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아니에요.백현씨..일단 경수 좀..제발 경수부터 좀 데려가세요...제발요.."
결국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방문을 열고 다시 현관앞에 섰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경수가 서있겠지. 손을 들어 문을 쓸었다. 다시 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지금 문앞에 있지."
모르는게 없네. 우리 경수는.
"나 다 알아. 너 문앞에 있는거 다 알아."
맞아. 너는 언제나 모든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이번에도 좀 알려줘. 이제 내가 어떡해야 하는건지. 경수야.
"....이제..내가 싫어?"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바빠서..너 외롭게 한거 알아. 한번만..더.."
외로운 그 시간까지 니가 준거니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견뎌냈어 경수야. 니가 준거니까.
"기회를 줘..너 이러니까 진짜.."
머리를 현관문에 기댔는지 작게 소리가 울린다. 머리 눌린다고 싫어할거면서.
"나 미칠것 같아..어?"
"...경수야."
급하게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를 듣고 많이 놀란 경수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가."
"제발..지금은 가."
"전화..할게. 그러니까.."
"오늘은...일단 가서...연습도 하고..그래..응?"
말을 마쳤다.
경수는 아무말이 없다. 갑자기 이런 내모습에 화를 낼만도 한데 바보같이 밖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거다.
사실 너무 지친다. 너무 많은 일이 내게 일어난것 같다. 밤새 잠들지 못한 피로가 지금 몰려오는것 같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혹시 다 없던일이 되진 않을까..
뒤돌아 방으로 향하려는데..
"..사랑해."
"..사랑해...정말.."
"가수도 뭣도 다 포기할만큼 너..."
"사랑해 내가.."
너에게 닿지 않을 목소리로 나는 말한다.
"나도.."
아주 조그맣게..내게만 들리도록.
"나도 너 너무 사랑해 경수야."
방으로 들어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다시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백현씨다.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지금 경수 옆에 없어요. 저 혼자 잠깐 밖에 나왔어요.
".....네."
-아까..경수 잘 데려왔어요. 안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따라오던데요. 하하..
"..잘됐네요. 많이 혼났어요 경수?"
-아니요. 그냥 싫은소리 좀 들었죠 뭐. 워낙 평소에 열심히 하는 놈인거 다 아니까요. 그러니까..
"...."
-이제 징어씨 얘기해봐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나 많이 화났어요. 도경수는 지금 못봐주게 굴고있고 뭐 제대로 먹지도 않아요. 그런데다가
징어씨 목소리도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할게 없잖아요. 집이에요? 지금 나 갈거에요. 나는 도경수 아니니까 문 열어줘요. 알겠어요?
전화를 그렇게 끊겼다. 나는 경수를 잘 알고있다. 말없이 그의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나를 찾고 또 찾을 것이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작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징어씨, 저에요-
문을 열었다. 급하게 온건지 차림새가 평소와 다르게 엉망이다.
"지금 꼴이 좀 웃겨도 이해해요. 워낙에 급해야지. 문열어줘서 고마워요."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곤 소파에 앉았다.
백현씨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곧 나를 마주보고 바닥에 앉았다.
"왜..바닥에 앉아요."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안부묻고 그럴 분위기 아니니까 물을게요. 무슨일이에요."
흔들림없이 나를 바라보는 백현씨를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를 도와달라고..경수가 더이상 날 사랑하지 않게 도와달라고...
내가...에이즈환자라고...
"둘이 죽고 못살면서 도시락 싸들고 우리 연습실 놀러온게 일주일전이에요. 갑자기 이럴만한 이유가 있을거 아니에요."
"..백현씨."
"..진짜 너 답답하게 할래?"
내가 경수와 사귀는 사인걸 알고나서부터 내게 존대를 하던 백현이가 화가 났는지 예전처럼 말을 걸었다. 고등학교때...그때처럼..
"그럼..우선 약속해줘요..아니 약속해줘."
"뭘."
"너랑 나만 알고있기로."
"..알았어. 알겠으니까 빨리 말해."
백현아..글쎄..병원에서..나한테...
"에이즈래."
"....뭐?"
"내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백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