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핀잔
: 지키고 싶은 것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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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 시점]
지민은 그녀와 호석이 찍힌 사진을 회장님 앞에 올려두었다. 두 사람이 동물원에서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은 그녀의 위치를 파악해 보낸 몇몇의 수행원들이 찍어온 것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 너머로 행복이 맺혀 있는 듯 했다. 지민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제 뒷머리를 헝클였다.
"데리고 와라."
그녀 아버지의 말이자 회장님의 명령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상황이 미적지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한참동안 두드림을 물어뜯다, 인기 배우들의 열애설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고작 피해자들에게 두 당 백만 원의 배상금이 돌아갔다. 지민은 회사 앞에서 울부짖는 피해자들을 보며 이런 일인 줄 알았다면, 만약 미리 알았다면. 제 자신이 이 일을 시작했을까.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게 바른 일인 줄 알았는데. 지민도 그 나름대로 복잡한 터였다. 심지어 제가 사랑했던 그녀까지 제 오랜 시기의 대상에게 빼앗겼기에, 그 복잡함은 배가 되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좋아했는데. 아니. 사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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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 시점]
호석은 제 옆에서 잠든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제 앞에서 그녀는 참 행복한 것 같은데, 과연 그게 진짜 행복한 게 맞을까. 자꾸만 걱정이 됐고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확인하게 되었다. 은연 중에 그녀의 작은 어깨를 끌어 안는 것이. 그녀의 작은 손을 답답하리만큼 강하게 잡아내는 것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추는 것이 자신이 맞는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게 되었다. 호석은 잠든 그녀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내리다, 문득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제 팔찌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에게는 제가 이 팔찌와 같은 존재라니. 과연 그녀는 이 팔찌가 저한테 어떤 힘을 줬는지, 어떤 기적을 보여줬는지를 알고 하는 말일까. 호석은 제 팔찌를 빼내 그녀의 팔에 둘러보았다. 턱없이 큰 팔찌는 그녀의 가녀린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호석의 인상이 짐짓 찌푸려졌다. 분명 이곳에 와서 잘 먹고 잘 쉬는데, 어째서 살은 붙지 않을까.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감정들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아껴본 적이 없었으니.
잠에 들 무렵, 세찬 비가 창문을 노크했다. 나는거실과 그녀 방의 창문이 닫혀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작게 몸을 떨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뒤, 빠른 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거실 창은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창을 닫기 위해, 창문으로 손을 뻗었다. 굵은 빗줄기가 두 팔에 닿았다. 검푸른 바깥은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오늘 하루는 날이 밝아도 그리 화창하지 않을 듯 싶어, 집에서 그녀와 시간을 보내야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무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두워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사람의 인영이었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거실 협탁 밑에 두었던 총을 챙겨 바깥으로 향했다. 그녀 몰래 감춰둔 것이었다.
사실 적지 않게 인기척을 느낄 때가 많았다. 어딜가도 제법 날이 선 시선들이 느껴지고는 했는데. 의심이 확신이 된 순간이었다. 나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제가 봤던 인영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골목길 사이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옆의 담을 넘어, 그들을 따랐다. 그래도 그들보다는 내가 이 길에 훨씬 눈이 밝았다. 큰 길로 나갈 수 있는 길목은 하나 뿐이었고 나의 계산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어느새 내 앞에는 검은 우비를 쓴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은 당황한 듯 뒷걸음을 치다가 방도를 찾지 못했는지, 나와 마찬가지로 총을 빼들었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불빛에 의존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나와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총에는 무음장치가 없었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이 작은 동네는 크게 울릴 것이었다. 그녀 역시 깊은 잠에서 혼자 깨어날 것이고. 나는 사내들 보다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작은 바람이 낙엽을 스쳐가는 듯, 흔적같은 소리가 그 자리에 남았다. 저들을 제외한 모두의 안위를 위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걸어가, 우비를 들춰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데려가기 위한 사람들이구나. 사내들은 자신들의 허벅지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그들의 가슴께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찾아냈다. 여권도 있었지만 위조된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손에서 총기를 빼앗은 뒤, 걸음을 옮겼다.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발각 되는 것 쯤은 괜찮았다. 하지만 집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공간이 무방비 상태였고, 날이 쌀쌀했다. 나는 플래쉬를 비춰 그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담아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날이 밝았지만, 동네는 조용했다. 그들 역시 섯부르게 신고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저들은 제대로 갖춰진 게 아무것도 없는 신세이니.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옆에서 잠든 그녀를 품에 안았다.
**
[여주 시점]
"비 왔었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그의 넓은 가슴팍이었다. 그는 늦게 잠든 건지 잠이 많은 건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내 나름 그 몰래 그의 품을 빠져 나온다고 나왔는데, 내가 나오자마자 내 뒤를 따라나온 그가 내 손을 마주 잡았다. 나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비의 흔적들에 그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비 왔었어? 하고. 그러자 그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응.'하고 답한 뒤,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는 나를 욕실 안으로 데려간 뒤, 칫솔에 치약을 뭍여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저도 제 칫솔을 덥썩 물었다. 그와 내 모습이 욕실 속 거울에 비춰졌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와 몸에 맞게 늘어진 옷을 입은 우리의 모습이 닮아 있었다. 나는 그가 칫솔질을 하는 방향대로 그 모습을 따라했다. 호석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짖궃게 가만히 있기도 하고 빠르게 닦아내기도 했다. 점점 하얀 거품들이 늘어났다.
서로 장난을 치며 양치와 세수를 마쳤다. 그는 또 다시 내 로션을 가져와 내 얼굴 위로 바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아침 겸 점심을 준비했다. 재료를 찾는 나를 따라 그가 움직였다. 그 모습이 대형견 같아서 자꾸만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그는, 미간까지 찌푸리며 제 일에 몰두했다. 진짜 귀여워... 어느덧 그와 함께 생활한 시간도 적지 않게 흘러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함께 한 시간을 따지면 더 길고. 사실, 시간보다는 그 시간 속에서 서로 공유한 일들과 감정이 너무 커서일까. 그 어떤 오랜 시간을 나눈 것보다 더욱 큰 것들이 오갔다. 무엇이라고 정확히 명칭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는 내 코 앞에서 내게 로션을 다 발라주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살피는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고 또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져서 결국은 욕실로 몸을 숨겼다. 물론 그 방법도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그에 의해 끝나게 됐지만.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손을 뻗는 그를 두 손으로 마구 쳐내며 이리저리 피하다가, 실수로 수도꼭지를 건들여 버렸다. 동시에 샤워기에서는 물이 쏟아졌고, 나는 바로 물을 끈 그의 행동에도 불과하고 물에 흠뻑 젖었다. ...차가워.
그가 서둘러 건네준 샤워가운을 걸치고,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나는 편한 옷을 찾던 중, 눈에 들어온 그의 하얀 티셔츠에 또 다시 짖궃은 마음이 피어 올랐다. 지금 이 모습도 장난치다가 이렇게 된 건데, 그와 사소한 일들로 웃는 게 좋아서 자꾸만 장난을 치게 된다. 나는 문 밖에서 나를 향해 '드라이기 꼽아뒀어. 얼른 나와.'하고 외치는 그에게 대충 알겠다고 대답한 뒤, 그의 티셔츠를 몸에 걸쳤다. 허벅지를 반 정도 덮는 길이의 반팔티는 팔 길이마저 칠 부 티셔츠처럼 내려왔다. 나는 평소에 입는 트레이닝복 반바지까지 입은 채로, 거울을 살폈다. 생각한 것만큼 섹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냄새가 내 몸에 닿아와서 좋았다. 나는 곧 바로 방 문을 빼꼼 열어보였다. 그러자 그는 드라이기에 제 손을 대며 바람의 온도를 확인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어서 나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두 팔을 뻗으며, 짠! 하고 그에게 내 모습을 보여줬고 그는 멍하니 드라이기를 든 채로 나를 바라봤다. ...뭐야. 저 리액션은?
"냄새 좋아!"
"..."
"옷 마음대로 입어서 미안해!"
"..."
"야아."
혹시 옷을 마음대로 입어 기분이 별로인가 싶어, 말꼬리까지 늘리며 애교 담긴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나도 내 마음대로 해서 미안."
순식간에 내 허리를 감싸고 입을 맞춰오는 그였다. 나는 어딘가 열이 오르는 그의 몸에 나까지 달아오르며, 그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지금은 이러고 싶었다. 그는 내가 방금 나온 방으로 다시금 들어갔다. 물론, 여전히 나와 입을 맞추며. 어느새 침대 위에서 제법 깊은 입맞춤을 나누는 우리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갑자기 입술을 떼고는 내 어깨로 제 얼굴을 묻었다. 옷이 큰 탓에 들어난 어깨 위로 그의 숨결이 뜨겁게 닿아왔다. 나는 그의 고개를 들기 위해, 호석아. 잠깐만. 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되려 내가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도 잠깐만.' 하고 계속해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침대 위의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나는 바로 옆에 위치한 커튼으로 손을 뻗어, 햇살을 막았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방 안이었다. 그는 어둠도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꽉 쥔 손을 깍지끼며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그의 귀를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바로 달싹이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딘가 안달난 그의 표정이 또 귀여워서 그의 귀로 계속해서 장난쳤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강아지처럼 그의 귀 주변을 핥기도 했다가, 아이처럼 짧은 입맞춤을 했고 또 아프지 않게 깨물기도 했다. 뒤의 일은 생각지도 않은 채. 그렇게 나의 장난을 오롯하게 받아내던 그는 제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를 혼내듯 말을 이었다.
"혼나. 진짜."
"혼내도 돼."
"물어본 거 아닌데."
"어?"
"혼난다고. 너 이제."
"...ㅁ, 뭐래."
"이러고 도망가면 완전 반칙인 거 알지?"
그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깨와 쇄골 사이에 제 흔적을 깊이 남겼다.
아직 아침이었다.
다른 의미로 맞이하는, 비로소 우리의 아침이었다.
***
안녕하세요. 겨울소녀입니다. 작품으로는 오랜만이죠? 그리웠어요. 다정한 핀잔도 여러분도. 저는 므쨍이 방탄이들처럼,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열심히 해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오늘 화는 오랜만에 지민이가 등장했고, 불 타오르는 장면이...! + 또 열심히 텍스트 파일을 위해서... 다정하고, (핫하게!) 쓰고 있을게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화들에서도 지민이의 모습을 전보다는 자주 만나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사실 원래 모든 작품의 엔딩을 정하고 이야기 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예외의 경우로 엔딩이 미정이었어요. 그래서 제 일을 하는 시간동안 플롯도 다시 짜보고 하면서, 마음에 기대서 엔딩을 드디어! 정했습니다.아마 20화 초중반으로 다정한 핀잔과도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것 같네요ㅜ
다음 차기작은 이미 전체적인 플롯과 이야기를 끝내둔 상태라, 방탄이들이 음악방송에서 1등을 하는 날! 소소한 선물처럼 여러분에게 인트로 부분을 보여드릴까. 해요. ㅎㅅㅎ 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가을이 어디로 숨어버리고 벌써 겨울이 오려고 하는 지 모르겠어요... 다들 몸 건강 잘 챙기시고, 우리 고삼이 수험생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당장 중요한 것들이 우선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글은 두고두고 보시면 되니까...! 늦게 온다고 미안해 하신다거나, 마음 쓰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다들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
+
다정한 사람들
암호닉은 계속 받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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