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집을 가고 있는 중이었음. 별시덥지않은 소리로 아침부터 사람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 (상사라 쓰고 또라이라 읽는) 강부장의 말에 마음 속으로 오늘도 참을 인자를 그리며 월급날을 손으로 세면서 가고 있는 중이었음. 골목길 모퉁이만 돌면 바로 집 앞에 다다르는데 어디선가 강아지가 끼잉ㅡ하며 앓는 소리가 들려왔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바로 우리 집앞 골목길 구석에 상자와 함께 잘 키워주세요. 라는 문구와 함께 털이 하얀 강아지 한마리가 있었음. 생각할 겨를없이 냅다 강아지가 있는 쪽으로 달려온 나는 상자에서 누군가가 꺼내주기를 바라고 있는 강아지를 품에 안아 한참을 그 자리에 꼬옥 안은 채로 서있었던 것 같음.
어떻게 새 집으로 들어온 강아지는 아직 아가여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듯 방에 내려놓았을 때도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음. 내가 집으로 데려오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비를 맞았던 건지 털이 살짝 젖은 상태인 강아지를 조심히 품에 안아들고 수건으로 닦아주자 그제야 안심한 듯 제 품에서 몸을 웅크린 강아지를 침대에 내려놓았음. 이불이 폭신해서 그런가, 금방 잠이 들려는 강아지를 침대 밑에서 턱을 괴고 이름은 뭘로 할지 한참 고민했던 것 같음. 순둥 순둥하고 털이 하얘서 무슨 이름이 어울릴까 생각하던 중에 고민 끝에 결정한 이름을 생각하며 나도 옆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음.
"재환아, 잘 자."
* *
미친. 몇 시야, 지금이. 난 그렇게 재환이 옆에서 잠들었던 것도 기억이 안날 정도로 꿀잠을 자버렸음.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부랴부랴 확인하는데 출근 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음. 지금 준비한다고 해야 대충 머리 손질이랑 옷만 갈아입고 나가도 회사까지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음. 갑자기 여러가지를 생각하니까
사람이 의욕도 없어지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짐. 왜 망했다고 생각이 들면 사람이 무기력해지고...뭐, 그런 거. 귀찮아, 하며 이왕 늦은 거 조금만 더 늦게 가자란 생각으로(?)
핸드폰은 그래도 양심이 있어 손에 꼭 쥔 채로 침대 끝에 대강 머리만 올려놓고 있었음. 근데 어디선가 제 팔을 콕콕 찌르는 낯선 사람의 손길이 느껴짐. 그 때부터 심장이 나대기 시작함. 쿵쾅쿵쾅. 헐 설마, 나 문 안 잠갔나? 치한? 이대로 잡혀가는 건가? 잡혀가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야, 다음날 신문에 내 이름이 실릴 지도...엄마, 아빠...
마지막 생각까지 마치자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초스피드로 고개를 땅에 박고 손을 모았음. 제발... ...살려주세요...목숨만...
고개를 들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천천히 고개를 들자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진짜가 맞았구나, 나 이대로 잡혀가는 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퐁퐁 쏟아져나왔음. 나 진짜 착하게 살았는데. 열심히 내 돈으로 먹고 살아왔는데... ...이름도 모를 남자 앞에서 꺼이꺼이 울어가며 눈가를 벅벅 소매로 문지르는데 별안간 끌어당겨지는 어깨에
남자의 품에 폭 안긴 모습이 되어버렸음. 원래 이렇게 치한이 따스했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순간적으로 닿은 맨살의 체온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가렸던 것 같음. 눈을 가린 상태로 집에 있는 곳곳을 손으로 되짚어가며 대충 이쯤에 옷장이 있었을텐데...하며 제일 큰 사이즈의 맨투맨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를 찾아 남자에게 건냈던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