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준.요섭
은월각의 달.
.밤공기가 차가워 저잣거리의 서민들조차 그림자를 내 보이지 않는다는 축시였다
두준이 침상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내내 이리저리로 뒤척이다 결국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앉자
밖에서 왕의 잠자리를 지키고 서있던 내관들과 궁녀들이 제법 발걸음 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전하,옥체를 강녕하셔할 시간이온데 혹여 상후 미녕 하신데라도.]
벽을 뚫고 들어오는 내관의 말에도 대꾸조차 하지 않은체 두준은 묵묵히 야장의 차림을 정리하고는 침소의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몸을 파고들어오자 그제서야 살것같다는 표정을 짓고는 두준이 디딤돌을 밟는다
[ 뭐하고있느냐! 어서 도포라도 챙겨오지 않고!]
행여나 두준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앞이 깜깜해지는듯 뒤에 서서 안절부절
연신 발을 동동 굴러대던 장원이 이내 시녀들에게 바쁘게 손짓하며 옷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그런 장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시선을 돌리던 두준이 드디어 굳게 다물었던 입을 떼며 말을 꺼낸다
[ 장원아,내 오늘 잠도 안오고 오랜만에 미복 잠행이나 나가볼까하는데 어떠냐]
미복잠행이라하면 군주가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몰래 궁을 나서서 살피고오는 일을 말했다
두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포를 덮어주던 장원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푹 숙이고는 땅에 몸을 바짝 엎드렸다
[ 전하! 앞으로 잠행은 절대 안되옵니다! 대비마마라도 아시는날엔 크케 경을 치실것이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경이란 두준을 향한것이 아니라 두준을 모시고 있는 장원,즉 자기 자신의 몫을 말하는것이였다
어릴적부터 두준을 곁에서 모셔온 장원에게 있어 두준은 감히 말하자면 오래된 친구이자 가족이며 우러러 볼수없는 존재였지만
그런 두준을 대신해서 대비마마의 호된 꾸지람을 들을 생각을 하면 오금이 저려오는듯 다리가 덜덜 왔다
무엇보다도 두준의 잠행을 감히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저번에 한번 새벽 잠행을 다녀오던 두준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통에
저잣거리 시내를 얼마나 헤메고 다녔는지,
다행히 얼마 못간 두준을 발견했지만 궁에 입궐하자마자 그대로 다리가 풀려 한동안 땅바닥에 주저앉아 동이 틀때까지 신세 한탄을 했던적이 있었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장원은 아직도 꿈처럼 생생한건지 두번 다시는 겪고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 그럼 너는 여기 있거라,뭐 굳이 데려갈 필요성도 모르겠구나]
두준이 땅에 엎드려있던 장원의 어깨를 길고 고운 손으로 몇번 토닥 거려주고는 뒤를 따르는 내관들에게도 그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듯
손짓하더니 이내 앞장서서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색이 된 장원이 그제서야 어쩔수없다는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따라가자
두준도 그럴줄 알았다는듯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굳게 닫혀있던 강녕전의 대문을 열어주는 내시들에게 오늘 잠행에 대해 비밀로 하라는듯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