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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성찬 엑소
0332 전체글ll조회 3066l 3

두준아. 이제 정말 봄인가봐. 집 앞에 벚꽃들이 잔뜩 핀 거 있지? 꽃보는데 정신 팔려서 멍하니 서있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온 몸이 나른해지는 게 그냥 누워서 잠이나 자고싶다. 사실 지금도 조금 졸려. 너무하다구? 에이, 농담인거 알면서. 보자, 한달, 세달, 여섯달. 여섯달이나 지났다 벌써. 너 거기 간거 말이야. 가기전엔 깔끔하게 머리 가다듬고 갔는데 벌써 눈 가릴만큼 길렀겠다. 너 그런거 손질하는 거 귀찮아해서 그냥 가만히 냅뒀을 거 아니야. 내 말이 맞지! 아, 맞다. 거기도 여기처럼 벚꽃으로 가득 해? 너도 나처럼, 아니 나만큼이나 좋아했잖아, 벚꽃. 작년처럼 눈처럼 흩날리는 거 또 보고싶다. 음.. 딱 6개월만 기다리면 작년처럼 같이 볼 수 있겠다. 아.. 그땐 봄이 아니구나. 어쩔 수 없지. 딱 일년. 딱 일년만 기다려. 그러면 내가 벚꽃잎 잔뜩 따다가 너한테 갈게. 금방일거야, 육개월도 일년도. 

  

있지 말이야. 보고싶어, 아주 많이. 이럴줄 알았으면 너랑 사진 좀 많이 찍어둘 걸 그랬어. 어껴뒀다가 혼자서 많이 많이 보게. 추억은 많은데 남은게 없으니깐 좀 속상하다. 넌 나 안보고싶어? 맨날 무뚝뚝하게 나도. 이런말만 하지 말고 오글거려도 좋으니깐 다정한 말 좀 해달란 말이야, 멍충아. 너 그럴때마다 미워 죽는 줄 알았어. 너 다시 만날때 쯔음엔 좀 변해있으려나. 아, 맞다. 두준아 있지 내가 처음으로 니 앞에서 엉엉 운날 혹시 기억나? 왜 아침에 눈이 팅팅 부어서 니가 막 비웃었잖아 붕어랑 친구해도 되겠다면서. 근데 나 내일도 왠지 붕어가 나한테 와서 요섭아 안녕? 하고 인사할 것 같아. 그래도 놀릴 니가 없으니 조금 안심이다. 할말은 아주 아주 많지만 이만 줄인다. 그래도 넘 아쉬워 하진마. 내가 방금 말했잖아 내일 아침에 붕어가 안녕할지도 모른다구. 보고싶을거야 지금도 내일 아침도, 멍하니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을 때도 모두. 

  

두준아, 사랑해.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이. 내년 봄에는 꼭 보자. 6개월 뒤인 가을에는 너 보려 안갈꺼야. 니가 떠나갔던 가을엔 왠지 너 보러가기가 싫다. 춥잖아. 너도, 그리고 나도.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만 보고싶어도 참을게. 가고싶지만 참을게. 참기 싫지만 또 참을 게. 사랑해, 두준아.  

  


                                                                                                                                                                 from.4월의 봄날 요섭이가. 


  

  ps. 

  

  

  

  

  

  

                                * 

  

  

  

  

  


일년 전 차마 건내지 못했던 편지를 꽉 말아쥔 요섭이 더디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끼이익-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신분증을 반납한 요섭이 다시금 편지를 말아쥐었다. 별 개의치 않는 건지 아니면 긴장이 되어 인식 하지 못하는 건지 안내에 따라 걸음을 내딛을 수록 실리는 힘에 요섭의 손 안에 위치한 편지는 잔뜩 구겨져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내 요섭에게 길을 안내하던 사람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춰섰고, 곧 문을 열어보라는 듯 고개짓을 하기에 두어번 고개를 끄덕인 요섭이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곤 눈물을 참으려 제 아랫입술을 깨물기도 전에 왈칵 차오르는 눈물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가는 것만 같아 서둘러 소매를 들어 거칠게 눈물을 닦아내었다. 아직 제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건지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건지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두준에게 요섭이 천천히, 그리고 더디게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걸음을 채 내딛기도 전에 풀려버리는 다리에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서야 저를 향해 돌아보는 두준에 요섭이 내려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나마 올려 두준에게 빙그르 웃어보였다. 오른쪽 가슴에 빨간바탕으로 '5112'이라 새겨져있는 글씨가 제 눈에 띄었다. 일년하고도 6개월만에 마주한 두준의 얼굴은 변함이 없는 듯 싶었다. 

  


"너 보려고 교도관님께 억지로 졸라서 머리도 잘랐어." 

"…응." 

"…벚꽃이 참 이쁘지?" 

"그러게…." 

"보고싶었어." 

"나도 보고싶었어." 

  

벚꽃따위 보이지 않았지만 미소를 띄운 채 천천히 말을 하는 두준을 따라 요섭도 슬핏 웃음을 띄웠다. 요섭이 여전히 두준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를 제 주머니 속에 구겨넣었다. 두준이 제게 손을 내밀었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손을 마주잡았다.  

  


"오늘하고 내일, 딱 이틀이야." 

"알어." 

"이제 갈까?" 

  


마주잡은 손에 힘을 실는 것이 느껴져 요섭은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차오를 뻔 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기에 목이 따가워질 정도로 참고 또 참았다. 곧 저와 두준이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교도관이 앞장서서 먼저 앞으로 걸어나갔고 그런 교도관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두준과 요섭이었다. 밖에 위치하고 있는 특실을 가기위한 걸음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보이는 조그마한 건물에 잠겨있던 자물쇠를 풀 뒤, 안으로 들어가라는 교도관의 말에 신발장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두준과 요섭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꽤나 음산해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 평범한 가정집같아 보이는 내부에 요섭이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두준에게 특별히 내려진 1박2일의 휴가가 교도소 안이란 것이 조금 속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하는 생각에 요섭이 저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곧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듯 슬쩍 미소를 띄워주곤 밖으로 나가는 교도관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 요섭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내부를 구경했다. 그런 요섭이 귀엽다는 듯 두준이 그저 제 눈동자를 돌려 두 눈 가득 요섭을 담았다. 많이 많이 보고 많이 많이 간직하고 싶었다. 저 예쁘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말이다. 

  


"나쁘진 않네, 그렇지?" 

"그러게." 

"에이, 그게 끝이야? 내가 편지에도 말했…." 

  


곧 제가 두준에게 편지를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요섭이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얼버무려 버렸다. 그런 요섭을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는 두준의 눈길을 애써 무시한 요섭이 괜히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산을 떨었다. 두준이 그런 요섭을 한껏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욕실청소 간단히 하고 물받고 올게. 오랜만에 같이 목욕하자." 

"응. 그러자." 

  


싱긋웃으며 대답하는 요섭의 뺨을 두어번 부빈 두준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마자 요섭이 서둘러 제가 메고온 가방을 뒤져 분홍색과 하얀색 종이 그리고 가위를 꺼내들었다. 이곳에 오기전 그 흔한 벚꽃나무가 없다는 귀뜸을 듣고 챙겨온 것이었다. 두준이 나올새라 요섭이 손을 바삐 움직여 하얀 종이와 분홍색 종이를 조그마한 크기로 싹뚝싹뚝 잘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서 미리 잘라온 것들과 합치니 꽤 많은 종이들에 요섭이 저 혼자 방긋 웃었다. 아마, 두준이 이제 곧 화장실에서 나올 듯 싶어 큰 통안에 그것들을 모두 넣고는 한 손 가득 종이를 움켜쥐곤 화장실 앞으로 갔다. 

두근 두근 거리며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던 중 두준이 나왔고 한줌 가득 쥐고 있었던 종이를 하늘 위로 뿌렸다. 실제 만큼은 아니지만 예쁘게 저와 두준 사이를 흩날리며 떨어지는 종이들을 보고 요섭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웠다.  

  


"벚꽃이야. 이쁘지?" 

"그러게.." 

"진짜였으면 좋았을 텐데…." 

  


꽤나 아쉬워하는 요섭에 두준이 요섭의 품안에 들려있는 통안에서 종이를 한줌 꺼내 요섭의 위로 뿌렸다. 그러자 눈을 방긋 웃으며 그자리에 한바퀴 빙그르르 도는 요섭에 두준도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종이를 뿌리며 웃기 바쁘던 두준과 요섭이 이내 지친건지 종이가 잔뜩 흐트러져있는 바닥위로 누웠다. 요섭이 먼저 두준의 손을 마주잡았고 두준도 그런 요섭의 손을 잡았다. 두준이 제가 좋아하는 웃음을 얼굴 가득 짓고 있는 요섭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제 씻으러 갈까?" 

"그래. 물 다 넘쳤으면 어쩌지?" 

"먼저 물에 들어가있어. 나 이거 치우고 갈게." 

  


뭔가를 망설이는 듯 싶던 요섭이 곧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곤 먼저 욕실로 들어섰다. 두준은 바닥 가득 흐트러져있는 종이를 손으로 모아 다시 통안으로 넣었다. 요섭이 직접 잘랐을 이 종이들이 제게는 실제 벚꽃보다 열배, 아니 백배는 더 값지고 예뻤다. 저를 생각해주는 요섭만큼이나. 조그만 종이가 혹여나 구겨질새라 조심스레 종이를 통안에 다 담은 두준이 통을 창가위에 올려두곤 저도 욕실로 향했다. 저 혼자 물을 첨벙이며 놀고 있는 요섭에, 두준이 작게 웃음을 띄웠다. 서둘러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제 가슴에 요섭이 기대어 앉도록 했다.  

생각만큼 그리 좁지 않는 터라 저와 요섭이 들어가고도 조금 널널한 욕조에 두준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욕실 안은 똑똑 물떨어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고 그런 조용함이 싫지 않는 요섭과 두준이었다. 오랜만에 만난터라 하고 싶은 말도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때론 이런 침묵이 더 마음을 편안히 해주고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생각했다. 따뜻한 물과 편안한 분위기. 노곤해지는 기분에 요섭이 눈을 내리감았다. 

  


"뭐든게 다 처음같이 느껴져." 

"……." 

"너랑 이렇게 같이 목욕하는 것도 처음 아닌데.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하여튼 무뚝뚝하다니깐. 제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 아무런 말도 않는 두준에 요섭이 입꼬리를 올려 작게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있다간 물에 푹 삶아진 돼지고기가 될 것 같은 기분에 요섭이 새빨개져있을 얼굴을 하고선 몸을 일으켰고 그런 요섭을 따라 두준도 몸을 일으켰다. 대충 몸을 헹구고 나온 두 사람의 머리위엔 나란히 새하얀 수건이 올려져있었다.아직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꽤나 어두워진 밖을 보고 요섭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4월인데, 봄인데. 창문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다. 

  


"두준아." 

"응?" 

"집앞에 심어놨던 민들레 기억나?" 

"응. 내가 그 흔한 꽃을 왜 직접 심냐고 했다가 싸웠었잖어." 

  


웅얼거리듯 말하는 요섭의 말에 두준이 푸스스 웃음을 흐트리며 말했다. 

  


"아마, 이제 곧 필거야." 

"응, 4월이니깐." 

"노란 민들레 꽃이 하얀 꽃씨로 변하면…." 

  

  

떨려오는 요섭의 목소리를 눈치 챈 듯 두준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요섭의 손을 마주잡았다. 밖으로 보이는 쇠창살에 문득, 아주 문득 마음이 무거워져왔다. 

  


"바람을 타고 이 곳에 와서 꽃을 피웠으면 좋겠어." 

"……." 

"…그렇지?" 

  


웃음을 띈 요섭의 얼굴 새로 얼핏 눈물이 고여있는 듯 싶었지만 두준은 모른척 해주기로 한 채 두어번 고개를 끄덕였다. 요섭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먼저 마주잡은 손을 놓았다.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치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줬다. 원래 살이 없던 편이였는데 못본새 살이 더 빠져버린것인지 잔뜩 연약해보이는 뒷모습에 두준도 울컥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아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내년에는 그 꽃, 꼭 같이 보자…. 

  

이 말을 차마 요섭에게 건낼수 없던 두준이었다. 결국 그자리에 주저앉은 두준이 잔뜩 뭉쳐져있던 울음을 내뱉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상대 몰래 울음을 내뱉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고 서러웠다. 그래서 더욱 눈물을 멈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란 걸 잘 알기에. 


지금이 겨울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적어도 추위에 유독 약한 요섭이 혼자 추운 겨울을 나지 않아도 되니깐. 요섭이 유난히 좋아하는 따뜻한 봄날이 함께니깐. 그러니깐 ….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봄날이 계속되기를 비는 것 뿐이다. 

  

  

  

  

  


                               * 

  

  

  

  

  


"내일 아침에 붕어가 너한테 안녕하겠다." 

"나한테만? 너한테도 안녕할껄." 

  


아이같은 얼굴로 제 눈을 톡톡 두드리며 말하는 요섭에 두준이 못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준이 탁상위에서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밤 10시 두준과 요섭이 만난지 정확시 12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12시간…. 초가 흘러가는 걸 바라보던 두준이 이내 눈을 꾸욱 내리감았다가 다시 떴다. 제가 눈을 감고 뜰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예전에도 이렇게 시간의 소중함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었나, 하고 잠시 고민하던 두준이 제 코를 잡아당겨오는 요섭의 손길로 인해 아-하고 작게 소리를 내뱉었다. 다른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요섭에 웃음을 터트리곤 제 두손으로 요섭의 얼굴을 감싸 요섭의 입술 위로 짧게 입을 맞췄다.  쪽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입술이 못내 아쉬웠던 건지 두준이 다시 두어번 요섭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달다." 

  


빙긋 웃으며 말하는 두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요섭이 곧 제 손뼉을 두어번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가방에서 수첩하나를 꺼내들었다.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 마냥 품안에 쏙 품고 총총총 걸어온 두준이 누워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두준의 몸을 일으켰다. 

  

  

"뭔데?" 

"너 못보는 동안 너랑 하고 싶은 거 적었어." 

"나랑 하고 싶은거?" 

"응. 우리가 못해본게 꽤 많더라구!" 

  


아이처럼 커다랗게 손동작을 취해가며 말하는 요섭이 귀엽다는 듯 두준이 커다란 손으로 요섭의 머리를 잔뜩 헝클여트렸다. 베시시 웃어보인 요섭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바닥 크기만한 수첩을 넘겼다. 꽤나 많이 만지작 거린듯 수첩은 빛을 바라고 구깃구깃해져 있었다. 척보기에도 꾹꾹 눌러쓴게 보이는 조그마하고 동글동글한 글씨체에 두준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그 흔한 노래방도 같이 안가봤더라구." 서운하다는 듯 요섭이 울상을 지었다. 두준이 잔뜩 찌푸려진 요섭의 미간을 제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같이 이불빨래도 못해봤구, 레스토랑도 안가봤어. 19금 영화도 같이 보러 간 적 없고 너가 나한테 요리해준적도 없어. 그리고…." 

"또?" 

  


손가락을 하나 하나 접으며 신이 나서 말하던 요섭이 이내 말을 멈췄다. 목이, 메어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뭐?" 

"그리고…." 

  


창가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이 차다. 따뜻했으면 좋겠는데, 차다. 

  


"…그리고 같이 심었던 꽃들도 아직 못봤어." 

  


애써 웃으며 말하는 요섭의 손을 두준이 움켜잡았다. 그런 두준의 손을 마주잡은 요섭이 고개를 떨궜다. 정말 쓸데없게도 눈물이 비죽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두준과 못해본 것이 너무 많아서? 아니면 그것들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아니면, 

  


"…미안해." 

  


이렇게 미안해할 두준을 알아서일까. 하지만 답은, 없다. 제가 아는 것은 지금 그렁그렁 차오른 이 눈물이 흐르면 두준의 앞에서 엉엉 울어버릴거란 것과 내일 아침 퉁퉁 부은 눈으로 두준을 맞이하게 될 거란거. 이거 둘뿐이다. 하지만 그런 눈으로 두준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애써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들었다. 제가 고개를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준이 웃음을 지었다. 좀 전과는 다른 무거운 분위기에 제 아랫입술을 달싹이던 요섭이 다시 몸을 일으켜 제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제 방안에 먼지가 잔뜩 쌓인채로 놓여있었던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오늘 두준을 많이 많이 간직할 생각이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두준에게 개구지게 웃어보인 요섭이 무작정 두준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찰칵이는 소리와 함께 플레쉬가 터졌고 카메라 안엔 한껏 당황한 표정의 두준이 자리잡고 있었다. 

  


"뭐야." 

"뭐긴, 사진찍기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섭이 다시 셔터를 눌렀다. 곧 두준이 체념한 듯 카메라를 바라봤고 요섭은 하나라도 놓칠새로 바삐 손을 움직였다. 한참동안의 사진찍기가 이어지던 중 곧 지친건지 카메라를 탁상위에 올려둔 요섭이 침대위로 풀썩 누웠다. 두준이 요섭이 내려놓은 카메라를 들어 손을 최대한 뻗은 뒤 저와 요섭을 찍었다. 잔뜩 흔들거리고 초점이 맞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이것들도 모두 추억인 것이다. 

  


"안피곤해?" 

"그렇지 않아도 이제 잠온다." 

"얼른 자. 내일 가야하잖아." 

  


다정한 두준의 음성에 온몸에 나른해져오는 요섭이었다. 눈을 내리감으면 금새 잠이 들 것만 같았다. 

  


"내일이 영원히 안오면 좋겠다.." 

"…내일이 오지 않는 날은 없어. 오늘도 어제의 내일이니깐." 

"나도 알어, 바보야." 

  


그런 말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슬쩍 말을 돌리는 두준의 코를 요섭이 아프지 않게 잡아당겼다."자자." 조금 잠긴 듯한 두준의 목소리에 요섭이 두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언제나처럼 따뜻하다. 그래서 인지 언제나처럼 금새 잠이 들어버릴 것만 같다. 이렇게 변한 것은 없는데 세상이 저와 두준을 변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저 이런 평범한 일상의 행복도 이젠 없다. 정말이지, 변함이란게 싫다. 

  


"요섭아 자?"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들리는 두준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면 바보처럼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요섭이 애써 모른 척 했다.  

  


"니가 쓴 편지 봤어." 

  


분명 제 주머닛속에 잔뜩 꾸깃해진채로 넣었던 것 같은데 봤다고 하는 걸 보니 욕실에 들어갈때 아무렇게나 옷을 벗다가 떨어진 모양인듯 싶었다.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우습게도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다정하지 못해서 미안해…." 

  


너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그런데 변하지 못한 것도 미안해…." 

  


변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해. 지금 자면서 꾸고 있을 꿈이라고 생각하면…." 

  


꿈이 될수 있을 리가 없었다. 두준과의 추억은 너무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저장되어 버렸고 한낯 컴퓨터처럼 휴지통에 버려버린다고 몽땅 사라져버리는 따위의 것들이 아니었다. 

  


"…꿈이라고 생각하면, 일어나서 하나도 안아파." 

  


두준과 함께 였던 꿈의 끝이 저 혼자 눈을 뜨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는 것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일이 지나면 그래야만 했다. 저혼자 눈을 뜨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사진을 보고 혼자 산책을 가고. 이젠, 정말 혼자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요섭은 목끝까지 차오른 울음을 삼키려 애를 썼지만 그것이 될리가 만무했다. 한없이 흐르는 눈물은 베개를 적셨고 두준도 제가 자는 척 하는 걸 알고 있었던 듯 그저 천천히 제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그렇게, 마직막 꿈이 지나가고 있었다.  

  

  

  

  

  

  

  


                              * 

  

  

  

  

  

"일어났어?" 

"응." 

  


제 앞머리를 간지럽히는 손길에 눈을 뜬 요섭이 저를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두준을 보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들어 탁상 위의 시계를 확인하기 무섭게 번떡 몸을 일으켰다. 맙소사, 벌써 아홉시다. 이제 한시간 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벌써부터 안절부절 불안해 죽겠는데 두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며 요섭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안깨웠어?" 

"너무 곤히 자길래." 

"한시간 밖에 안남았잖아! 너 보는…." 

  


무슨 금기어라도 얘기한것마냥 요섭이 입을 꾸욱 다물었다. 잠시동안 흐르는 정적에 요섭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두준에게 맛있는 밥을 해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빠듯할 듯 싶었다. 서둘러 부엌으로 간 요섭이 어제 미리 확인해둔 냉장고 안에서 재료를 이리저리 꺼낸 뒤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두준이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였다. 

  


"벌써부터 냄새 좋다." 

"저기 앉아 있어. 너 다쳐." 

"조금 다치면 어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두준의 발을 꾸욱 밟은 요섭이 뒤에서 저를 안은 채 따라다니는 두준을 달고 요리를 했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고 어려운 요리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금새 완성된 된장찌개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요섭이 간단한 계란후라이까지 다 구운 후에야 저도 식탁에 앉았다. 꽤나 허기가 진 모양이였던지 두준은 군말없이 밥을 퍼먹고 있었다. 그런 두준은 빤히 바라보고 있던 요섭이 곧 제 손에 들려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턱까지 괴어가며 두준을 바라보았다. 

  


"나 체할 것 같은데. 너도 얼른 먹어." 

"난 배 안고파." 

  

  

한참을 티격태격하며 밥을 먹던 중 끼이익-따위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을 한 교도관 한 명이 신발을 신은 채로 요섭과 두준에게로 다가왔다.  

열려진 문틈새로 따스한 봄날이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5112 시간 다됐다.. 나와." 

"벌써 그렇게 됐나요…." 

  


되묻는 두준의 표정은 꽤나 무덤덤했다. 남은 한숟갈마저 입안에 넣은 두준이 손을 내밀라는 듯 고갯짓을 하는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채워지는 수갑에 요섭이 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벌써,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조금 일찍 일어날걸, 하고서 후회가 밀려왔지만 되돌릴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앞서나가는 두준과 교도관을 뒤따라 갈 뿐이었다. 손을 잡고 가고 싶은데…. 

얼마 걷지 않아 교도관이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두준과 요섭도 그 안으로 같이 들어섰다. 두준과 하룻밤동안 있었던 곳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에 요섭이 제 팔을 두어번 쓸었다. 곧 창살안으로 두준이 들어선 뒤 교도관이 자물쇠로 문을 잠궜고 안에 있던 다른 교도관에게 열쇠를 넘겼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듯 고갯짓을 하는 교도관을 보고도 요섭은 창살 너머에 있는 두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요섭아." 

"…." 

"넌 말이야, 내가 보고 싶을 때 어떻게 했어?" 

  


갑작스러운 두준의 물음에 요섭이 입술을 달싹였다. 당연히 사진을 봤다. 얼마 안되는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너무 많이 봐서 사진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보았다.  

  


"나는 니가 보고싶어지면…." 

  


말을 하던 도중 두준이 눈을 내리감았다.  

  


"나는 어둠을 봤어." 

"…." 

"그러면 니가 더 잘 보였거든." 

  


어둠 속에서 저를 보았다고 한다. 어둠속에서…. 저는 아무리 눈을 감아도 두준이 보이질 않았는데 두준은 제가 잘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놓여왔다. 

  


"그러니깐 너무 걱정마." 

"…두준아." 

"내가 좋아하는 너 실컷 볼게." 

  


두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결국엔 눈물이 터졌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마지막까지 웃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결국엔 울어버렸다. 쇠창살 사이로 손을 밀어넣은 두준이 수갑을 찬 손으로 제 눈문을 닦아주려 애쓰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 웃음새로 얼핏 울음이 새어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번 터진 울음은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왔고 옆에서 저와 두준을 지켜보고 있던 교도관들도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정말 마지막이에요." 

"…." 

"딱 한번만 이 수갑 좀 풀어주세요. 정말 아무런 소동도 안벌일게요. 정말이에요." 

  


눈물이 잔뜩 그렁그렁 한 두준을 본 교도관이 잠시동안 망설이는 듯 싶더니 이내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꺼내 수갑을 풀어줬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갑이 풀렸고 손을 뻗어 요섭의 눈물을 닦아낸 두준이 제 품에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냈다. 반으로 자른 생수통에 흙과 함께 넣은 노란 민들레 꽃이였다. 오늘 새벽 요섭 몰래 일어나 교도소 이곳 저곳을 뒤져서 찾은 것 이였다. 

  


"이 민들레가 하얀 꽃씨를 틔우면…." 

"…." 

"내 옆에 심어줘." 

"…." 

"바람을 타고 너한테 날아갈 수 있게." 

"…." 

"그러니깐…." 

  


내년쯤이면 아마, 꽃이 활짝 필 것이다. 

  


"내년엔 같이 꽃 구경하자." 

  


조그마한 창문 틈새로 따스한 봄볕이 새어들어왔다.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새하얀 민들레 꽃씨가 바람을 타고와 내려앉았고, 창가위에 올려두었던 종이들이 열려진 창문 틈새로 흩날리듯 공중으로 흩어졌다.  

  

  


정말,봄이다. 

  

  

  

  

  

  

ps. 다음해의 오늘은 너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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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독방에서 보고왔어요ㅠㅠㅠㅠㅠㅠㅠ 아련아련 ㅠㅠㅠㅠㅠ 애틋해서 제가다 눈물이 나오네예...ㅠㅠㅠㅜㅜ 진짜 글잡에 두석조각이라니 두섭러는 쥬금..ㅠㅠㅠㅠ진짜 금손이세요ㅠㅠㅠ 한번읽으면 부족하니까 또 읽으러가요 ! ^♥^ 진짜너무재밌어요ㅠㅠ
10년 전
독자2
헐글잡에서비스트는오랜만에봐서들어왔더니이거너무슬퍼요ㅠㅜㅠㅠㅠ작가님금손이시네요ㅠㅜㅠㅠㅜㅠ
10년 전
독자3
헐 왤케 아련하죠?ㅠㅠㅠㅠ보다가 눈물이..
10년 전
독자4
허우ㅜㅜㅠㅠㅠㅠㅜ슬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5
글잡에 비스트라니 ㅠㅠㅠㅠ 진짜 금손이시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눈물난다
10년 전
독자6
아대바규ㅠㅠㅜㅜㅜㅜㅜㅜ작가님 ㅜㅜㅜㅜㅜ진ㅋ자제취향저격하셨어요ㅜㅜㅜㅜㅜ이거텍파로내주시면안되요?진짜저이거보고울컥해서눈물이안멈춰요ㅜㅜㅜㅜㅜㅜ어떡하죠ㅠㅠㅠㅠㅠㅠㅠㅠ두섭이들이진짜...ㅜㅜㅜㅜ♥
10년 전
독자7
독방에서보고왛어오ㅛ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ㅜ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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