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20
By.아리아
지잉- 지잉-
부모님의 갑작스런 방문과 예정에 없던 상견례와 비슷한 걸 진행한 탓에 피로는 배로 불어났다. 겨우 화장을 지워내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져 눈꺼풀이 내려 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급하지 않은 전화면 금방 끊기겠지 하는 생각에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저를 애타게 찾는 진동소리에 결국 한숨을 쉬며 수신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김교수님, 진짜 죄송한데 지금 병원으로 와 주실 수 있으세요?"
"지금요? 당직 서는 교수님 안 계세요?"
"그 새로 오신 분이 당직이신데 어디로 사라지신 건지, 연락도 안 받으시고 병원 내에 안 계신 것 같다네요. 5인 가족 TA라 좀 빨리 와주셔야 될 것 같아요. 어린아이 2명 있어요."
*TA : 교통사고
"아, 네. 금방 갈게요."
끝까지 죄송하다며 사과를 해오는 간호사 선생님께 괜찮다며 통화를 끝낸 후, 벽에 걸려 있던 패딩에 팔을 껴 넣었다. 정말 넌 그 때나 지금이나 인생에 도움이 될 수가 없구나. 당직이라며 병원에 없는 것 같다는 소리가 가당키나하나.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올라오는 화를 애써 참아내며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시동을 걸자마자 또 다시 울리는 휴대폰이었다. 아까와 같은 번호.
"교수님! 소아 뇌출혈 환자 들어왔는데,"
"NS, NS 호출해주세요. 저 지금 병원 가고 있는데 TA 환자 2명부터 봐야될 것 같아서요."
"아,네. 알겠습니다."
교통사고 환자로도 모자라 뇌출혈 환자라니. 점점 더 조급해져오는 마음에 액셀을 꾹 밟았다. 새벽이라 한산했던 도로 덕에 막힘 없이 평소보단 빠른 시간으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를 시킨 후,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팔목에 걸려있던 머리끈으로 대충 질끈 묶으며 응급실로 급히 발을 옮겼다.
"교수님. 여기 TA 환자요!"
응급실에 발을 딛자마자 제 가운을 든 채 저를 부르는 간호사에 그 베드 쪽으로 향했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가운을 받아 입곤 그 조그마한 몸이 온통 피범벅이 된 아이 둘의 라이트를 켜 동공을 확인했다. 한 명은 미세한 반응이 있는 반면, 더 작아 보이는 여자 아이는 반응은 커녕 미세한 숨소리 조차 듣기 힘든 상태였다. 이어 검사실에서부터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며 제게 차트를 쥐어주는 찬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주곤 증상과 예상 병명을 확인했다.
"바이탈 어때요?"
"둘 다 아까보다 엄청 떨어졌어요. 빨리 수술 들어가셔야 될 것 같은데."
"찬아, 가서 수술방 잡아줘. 여자 아이 먼저 수술 들어갈게요."
"네."
숨을 고른지 얼마나 됐다고 또 부리나케 수술실 쪽으로 향하는 찬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내 옆에서 교수님?하며 불러오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저 또한 환복을 인해 탈의실 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그 새로 온 교수는 아직도 연락 두절이에요?"
"네. 어디로 사라지신건지 보이지도 않아요."
환자가 죽어간다는데 의사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건지, 절로 나오는 한숨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년을 생각해봤자 수술에서 실수나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겨우 제 머릿 속에서 그 잔상이 사라질 때 쯤, 이젠 제 옷들 보다 익숙해진 파란빛의 수술복에 몸을 끼워넣었다.
"이영선, 4세 여아. 마취 완료 됐습니다."
수술대 위로 환한 빛이 비추었다. 조그마한 아이의 몸 위로 날카로운 수술 도구들이 왔다갔다 하길 한 시간 쯤, 출혈의 원인을 찾아 겨우 봉합을 시켰고 최종 수처는 어시를 맡고 있던 레지던트에게 넘긴 뒤 수술실을 빠져나왔다. 땀으로 푹 적셔진 수술모를 벗어 세탁물이 가득한 바구니에 집어던졌다. 각종 옷가지들이 쌓여있어서 그런 건지 모자는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지 못 했다. 어떻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건지, 절로 나오는 한숨을 뱉으며 허리를 굽혀 모자를 주웠다.
주운 모자를 바구니 가까이에 가 넣는 순간, 아직 한 명의 아이가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에 피가 잔뜩 튄 수술복 위로 바로 가운을 입곤 응급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달린 효과가 있었는지 생각보단 빨리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어수선한 응급실 분위기에 뻐근한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 앞에 있던 간호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까 이영선 환자랑 같이 들어온 TA환자 어딨어요? 남자아이요."
"아, 6번 베드에 있어요."
"네, 고마워요."
신입 간호사인지 낯선 얼굴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듯한 낯빛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곤 6번 베드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아까 권교수님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았던거야?"
"그런 것 같아요. 워낙 테이블 데스 없으시던 분이라서 더.."
권교수, 테이블 데스. 딱 두 단어만이 제 귓 속을 파고들었다. 베드로 향하던 발걸음이 소리의 근원지로 옮겨졌다. 차트를 정리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두 간호사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인기척이 들자 눈을 맞추고 있던 둘의 시선이 제 쪽으로 돌려졌다.
"권교수 테이블 데스 했어요?"
"..네. 아까 소아 뇌출혈 환자 그 새로 오신 교수님이랑 같이 수술 들어가셨는데 그 교수님 실수로 테이블 데스 하셨대요.인턴 선생님들도 안 할 실수로요. 권교수님 엄청 열 받으셔서 수술모 집어 던지고 나가셨다는데."
"근데 집도의는 권교수님으로 올라가 있어서 책임 권교수님이 고스란히 다 물 것 같대요. 김교수님이 위로 좀 잘 해주세요.."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제 미간엔 주름이 하나 둘씩 늘어갔다. 정말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그 년을 찾아내서 잘난 얼굴에 칼집이라도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응급실엔 생사를 오가는 어린 아이가 제 손길만을 기다리며 누워있었고 그걸 일깨워 주듯 6번 베드의 심전도기가 위태로운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이야기를 더 들을 새도 없이 베드로 향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교수님, 바이탈 돌아왔어요."
제 노력을 저버리진 않았는지 다행스럽게도 아이의 심박수는 정상치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고 난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베드 위에서 내려왔다. 잔뜩 예민해져 있던 신경을 겨우 진정시키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차트를 주워 기록을 해 나아가던 도중, 의도적으로 제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힘에 의해 볼펜이 삐끗하며 흰 종이에 기다란 선을 그었다.
"아,시발."
"말버릇 하고는."
"뭐?"
아니나 다를까. 짙은 향수 냄새를 풍기며 아니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효진이 있었다. 방금 테이블 데스를 하고 온 사람치곤 별 죄책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에 조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차트 다시 작성해야 되잖아."
"내가 지나가는 길에 너가 있었던 건데? 차트야 내 알 바 아니고."
어쩜 마인드가 소아병동 아이들보다 어린 것 같다. 뭐 씹은 표정으로 제 말을 싹싹 받아치는 효진에 응급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물을 부은 듯 싸해지고 말았다.
"말 하는 거에서 수준 보인다. 거슬리게 하지말고 꺼져. 테이블 데스 했다는 년이 말이 많아."
사실만 콕콕 찝어 말하는 저에 얼굴이 잔뜩 붉어져 몸을 떨고 있는 효진이 꼬시기라도 했는지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만 파르르 떨 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는 그녀를 두곤 다시 차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움직이던 펜이 멈춘건 곧바로 이어지는 효진의 말 덕분이었다.
"어차피 내 실수, 그거 집도의가 다 책임져. 난 어시로 들어간거고 이 병원에선 수술도 처음이라 피해 받는 거 없을걸."
뭐가 그리도 자랑스러운지 제 실수를 제 입으로 고하는 효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과 다른 날카로운 시선에 꽤 놀랐는지 흠칫 놀라는 듯 했으나 이내 그 특유의 재수 없는 표정으로 놀란 마음을 감추는 효진이었다.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며 정적이 흘렀을까, 제 시선이 먼저 돌아가고 말았다.
"야, 찬아."
"네."
"당직실 가서 변치프 깨워 와. 이 환자 수술 걔가 집도할거야."
*치프:전공의를 마친 후, 전문의가 되기 전의 의사.
"네?"
"뭐해, 빨리 안 가고."
"네,네!"
원칙대로라면 전문의가 아닌 의사는 집도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일주일 뒤면 전문의 자격증이 나오는 후배였고, 실력도 꽤 괜찮았기에 그에게 환자를 넘기곤 제 시선은 도로 효진에게로 돌아갔다. 뭐냐는 식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자랑이다, 병신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효진의 긴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생긴 테이블 데스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것도, 그 실수로 인해 수많은 징계를 감당해 내야 할 제 애인과 후배들을 생각하니 결국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런 방어도 없던 상태에서 잡아 당겨진 머리 탓에 생각보다 쉽게 끌려오는 효진이었고 조금 가까워지자 그년의 얇은 손이 하나로 묶은 제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하필 하나로 묶고 있던 터라 잡히기 쉬운 형태였다.
"야,시발. 놔라."
"악! 너부터 놔, 개년아!"
"아,좆까! 양심도 없는 년이 말이 많,악!"
여자들의 싸움이란. 그것도 서로에게 악감정을 오래 쌓아온 여자들의 싸움이란. 한 마디로 개싸움이었다.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싸움의 현장은 건장한 남자 여럿이 붙어도 말리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교수님, 진정하세요 좀!"
"아, 놔요. 환자 죽여놓고 저러는게 말이 돼요? 아 좀, 놔봐요."
"교수님 마음 충분히 알겠으니까 조금만 진정하세요, 네?"
"진정하고 안 할게 따로 있지."
저를 붙잡아 진정시키던 남자 의사 둘을 쳐내곤 다시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어째 처음보다 잘 잡히는 게 그 사이에 스킬이라도 생겼나보다. 그 년의 손도 제 머리채를 향해 다가오던 순간 고개를 돌려버린 제 탓에 그 긴 손톱이 제 볼을 스쳐지나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긁었다. 순간 응급실은 또 다시 정적이 찾아왔고 볼을 한번 슥 문대자 제 손에 묻어나온 적지 않은 피에 결국 이성의 끈이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욕을 내뱉으며 한 발짝 다가선 순간, 제 손목을 낚아채는 손길 덕에 커지려던 불씨가 겨우 잦아들었다.
"김교수 응급실에서 뭐합니까. 환자들도 다 있는데."
"..좋은 말로 할 때 놔요. 나 지금 권교수랑 하하호호 할 기분 아니니까."
"나도 그럴 기분 아닌데, 일단 진정 좀 해요. 응?"
어쩜 타이밍도 그렇게 딱 맞는지. 제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던 순간 나타나 끈을 다시 묶어주는 권교수였다. 단호한 눈빛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변해 저를 말리는 그에 머리 끝까지 차있던 화가 점점 수그러드는 듯 했다. 그걸 또 용케 눈치 챈건지 제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병원을 빠져 나가는 그였다.
커피를 사오겠다며 저를 벤치에 앉혀두곤 원내 편의점으로 향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겨울이긴 한건지 제 몸을 에워싸는 냉기에 가운을 여미며 몸을 떨었다.
"마셔요. 아님 손에 쥐고 있든가."
뛰어온건지 숨을 헐떡이며 따뜻한 캔 커피를 제 손에 꼭 쥐어주는 행동에 얼었던 손이 녹듯 잔뜩 가시가 돋혀 있던 마음 또한 조금 수그러드는 듯 했다.
"왜 그렇게 싸웠어요."
참, 저 돌직구는 한결같다. 빙빙 돌리지 않고 싸움의 원인을 물어보는 그였다. 아직까진 온기를 가지고 있는 캔커피를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등학생 때 부터 사이가 안 좋았어요. 걔가 이유도 없이 내 욕 하고 다녔거든요,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냥 공부 좀 하고 선생님들이 자기보다 나를 더 예뻐하니까 맘에 안 들었나봐요. 걔 관심 받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아무튼 걔 거짓말 때문에 난 친구도 많이 없었고."
"..."
대답 없이 제 눈을 바라보는 그에 이미 마음은 거의 다 녹아버린 상태였다.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렇게 까치 뜯고 싸운 이유이니, 살짝 미소를 띄웠다 지우곤 말을 이어나갔다.
"안그래도 그래서 사이가 별로 안 좋았는데, 지 잘못때문에 권교수 수술 테이블 데스 시켜놓고선 뻔뻔하게 책임은 다 권교수가 문다고 하는데."
"응."
"내가 열이 받아요, 안 받아요?"
굳어있던 그의 입꼬리가 점점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뭐가 그리도 웃긴지 이젠 크게 소리까지 내어 웃는 그에 어리둥절하던 제 표정은 더욱 물음표를 달았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음보가 터진 것인지 갈수록 커져가는 의문감이었다. 잔뜩 인상을 쓰며 큭큭대며 웃고 있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려던 순간, 저를 확 안아오는 그의 손길에 질문은 도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 진짜. 왜 이렇게 귀여워요."
"네? 무슨,"
"결론은 그 교수랑 싸운 거에 내 걱정이 제일 컸다는 거 잖아요."
"..인정하긴 싫지만, 네, 뭐. 그렇죠."
정말 말 그대로였다. 제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긴 싫지만 이 싸움의 제일 큰 원인은 그에 대한 걱정이였으니. 연신 귀여워, 귀여워 하며 저를 품에서 꺼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에 꼼지락거리며 그 품을 빠져나가려했다.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아니, 당연한건데-"
꼼지락거리는 걸 느낀건지 저를 살짝 품에서 떼어내 눈을 마주하는 그였다. 이젠 익숙해진 이 눈맞춤이 싫지않았다. 한참을 서로의 눈을 바라봤을까, 무언가가 떠오른건지 눈이 잠시 커졌다 다시 제 크기를 찾는 그였다.
"아, 김교수 애교는 언제 보여줄겁니까?""
"에?"
"몇 시간 전에 카톡 했잖아요. 기억 안나요? 보여줄까?"
"ㅇ,아니요!"
휴대폰을 꺼내려는 그의 손길을 애써 제지했다. 전보다 더 가까워진 거리에 괜히 얼굴이 붉어져 헛기침을 하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는 갑자기 허전해진 품이 어색했는지 바람빠진 웃음을 짓다 제가 떨어진 만큼 또 다시 다가왔다.
"애교 안 해줄거야?"
"..나 지금 아직 화 났거든요? 권교수도 아까 걔처럼 머리채 잡기 전에 좀 떨어져요. 애교는 무슨."
살벌한 이야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능글맞은 표정으로 제 허리를 감싸오는 그였다. 또 애교 이야기가 나올까 봐 이미 다 풀린 화를 도로 끄집어내 이럴 기분 아니라며 그의 손을 떼어냈다. 하지만, 그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제 허리를 감싸는 건 물론 피가 딱딱히 굳은 제 볼을 쓸며 달달한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았다.
감히 예상하건데, 권교수 저 눈빛에 안 넘어올 여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 여자들과 다를 바는 없고. 계속 눈을 바라보고 있다간 정말 제2의 자아가 애교를 내뱉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린 순간, 피가 굳어있던 볼 위로 따스한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뭐해,"
잔뜩 당황해 다시 그를 보려던 순간 제 뒷목을 잡아 깊게 입 맞추는 그에 힘을 주었던 손이 툭하고 그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가로등 아래의 두 남녀의 그림자는 한동안 그 벤치에 머물렀다.
***
"나 떨려요.."
"..."
그러니까 지금 상황을 설명하자면, 지금 권교수와 제가 서있는 이 곳은 원장실 문 앞이라는 것이다. 어제 그렇게 응급실에서 난리를 피웠는데 불려가지 않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불안하다. 밀려오는 두려움에 그의 새끼손가락을 살며시 잡자 제 손을 꽉 잡아오는 그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서려있긴 마찬가지였다.
똑똑-
"들어와요."
나긋나긋한 원장님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아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둘 다 빳빳하게 굳어 문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자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시며 앉으라는 권유를 하시는 원장님에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침대마냥 푹 꺼지는 소파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제 몸은 부동의 자세로 원장님의 이어질 말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권순영 교수."
"네."
"그저께 새벽에 테이블 데스 했다면서요. 인턴들도 안 할 실수로."
"..네, 그렇습니다."
"김ㅇㅇ 교수는 전문의도 아닌 치프한테 수술 집도 맡겨놓고 새로 온 김교수랑 응급실에서 머리채 잡고 싸웠고, 맞죠?"
"..네, 원장님."
"뭘 그렇게 겁을 먹었어요. 혼내려는 거 아니야."
분명 이 쯤에선 큰 소리가 나와야 할 타이밍인데 들려오는 건 여전히 인자하신 원장님의 목소리였다. 저와 권교수 둘 다 의아한 눈빛으로 원장님을 바라보자 미소를 띈 채 이야기하시는 원장님이었다.
"이야기 들어보니까 두 사람 잘못도 아니던데요. 맘 같아선 그 김교수 자르고 싶은데 병원도 계약이란게 있어서요. 거기다 권교수는 그 아이 부모가 화가 많이 나신 상태라 병원 측에서 권교수한테 책임 묻겠다고 말씀 드려놨어요."
"..네."
"징계는 한 달 자격 정진데, 말이 정지지 그냥 휴가 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푹 쉬다 와요. 그 동안 쉴 새 없이 일했잖아요, 두 분 다."
"네?"
"서류 상으론 안 올릴거니까 걱정말고 한 달 동안 쉬다 출근하세요."
이게 무슨 복인가. 징계아닌 징계에 한 달 휴가라니. 그것도 권교수랑 같이. 병원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가져보는 제대로 된 휴가에 권교수를 얼싸 안고 방방 뛸 뻔 할 것을 겨우 참아내곤 원장님께 연신 감사하다며 권교수의 손을 붙잡은 채로 원장실을 빠져나왔다.
"한 달 자격 정지라며?"
넌 씨발 눈치도 없냐. 넌씨눈이라는 말이 아마 저 년에겐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행복에 겨워 그와 손을 맞잡은 채로 원장실을 나온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김교수 덕에 제 입꼬리는 제자리를 찾아 내려갔다.
"어떡해. 기록 남으면 나중에 진급 힘들텐데."
팔짱을 낀 채로 저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랄."
"악! 야!"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그 년의 정강이를 찼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종아리를 붙잡는 효진을 아무 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던 제 허리로 권교수의 팔이 감겼다. 보란듯이 제 머리칼을 넘겨주며 커플 행세를 하는 그에 효진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자기야, 우리 쉬는 동안 여행 갈까?"
"응, 어디로?"
"어디 가고 싶어?"
"글쎄, 자기 가고 싶은 데로 가자-"
아직 우리 안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호칭과 반말로 제 심장을 강타해오는 그에 겨우 정신을 붙잡아 받아칠 수 있었다. 둘을 노려보는 듯한 시선이 진하게 느껴지자 권교수는 제 허리를 감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저를 당겼다. 그리곤 입술이 쪽, 짧게 왔다 간 권교수의 입술에 배시시 웃으며 그의 양 볼을 잡아 여러 번 입을 맞추었다.
"예뻐."
저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효진에게로 돌아가자 순식간에 굳어져버렸다.
"그럼 이만."
저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싸가지가 재충전된 듯 했다. 아무렴 어때, 지금 이렇게 손 붙잡고 있으면 됐지. 눈이 접히게 웃어보이며 그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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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전 봤어요. 독방을요. 신경외과가 순영이 글잡 3대장인가 4대장이라는 글과 댓글들을....세상에...이딴 똥글을...그렇게 봐주시다니..저 정말 그거 캡쳐까지 해놨잖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그리고 낄낄 여러분 전 고구마와 여주가 여리여리 소심소심 그런 거 안 좋아해요 왜냐구요? 제 성격이 겁나 지랄맞거든요..헤헿..사실 이 글의 여주 성격은 제 성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당...욕 잘하고..네...그래요...하하핳 사실 제가 요즘 너무 화나는 일이 많아서 글에서도 싸우게 만들었네요 그래도 막 고구마 포퐉퐉 이것보단 한 편에 사이다 마시는게 좋으시죠?! 그나저나 오늘 글 다시 읽어보니까 참 뭐 같네요 다 갈아 엎을까 고민을 들게 만들어요...다음편엔 여행 갑니당헤헿 그럼 안뇽!!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