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연하남과 연애중
26 : 너의 세상
w.스노우베리
젓가락으로 떡볶이를 들어 접시에 올려놓는 데 냄새부터 예사롭지 않다. 옆에 있는 물컵을 벌써부터 만지작거리자 정국이가 내 물컵을 들고 가버렸다. 일단 먹어봐. 내가 왜 내 발로 이곳으로 걸어들어왔을까. 뭘 먹을까 고민하다 학생하면 분식이라는 정국이의 이상한 공식에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런 분식집에 이끌려 들어왔다.
"못 먹겠으면 다른 거 시킬까?"
"아니 아니, 도전!"
정국이도 맵긴 한지 애꿎은 입술을 자꾸 질근질근 씹었다. 큰마음 먹고 입에 떡볶이를 입에 넣었는데 하필 사례가 걸린 탓에 기침을 몇 번 하다 끝내 눈에 눈물이 고여버렸다. 아직 가시지 않은 사례 때문에 물을 마시기 위해 내 앞에 있는 컵을 들었을 때는 이미 비어있어 주변을 살피자 정국이가 과일음료 하나를 따서는 손에 쥐여줬다.
"이거 먹지 마"
"아깝잖아"
정국이는 떡볶이는 제 쪽으로 가져가고 주먹밥을 주문시켰다. 금방 나온 주먹밥을 하나씩 주워 먹다 매워 보이는 정국이 입에 하나 넣어줬다. 어우, 너무 맵던데 이러다가 탈 나는 거 아니야.
"정국아"
"쓰읍- 응"
"넌 로망 없어?"
왜 각자 사람마다 연애에 대한 로망 하나쯤은 있지 않나. 정국이가 운동선수라서 여러모로 연애에 제한적이어서 그런가 내게도 되게 소소한 로망들이 알게 모르게 있긴 했다. 그놈의 꽃놀이 좀 가보고 싶고 그냥 여행도 한 번 가보고 싶고 오늘처럼 교복을 입고 학생 때처럼 데이트를 하고 싶기도 하고. 수많은 로망들 중 지금 한 로망을 실천 중이니 아주 행복해 죽겠는데 이쯤 되니 정국이는 뭐 로망 같은 게 없나 궁금해졌다.
"로망?"
"나랑 하고 싶은 거"
"어..."
젓가락을 든 채 생각에 빠진 정국이를 기다려주는데 꽤 길어지는 생각에 아예 로망이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난 많은데 넌 나랑 하고 싶은 거 하나도 없냐.
"있긴 한데. 누나가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은데"
"뭔데?"
헐, 왜 안 좋아해. 나랑 같이 하고 싶다는 건데! 그런데 저 천진난만한 눈빛을 보니 조금 불안해 오기도 하고 주먹밥 하나를 다시 입에 넣어주니 오물거리다가 말하기로 결심했는지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싫다고 하기 없기"
"싫을 건 또 뭐야"
자신의 말을 듣고서도 절대 무르기 없기로 약속을 하자길래 안될 건 뭐 있나 싶었다. 나름 로망인데 이상한 건 아니겠지. 정국이는 남은 주먹밥 하나를 내 입에 넣어주더니 의자에 걸쳐뒀던 교복조끼를 들었다. 나도 따라서 얼떨떨하게 일어나자 정국이는 내가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내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 빙상장 가자"
.
.
.
"저기요? 나 지금 치마 입은 건 알고 계시죠?"
"거기에 내가 입던 패딩 있어"
아까는 치마 입어서 달리기도 못하게 하더니 지금은 패딩을 입으면 된다면 패닉에 빠진 날 빙상장으로 질질 끌었다. 지구력 빼고는 운동신경 따위 1도 없는 내가 스케이트를 타야 한다니 현실부정을 위해서 정국이에게 몇 번 되묻자 정국이는 그 또 마음 약해지는 눈을 하고서는 로망이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못 탄다고 고집만 부릴 수 있겠나.
"신겨줄까?"
"나 진짜 타? 나 죽을지도 몰라"
기어코 패딩을 들고 와서는 가만히 서 있는 내게 인형 옷 입히기 마냥 패딩을 입혀주더니 내 발 사이즈에 맞는 스케이트화까지 빌려와서 내게 내밀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날 빙상장으로 내몰고 있었다. 놓여있는 스케이트화를 보다가 진짜 이건 못하겠다 싶어 고개를 들었다가 입꼬리가 귀까지 걸려있는 정국이와 눈이 마주쳐 난 내 손으로 스케이트화를 신을 수밖에 없었다.
"넘어져서 뇌진탕 걸리면 어쩌지..."
"내 생은 빙판 위에서 마감하는 걸까"
"뭘 죽을 걱정까지 해. 내가 잡아줄게"
평일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없어 한산한 빙판장을 보며 독백을 하는데 정국이도 어느새 스케이트화를 갈아 신고 와서 내 옆에 서 있었다. 먼저 익숙하게 빙판 위에 올라간 정국이가 손을 내미는데 심호흡을 하고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지상에서도 말 안 듣는 내 다리가 빙판 위에서는 오죽하려나.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준 채 정국이의 말을 따라 움직이는데 역시 주인 말을 들으면 내 다리가 아니지.
"왼발 다음에 오른발"
"으카! 못해, 못해. 나 돌아갈래... 으헝"
“잘하고 있어. 오른발"
잘하기는 무슨! 정국이가 오른발을 할 때는 왼발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왼발을 외칠 때는 오른발이 움직였다. 삐긋해서 넘어지려면 정국이가 팔에 힘을 줘 당기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추하게 찧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나름 난 열심히 또 다른 사람들의 주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그것도 정국이가 앞으로 날 끌어당겨서 이동한 거지 아니었으면 코너에 도착도 하지 못했을거다.
"헐, 안돼! 어딨어!”
시선은 열심히 빙판에만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이 허해져서 옆을 보는데 분명 내 팔을 잡고 있던 정국이가 사라져있었다. 그나마 있던 지지대마저 사라져 절망적으로 고개를 드는데 정국이는 웬 한 남자아이를 붙잡고 있었다. 꼬마 남자아이의 엉덩이가 빙판에 닿을 듯 해보이는 게 정국이가 넘어질 뻔한 꼬마남자아이를 잡아준 듯 싶었다. 갑작스럽게 목격하게 된 훈훈한 상황에 내내 좁혔던 미간에 힘을 풀었다. 남자꼬마아이는 정국이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서는 또다시 전력질주를 하였다. 아, 부러운 자식 나도 저렇게 달리고 싶네.
"뭐야~"
“뭐긴 뭐야”
" 뭐 거의 빙판계 슈퍼맨급?”
내가 능청스럽게 팔을 툭툭 치자 듣기 민망한지 정국이는 언제 코너를 벗어나냐며 괜히 말을 돌렸다. 아까도 여러번 자신에게 부딪힐 뻔 아이들을 이리저리 피하는 걸 보니 그런 행동들이 자연스레 몸에 밴 듯싶었다. 다시 정국이는 내게 왼발, 오른발을 말해주다가 이러다가 시작 전에 트랙 한 바퀴를 돌다가는 해 떨어지는 걸 보고 갈 거라는 내 말을 실감했는지 그냥 내 두 손을 잡고 앞에서 끌어줬다. 아까랑 다르게 시원시원하게 앞으로 나가는 덕분에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다. 이 맛이지.
"헐, 정국아 괜찮아?"
날 끌어준다고 뒤를 보지 못해 자신이랑 부딪힐 뻔 아이를 급하게 피하다가 중심을 잃은 정국이가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이 급하면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고 엉성항 스케이트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내 나름대로 빠르게 정국이에게 다가갔다. 괜찮냐고 묻는데도 대답도 없고 꼼짝도 안 하길래 처음에는 민망해서 그런가 했는데 지금은 다친건가 걱정이 돼 초조했다. 넘어질까 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꿀어 다시 한 번 얼굴을 들이밀어 괜찮냐고 묻자 정국이가 갑자기 날 끌어당겨 안아버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웃음소리.
"뭐야. 괜찮은 거야? 일어날 수는 있겠어?"
품 안에서 다시 빠져나와 질문을 쏟아내니 빙판을 안방마냥 앉아서 춥지도 않은지 그저 입꼬리만 살며시 올리고 날 빤히 올려봤다. 아니, 괜찮으면 괜찮다고 말이라도 좀 하던가.
"일으켜줘"
내게 두 손을 뻗는 데 난 황당해서 헛웃음을 뱉어냈다. 지금 내 몸 중심 하나 잡기 힘든데 잡아달라니. 이제는 빨리라며 재촉까지 한다. 긴장한 표정으로 두 손을 잡으니 긴장한 게 허무할 정도로 정국이는 내가 당기지도 않았는데 불쑥 일어나버렸다.
"아, 오랜만에 넘어지니깐 아프긴 하다."
"넘어지다니 이거 완전 선생 자격 박탈감 아니야?"
그러게. 내 장난에 정국이는 민망해하지도 않고 여유롭게 웃더니 내게 멀어졌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정국이를 따라 움직였다가 여긴 빙판 위라는 것을 깨닫고서는 그 자리에서 서서 얼어있자 정국이가 어서 오라며 손짓을 보냈다. 이러지도 못하고 서있는데 정말 정국이는 와주지 않을 생각인지 나처럼 가만히 서서 날 기다리기만 했다.
"아 몰라 인생 한 방이야"
울상만 짓고 있다가 옆을 슝슝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자극을 받아 조금씩 움직였다. 뭐, 넘어져서 다치면 정국이한테 책임지라고 하지. 근데 말이 씨가 된다고 나도 날 주체하지 못한 채 가다가 앞으로 중심이 쏠려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때 체육시간 때 낙법이라도 제대로 배워둘걸.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손에 차가움이 느껴지기 기다렸는데 들린 건 웃음기 가득한 정국이의 목소리였다. 지금 웃어?
"야이! 전정국아! 나 죽을 뻔 했다고!"
"죽을 뻔했었어?"
죽을 뻔했었어라니. 내가 정국이의 팔을 주먹으로 내려치자 정국이는 실실 웃으며 날 일으켜줬다.
"내가 잡아준다고 했잖아"
"이제는 선생 자격 다시 생겼어?"
"아 몰라, 빨리 손잡아 줘"
결국은 정국이의 손을 붙잡고 썰매를 탄 마냥 질질 끌려가 빙판 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딱 한 바퀴 돌고 땅을 밟으려니 정국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 괜히 뒤를 돌아봤다가 엉덩방아를 찍을 뻔한 아이를 보고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다시 돌렸다. 스케이트를 타는 내내 다리에 힘을 줬더니 뻐근해져 스케이트화를 벗어두고 의자에 편히 기댔다.
"나 진짜 스케이트랑 안 맞나 봐"
"나도 누나가 그렇게 못 탈 줄 몰랐어"
"오늘을 마지막으로 생 마감하려고?"
옆에 앉아서 신발을 신고 있는 정국이를 째려봤다. 하긴 내가 못 타도 너무 못 타긴 했지. 진짜 운동신경이 없는 줄은 알았는데 옆에 꼬마아이들도 잘만 한 바퀴를 도는데 나는 그렇게 부들부들 거리면서 한 바퀴를 돌다니. 아, 정말 수치스럽군. 근데 그 겨우 돈 한 바퀴마저 정국이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마 빙판 위에서 벗어나지도 못 했을 거다. 명색에 남자친구가 동계 종목 운동선수인데 아 이렇게 못 타도 괜찮나. 혼자 연습하러 와볼까.
“수고했어. 내 로망 이뤄주느라”
로망을 이뤘다고 하기에는 딱 한 바퀴 돌았는데. 찝찝한 기분도 들고 뭔가 미안하기도 했다
“미안… 내가 진짜 혼자 연습 좀 할게”
“혼자 하다가 어떻게 넘어지려고.”
“원래 다 넘어지면서 강하게 크는 거지!”
“강하게 안 커도 돼. 누나는 진짜… 위험해”
도대체 그 위험하다는 게 내가 위험하다는 거야 아니면 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거야. 신발을 다 신은 정국이가 인상을 쓰고 있는 날 발견하더니 빙판장을 시선을 돌렸다.
“못 타도 괜찮아”
“빙판 위에 같이 있으면 무슨 느낌일까 궁금했어”
그동안 살아온 시간의 반을 홀로 빙판 위에서 보낸 네가
너에게는 집 같은 존재일 더 나아가 너의 세상일 빙판 위에
나를 상상하고 그려
‘같이’라는 단어로 날 너의 세상에 형상화했다.
“행복하고 좋았어.”
너의 세상에 존재하는 나도 행복하고 좋다.
“훈련할 때마다 생각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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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베리입니다...8ㅅ8
와이파이/데이터가 거지인 상태인 덕분에 강제로 문명 단절되어 살고 있어요.
그래서 짤은... 강제로 스킵...(마음이 아프다8ㅁ8)
정국이 대문사진도 로딩하는데 시간이... 하... (말잇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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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생존신고 / 중복암호닉 재신청 마무리됐습니다!
빨리 정리해서 신알신 한 번 울리도록 할게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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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일주일을 넘겨서 독자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다행히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네요'ㅁ'
다들 행복한 일요일 보내요!
전 또다시 문명 단절로...^^
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๑❛ڡ❛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