
달아주신 덧글 하나하나가 너무 감사해서 정말 짬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업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ㅜㅜㅜㅜ 다들 사랑해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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