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핀잔
: oH! Honey. Hoseok
16
둘 다 딱히 요리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라, 레시피의 도움을 빌려 간단한 음식을 여러 개 만들었다.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서 보면 그는 타고 있는 냄비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황급하게 치우지도 않고, 이게 왜 타나.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가 말이다. 또 멀지 않은 곳에서 타는 냄새가 나면 안타깝게도 그건 나였다. 뭐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뭐라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였다. 집 하나 안 태우고 요리를 마친 게 다행이었다.
**
그들은 저마다의 선물을 가져와 건넸다. 그는 그들의 선물을 받아 한 쪽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들과 그의 첫대면을 걱정한 건,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이 아닌 바로 나였다. 그가 낯선 타국인들과 그 언어에 당황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들이 짖궃게 그를 놀리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레 우리와 함께 어울렸다. 그들 역시 우리가 만든 음식을 눈쌀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먹어주었다. 그는 그런 그들을 보고는 내게 속삭였다. '착한 사람들이네.'
나는 그와 그들을 통역해주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맞은 편에 앉은 제이슨은 갑작스럽게 포크를 쥐고 있던 내 손을 잡아챘다. 당황한 나는 포크를 떨어트렸고, 제이슨은 내 손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 하고. 왜 그런가 싶어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 되묻자,그는 냅킨으로 내 손가락 사이에 묻은 케첩 소스를 닦아주며 말했다. '피인 줄 알았어.' 그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나 역시 제이슨의 엉뚱한 행동에 미소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에게 통역을 해주기 위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런데 그는 그 사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제이슨과 마주 잡고 있는 내 손을 인상을 구긴 채로 바라봤다. 나는 괜히 어딘가 찔리는 듯한 기분에 제이슨에게 잡힌 손을 빼내는데, 제이슨은 그의 표정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내 손가락 끝에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면서, 영어로 '놀랐어. 러블리.' 하고 멀어지는 걸 보니. 줄곧 스페인어만 쓰다가 갑자기 영어를 사용한 이유가 그가 알아듣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다면, 제이슨의 작전은 통했다. 그는 제 스스로 팔짱을 끼며, 제이슨을 향해 물었다. 꽤 능숙한 영어 실력이었다.
"러블리?"
"응. 우리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러."
"왜."
"사랑스럽잖아."
"..."
"아마 러블리가 사람이었다면, 딱 그녀와 같을 거야."
"..."
"그렇게 생각 안 해?"
낯뜨거운 대화에 고개를 푹 숙였다가도, 그의 대답이 궁금해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러지 그는 고개를 숙인 나를 응시하다 답했다.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였구나."
그의 대답에 그들은 장난스럽게 키득거렸다. 그리고는 제법 진지하게 다시 스페인어로 돌아와, 우리 둘을 향해 무슨 사이냐고 물었다. 그가 누구냐고 묻는 그들의 말에 무어라 답해야 하나 싶어서, 머리를 굴리는데.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한 그가, 내게 묻는다. '뭐라고 한 거야?' 나는 그에게 대충 아니라고 둘러댄 뒤, 그들에게 답했다.
"친구야."
내 답변에 그들이 야유를 보내온다. 친구랑 이렇게 다정하게 있는다고? 너가? 말도 안돼! 나는 그들의 야유에 당황하며, 머쓱한 웃음만 지어보였다.내 옆에 앉은 그는, 핸드폰 화면을 내게 보이며 제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그가 내게 보여준 화면에는 '구글 번역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번역기 안에는 '친구입니다.' 라는 글자가 있었고. 그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친구는 아닐텐데. 우리가."
그리고는 제 말을 끝으로 내게 짧게 입을 맞추고는 멀어진다.
동시에 그들의 환호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맞네! 꿀!"
"대답 대신인가?"
"역시 남편이었나봐!"
"아니야. 아직 결혼은 아닌 것 같고... 남자친구?"
그의 핸드폰 번역기는 아직 꺼지지 않은 건지, 제이슨의 첫 번째 말을 번역했다.
'맞네. 꿀.'
아니. 번역기를 언제 켰어? 나는 그가 내게 닿은 후로 쉽게 식지 않는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뭐가 문제냐는 듯 능글맞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말한다. '맞아. 허니.' 그리고는 내게 한국말로 말을 덧붙였다.
"연애 첫 날부터 애칭 생겼네. 우리."
"...무, 무슨 연애야!"
"연애가 아니면, 왜 가만 있어?"
"뭐가!"
"남자가 마음대로 입을 맞췃으면, 때리든 신고하든. 뭘 해야지."
"..."
"연애 아닌거면, 지금 나 때려."
그는 지나치게 설득적으로 나왔다. 그리고 연애가 아닌거면 자신을 때리라며, 제 얼굴을 내게 가까이 가져댄다. 그와 내 앞에 마주 않은 그들은 우리보고 모국어로 사랑다툼을 하냐며, 웃음 섞인 야유를 보냈다. ...나 어디 숨을 때 없나. 진짜. 나는 밉지 않게 내게 얼굴을 가져댄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정말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의 오른 뺨에 내 입을 맞췄다. 순식간에 닿았다 떨어진 그와 나였다. 그는 놀란 듯, 잠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멀어졌다. 앞자리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이러고 싶었다. 그의 고백을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다 못해 파묻은 나였다. 그러자 그는 식탁 밑으로 내 손을 단단하게 잡아오며, 저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개구진 표정의 그가 눈에 들어왔다.
"허니."
"..."
"애칭도 생겼네. 우리."
*
그들이 돌아가고 갖은 이유로 지쳐버린 나였다. 뭔가 훅훅 지나간 것 같은데, 뭐가 뭔지. 그는 내일 같이 뒷정리를 하자는 내 말에도 자신이 오늘 하겠다며 나를 소파에 앉혔다. 뒷정리를 하는 그의 뒷모습이 이유없이 간질거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감상하다가, 뒷정리를 마친 그와 눈이 마주칠까 싶어 정신을 차리고 욕실로 향했다. 얼른 씻고 자야지.
내가 욕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그의 하얀 티셔츠였다. 그가 왜 여기 있나 싶어 순간 놀란 내가 욕실 문을 다시 닫으려 하자, 그는 내 손을 잡아 끌고는 제 방으로 향했다. 그 역시 씻고 나온 모양인지, 몸 구석구석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어느새 그의 방 침대 끝에 앉게 된 나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그는 나를 제 방에 두고는 방을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한 손에는 내 로션을 들고서. 아마도 내 방에 다녀온 것 같았다. 그는 내 앞에 조심스레 제 허리를 굽혀 내 피부 위로 로션을 발라주었다. 발랐다기 보다는 얹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무슨, 신생아 다루듯이 조심조심. 문지르지도 못하고 정말 위에 올려두었다.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불편하면서도 집중하는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워,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는 나를 따라 웃으며, 제가 웃기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젖은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물기를 머금어 그런지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게 로션을 바르는 동안 그의 머리로 손장난을 쳤다. 괜히 아프지 않게 잡아 당겨 보기도 하면서. 잠시 후, 그는 내게 로션을 다 발랐다며 거울 쪽으로 내 방향을 돌려주었다. 제대로 발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길이었으니.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답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거울 쪽으로 향해 제 로션을 꺼내 아무렇게나 펴바르고는, 금세 내게 돌아온다. 나한테 한 거랑 완전 정반대네. 무슨 아저씨처럼.
그는 거울 끝에 걸린 수건으로 제 머리를 대충 털고는, 불을 껐다. ...나 여기서 자?
"...불 왜 꺼?"
"자야지."
"...ㅇ, 여기서?"
"응. 어제도 여기서 잤잖아."
"아니! 어제는 비가 막 와ㅅ"
그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내 몸을 끌어당겨 제 옆에 눕혔다. 이제는 이 집안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의 향이 빠르게 밀려왔다.
"어제는 내가 재워줬으니까."
"..."
"오늘은 허니가 재워주는 걸로."
"야!"
"야 말고."
"...그건 절대 못 해"
"뭐를."
"...그, 너가 한 거!"
"바라지도 않아."
"...그럼 뭐..."
"호석이."
"...어?"
맨날 정호석 아니면 야. 이러잖아. 이거말고.
호석이라고 해줘.
허니라는 호칭을 해달라고 할까봐, 사전에 강한 거부 표현을 했는데.
그는 참 다정하게도 말을 붙여왔다. 제 이름을 불러달라고. 더욱 가깝게.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그와 눈이 마주쳤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여지껏 그를 그런 호칭으로 불러왔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예쁜 이름인데. 더 예쁘게 못 불러줬구나. 내가.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고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봤다.
어둠 속을 유영하는 그의 시선이, 애정을 갈구했다.
"호석아."
"...응."
"호석아."
"듣기 좋다."
그는 제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를 더욱 제 품에 끌어안았다. 나 역시 그런 그를 밀쳐내지 않고, 그의 허리께에 내 두 팔을 둘렀다.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입을 맞췄다. 전과는 다르게 서로를 확인하는 그런 입맞춤이었다.
**
안녕하세요. 겨울소녀입니다.
암호닉은 글 먼저 올리고,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
그리고 암호닉 계속 받고 있으니까, 망설이시지 않아도 됩니다!
일교차가 꽤 심해요. 여진도 계속해서 반갑지 않게 찾아오고...!
다들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