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연하남과 연애중
25 : 라이벌
w.스노우베리
-눈 떴어?
"으...으...허..."
-얼씨구. 그러게, 왜 한다고 해서는
"..."
-눈 뜨고 일어나야지, 안 그럼 늦어.
사랑스러운 공강 날 아침 7시 기상이 웬 말인가.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정국이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겨우 뜬 눈으로 일어나서 정국이의 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새벽운동을 하고서 이제 아침을 챙겨 먹는 듯 핸드폰에는 정국이의 목소리 외에도 시끄러운 주변 소리가 들려왔다. 치약을 짜서 칫솔을 입에 넣기 전에 정국이에게 양치한다고 하니 내 예상대로 자신도 아침 먹어야 한다며 내게 꼭 아침 챙겨 먹어야 한다는 신신당부와 내 어물쩡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네, 가는 중이에요"
-그래? 조심해서 얼른 와~
아침부터 에너지 넘치는 과대선배의 목소리에 감탄해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짧게 응시하다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족보가 뭐라고 그 단어 하나에 홀라당 넘어간건지. 청렴결백하게 살아야지 했던 다짐은 이미 새내기 때부터 산산조각 난 지 오래다. 과대선배의 말에 따르면 대학 탐방을 희망해오는 학교수가 많아 추가로 몇 학교의 신청을 더 받고 날짜를 잡았다는데 원래 계획되어있던 게 아니라서 부득이하게 일정이 맞지 않은 학생이 생겨버렸단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던 와중에 강의를 듣기 위해 딱 문을 열었는데 내가 빈 강의실에 미리 와서 혼자 앉아있는 것을 보고서는 시간 약속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문을 살며시 열자 안에는 준비하느라 바쁜 학생들이 보였고 그 사이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과대선배가 보였다. 원래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도 아닐 뿐더러 친화력이 넘치는 타입도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일을 하는 게 낯설어 죽는 줄 알았다. 2인 1조로 난 그나마 안면이 있는 과대선배와 한 조가 되었고 대충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또 요즘 고등학생과는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어젯밤에 전화로 정국이와 나눴던 아이디어를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아재개그라던가, 아이돌이야기던가 아니면 게임에 대해서 얄팍한 아는 척이라던가...
"자! 다들 이동할게요!"
그 수많은 걱정들과 달리 유쾌한 분위기 속에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아이들 잘 이끄는 과대선배덕분에 나 또한 고등학생이 된 것 마냥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감탄을 내뱉을 때면 나 또한 새로운 사실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고 말도 안 되는 속설에 학생들이 에이- 하면서 손을 내젓을 때 나도 같이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동시에 난 내가 얼마나 우리학교에 관심이 없는지 깨달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학식을 받아와 학생들과 마주 보고 밥 먹는데... 뭔가 말을 건네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날 조여왔다.
"다..다들 희망하는 학과 있어..요?"
"전 무조건 공대요!"
"옆친 구는?"
"얘는 체대 입시생이에요"
말을 걸자 신나게 입을 여는 학생이 숟가락으로 옆 친구를 가리켰다. 오, 체대 입시생. 체대생도 아닌데 정국이가 생각나 고개를 돌렸는데 내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날 가만히 응시했다. 쳐다본 건 난데 내가 더 당황해서 눈을 돌렸다가 상처를 준 건가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태권도... 힘들겠다"
운동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고된 훈련을 할까 싶어 연민이 들었다. 그리고 또 괜히 만약 정국이가 우리학교에 입학했다면 지금처럼 마주 보고 같이 학식을 먹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어느 대학교를 가야 하나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정국이는 내가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했었고 난 아주 옆에서 열심히 뜯어말렸었다. 뭐, 운동선수에게는 본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연줄도 중요하기도 해서... 당연히 대체적으로 국가대표들이 다니는 대학교로 가야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말렸었는데 본인도 잘 알고 있는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었다. 만약 그때 정국이가 고집을 부렸다면 이 아이처럼 앉아있었을 텐데... 뭐, 이것도 딱히 나쁜 그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상상이란 걸 알기에 그저 입맛을 다셨다.
"어... 나는 공대생이 아니라서 딱히 도움이 될만한 말을 못 해주는데"
"그냥 전 멘토쌤의 기운 받아 갈래요-"
멘토링 시간이니 도움이 될 만한 말을 들을 수 있는 멘토를 찾아가야 하는데 점심때 내 앞에 마주앉아있던 남학생 둘이 그대로 내 앞에 앉아서 한 명은 살갑게 웃고있었고 아까 운동한다고 한 친구는 또 날 뚫을 기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명색에 멘토인데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찾으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정적이 길어져 그냥 막무가내로 입을 열었다.
"운동하는 친구는 우리 대학 말고 더 좋은 대학 가고 싶겠네-?"
제발 농담으로 받아쳐라... 제발... 내가 유쾌한 목소리로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으니 이 정도면 알아차려줘야지.
"아니요. 저 여기 대학 희망해요"
정말 희망하는 듯한 그 투명한 눈을 보니 농담이라고 받아치기도 민망하고 미안해서 그저 멎쩍은 웃음만 보냈다. 그럼, 내년에 꼭 신입생으로 들어와야 해! 너무 생뚱맞게 활기차게 말했나 그 친구는 그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래도 착한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내가 민망하지 않도록 내게 말을 붙여줬다. 너 정말 천사구나...
"쌤은 좋아하는 운동이나 스포츠있으세요?"
"당연하지"
"무슨 스포츠 좋아하세요? 축구? 농구? 아님 야구?"
드디어 공통된 대화거리를 잡았구나 싶어 신이 난 학생은 빠르게 말을 덧붙였고 옆에 고개만 숙이고 있던 친구도 어느새 또 날 빤히 바라보면서 대답을 기다리는 듯싶었다. 드디어, 우리가! 셋이 대화라는 것을 해보는구나!
"나는 쇼트트랙!"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 되듯, 정국이가 좋아하는 어쩌면 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쇼트트랙을 내가 안 좋아하고 베길 수 있겠나. 누가 하는 스포츠인데 싫어할 수가 있겠어. 내 대답이 꽤 의외였는지 남자애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왜요?"
"어... 멋있잖아-"
"태권도는요?!"
살며시 물어보는 친구의 질문에 옆에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남학생을 힐끔 쳐다봤다. 아, 머리야 제발 현명한 대답을 뱉어내거라. 사실 운동하는 사람들 다 멋있지. 이게 고작 내 머리가 생각해낸 가장 이상적인 대답이었다.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 멘토링 시간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드디어 끝은 나는 걸까 싶었는데 어느새 난 애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그 친화력 넘치는 친구랑은 카톡아이디까지 넘겨주고 친구까지 맺어서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생뚱맞게 그 친구가 아닌
- 저 오늘 대학 탐방에서 태권도한다고 했던 학생인데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맨날 훈련만 하다가 오랜만에 재밌었어요.
그 옆에 과묵하게 앉아있던 정국이처럼 운동을 한다던 친구였다.
이런 감사카톡은 상상도 못 해서 뿌듯함을 주체 못하고 실실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더 울린 카톡 울림을 확인하고 벙 쪄버렸다.
- 꼭 내년에 제가 그 학교 입학하면 쇼트트랙보다 태권도 더 좋아해주세요.
.
.
.
"내려갑니다-"
-진짜 입었어?
"너는?"
-입었으니깐 빨리 내려와.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며 삐뚤어진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2년 만에 입는 교복이라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진짜 어색하다. 그날 대학 탐방이 끝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정국이와 전화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눈에 밟혀 오랜만에 교복을 입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복을 입은 정국이도 보고 싶어져 교복 입고 오랜만에 학교 나들이를 가자고 하니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내 로망 중 하나라고 제발 같이 가자고 땡깡을 부리니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와... 교복 입은 거 봐"
"나 바지 짧아졌어"
집 앞에서 교복을 입은 채 기다리는 정국이를 정말 완벽하게 시간을 거슬러 간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결같이 눈앞에 있는 정국이는 스무 살이지만 조금의 이질감 없이 교복이 잘 어울렸다. 아, 본인은 매우 어색해하는 것만 같은 게 흠이지만. 손을 마주 잡고 밥 먹듯이 걸었던 학교 가는 길을 걷는데 자꾸만 신기해서 정국이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그때처럼 나무가 햇빛을 가려줘 그늘을 만들어줬고 따듯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숭숭 지나갔다. 그리고 가장 신기한 건 아직도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한결같은 마음.
"너 학교 얼마 만에 가보는 거지?"
"... 모르겠는데"
"경기 때문에 방학식도 못 오고 졸업식도 못 가고... 그러면"
정국이는 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훈련 때문에 점심시간 이후에는 빙상장을 갔고 시험날에는 학교에 와서 푹 잤고 연달아 이어진 경기 때문에 학교를 왜 다니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결석 행렬이었다. 심지어 그놈의 경기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 마침표인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 했다. 나 때문에 정국이에게는 별로 감흥 없을 교복을 입히고 학교를 가는 건가 싶어 신경 쓰였다. 그리고 그게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났는지 정국이는 손깍지를 끼더니 괜히 큰 목소리를 냈다.
"여기서 우리 맨날 쭈쭈바 먹었잖아, 그거 초코맛 진짜 맛있었는데"
"우리는 아니지. 너만 맨날 먹었잖아"
"맨날 한입 달라 한 사람이 누구더라-"
장난스럽게 몸을 기울여 추궁해오는 정국이 때문에 다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어젯밤에 피곤한 바람에 전화를 못해 말하지 못 했던 의미심장한 카톡이 생각났다. 정국이에게 보여줄게 있다고 가만히 서서 카톡을 찾아 궁금한 눈을 하고서 내 핸드폰 화면을 힐끗힐끗 보려고 하는 정국이에게 내밀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쇼트트랙보다 태권도 더 좋아해주세요?"
"대박이지? 완전 과묵해서 이렇게 돌직구 스타일일지 상상도 못했다니깐"
"그니깐 지금 남자애가 누나한테 보낸 거야?"
"응! 어제 대학 탐방 온 학생인데- 내가 쇼트트랙 제일 좋아한다니깐 이렇게 카톡 보냈어"
내가 감탄을 하며 고개를 흔들자 정국이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여 날 내려봤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신호였다. 불안하지? 능청스럽게 말하고서는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었고 정국이는 눈썹을 위로 추켜올렸다. 하지만 난 즐겁다. 하, 파릇파릇한 새내기 시절부터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고 소문이 쫙 돌아버린 대학교 내에서 이런 대접은 받아보지 못할뿐더러 나 또한 무감각해져있었는데 한 고등학생의 카톡에 뭔지 모를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줘 봐"
"싫은데~"
"빨리"
"주면 뭐 할 건데?"
"뭐 하긴, 차단해야지"
핸드폰을 내놓으라고 내민 손에 내 손을 턱하니 올려놓자 내치지는 않고 미간만 찌푸렸다.
"내가 죽지는 않았나 봐, 정국아"
"핸드폰 빨리"
"싫은데~ 이거 캡쳐해놔야지~"
두고두고 봐야지. 발걸음의 보폭을 넓혀 성큼성큼 손에 핸드폰을 쥐고 걷는데 뒤에서 정국이가 덮쳐왔다. 그리고 나보다 긴 팔로 핸드폰을 쏙 뺏어가버렸다. 언젠가는 뺏길 거라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빠른 뺏김에 당황해 같이 내 팔도 뻗었을 때는 이미 핸드폰은 저 멀리 가버린지 오래다. 패턴과 비밀번호쯤은 너무 잘 알기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패턴을 풀어버린다. 그리고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아하니 차단 버튼을 찾은 것 같았다.
"운동하는 애면 우리 학교 올 생각해야지"
"우리 학교도 나름 나쁘지 않거든"
" 나한테는 절대 안 된다고 했으면서."
"그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냥 누나 따라 대학가는 거였는데"
또 이런 일 있지, 있네. 어서 정직하게 대답을 뱉어내라는 눈빛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이런 일이 자주 있었으면 이렇게 자랑 아닌척하면서 자랑을 했겠니! 하지만 흔치 않은 기회가 왔으니 열심히 우려먹어야 줘야지.
"뭐..."
"긴장 좀 하고 살아야 할 정도...?"
끝까지 말해보라는 정국이의 눈빛에 뻔뻔하게 말을 끝내자 끝내 표정을 일그린다. 근데 난 왜 이렇게 재밌냐.
"히- 그러니깐 잘하라고-"
.
.
.
"어! 교문누나!"
"누구... 어!!! 너!"
정국이에게 찝찝한 기분을 선물한 나는 신이 나 있었다. 나도 얼마나 맨날 너한테 쏟아지는 시선에 불안한데. 싱글벙글 웃으며 교문을 통과하고 운동장을 지나쳐 가려 하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름에 혹시 날 부르나 싶어 뒤를 돌아봤는데 익숙한 스포츠머리가 내게 뛰어왔다. 내가 몸을 돌리자 정국이도 같이 몸을 돌렸다가 내 반가운 목소리를 듣고서는 의아한 눈으로 나와 뛰어오고 있는 남학생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 기억나세요? 그때 빡빡이!"
"와... 너 3학년이야?"
"그럼요, 저 심지어 주장이에요!"
빡빡이라는 말에 정국이도 짧게 탄식을 뱉었다. 축구부 내에서 장난 많기로 소문난 선배한테 축구부는 무조건 새로 들어오면 반삭을 해야 한다는 장난에 홀딱 넘어가버려 진짜로 반삭을 하고서 등교를 하는데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었다. 정국이를 이은 1학년의 새로운 유명인사의 탄생이었으니 한 번씩 애들 입에 올랐고 나 또한 그랬기에 정국이도 모를 리가 없을 거다. 지금 내 옆에서 웃음 꾹꾹 참아내는 것만 해도 뭐...
"근데 왜 두 분께서 같이...?"
"설마"
"와우"
소녀스럽게 후배님은 입을 가렸다. 아마 놀란만도 할 거다. 학생때부터 이어온 연애지만 주변의 가까운 사람 빼고는 아무도 우리의 연애를 몰랐다. 정국이가 학교를 잘 나오지 않은 편이니 소문에 대한 증거가 없었고 소문의 주인공 중인 한 명인 내가 항상 어물쩡하게 대답을 하고 넘어가니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치우지 못했지만 찝찝하게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연애를 알아맞히는 학생들도 존재했다. 그런데 그 또한 정국이를 만인의 연인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몇몇 학생들의 부정들로 조용히 묻혀버렸다. 그렇게 떠돌던 소문은 정국이가 토크쇼에서 연애 중을 알림으로써 진실로 밝혀졌다. 아, 다행히도 그건 내가 졸업한 이후였다.
"뭐 하냐?!"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이번에도 그 목소리는 정국이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내게는 부장 선생님으로 정국이에게는 유일하게 아는 선생님인 그분께서 눈을 찌푸리셨는데 어서 뛰어오라며 으름장을 놓으셨다. 재학생도 아닌데 움찔해서 달려갔는데 수업 중이었는지 선생님의 놀란 눈과 함께 수많은 학생들의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도 받아냈어야 했다.
"쌤~ 안녕하세요!"
"아니, 왜 교복을 입고"
아, 교복 입고 있었지. 아무래도 교복을 입고있어서 우리가 재학생인 줄 아셨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과 안부도 묻고 담소도 나누는데 도중에 계속 느껴지는 학생들의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졸업생이 교복을 입고 나타나 것도 신기할 텐데 옆에 유명인사가 돼버린 정국이까지 있는데 안 궁금한게 이상하지. 선생님도 알아차리셨는지 학생들을 보시고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애들한테 인사 한 번이라도 하고 가라 하셨다.
"누나 완전 여성미 넘치는데요? 그때는 완전 여장부였는데"
"원래 여성스러웠거든. 뭐, 이제는 잘 달리지? 너 나한테 맨날 잡혔잖아ㅋㅋㅋ"
"그건 2년 전 얘기고 이제는 클래스가 다르죠"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국이를 둘러쌌고 난 정국이 몰래 거기서 빠져나와 유일하게 아는 빡빡이 친구와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3년 내내 축구부 추격으로 다져진 내 달리기 실력을 간과한 빡빡이가 도망가다 내게 잡혀서 멍하니 날 바라봤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나 능구렁이인지 능청스럽게 온갖 손짓을 사용하는데 그 모습이 웃겨서 애꿎은 봉을 때리며 웃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정국이?"
"난 힘들어 죽겠는데"
어깨에 팔을 두르고 기대오는 게 진짜 많이 지친 듯 싶었다. 낯가림 왕께서 저렇게 많은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안 지치는 게 이상하지.
"정국아, 내가 한때는 얘랑 달리기 맞먹었다."
"알아. 누나 지구력은 끝내주잖아."
"이제는 다르다니깐요. 한 번 내기할까요?"
"내기? 쭈쭈바 걸고 한 번 해봐? 잠시만, 정국아."
내기라는 말에 흥미가 생겨 승낙의 의미로 손을 들려고 하자 정국이가 뒤에서 날 끌어당겨버렸다. 그리고 대신 자신이 손을 드는데 정국이가 그 친구를 빤히 보고 있던 건지 그 친구가 날 보더니 동공에 지진이 온 상태로 다시 한번 정국이를 바라봤다.
"나랑 해요."
"예?"
"누나 치마 입어서 못 뛰어요"
바로 들려오는 말에 귀가 빨개지다 못해 터질 기세였다. 그리고 우리 빡빡이 후배님은 음흉한 미소를 내게 지어 보이더니 정국이의 손을 한번 가볍게 치고서는 유쾌하게 콜을 외쳤다. 그러자 어깨에서 풀리는 정국이의 손에 놀라 정국이를 다시 붙잡았다. 아니 그냥 장난으로 한 건데 진짜 내기를 하시면 어쩌자는 거에요...전정국씨.
"너..너 진짜 하게?"
"콜 했잖아"
"형님 빨리 오십쇼!"
먼저 달리기 내기를 위해 걸어가는 남자애가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더니 정국이를 불렀다. 아니 쟤는 왜 또. 똥꼬발랄한 뒷모습을 한 번 째려보고 나서 정국이를 올려다봤을 때 나는 그냥 해탈해버렸다. 그놈의 승부욕에 발동이 걸려버렸다. 이미 주변 학생들에게 내기를 한다고 소문이 난 건지 다들 옹기종기 그곳에 모여있었다. 그래서 쭈쭈바내기의 스케일마저 겁잡을 수 없이 커졌다. 빡빡이친구가 이기면 정국이가 모든 애들에게 쭈쭈바를 사주기로 해버렸고 정국이가 이기면 요상하게도 아무 상관없는 내가 쭈쭈바를 사주기로 했다.
"눈치 봐서 살살 뛰어"
"저 완전 최선을 다할 건데."
"내가 쭈쭈바 나중에 사줄게. 여기 있는 애들 다 사주면 도대체 얼마야"
조용히 그 친구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이를 악물고 조용히 협박을 하자 처음에는 듣는 척을 하더니 다시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고 출발선으로 걸어갔다. 나름 명색의 축구부 일원 중 한 명인데 못 뛸 리가 없는데... 일단은 출반선 앞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는 정국이에게 양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당연히 정국이가 이겼으면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여기 있는 애들 수 곱하기 쭈쭈바 가격을 계산을 시작했다. 쭈쭈바 가격도 올랐을 텐데...
땅-
신호가 울리고 내기의 결과를 알기까지는 15초 정도면 충분했다. 둘 다 열과 성을 다해서 뛰는데 누가 앞서간다 뒤처진다라는 게 뒤에서 바라보는 난 구분이 가지 않았다. 정국이랑 그 친구랑 악수도 하는데 도대체 누가 이긴 건가 싶어 주위를 보면 여학생들은 환호하고 있었고 남자애들은 탄식을 뱉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이긴 건데!!
"뭐야? 누가 이긴 거야?"
"제가 이겼는 게 아니라 형님이 이겼어요. 아, 내 쭈쭈바!!"
세상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 친구 뒤에서 교복 조끼를 들고서 숨을 고르고 있는 정국이가 다가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내 손을 잡더니 운동장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빡빡이 친구에게 안 들릴까 봐 크게 안녕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발걸음이 느려졌을 때는 이미 교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아니? 뭘 했다고 벌써 학교를 떠나?
"지금 가게? 학교도 안 들어가 봤는데?"
"이겼잖아. 쭈쭈바 먼저 사줘야지"
아, 어쩐지 횡단보도로 걸어간다고 했네.
"나 솔직히 질까 봐 걱정했거든? 짱 잘 뛰더라-"
"남는 게 체력인데 걱정을 왜 했어"
"그래도 나름 축구부잖아. 맨날 지상에서 뛰는 애니깐"
"많이 친해?"
"빡빡이랑?"
"응, 옆에 있는 축구부 애들이랑도 태권도 하는 애처럼 카톡도 해?"
정국이는 원하는 쭈쭈바 하나를 고르다가 대뜸 물어왔다. 카톡이 웬 말인가. 오늘 처음 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내 주위에서 서성거렸던 것은 그냥 단지 졸업생이니 신기했을 거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끌렸을 것이고 자신들의 주장이 아는 사람이어서 괜히 내 주위를 알짱거렸던 게 분명하다. 그래도 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관심이라 기분이 좋았다. 근데 태권도 하는 애라고 말하는 걸 보니 내가 선물해준 찝찝함을 아직도 지워내지를 못했나 보다.
"너가 생각하는 그런 일 하-나도 없어"
아씨, 내 입으로 말하니깐 슬프네. 정국이가 계산한 쭈쭈바를 따서 꼭지 부분을 넘겨줬다.
"그런 줄 알았거든"
뭐? 쭈쭈바를 한입 물은 정국이를 째려보자 콧방귀를 뀌었다.
"누나 거짓말하는 거 다 티 나."
아닌 건 다 알면서 왜 묻는 거야. 쪽팔리게
"근데 아까 축구부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남자는 남자가 잘 알아. 딱 눈만 봐도 그 삘이 와-"
다시 학교를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자 정국이가 끌어당겼다. 의아한 눈을 하고 있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더니 가만히 빤히 보더니 뜬금없이 뽀뽀를... 정신을 차리고 정국이의 팔을 찰싹 때렸다. 사람들 막 지나가는 거리에서는 부끄럽다고 하지 말라고 얘기했는데 저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거 봐라.
"원 불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 큼, 불안한 사람이 막 그래? 막 사랑해요~ 이런, 막 유혹스러운 그런, 그런 말해야지!"
"사랑해요"
낮 뜨거운 말에 괜히 시선을 돌리다가 되려 버벅거리며 큰소리를 내자 민망하지도 않은지 반달처럼 눈을 휘더니 사랑스러운 말을 조잘거렸다.
"아까 카톡은 차단하고"
"아무한테나 카톡아이디 좀 넘겨주지 말고"
"이제 그만 불안하게 해"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
.
.
분량조절 따위는 개나 줘버린 스노우베리입니다'ㅁ'
잡다한 글에서 독자님들에게 스틸해온 소재들은 정리해서 스토리라인을 다시 짰습니다!(사랑해요..흡흡)
아마 모교데이트는 다음 화에서 계속 될 거 같아요...
왜냐면 또 앞서 말한 것처럼 또 분량조절 실패...(뭐 성공하는 게 없어(해탈))
그리고 뭐 짤도... 할 말 없음에 눈물을 주륵주륵. 짤줍이나 하러 떠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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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받지 않습니다
기존 암호닉분들 생존신고 '잡다한 글'에서 꼭 해주세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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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쿨럭쿨럭) 어김없는 월요일 알림이로 등장했습니다-
뭐, 이쯤이면 신알신이 안 울려도 월요일이 다가올 때 글잡에 들어오시면 글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ㅋㅋㅋ
월요일은 미워하되 월요일 알림이는 미워하지 마세여...(사랑갈구)
시험기간인 독자님들은 힘!힘! 시험 끝난 독자님들은 수고했고 뭐 이제 머리 풀고 달려야죠!!!
다들 쌍큼하고 싸랑스러운 월요일 보내요-❤
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๑❛ڡ❛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