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핀잔
: 경계
02
급하게 택시를 잡아 고양이들을 태워, 근처 대형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수의사는 새끼 고양이를 살피더니, 당장 수술방을 잡았다. 어미 고양이는 한 쪽 구석에서 영양제를 맞고 있었다. 나는 수술에 들어갔다는 간호사의 말에, 내 명함과 카드를 두고서 자리를 비웠다.
[수술 끝나고 나면, 경과 좀 알려주세요. 아이들도 보호 좀 부탁드려요. 돈은 이 카드로 결제하시면 됩니다.] 라는 메모도 함께 남기고서.
*
연회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건, 수십 명의 경호원과 기사들이었다. 핸드폰 화면은 부모님의 부재중 연락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단축 번호 4번을 길게 눌렀다. 화면에는 금세 '박비서님' 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신호가 채 세 번도 가지 않아서, 비서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연락도 안 받으ㅅ"
"저 도착했는데."
"네?"
"지금 연회장 앞이에요."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네! 아, 그리고 비서님."
"네. 말씀 하세요."
"화는 내지 말아요. 무서우니까!"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소리를 질러오는 비서님이었다. 평소에 입이 닳도록 그렇게, 형식. 형식. 하시던 분이. 오늘은 그 형식적인 인사들 다 어쩌고. 나는 비서님의 말을 자르며, 도착했다고 답했다. 비서님은 그런 내 대답에 얕은 한숨을 내뱉더니, 금방 내려오겠다고 말한다. 나는 고양이 털이 잔뜩 묻은 옷을 대충 털며, 비서님에게 말을 이었다. '화는 내지 말아요. 무서우니까!' 하며. 그러자 박비서님 특유의 나긋한 웃음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넘어왔다. 바람 빠진 웃음소리. ...완전 듣고 싶었는데. 비서님은 나지막하게 '알겠습니다. 지금 내려가니까, 가만히 기다리세요.' 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전화가 끊김과 동시에 눈 앞에 높이 솟아있는 건물을 살폈다. 부모님한테 완전 깨지게 생겼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의 중앙문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박비서님을 중심으로 그 뒤를 따르는 경호원이 보였다. 나는 비서님을 향해 손을 흔들며, '비서님!' 하고 불렀다. 동시에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웠어. 저 얼굴,
저 사람.
비서님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내 양 어깨를 단단히 잡아오더니 나를 살핀다.
"어디 다치거나 그랬던 건, 아니시죠?"
"삼 년만에 첫 인사가 너무 훅 건너 뛴 거 아니ㅇ"
"회장님이랑 사모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가시죠."
그의 격양된 눈빛과 다정한 말에 마음이 안정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멋대로 차를 몰고 떠나버린 남자 때문에, 잔뜩 화가 난 마음이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꽤 애교스럽게 그에게 삼 년만의 인사를 건네는데. 그는 내 대답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출입구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동시에 그를 따라온 경호원들이 내 양 옆으로 붙는다. 참 나. 아직도, 그것도 여전히. 지독하게.
머릿속에 일 밖에 없구나. 박지민.
나쁜 놈!
*
부모님께 엄청나게 꾸중을 들을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왜 연락이 안 됐냐며, 나를 품에 끌어 안았다. 적지 않게 걱정이 됐겠지. 삼 년만에 한국에 온 딸 아이가 연락도 없이, 약속 장소에 안 나타나니까. 나는 엄마의 허리를 끌어 안으며, '미안' 하고 답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자, 엄마의 어깨 너머로 근사한 정장을 빼입고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아빠가 보였다. 내게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어떠냐' 하고 묻는. 나는 엄마의 등 뒤로 아빠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동시에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다. '늦어서 미안해요. 그리고 오늘도 멋져. 아빠는.'
연회장 곳곳에는 [두드림 이사장 취업식 & 회장님 장녀, 김탄소 귀국식] 이라는 플랜카드가 크고 작게 걸려 있었다. 부담스러워라.
[두드림]은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 중 하나이다. 나의 아버지는 그 회사의 회장이고, 나는 그 회장의 딸이고. 뭐, 흔히들 말하는 재벌, 금수저. 그런 거 맞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회사 경영에는 소질도 재능도 없었던 나였기에, 나는 일찌감치 경영에서 빠져 있었다. 때문에 내 하나 뿐인 여동생은 나를 대신해 그 경영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핏줄이 둘 다 집안의 가업을 모르는 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동생은 회사 경영에 꽤 두각을 나타냈다. 나 역시 덕분에 마음이 놓고, 내 일을 할 수 있었고.
나는 이미 충분히 딜레이 된 상황에, 그대로 연회장의 단상 위에 올라섰다. 실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안내를 시작했다.
"곧 이어 아가씨의 귀국인사가 시작 될 예정입니다. 귀빈 여러분들께서는 연회를 즐기시며, 귀 기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연회장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대충 빠르게 인사만 하고 내려와야지.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 태도 뿐 아니라 나의 옷차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옷이라도 갈아 입고 올라가면 어떨까?"
"됐네요 - 나한테 관심 없어. 저 사람들."
엄마는 내 등짝을 강하게 내리쳤다가, 이내 사람들의 시선에 다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왜 너한테 관심이 없어! 너가 사장이고 회장이고, 이 자리 저 자리 다 내놓고 타국에서 난민구호자 한다는데. 다들 어떤 또라이인가 궁금해서 미친다. 미쳐!"
엄마는 우아함은 포기했는지, 이내 곧 크게 '다들 어떤 또라이인가 궁금해서 미친다. 미쳐!' 하고 소리친다. 으이구. 이제야 우리 엄마 같네. 나는 엄마의 핸드백 속 립스틱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단상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대충 입술에 발랐다. 엄마의 손에 립스틱을 건내주고 물었다. '어때. 엄마 딸 겁나 예쁘지?' 그러자 엄마는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내 입술을 살짝 닦아주었다.
"번졌어. 기지배야."
"사모님 말이 그게 뭐냐!"
"그나저나."
"왜요 - 또."
"꾸미고 온 여자 애들보다 훨씬 예쁘네. 우리 딸."
나는 엄마에게 장난스럽게 '우' 하고 입술을 내밀고, 손키스를 날려주었다. 곧 이어 실장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가씨 올라오십니다!"
*
단상 위에 올라서서 보니, 대부분 나를 보며 아닌 척 수근거리고 있었다. 씹으려고 씹으면, 씹을 게 적지 않게 많을 테니.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탄소입니다. 오늘 귀한 시간내서 자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그럼, 다들 재밌게 즐기고 가세요."
굉장히 예의 있지만, 지나치게 예의 있고 또 짧아서, 예의 없게 들리는 말을 뱉었다. 사람들의 거짓 박수와 축하가 이어졌다.
...답답해.
나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야외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다.
*
테라스에 기대 가만히 밤바람을 맞고 있었다. 바깥으로 펼쳐진 야경이 꽤나 볼 만했다. 시선이 탁 트이는 기분에 기지개를 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런 집 자제 분인 줄 몰랐네요."
고양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자리를 떠난, 남자였다. 그는 내게 손을 뻗어오며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하죠. 정호석입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잠깐동안 쳐다보고 답했다.
"손은 잡지 말죠. 우리."
남자는 '바라던 바' 하며, 제 손을 바지 앞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나는 그와 있었던 아까의 일이 잊혀지지 않아, 자꾸만 열이 받았다. 아니. 진짜. 싸이코 아니야?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냐고! 그는 태연하게 제 와인을 마셨다.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나는 잔뜩 날이 선 말투로 물었다.
"이런 집 자제 분들은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나봐요."
"되게 날카로우시네."
"이런 집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 다니는 지, 설명 좀 해주세요. 한국은 또 오랜만이라."
기싸움이었다. 남자는 제 손에 들려있는 와인잔을 빙빙 돌리며, 입꼬리만 살짝 들어올려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그는 나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적어도 자기를 소개하는 자리에, 그런 티셔츠와 그런 청바지를."
남자는 제 말을 끝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나는 최대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계속하세요.' 남자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입고 나타나지는 않죠."
"누구 덕분에 늦어서요."
"확실하게 하죠. 늦은 건, 저 때문이 아니라."
"..."
"고양이 때문이죠."
남자는 제 말을 끝으로 와인잔을 테라스 밖으로 떨어트렸다. 고의였다. 잠시 뒤, 유리 잔이 깨지는 소리가 건물 위를 타고 올라왔다.
"실수."
"뭐하시는 ㄱ."
"유리 파편을 고양이가 밟으면 어쩌죠?"
"저기요."
"고양이 되게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
"어서 내려가서 치우셔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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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암호닉은 새로 받을게요!
[] 이 칸 안에 암호닉 적어서 댓글 달아주세요 :)
다정 커플의 이야기는 3, 4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들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모두들,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