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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럼와줘요 전체글ll조회 456l 3






[ 우리 딸, 오늘도 학교 조심히 잘 갔다와 ]



" .....네. 다녀, 오겠습니다. "



나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천천히 말하는 엄마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더듬더듬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섰다.
오늘도 역시 세상은 변한게 없다. 늘상 같은, 평범한 하루.



어제 떠있던 구름은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떠있고, 도로 위는 언제나처럼 차와 버스들로 북적인다.
나는 어제 걷던 길을 그대로 다시 걷고 있으며 여전히 학교에  간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 절로 웃음이 났다.
난 지금 뭘 위해서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고 있는거지?



" 아!!! "


무의미하게 대답없는 물음을 계속해서 떠올리던 와중 누군가 뒤에서 나를 옆으로 세게 밀쳐냈다. 바닥으로 밀리면서 쓸린 팔꿈치가 아려왔지만 신경 쓸 새도 없이 재빨리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확인했다.


[ 아니 학생 죽고싶어 환장했어????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 나는거 안들렸냐고!!!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다녀!! ]



...오토바이..소리? 아, 그제서야 나에게 소리를 치고 있는 아저씨 옆에 쓰러져있는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왔다. 흥분한건지 인상을 쓰곤 빠르게 말을 뱉어내는 아저씨에 결국 알아듣는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그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다시 몰고 간 후, 나는 조용히 일어나 흙이 묻은 치마를 털어냈다. 아으, 아파라. 상처는 이따 보건실 가서 치료해야 겠다. 근데 지금 몇시,


망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간거야!!!



학교 정문을 정말 아슬아슬 하게 통과했다. 평소 체력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던지라 힘겹게 숨을 몰아내쉬며 반으로 들어갔다. 수업시간 시작 직전이라 그런지 자리에 앉아있던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그런 시선들에 잠깐 움츠러들었다 이내 선생님께 죄송하다며 인사를 드리곤 제일 구석에 있는 내 자리에 앉아 고개를 팔에 파묻고 엎드렸다. 나만 보면 수근거리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아이들의 눈빛이 싫었던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내가 들을수 없는 그 수근거림이 아팠다.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의 세상이 되어주세요 01






선천적인 장애는 아니었고, 순전히 후천적인 영향 때문이었다. 물론 어떤 사고가 있었던건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어린아이였을 뿐이다.


청력 저하. 8살짜리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처음 귀가 점점 잘 들리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던 날, 펑펑 울며 엄마에게 달려갔었다. 엄마, 나 귀가 안들리는것 같아요. 나 좀 살려주세요. 그 사랑스럽고도 가여운 아이가 하는 말에 엄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를 토닥이며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맡은 후, 병원을 나서는 길에 엄마는 조용히 날 끌어안으며 뚝뚝 눈물을 흘리셨다. 혹여나 자신의 아이가 자신이 우는것을 알고 무서워할까봐, 앞으로를 두려워할까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꾹꾹 울음을 가슴깊이 눌러담으면서 그렇게 엄마는 나의 아픔을 짊어지셨다. 그리곤 조용히 나에게 속삭이셨다. 괜찮아. 다 괜찮아 아가. 엄마가 꼭 낫게 해줄게. 꼭 낫게 해줄테니까 걱정하지마.



그날 이후로 엄마는 여러가지 한약재를 써보기도 하고, 외국에서 비싸게 수입해온 약을 사오기도 했다. 물론 병원에서의 치료도 꾸준히 받았다. 그 상태가 1년정도 지속되었을까, 여전히 나의 상태는 낫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었다. 보청기를 껴봐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나의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 밤새 일하러 나가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나의 병원비에 전부 쏟아부었다. 아빠도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돈을 빌리며 나의 치료에만 애를 썼다.



9살의 나는 알았다. 내 병을 고치지 못할것이라는걸. 그리고 엄마아빠도 그걸 잘 알고계실거라는걸.


결국 우리집이 파산하기 직전까지 다다르자 나는 부모님께 말을 꺼냈다. 엄마, 아빠. 저는 괜찮아요. 저는 씩씩하니까 제힘으로 이겨낼수 있어요. 더이상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미 충분해요 저는.


싱긋 웃으면서 말을 하는 나에 평생 울지 않으시던 아빠는 나에게 등을 보이며 흐느껴 울었고 엄마는 나를 끌어안아 연신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위해 나약함을 숨기고 계시던 분들. 그렇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아져야 했다. 아프지 말아야 했다. 부서진 내 세상을, 악착같이 끌어안고 있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치료를 중단하고 엄마와 함께 사람의 입모양을 읽는연습만 수천번을 했다. 너는 잘못한거 없으니까, 무시받고 살면 안된다고 말씀하신 엄마는 내가 다른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다.



가끔은 원망스러운 생각이 든다. 아니 사실 자주 든다. 왜 많은 사람들중에 하필이면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건지. 나는 잘못한 일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던 작은 소녀일 뿐이었는데, 나에게 이렇게 무거운 짐을 줬어야 하는지, 신을 탓한적도 많고, 세상을 증오하기도 했다. 그건 아직까지도 유효하긴 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는 수업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칠판에 필기해주시는 내용을 받아적고, 선생님께 쉬는시간에 교과서를 가지고 가서 중요하다고 알려주신 부분들을 체크했다.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에, 두배로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쁘게 7교시를 지내고 나니 벌써 하교할 시간이 다가와 느릿하게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반 아이들이 다 나가고 나서야 내 가방을 챙겨 텅 빈 교실에서 나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와 교문을 지나고 나니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아침과 같다. 이질감이 든다. 이 세상 모든 소리들이 조화롭게 섞여있는 이 사회속에서, 나만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나의 세상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우습게도 나를 제외한 모두의 세상에는 소리가 있다. 내가 지나가는 곳에만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 자꾸 이런 생각 하면 안되는데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밖에 안하게 된다. 눈물이 떨어질것 같아 푹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바라보며 걸었다. 집에라도 얼른 가야 기분이 좀 나아질것 같았다.
그렇게 평소보다 두배는 더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을 건넸다.

 


[워너원/박지훈] 나의 세상이 되어주세요 01 | 인스티즈

" 저기... 이거 떨어뜨리셨는데, "


ㅈ,잠깐만. 지금 말이 들렸는ㄷ,



삐익-



귀에서 듣기 싫은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약 10년만에 들린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나가던 자동차 소리,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세상 모든 소리들이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 ...저기요? 이거 손수건, 학생꺼 아니에요? "



아직까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던 남자는 멍하니 눈물이 고인채로 허공만을 응시하는 나에 난처한듯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한번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아- 맞다. 정신이 없어서 생각치 못했다. 남자의 손에 들린 손수건은 분명 내것이었다.


' 감사, 합니다. "


덜덜 떨며 남자에게 손수건을 건네받으며 결국 참고있던 울음을 왈칵 쏟았다. 몇년만에 들어보는 나의 목소리였다. 상상만으로만 그려왔던 소리들이, 현실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그런 나를 보며 어쩔줄 몰라하다 조용히 나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준 후 슬쩍 고개로 인사를 건넨 후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의 뒷모습을 쫒던 나는 그대로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있을수가 없었다. 허망함이 내 몸을 감싸고 심장을 파고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던 세상이, 다시 전부 흑백이 되어버렸다. 그 남자가 나에게서 멀어지자 세상은 보란듯이 나에게서 소리를 앗아갔다.


그럼 방금전 그건 대체 뭐였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건데? 사람을 얼마나 더, 비참하게 만들 생각인건데.


시멘트 바닥으로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져 바닥이 얼룩으로 물들어갔다. 일어날 생각도 없이 그 상태로 정지해있는데 바닥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날 향해 내밀어지는 손 하나.


[워너원/박지훈] 나의 세상이 되어주세요 01 | 인스티즈
[ 우는게 눈에 밟혀서. 갈수가 없네. 일어날수 있겠어요? ]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아까 그 남자였다.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파도처럼 몰아쳐오는 소리들.




[워너원/박지훈] 나의 세상이 되어주세요 01 | 인스티즈
" 사실 지금 다른 회사랑 미팅 끝내고 다시 회사 들어가는 길이라 얼른 가봐야 하는데, 그 전에 학생부터 집에 데려다 줘야 할것 같네요. 집이 어디에요? "



다정하게 나의 손을 커다란 손으로 감싸안으며 건네는 말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족 이외의 따스함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 몸을 마음대로 제어할수가 없었다. 머리속이 어지러워 생각조차 제대로 할수 없었다.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대꾸도 차마 하지 못한채 품으로 파고들었다. 갑자기 안겨오는 나에 당황했는지 잠깐 멈칫하던 그가 이내 내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이며 나를 감싸안았다.





19살의 봄, 나는 잃었던 내 세상을 만났다.











-

분위기가 약간은 무거울수도 있어요!

저는 댓글을 아주 좋아합니다 피드백 칭찬 사랑 다 환영해요( 욕설 제외ㅎㅎ)

 댓글 많으면 일찍 오도록 노력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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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1.128
와...글 분위기 정말 너무 그냥 대박이네요.. 이런 글 정말 너무 감사해요ㅜㅜㅜ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6년 전
독자1
헐ㅠㅠ 너무 재밌어요 진짜..... 여주 부모님 얘기나오면서 '나를 위해 나약함을 숨기고 계시던 분들' 나오던 부분에서 너무 슬펐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재밋어요ㅜㅜㅜㅠ 다음편 기대할게요ㅜㅜ
6년 전
비회원222.132
홀 대박ㅠㅠ소재 완전 애틋하고 너무 좋아요ㅠㅠ그나저나 여주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ㅠㅠㅠ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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