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저씨! 하,흐.. 힘들다..나 그거, 그.., 뭐더라..“
“ 핫 초코 타 달라고?”
“ 네! 핫 초코!”
학교 끝나자마자 달려왔는지 남색의 교복을 입고 숨을 헥헥 거리며 고르고 있는 경이 귀여웠다. 경이가 주문하는 아니, 달라고 이야기하는 메뉴가 핫 초코인 것 까지 너무나 귀여워 먼저 받은 주문들을 제쳐두곤 핫 초코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항상 앉던 카페 구석 즈음에 자리한 경이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곧 나올 핫 초코를 기대 하는 건지 둘 중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얼굴에 띠우고 있었다. 말간 얼굴에 큰 눈,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입술. 둥그스름한 코. 모두 하나가 되어 잔뜩 꼬리를 휘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웃는 경이에게 핫 초코가 담긴 파스텔 톤의 분홍색 컵을 가져다주니 다가오는 것을 몰랐는지 꼬리를 잔뜩 휘고 있던 눈을 동그랗게 나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살짝 볼을 꼬집으니 곧 바로 입술이 삐죽 나와서는 아파요, 아저씨. 라며 투정을 부리는 경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는 퇴근하기 전 까지 기다리라는 조금 가혹한 말을 전하고는 카운터로 다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에 꿍얼거리는 경이의 작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 듯싶었지만 뒤 돌아보지는 않고 작은 소리로 살짝 웃었다.
*
아저씨가 가져다준 핫 초코를 입에 머금곤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저절로 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저씨도 보면 좋을 텐데. 창밖을 바라보던 고개를 카운터 쪽으로 돌리니 알바 생으로 보이는 듯 한 여자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저씨가 보인다. 치, 딱 아저씨의 이상형인 여자인 것을 보니 아저씨가 며칠 전에 직접 뽑았다던 알바 생인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질투의 새싹을 애써 짓밟아보려고 핸드폰을 들고는 지훈이에게 카카오 톡을 보내니 곧바로 오는 답장에 질투의 새싹이 짓밟혔다. 다른 남자로 밟는 것은 잘못하는 거라고 아저씨가 이야기했지만, 아저씨가 다른 여자로 만들어낸 새싹이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합리화를 시키고는 지훈이와 카카오 톡을 이어갔다.
깜짝이야. 정수리를 살짝 치는 손길에 놀라 위를 바라보니 아저씨다. 심통 난 표정으로 내 핸드폰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아저씨.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니 내 머리를 잔뜩 헝크러뜨린다. 못됐어. 아저씨는 여자 알바 생이랑 친근하게 이야기도 하고서는. 입술을 살짝 열곤 혀를 내밀었다. 메롱-.
“ 누구야?”
“ 지훈이.”
“ 그 목소리 괴물 같던 남자애?”
“ 목소리 괴물 아니거든. 아저씨보다 백배는 더 멋있어”
“ ...뭐가 마음에 안 들길래 이렇게 심통이 났어.”
삐죽 내민 입술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당기며 말을 하자 뒤로 내뺏더니 다시금 잡아당긴다. 고개를 여러 번 저으니 그제 서야 놓아주곤 피식 웃는다. 미워, 진짜. 몇 분 동안 서있던 아저씨는 내 앞의 의자를 빼서 안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아직은 심통난거 안 풀렸어. 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으니 아저씨가 핸드폰을 낚아채갔다.
“ 뭐라고 이야기 했나보...,지후나. 나 심시매..?”
“ 오,왜.. 남의 핸드폰 뺏어요. 빨리 줘요!”
“ 아저씨보다 네가 더 좋아. 아저씨 완전 미워? 박경, 혼난다?”
“ 그, 그냥 한 말이에요! 빨리 핸드폰 줘요.”
“ 뭐에 삐져서 그래. 아저씨 속상하게.”
“ ......몰라요.”
“ 자꾸 그럼 아저씨 진짜 화낸다? 아저씨 이 카톡 대화로도 충분히 화났는데.”
“ .....아저씨가..알바랑..아, 씨.”
“ 알바랑 뭐?”
“ ....자꾸 막 웃으면서 이야기..몰라요!”
“ ..뭐? 알바 생이랑 이야기해서 삐진 거야? 경이 속 좁다.”
“ ....핸드폰이나 줘요.”
또 다시 나오는 속을 긁는 말에 재빨리 아저씨 손의 핸드폰을 낚아채서 주머니에 넣었다. 흥, 내 마음도 모르고. 나쁜 아저씨. 조용히 속으로 욕을 삼키곤 옆 의자에서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내가 일어서는 모습에 아저씨는 당황한 건지, 막을 생각이 없는 건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다. 내가 다시는 오나봐라. 가방을 메곤 일부러 쿵쿵거리며 카페를 나와서 조금 걷다가 카페 쪽을 바라보니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린 아저씨가 달려온다. 이미 버스는 떠나갔네요.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앞을 바라보고 다시 빠르게 걸었다.
*
저 멀리 달아나는 경이를 보며 달려갔다. 진짜 귀엽다니까. 그 카톡 내용은 화가 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질투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조그만해서 질투도 귀엽게 하는구나. 짧은 다리로 걷는 경이에게 빠르게 달려가 손을 잡고는 바라보니 입술이 잔뜩 나와 있다. 동그랗던 눈도 쪽 째지고. 그 모습조차도 너무나 귀여워서 경이를 꼭 끌어안았다. 거리에서 뭐하는 짓이냐며 아프지 않게 어깨를 쳐대는 경이를 더 세게 안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 네가 제일 좋아. 경아.”
경이의 귀 끝이 점점 빨개지는 것을 느끼며 품 안에서 경이를 꺼내고는 다시 카페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불퉁히 나와서 카페에 가면 핫 초코를 한 잔 더 달라고 말하는 경이의 입술에 입술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다. 곧 있으면 카페 문 닫을 시간이니까.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