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일곱, 여자 하나
─ 20
116. 데리러 갈게
"말도 없이 가도 될까요? 누나가 싫어하면 어떡해요."
"계속 이런 상태일 수는 없잖아. 현오한테는 말해 뒀어."
"……그래두, 누나한테 말한 게 아니니까. 누나가 끝까지 우리를 배려한 만큼 우리도 배려해야 하잖아요."
"걱정 마. 00이한테 말했어."
……네? 우울한 표정인 지민의 어깨에 윤기는 손을 턱 올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 윤기는 데리러 가도 되지? 하는 문자를 보냈다. 다만 답장이 없었을 뿐.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긍정이었다. 현오가 '형 문자에 좋아하는 돼지'라는 제목으로 00이 웃고 있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그대로더라. 다행히 잘 있더라. 사진으로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안도하는 마음 반, 아직도 걱정되는 마음 반, 또 한 켠에는 미안한 마음도. 복잡하다. 남준은 부쩍 말이 없었다. 어쨌거나,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누나 보러 간다!"
"누나 안아도 돼요? 안을래!"
물론 저 두 놈도 시끄럽고. 아, 참고로 김태형과 전정국이라고는 밝히지 않겠다.
"너네 00이 보고 웃는 순간 맞을 줄 알아."
"……."
"상황 파악을 좀 하라고."
"……."
"대답."
"네……."
"예……."
그러다가 운전하던 석진에게 혼났다는 것도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117. 표정, 말투, 몸짓
"누나랑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해요?"
"그건 나도 걱정이다."
차안이 적막에 휩싸였다. 현재 최대의 난제였다. 00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색하지는 않을까. 얼굴 보기 아직 힘들지는 않을까. 과연 정말 괜찮은 걸까. 조바심이 났다. 괜한 행동을 했다가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떡해. 그래도 지나친 배려는 안 좋지 않을까. 한 번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뒤부터는 아무래도 겁이 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야지 재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나. 어떤 표정과 어떤 말투를 해야 하고, 어떤 몸짓을 해야 하지? 고민이었다.
"그냥 평소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차분해진 정국이 툭 말을 꺼내었다. 지민은 이에 대꾸했다. 평소 우리의 모습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였잖아. 정국은 작게 탄식하곤 다시 입을 꾹꾹 다물었다. 으음……. 남준이 침음을 냈다.
"정국이 말이 맞을지도 몰라. 이런 일이 생긴 건 그때 우리의 모습이 평소가 아니었는지도 모르지."
우리가 생각해도 좀, 이상했잖아? 그때 우리. 쓸데없이 예민했어. 지나쳤다고, 너무. 호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태형이도 그렇고…… 너무 예민하긴 했어. 태형은 자신의 큰 소매에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감췄다. 그래, 예민했었다. 그때는 무언가가 이상했다. 핀트가 나가 버린 것처럼. 윤기는 그런 태형을 잠깐 보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00이 만났을 때 울지 말고.
"……네."
윤기의 말에 대답을 했지만 글쎄,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벌써부터 울 것만 같아서.
날씨가 맑았다. 재회하기 좋은 날이었다.
118. 보내는 입장
"이제 집 비밀번호 바꿔 버릴 거야."
"아, 왜."
"혼자 있다가 누나 너 있으니까 불편하잖아."
"좋으면 좋다고 말해. 왜 우리나라 남자들은 좋은 걸 좋다고 안 말하고 틱틱대는 거냐."
"일반화시키지 마. 그리고 난 싫은 걸 싫다고 말한 거야."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는 정국의 문자를 보고 현오는 눈을 감았다. 00은 그런 현오를 가만히 쳐다봤다.
어린 건 티가 나는 법이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하지만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는 이유도 어른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거지. 현오는 어른스럽다. 그러니까, 어른이 아니라는 거다. 오늘따라 조금 더 까칠한 현오였다. 알 만해. 또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생기는 불안감, 00으로 인해 조금은 해소되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외로움. 외로움은 평생을 떠안고 가야 한다. 나 이외에는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에서 오는 외로움은 영원하다. 나 이외에는 타인이니까,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외로움은 아주 못되고 독해서, 다른 감정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외롭다는 말도 꽤나 가벼워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단순히 치부된다. 돌아오는 답변이라곤 연애라도 해, 누구 소개시켜 줄까.
00 역시 현오에게 있어 타인이고, 현오도 00에게 있어 타인이다. 어쩔 수 없잖아. 00은 가야 하고, 현오는 남아야 하는걸. 현오는 그걸 잘 안다. 00은 현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오가 눈을 떴다.
"심심하면 숙소 와."
"됐어. 누나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아, 맞다. 그랬지."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제발."
현오의 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현오가 휴대 전화를 확인했다. 도착했어. 한숨을 쉬었다. 00의 손목을 쥐었다. 나가자.
119. 울지 말라니까
태형의 얼굴이 빨갰다. 목 부근도 후끈 달아오른 것이 눈에 보였다. 하얀 소매가 눈물에 젖어 투명하게 변했다. 태형은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긴 앞머리가 태형의 눈을 찔렀다. 아, 울면 안 되는데. 남준이 고개를 숙인 태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제법 다정한 손길이었다. 정국은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석진이 정국의 어깨를 토닥였다. 진짜, 어린 티가 나긴 난다. 윤기가 새삼 느꼈다. 어린 티가 난다는 00의 말에 공감된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정말 다 하나같이 어리다.
00이 나왔다. 현오가 등을 떠미는 모양이었다. 00은 어색하게 눈을 굴리더니 제일 가까이에 있는 호석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이렇게 떨어져 있어 본 적 처음이다, 그치. 호석아.
"……울어?"
"……."
"정호석, 왜 울고 그래……."
보자마자 눈물이라니, 생각하지도 못했단 말이야……. 당황한 00이 호석을 달래 주다 고개를 들었다. 태형이 울어? 지민이도? 정, 정국이도? 아직 인사도 다 하지 못한 채 우는 아이들을 달래 주는 꼴이란. 남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자마자 누나는 또 고생하네. 어이가 없었다. 석진과 윤기도 마찬가지였다. 얼씨구. 00은 당황해 눈이 커진 상태로 있다가 우는 넷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피실피실 웃었다.
"아가, 왜 울어."
"누나……."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요……."
"미안해요……. 우리가 나빴어……."
"안을래요. 안게 해 주세요. 흐엉……."
태형이 팔을 벌렸다. 그래, 그래. 안아라, 안아. 건장한 체격의 남자 넷이 울면서 한 여자에게 안기는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석진과 남준이 빵 터져 몸을 가누질 못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지금. 한쪽은 하늘이 무너질 듯 울고 있고, 한쪽은 괴상한 소리까지 내면서 웃고 있고. 멀쩡한 사람은 윤기뿐이었다. 윤기는 혀를 츳 차고는 달래기에 여념이 없는 00에게 다가갔다.
"나와 줘서 고맙다."
"이 정도쯤이야."
"현오랑 대화 나누고 올래?"
"응. 조금만 기다려."
"그래."
윤기가 00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미안해.
"갔다 와."
그리고 너넨 울지 좀 말고, 자식들아. 윤기가 훌쩍이는 네 명을 가볍게 타박했다.
120. 안녕
두 번의 안녕이네. 현오와의 안녕, 멤버들과의 안녕. 안녕. 잘 지내. 잘 지내자. 의미가 달랐다. 현오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늘 그러했듯이. 무덤덤하다고 괜찮은 건 아니라며. 00은 현오를 붙잡아 세웠다.
"왜."
"너 정국이랑 동갑인 건 알고 있어?"
"……."
"지민이랑 태형이가 너보다 형이라고."
"……근데."
"어리면 어리게 굴어, 인마."
"……나 안 어려."
푸하. 00이 웃었다. 현오의 얼굴이 미묘히 찌그러졌다. 비웃음이야?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다.
"너 어려."
"……."
"부모님 오시면 말하고. 아, 이런 일 있었다는 건 얘기 안 해도 되고."
"알아서 잘해, 나."
"누가 몰라서 그러냐."
"……가기나 해. 멤버들이 기다리잖아."
"너도 누나 기다려 봐라, 좀."
놀리는 투. 현오는 말 없이 00의 등을 떠밀었다.
모든 게 제자리였다. 00은 다시 멤버들과 함께 빛날 테고, 현오는 혼자 대학 생활을 하겠지. 몇 년에 한 번씩 집에 찾아오는 부모님을 종종 맞으면서.
나쁘진 않다. 역시나 좋지도 않다. 안정감을 되찾았지만 편하진 않았다. 현오는 00과 멤버들이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쭉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나서야 현관문을 열었다.
잘 좀 살아라, 제발. 걱정시키지 말고. 유독 집이 크게 느껴졌다.
121. 이렇게 넘어가진 않아
차안이 조용했다. 그나마 분위기는 밝았다. 사실 석진과 00을 빼고 전부 다 곯아떨어진 터라 분위기에 대해서 서술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윤기와 남준은 작업을 하다가 고작 1시간만 자고 나온 거라고 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우느라고 피곤했겠지. 석진은 운전대를 잡아 자지 못했다. 썩 졸린 것도 아니었고.
"이렇게 넘어가진 않을 거란 거 알지?"
"……."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애들이 울었다고 해서, 분위기가 괜찮아졌다고 해서 일 끝난 거 아니야. 알지."
"네. 알죠."
"우리가 잘못한 거야."
참아선 안 되는 거고. 00은 힘 없이 웃었다. 그 안 되는 걸 내가 해 버렸네. 석진은 아차 싶어 사과했다. 안 되는 게 아니라, 참지 말아 줬으면 하는 거야. 남준이가 말했듯이 우리는 바보라서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물론 우리가 저절로 알아차려야 하는 게 맞지만. 00은 창에 머리를 기댔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다름'에서 오는 갈등일 뿐이지. ─는 00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멤버들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가끔씩 멤버들은 나한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원망하기 싫었던 거지, 원망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00이 힘들었던 이유는 멤버들이 맞았다.
그러면 멤버들의 그런 행동의 원인은? 원인은 불안감 때문이었겠지. 00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날아가 버리진 않을까 싶었던. 00은 그것에 대한 신뢰를 만들려 노력했지만 결국엔 믿음보단 불안감이 더 커진 거고. 그럴 수 있어. 이해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걸 아는 거다.
버텨 줘서 고마워. 석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00은 그저 픽 웃었다. 그래, 미안하단 말보단 고맙다는 말이 훨씬 듣기 좋다. 00은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했다. 나도요. 석진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다시 풀었다. 좋은 표현을 해 주려고 노력하는 아이. 상황에 맞는 듯 맞지 않는 울컥함이 올라왔다.
오빠, 노래 틀까요? 00의 물음에 석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22. 얘기 좀 해
오랜만에 오는 숙소였다. 지민은 퉁퉁 부은 눈을 엄지 손가락으로 비벼대며 식탁에 앉았다. 정국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식탁에다 두었다. 다들 뭔가 하지는 않았지만 피곤에 쩔어 있는 기분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차안에서 그나마 잠시 눈을 붙이기라도 했지, 석진은 운전하랴 생각하랴 몹시 피곤했다. 00은 뒷목을 쓰다듬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늘 앉던, 옆이 벽으로 막힌 구석진 자리였다. 지민은 괜히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눈 주위를 옷 소매로 꾹꾹 눌렀다.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행동하자는 말은 안 해. 이런 일은 앞으로 충분히 많이 생길 수 있고 우리가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될 거이기도 하고."
석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리더인 남준이 아닌 맏이인 석진이었다. 사실 94년생이라는 나이는 팀내에서 어중간한 나이였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연장자들의 눈치가 보이는 법이다. 눈치라기보다는, 한 발 물러선다는 게 맞겠지. 이런 일을 해결할 때 아무리 리더라지만 어중간한 나이인 사람이 주도하는 것보단 연장자가 주도하는 게 훨씬 더 탁월할 테니까. 멤버들은 잠자코 석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보통 우리가 다투던 건 아니었잖아. 그렇다고 싸움도 아니었고. 무슨 말인지 이해해?"
멤버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이번 일은 달랐다. 남자 멤버와 남자 멤버가 싸운 것보다 무게가 훨씬 무거운. 00과 다른 멤버의 트러블이 남자 멤버와 남자 멤버 사이의 트러블보다 훨씬 무게가 무거웠다. 그건 당연히 다른 멤버들에게는 없는 '조심스러움' 때문이고. 멤버들이 00을 대할 때 다른 멤버와 확연히 다른 것이 있다면 조심스러움이었다. 절대 대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조심스러워야 하고, 조심스럽다는 거다. 아마도 이건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조심스러움일 거다. 딱히 남자와 여자를 구별짓는 게 아니라 남자와 여자는 원체 다르니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다름이 불러오는 조심스러움이다. 그렇다 보니까 이게 00과의 마찰은 더욱 더 풀기 쉽지 않을 수밖에.
"나는 누나한테 내 상처 다 말하고, 고민도 다 말하는데 누나는 아니잖아요."
지민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무조건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00도 오늘따라 시선은 어디 구석에 가 있었다. 지민은 이어 말했다.
무조건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나 탓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서운해요. 그동안 나만 누나 걱정받았다는 게 나 스스로가 괘씸하기도 하고……. 왜 안 말하지, 내가 그렇게 믿지 못할 사람인가도 괜히 생각하게 되고…….
누나에 대해서 모르니까 불안했나 봐요. 누나는 말하는 게 없으니까, 누나가 아무리 신뢰는 줬어도 외면했나 봐요. 미안해요, 진짜……. 우리가 누나의 이야기를 스스로 꺼낼 때까지 기다려 줬어야 하는 건데, 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건데 우린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그냥 옭아매고, 방치하고. 무서웠어요, 엄청. 누나가 없으니까 눈앞이 깜깜한 거야. 막막하다 싶고.
지민은 어느새 다시 눈가에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눈밑은 이미 발갛게 살이 일어나 있었다. 지민의 말에 00은 한숨을 쉬었다.
"너네가 얼마나 약하고 여린 사람들인지 아는데 내가 어떻게 말을 해."
00의 음성에 지민이 고개를 떨궜다.
너네는 너네 고민도 밀어 놓고 내 얘기 들어 주겠다고 끙끙댈 애들일 거 아는데. 그리고, 불안할 만해. 나 같아도 그랬어. 너네만 불안한 게 아니야. 나도 불안해. 다만 석진 오빠나 윤기같이 티를 안 냈을 뿐이야. 또…… 내 이야기는 내가 떠안고 있는 게 펀했던 거지 너네를 못 믿어서가 아니야. ……미안해, 나도.
남준은 조금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누나가 미안해 할 게 아니에요. 명확히 따졌을 때, 누나는 피해자고 우리는 가해자이니까요. 누나를 보면 항상 우리한테 미안해 해요.
"안 그래도 돼요."
아니, 안 그래야 하는 게 맞아요. 남준은 쓴 침을 삼켰다. 왜 미안해 하냐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는 묻지 않았다. 당연히 아니까, 왜 그러는 건지.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던 그 일들. 그러니까 그게, 데뷔를 하자마자였을 거다.
사람들은 참 모순적이다. 누구나 알 듯이. 이제는 모순적이다, 라고 하기에도 지겨울 정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순적이다. 다른 사람들을 모순적으로 비판할 때, 나 자신에 관해서는 모순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니까. 00은 그것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한 사람이다. 그렇잖아, 겪어 본 사람이 예민하고 반응하는 건. 많이 겪어 봐서 무덤덤하다는 거, 사실은 아니잖아. 그저 싫증이 난 것 뿐이지. 지겹고, 일일이 반응하기 귀찮은 것뿐이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00도 그렇다. 하도 많이 겪은 데뷔초 때 욕설들과 비난. 지겹기만 할 뿐, 아픈 건 매한가지다.
힙합 혼성그룹. 아마 국내에서는 희귀한 일일걸. 아니, 희귀하다. 엄청. 홍일점에, 그것도 힙합이래. 안 좋은 시선은 두 배로 꽂혔다. 남자 일곱 명, 여자 한 명. 누구에게로 화살이 날아갈까? 당연히 여자 한 명에게로 날아간다. 그 여자 한 명이 00이고. 일곱 명은 좀 덜했다. 그 이유는 파악하기 어렵다. 남자가 일곱 명이어서 그런 건지, 유교 문화가 남아 '남자'라서 비난을 덜 받은 건지. 00도 마찬가지다. 혼자라서 그런 건지, '여자'라서 비난을 받은 건지. 둘 다일 수도 있고. 정도가 넘은 폭력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놀리는 손가락, 두들기는 자판. 그것은 확실한 비겁함이었다. 그 비겁함은 00을 미안하게 만들어 버렸다.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해?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어?
아니, 없어. 근데 너는 욕을 먹어야 해. 너 홍일점이라며. 그것도 힙합 혼성그룹. ……그래, 알았어. 미안해.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미안함은 생겼다. 이미 굳어져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점점 자존감과 자존심은 떨어져 갔다. 그래도 00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가수 입장에서, 대중은 중요하지. 근데 가수이기 전에 사람 000 입장에서, 그런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거든. 만나면 벌벌 떨면서 싸인 한 장 부탁하게 되리란 걸.
윤기는 손으로 얼굴을 부볐다. 힘들다. 00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모인 게 어디야.
식탁은 아무런 말도 더이상 오고 가지 않았다. 분위기는 괜찮았다. 공기가 따뜻했다. 이렇게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123.
에디터_ 지독한 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랩몬_ 모든 게 적당해야 한다고들 하죠. 좋은 것도 결국에는 적당해야 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지나치다 보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민_ 맞아요. 배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도 안 좋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그 배려해 주는 사람은 존경스러울 정도지만요. 배려당하는 사람은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슈가_ 도를 넘어 버리면 안 되죠, 모든. 힘들어요. 그냥. 힘들어요. 감정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미안해서 힘들고, 고마워서 힘들고.
00_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저는 그게 깊이 있는 배려가 낳은 오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배려라도 아무리 깊고 무거우면 결국 오점을 남길 거라고 생각해요.
뷔_ 지독한 배려를 해 주는 사람도 아프고, 배려받는 나도 아파서 더 미안한 거.
정국_ 말 그대로 지독해요. 아프고, 힘들고. 그래서 더 배려하는 사람이 대단한 거고요.
제이홉_ 그래도 우리에게 있어서 나쁜 영향을 끼친 게 아니니까요. 좀 더 돈독해지기도 했잖아요. 언젠가 터뜨려야 하는 것, 이라고 정의해 둘래요.
진_ 미안하고 고마운 거요. 배려해 주는 사람의 조심스러움과 생각을 대충 알았지만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니 조금 소름돋기도 해요. 그 배려를 돌려 줄 수 없어서 미안하죠. 그래서 이제 그만해 줬으면 하는 거요.
사담 |
남자 일곱 여자 하나 오랜만이네요. 응원해 주신 시험은 늘 그렇 듯 말아먹고 왔습니다. 다음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아마. 글 내용도 제대로 된 화해 장면이 아니지만 이해해 주세요. 얘네를 어떻게 화해시켜야 할지 모르겠어...
제가 시험을 치는 동안 마음 아프다면 마음 아픈 소식이 하나 있었는데, 이번 일로 아이들은 더 성장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빅히트 엔터테인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일을 계기로 가요계는 틀림없는 변화가 있을 거예요. 그런 변화를 가져온 게 우리 애들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뮤지션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 길은 험난하고, 그 험난한 과정을 멀리서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게 팬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말은 안 할래요. 하지만 일단은 멤버들이 크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진지함을 잔뜩 섭취했넹. 아무튼 암호닉 확인하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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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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