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핀잔
: Gun
05
04 last sentence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였다. 남자는 내게 제 한 쪽 손을 흔들어 보였는데, 그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아마 나랑 전화하고 있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거겠지. 나는 정장자켓에서 총을 빼려다가, 내 가슴께에 제 몸을 기대 안겨 있는 여자를 보고는 행동을 멈췄다. 여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여자가 봐서 좋을 상황이 아니였다. 말이 흘러 나갈 수도 있고. 어느새 꽤 가까이 다가온 남자였다. 남자는 마스크를 벗으며, 기분 나쁜 웃음을 활짝 지었다.
아. 시발. 저 새끼야?
상대를 확인하자, 더욱 더간단히 끝날 상황이 아니였다. 나는 황급히 여자를 조수석에 앉히고는, 운전석으로향했다. 자켓에서 총을 빼들어, 한 손에 든 채로.
차에 올라타자 갑작스러운 움직임 혹은 낯선 분위기에뒤척이는, 여자가 내게 물었다.
"...왜 거기 앉았어요."
"설명 할 시간없ㅇ"
"술 먹고 운전하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여자는 제법 엄한 표정으로 차 키를 뽑으려 들었다. 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행동을저지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잊고 있었다. 내다른 한 손에는 총이들려 있었다는 걸. 여자는 제 손등에 닿아오는총구에 놀란듯 했다.
"...이게, ㅁ... 뭐ㅇ"
"얽혔어요."
"...아니. 무ㅅ"
"그 쪽."
"..."
"이미 얽혔다고."
"...네?"
"나랑."
"..."
"우리 쪽 사람들이랑."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남자를 가리키며말했다. '저 새끼랑.' 여자는우리 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남자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의자를 뒤로 눕히며, 답했다. '이대로 있어요. 가만히.'
*
Girl view
그는 정말로 제가 운전을 할 모양인지, 엑셀을 밟으며 핸들을 돌렸다. 한 손에는 총을 쥔 채로. 그에게 몇 번이고 행동을 멈추라고 외쳤지만,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내 몸을 감싸오던 취기가 한 순간에 달아났다. 나는 황급히 안전벨트를 매며, 그에게 물었다. 안전벨트 안 매요? 하고. 그러자 그는 나를 살짝 내려다 보고는 답했다. '안전벨트가 총도 막아줄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총'이라는 단어가 순간 흠칫하게 다가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나는 애꿎은 안전벨트를 강하게 잡으며, 총을 든 채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아니. 이 남자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그와 내가 탄 차가 움직이자,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 채로 달려오던 남자가 당황한 듯 보였다. 남자는 우리 차를 따라 더욱 빨리 달리면서 아무렇게나 총을 쏘기 시작했다. 나는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크고 작게 소리를 내질렀고, 남자는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로 따라오는 남자를 확인하며 말했다.
"안전벨트 했잖아."
"...ㄱ...근데요... 으악!"
안전벨트가 총을 막아줄 것 같냐며 비아냥거리던 게 누군데. 나는 그의 말에 대꾸를 하면서도, 순간 들려온 총소리에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그는 이 상황이 즐거운 지, 비명을 지르는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진짜 미쳤나봐.
*
간신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 그의 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나는 더 이상 이 차에 있다가는 수명이 금방 사라질 것 같아, 뒤로 넘어가 있던 의자를 일으키며 말했다. 저 내려주세요. 그러자 남자는 나를 대충 쳐다보고는 '그건 곤란해요.' 하고 답했다.
"왜요?"
"말했잖아요."
"무슨 말이요."
"엮였다고. 나랑."
문득 그가 주차장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취기에 헛소리를 들었나 싶었는데. 아니였구나. 아니. 그렇다고 이 남자 차를 계속 타고 가라고? 총은 이 남자도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름의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 게다가 이 남자 지금 술도 마셨어. 이거 음주운전이야. 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할 게 하나 없어!
"이봐요."
"ㄴ, 네?"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리는데."
"아닌데요?"
"뭐가 아닌데요?"
"...머리 굴린 거! 그거 아닌데ㅇ"
그는 언제부터 웃음이 이렇게 헤펐는지 내 말에 또 다시 개구지게 웃었다. 나는 누가 봐도 놀리는 듯한 웃음에 '웃지 말죠?' 하고 엄포를 두자, 그는 되려 나를 보며 '존댓말 하지 말죠?' 하고 답한다.
"내가 몇 살인지 알고, 존댓말 하지 말래요?"
"스물 일곱"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그쪽이 말하던 비서랑 나랑. 아는 사이에요."
"누ㄱ... 아. 지민이요?"
"응"
"그럼 나도 말 놓을게. 지민이랑은 어떻게 알아?"
지민이랑 아는 사이라고 하니까, 뭐 엄청 질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지민이랑 초중고를 다 같이 나왔지만, 걔한테 이런 친구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나는 그에게 지민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던 차를 어느 건물 앞에 세웠다.
"천천히"
"...?"
"알아가지?"
"뭘 알아가.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ㄷ"
"일단 먼저 알아갈 건"
"..."
"내려서, 건물 안으로"
그는 내게 필요 이상의 친밀감을 느끼는 건지, 천천히 알아가자고 답했다. 아니 우리가 왜 천천히 알아가? 나는 그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는데, 그는 내 말을 가로채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그 말과 함께 내게 순식간에 가까워진 그는 안전벨트를 풀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하나 더 알아둘 게 있는데"
"...뭐"
"고작 저거 때문에 아까 우리가 무사했다고 생각한다면"
"..."
"엄청난 오산이야."
"..."
"나 때문에 너가 산거야. 고작 저딴 줄 때문이 아니라"
그는 안전벨트를 가리키며 고작이라는 말에 강세를 주었다. 그리고는 자신 때문에 내가 살았다는 말에 다시 한 번 강세를 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끝으로 그를 밀치며 답했다. '너 때문에 산 건 맞는데, 너 때문에 죽을 뻔 한거야.' 하고. 나는 차 문을 열고 내리며, 눈 앞의 건물로 들어갔다. 등 뒤로 그의 실소가 타고 넘어와, 내 귓가를 섬뜩하게 간질였다.
제법 멋지게 그를 밀치고 건물로 향했는데, 건물을 지키는 사내들은 나를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 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그에게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님. 이 여자가 지가 여기를 들어가야 된다고 따박따박 - 말대꾸를 해댑ㄴ"
"같이 온 여자야"
그의 말에 열 댓 명의 사내가 '예?' 하며 반문했다. 그러자 그는 내 어깨에 제 손을 두르며 답했다.
나 때문에 죽을 뻔한 여자이기도 하고.
*
건물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모든 층과 방마다 보안이 철저했고, 여자 직원은 로비에서 빼고는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직원들은 총을 제 가슴께에 품고 있었다. 다들 아닌 척, 평범한 사람인 척 정장을 입고 다녔지만. 그와 같이 정장의 왼쪽 가슴께가 조금씩 튀어 나와 있었다. 로비의 그 여자 직원들도 마찬가지였고.
그와 함께 온 곳은 지하 3층이었다. 그와 내가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다렸다는 듯 행동했다. 그와 나를 선두로 뒤를 따르는 사내들이 적어도 스무명은 넘어 보였다. 나는 그의 소매끝을 약하게 잡았다. 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힘으로. 없던 겁도 마구 만들어내는 묵직한 공기에, 괜히 기댈 곳이 필요했다. 이곳에서는 그나마 안면있는 게, 그 뿐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그런 내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별다른 말 없이 계속 걸어나갔다. 다행이야.
복도의 가장 끝 방으로 가자, 한 남성이 테이블 위에 손과 발이 묶인 채로 던져져 있었다. 의식은 멀쩡한 듯, 강하게 발악하는 남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놀라서 굳어버린 몸에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뒤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내들이 어서 들어가라며 나를 거칠게 밀자, 내 앞에 서 있던 그가 내 팔뚝을 잡아채며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내 옆에 앉으며 사내들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사내들은 남성에게 달려들어 그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포대를 벗겨냈다.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머리칼이 잔뜩 들러 붙은 남성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려는데, 그 순간 내 옆에 앉은 그가 내 손목을 다시금 거칠게 잡아왔다.
"앉지?"
"뭐하는 거야."
"너야 말로 뭐하는 거야."
"사람을 저렇게 묶어두는 게 말이 돼?"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뭐?"
"네 가족이라도 돼?"
"..."
"자세히 봐."
남자는 제 턱끝으로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세히 봐. 나는 그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려, 남성을 바라봤다. 사내들은 남성의 얼굴에 붙은 머리칼을 거칠게 떼어내며,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게끔 만들었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된 남성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회장님 애인이라도 되시나?' 그 순간, 남성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그가 주차장에서 통화를 할 때, 수화기를 타고 넘어온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분명 낯이 익었다. 주차장에서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던, 그 남자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중심을 잃은 나를 잡아준 건, 정호석. 그였다. 그는 썩 다정하지는 못한 손길로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남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총에서 총알을 전부 다 빼고는 남성의 머리에 가져댔다. 그가 총을 쏠 때마다, '탁. 탁' 하는 의미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를 들인 내 탓을 해야 되는 건가."
"저를 배신한 형님을 탓하셔야죠."
그는 여전히 그에게 총알 없는 총으로 장난을 치며, 남성에게 물었다. 남성은 제 입꼬리를 양 옆으로 길게 찢어 웃으며 답했다. 형님을 탓해야 한다고. 그러자 그는 배신이라. 하며 중얼거렸다. 남성은 제정신이 아닌 건지, 저보다 한참이나 높아보이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미래 건설 외아들 죽이라고 해서 죽였습니다. 그게 왜요. 뭐가 잘못 됐습니까? 형님이 못하는 일 제가 한 것 뿐이에요. 사람 죽이는 일 하시면서 총도 못 쏘는 형님 대신해서. 제가 쏜 겁니다.
그는 남성의 말을 듣고는 제 표정을 굳혔다.
"내가 총을 못 쏜다. 재밌는 소리네"
"사실이잖ㅇ"
"내가 지금 너를 쏘면, 그 소문은 좀 잠잠해지려나."
"..."
"네 말대로 사람 죽이는 일 하면서, 사람 못 죽이는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말이 안 되지."
그는 그 누가 말리기도 전에 총탄을 빼고는 총알을 채워 넣었다. 그에게 말을 대꾸하던 남성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그의 손만을 쳐다봤다. 그는 총알을 다 채우고서, 한치의 고민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남성의 다리로 총구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의 왼쪽 허벅지에 총구를 맞닿게 만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만해요!' 하지만 내 외침은 뒤이어 들려오는 총 소리에 잡아 먹혔다. 남성은 울부 짖었고, 그는 제 총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나는 서둘러 남성에게 다가가, 사내 중 한 명의 넥타이를 잡아들어 지혈을 시작했다. 잠시 뒤,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응급도구를 챙겨온 안내 데스크의 여자가 들어왔다. 사내들은 여자를 보고는 이제 자신들이 알아서 처치를 하겠다며, 나를 바깥으로 내보냈다. 손에 검붉게 묻어난 피가 어느새 조금씩 건조해져갔다.
구조가 적지 않게 복잡한 건물이었기에 엘레베이터의 위치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대충 보이는 비상계단으로 향하며, 피가 묻은 손을 바라봤다. 꿈이 아니였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된 건지. 나는 조심스레 비상계단의 문을 열었다.
*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정호석. 그 남자였다. 그는 벽에 기대 가만히 서 있다가, 인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봐요. 진짜 미쳤어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총을 쏘는 게 말이 돼요?"
남자는 제게 말을 쏘아대는 나를 초점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피가 묻는 내 손에 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안 죽었잖아."
제 말을 끝으로 남자는 계단을 올랐다. 동시에 그의 가까운 지인처럼 보이는 사내가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와, 그를 따라 올랐다. 그의 지인은 나를 향해 말했다.
"금방 올게요. 1층 로비에서 기다리세요."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앞으로 빠르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 될 예정입니다!
호석이의 캐릭터에 느껴지는 이질감과 괴리감도 다음 화에서 다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본격적인 달달함과 함께?!
다들 새로운 한 주도 화이팅하세요 :)
다정한 사람들
- 암호닉 신청 했는데, 없으신 분들은 말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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