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은 물끄러미 횡설수설하는 여주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칠라 하면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피하는 그녀를 보며 석진은 본능적으로 여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모르는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주가 기껏 제 생각을 하며 해주고 있을 얘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석진은 다정한 시선으로 계속해 여주를 바라보았다.
다만, 여주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다 이내는 흐느낌으로 바뀌는 걸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안아주고 싶다.
저도 모르게 한 생각이었다. 생각을 미처 다 하기도 전에 이미 여주를 향해 뻗어진 제 팔에 석진은 놀라면서도
침대에 웅크리고 앉은 여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제품에 쏙 들어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뚝."
여주는 석진의 품에 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애꿎은 눈물을 원망했다.
왜 지금 울어버려서는.
너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고 마는 걸까.
조금만 참았으면 좋았을걸.
그러는 와중에도 어린애 달래듯 저를 그렇게 조심스럽게 안은 석진이 고마워서
여주는 한참 뒤에야 코가 빨개진 채로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마워. 이건 그냥, 옛날이 너무 그리워서, 그래서 그래.”
끝까지 솔직하지 못한 여주를 향해 석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처 닦지 못한 눈물을 마저 제 손으로 닦아주었다.
“울지 마.”
제 손이 볼에 닿자 놀란 얼굴로 저를 보는 여주의 얼굴에 손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황급히 손을 뗀 석진이 손을 등 뒤로 감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제보다 조금 더 또렷해진 제 감정에 귀 기울였다.
너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싶은 건, 아마도.
여주는 볼에 불이 났다는 착각을 했다. 석진의 손이 볼에 닿자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저와 눈이 마주치고 황급히 손을 내리고 고개 숙인 그의 모습에 방 안의 분위기가 붙잡을 새도 없이 어색하고 간지러워졌다.
어색한 기류를 온 몸으로 맞던 여주가 일부러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내 이야기는 왜 궁금해졌어?”
“어?”
“여태껏 궁금해 하지 않았잖아.”
“아- 글쎄….”
석진의 여주의 말에 동의했다. 맞는 말이었다.
여주의 도우미로, 매일같이 그녀를 보러 병원에 출석 도장을 찍은 지 벌써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여태껏 한 번도 그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궁금증이 피어났을까.
“뭐야, 대답이 뭐 그래.”
“음….”
의문이 가득한 석진의 말투에 여주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답했다.
그는 투덜이 담겨있는 그녀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봤다. 보통 사람보다 핼쑥한 얼굴이지만 그들보다 예쁜 얼굴이었다.
눈에 힘을 주어 저를 밉지 않게 노려보는 눈꼬리가, 불만을 토로하는 툭 튀어나온 입술이,
세게 콧김을 뿜는 앙증맞은 코가 부시도록 예쁘게 눈에 박혀 들어왔다.
“그냥.”
“그냥?”
“네가 들어와서.”
“뭐?”
“갑자기 들어와서, 궁금해 졌나봐.”
“…지금 우리 대화하는 거 맞지?”
서로 말은 하고 있는데 이어지지 않는 듯한 대화에 여주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묻자 석진이 말없이 웃었다.
두툼한 입술이 예쁘게 끌어올려지는 모습에 그녀는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따라 웃을 뿐이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해가 밝았다. 밝은 햇살은 병실 곳곳에 닿아 따뜻함으로 변했고 따뜻함은 곧 병실의 분위기를 데웠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장면이었다. 여주는 석진의 옆으로 비추는 햇살을 보며 번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왜 웃어?”
“그럼 넌 왜 웃는데?”
“네가 웃긴 말해서.”
“내가 언제 웃긴 말을 했어.”
“대화하고 있는데 대화하는 거 맞냐고 물었잖아. 그게 웃긴 말이지.”
“웃긴 말도 많다.”
석진은 여주가 쓸쓸해 보인다고 느꼈다. 저를 보며 웃고 있음에도 웃음이 쓸쓸해 보여 그는 천천히 웃음을 거두고 그녀를 불렀다.
석진의 말에 반응한 여주의 눈이 그의 눈과 맞닿았다. 맞닿는 눈동자에 석진은 일순 공기가 멈췄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번 여주가 마음에 들어오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편한 일임이 틀림없음에도 모순되게 떨리는 심장에 석진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감정을 누르고 눌렀다.
“뭘 그렇게 쳐다 봐?”
“…안 봤는데?”
“뚫어져라 보는 눈이나 돌리고 말할래?”
여주는 아까부터 저를 빤히 보는 석진의 눈 때문에 몸의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던 눈동자가 갑자기 울렁이는 것을 보니 더 이상 그의 눈을 받아줄 수가 없어졌다.
놀리는 말투로 말을 꺼내자 그제야 울렁이던 석진의 눈이 잔잔해졌다. 하지만 여주에게 꽂힌 시선은 그대로였다.
가기 전까지 계속해 시선을 맞출 것 같은 모습에 그녀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무 예쁜가봐?”
“응?”
“너무 예뻐서 눈을 떼기가 힘드나?”
“….”
예쁘다는 단어에서는 일부러 예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더니 석진이 답이 없었다.
하라는 대답은 하지 않고 저를 빤히 보기만 하는 행동에 머쓱해진 여주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이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네가 하고 부끄러워 해.”
“부끄러운 말이었으니까!”
“예뻐, 너.”
“…어?”
“너, 예쁘다고.”
“…하지 마라!”
석진이 여주를 보며 말했다. 세상 온기는 다 가진 듯한 눈동자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전해오는 말에
그녀는 온 몸의 피가 얼굴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터질 듯이 빨개진 얼굴에 그가 작게 웃는 모습을 보고 뭔가 당했다는 기분에 여주가 크지 않게 소리치자 석진이 얄밉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그를 보고 있자니 여주는
문득 자신은 이루지 못할 미래, 석진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있잖아.”
“응.”
“넌 신혼 때 뭐할 거야?”
“갑자기 웬 신혼?”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신혼? 신혼….”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기도 하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물어오는 여주에 석진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충 막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려 노력해도 뭐하나 떠오르지 않는 그림에 끙끙 앓는 소리만 나오자
여주가 손을 흔들며 됐다는 표현을 해왔다.
“반장. 너 참 로망이 없구나?”
“그러는 넌 있어?”
“나…? 나 있지.”
“있어? 뭔데?”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석진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묻자 여주가 그가 했던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새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
“그냥, 음, 진짜 그냥.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매일 밤 잠들고 매일 아침 일어나는. 뭐 그런 로망이 있지. 있었지.”
이제는 이루지 못할 불쌍한 나의 로망. 말을 끝내고 여주는 웃었다. 사람의 슬픈 미소는 볼 일이 드물다.
하지만 석진은 그녀를 만나고부터 기쁜 미소보다 슬픈 미소를 더 많이 본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그 흔한 미소만으로도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울고 싶으면서 울지 않는 미련함에 석진은 보이지 않는 입 안을 깨물었다.
“내가 해줄게.”
“…뭘?”
“네 로망. 내가 이뤄줄게.”
억지로, 네가 불쌍해서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내가 불쌍해서 하겠다고 하는 거니까.
넌 그냥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그래. 라고 말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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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이즈굿 오랜만이져?8ㅅ8....
미아내여...침벌레가 베짱이라서 그래여..끼잉
항상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당'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