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S : 늑대 인간과 뱀파이어의 상관관계
01.
"붙지 마, 개새끼 냄새나니까."
"피 냄새나니까 입 다물어."
"힘만 더럽게 세고 뇌는 없는 무식한 개 같으니라고."
"그 센 힘으로 압박해 줘? 네 손목 내가 한 번 쥐면 부러지는 건 알고 하는 소리지?"
이래서 내가 늑대 인간이랑 상종을 안 해.
이래서 내가 뱀파이어랑 상종을 안 한다고.
지나가던 민윤기와 김남준이 코웃음을 쳤다. 지랄하네. 민윤기는 욕설까지 했다. 굳이 반응하지는 않았다. 이게 일상이었다. 무미건조한 몇 마디로 전정국과 내가 지루한 다툼을 하고, 발소리마저 똑같은 민윤기와 김남준이 우리를 보고 멈춰서 코웃음을 치다 뻔한 욕설.
일상이었다.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떨어져."
말은 그렇게 해도 딱 붙어 있는 팔과 다리가.
일상이었다.
02.
영화를 봤다. 인간들이 만든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에 관한 영화였다. 그저 그랬다. 인간들의 반응이 조금 신기했을 뿐. 뱀파이어가 되어 보고 싶다, 늑대 인간에게 사랑받아 보고 싶다, 뱀파이어가 되든 늑대 인간이 되든 인간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다. 인간들의 반응이었다.
"영화 어때?"
나는 눈을 깜빡였다. 같잖고 좋네. 이미 영화는 머릿속에서 잊혀진 지 오래였다. 전정국과 나는 영화가 어떠냐는 질문에 대충 대답해 주고 다시 인간들의 영화 감상평들을 읽었다.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에 대해서 다 좋은 반응들뿐이었다.
……지랄하네. 민윤기의 욕설이 머릿속을 울렸다. 괴물들이라면서. 돌연변이라고 마음대로 가져다 붙인 이름은 어디다 두고, 너네는.
이가 앙 다물어졌다. 딱히 무어라 말을 꺼내고 싶진 않았다. 다시 민윤기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지랄들을 하세요, 지랄들을.
"……이 영화 별로야?"
전정국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였다. 영화는 별로였고, 감상평들은 더 별로였다. 그냥 그뿐이었다.
03.
"이게 다 뭐야?"
"민윤기가 준 혈액팩들."
오늘 아침에 받은 신선한 것들이랬어. 전정국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포장되어 있는 틈 사이로 비릿한 향이 감돌았다. 전정국이 코를 훌쩍였다. 비릿함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듯했다. 도대체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받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의 음식이 맞지 않는 몸 때문이었다. 아침에 이미 한 차례 속을 비워 낸 터라 속이 쓰렸다. 나는 라즈베리 한 알을 입에 넣었다. 혀로 짓누르고, 이리저리 굴려대고. 고작 한 알은 그렇게 뭉개져 버려 결국은 라즈베리의 향만이 입안에 잔뜩 남았다. 아니지, 잔뜩도 아니지. 나는 대충 입안의 잔여물들을 삼켰다. 식도로 넘어가는 건 얼마 없었다. 과즙이 터져 입술 새로 삐져 나온 즙을 손가락으로 닦아 냈다.
"……"
"왜 그렇게 보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전정국의 목소리가 흐렸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소년 같은 음성이 입밖으로 다 나가지 못하고 도중에 뭉그러진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전정국은 얼굴을 돌려 버린 채였다. 급하게 내리깐 눈.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성미가 급한 전정국처럼, 행동도 어딘가 급했다.
나는 전정국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왜인지 어깨가 뻐근해졌다.
04.
입 맞추고 싶다, 고 생각했다. 섞이지 말아야 할 것이 섞일 때의 그 쾌감. 헤집어 놓고 싶다. 헤집어지고 싶다.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그리곤 목덜미를 물어야지. 항상 드는 생각이었다. 뱀파이어도 아닌데 희맑은 목덜미를 콱 물어 버리고 싶었다. 물고 절대 안 놔 줄 거야. 침이 꿀꺽 삼켜졌다.
씹어 삼키고 싶었다. 단 하나도 남김 없이, 게걸스럽게. 입안에 도는 체향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끝내 줄 거다. 입맛을 다셨다.
000의 몸은 늘 낮은 체온을 유지했다. 늑대 인간 특성상 열이 많은 것과 반대로, 000의 몸은 언제나 차가웠다. 그래서 000의 살이 내 살과 맞닿을 때면 움찔움찔거릴 때가 있었다. 살결마저 희고 투명한데, 온도가 서늘하기까지 하니 깨져 버리진 않을까, 부서지진 않을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죽을 때까지 한 반려만 맹몽적으로 바라본다는 특성을 내가 확인 사살을 할 필요는 없어서였다.
입술이 맞닿으면, 녹아 버리고 말 거야. 차가움은 내 열에 의해 데워져 버릴걸. 상근인 000과 나의 유일한 공통점인 날카로운 송곳니를 혀로 흝어 내리고 싶었다. 숨결을 나누고 싶었다. 입술을 떼고 났을 때의 그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전정국."
"……."
"야, 개."
"……개 아니라니까."
000은 종종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부르곤 했다. 전정국, 할 때의 그 목소리의 높낮이는 언제나 같았다. 내가 대답이 없을 땐 '개'라고 칭하는 것도 매일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개 아니라고.
000의 고개가 숙여졌다. 목덜미가 보였다. 목덜미는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를 끓어올리는 힘이 있다. 그게, 내가 환장하는 000이라면 더욱. 골이 아팠다. 000은 내가 식는 점이 어디인지, 끓는 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간파했다. 더 웃긴 건 그게 의도한 게 아니란 거지. 어이가 없었다. 별것 아닌 것에 식고 끓는 것을 반복하는 내가, 언제나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000 네가. 000이 고운 손으로 뒷덜미 부근을 느릿히 매만졌다. 숨을 흡 참았다. 손가락 끝이 발갰다.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왜 이렇게 멍해, 너."
"……아."
"무슨 일 있어?"
가느다란 팔 하나가 공중을 마구 휘저었다. 나는 다시금 입안에 달라붙는 끈적한 타액들을 힘겹게 삼키고 저 팔에 큰 상처를 하나 새기리라 다짐했다. 아주 깊고, 넓은 상처. 그 상처는 000이 죽을 때까지 유효해야 한다.
그래야 000 네가 나를 못 잊지. 머릿속으로만 기억하고 있으면 뭐 해, 육체적으로 기억을 해야지. 안 그래?
05.
그 와인 치워. 피 같으니까.
피를 못 마시니까 피 같은 거라도 마셔야지.
지지 않는 내 대답에 전정국이 내 와인잔을 빼앗고는 셔츠 맨 윗 단추 하나를 풀렀다. 내 피라도 줘? 나는 픽 웃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피는 그 어떤 것보다도 입맛을 돋구겠지만, 그래도 역시.
"개새끼 피는 안 마셔."
전정국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자신을 놔 두고 혈액을 절제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전정국의 희디 흰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으면 참 좋을 거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의 고동도, 신선한 피도 마실 수 있겠지. 그 피는 상쾌하고도 깔끔할 거다. 어쩌면 나는 그 피에 매혹되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혈액은 고귀하고도 아름답다. 그 무엇보다도 유혹적이고, 그 무엇보다도 달콤한.
"그래도 네 피보다야……."
나는 전정국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느릿히 흝었다. 전정국의 목젖이 제법 섹시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네 입술이 더 맛있겠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정국이 달려들었다.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면서도, 내 입술을 거칠게 물어뜯는 전정국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아, 누가 개새끼 아니랄까 봐.
나는 뜬 눈을 조용히 굴려 창밖을 바라봤다. 둥근 달이 떴다. 평소보다 빛의 색이 진하고 영롱했다. The full moon. 보름달이었다.
달빛이 일렁였다. 전정국 눈의 무엇과 아주 비슷해서, 나는 전정국의 숨결을 받아 냈다.
쨍그랑. 전정국의 손에 있던 와인잔이 바닥으로 추락해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축축한 액체가 내 발을 감싸듯이 적셨다. 달큰한 피 냄새가 맞부딪힌 입술 사이로 흘렀다.
06.
제기랄. 정국이 입안 살을 씹으며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쉬었다. 머리가 띵했다. 00의 체향이 아직도 코에 남아 있었다. 향기 주제에 무겁고 집요하다. 정국의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그 날의 그 감촉, 표정, 숨결. 모든 게 생생했다. 곤욕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작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더욱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가 생각한 대로 00의 숨은 짙었다. 잠식되는 기분이었다. 까맣고 반질거리는 00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바다. 그래, 바다가 떠올랐다. 한없이 차갑고도 모든 걸 안을 수 있는 포용력. 글자가 어지러이 둥둥 떠다녔다. 남준이 저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며 정리하라고 준 책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책은 정국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속이 더 엉켰다. 한 장을 더 넘겼다. 정국은 눈썹을 삐축 올렸다. 남준의 취향은 꽤나 확고했다. 더럽게 어려운 데다가……
"……."
수위는 항상 있어야 하지. 남녀가 엉켜드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정국이 책을 덮어 버렸다.
"전정국."
"……."
"자?"
"……아니."
펑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머리든, 속이든. 어디든. 예민한 후각은 언제나 그에 맞는 향을 찾았다. 체향과 로션향이 적당히 어우러져 정국의 코를 찔렀다. 살 냄새. 농도가 짙었다.
"조용하길래 김남준이 너 살아 있나 보라고 해서."
"……."
"살아 있으니까 됐네."
00은 샤워 가운을 걸친 채였다. 정국의 눈이 빛났다. 정국의 영역에서 나가려는 00을 다급히 붙잡아 세웠다.
"……더 있다 가."
"……."
"내가 곧 죽을지 어떻게 알고."
정국이 눈을 접어 웃었다. 어딘가 경직된 미소였다. 풋내가 났다. 그러면서도 뿜어 내는 분위기는 소년 같지가 않아서…….
"그럴 거지?"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00은 말이 없었다.
07.
숨을 골랐다. 이미 호흡은 엉망이었다. 정국이 00의 발목을 꽉 쥐었다. 아. 신음이 터졌다. 정국의 손에 힘이 조금 풀어졌다. 정국이 발목을 쥐었다 펴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나는, 가끔 네 어딜 부러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조금 섬뜩한 말을 하며, 정국은 00의 손목도 잡아왔다. 큰 손이 손목을 지배했다. 두툼한 손에 들어간 손목은 유독 얇고 약해 보였다. 무력감. 00은 그저 숨을 뱉고 들이쉬기만 신경 썼다. 정국의 입술이 목 부근에 자국을 남겼다. 정국은 붉게 생긴 자국에 눈을 빛냈다. 마치 어린 아이 같은, 호기심이 많은 눈빛이었다. 정국은 손가락으로 부근을 살살 쓸고는 이내 입술을 묻어 버렸다.
아!
야생 동물의 그것은 00의 목을 관통했다. 곧 피라도 날 듯이 살갗이 벌갰다. 정국은 상처를 혀로 감쌌다. 차가움과 뜨거움. 양면성을 가진 것이 살에 닿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정국이 타액으로 번질거리는 상처 부위에 촉, 입 맞췄다.
"이 상처가……."
"……."
"얼마나 갈 것 같아?"
몇 개월? 아니지, 몇 주 만에 사라질 수도 있잖아. 이 상처가 없어지면 말해야 해.
다시 새길 거니까. 영원히 안 없어지게. 아니, 못 없어지게.
알았지?
정국이 웃었다. 00은 따끔거리는 제 목덜미의 감각을 느끼며,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08.
00이 벽에 앉아 목덜미를 매만졌다. 정국은 푸스스 웃었다. 정국의 손은 00의 어깨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었다. 00은 불이 꺼진 방이 참 편안하다고 느꼈다.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넌 나를 이해하지 못해.
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지. 그리고, 사람들도 우릴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우리는 괴물이니까. 그렇지?
사담 + 암호닉 공지 |
좀 늦었죠. 미안해요ㅠㅠ 그대신 이렇게 조금 색다른 분위기를 가져와 봤어요. 조금 짧나. 그냥 즐겨 주세요, 일단. 다른 글들은 쓰는 대로 바로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하루 보내느라 수고했어요, 여러분. 이제 매미가 울더라구요. 시끄러운데 10년 가까이 땅에 파묻혀 있다 2주 동안 울다가 죽는 아이들이니 시끄러움 정도는 감수할 생각입니다.
그리구 암호닉은 이제 글마다 써 놓을 예정이에요. 까먹지 마시고, 확인도 하시라구. 또 그냥 보통 글에서 암호닉을 받기로 했습니다. 암호닉 신청글에 채워 넣는 건 제가 알아서 해야죠,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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