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의 모진 협박과 갈굼에도 불구하고 경이는 결국 편의점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사회는 정말 만만한 게 아니었는지 편의점 알바나 식당 알바를 제외하면 제가 할 것이 없었다. 회사에 입사해보려고 했지만 나이도 어리고 헉 소리 나는 스펙을 지니고 있는 사회의 새내기들을 제가 이길 리가 없었다. 준비할 시간도 너무 오래 들어 일찍감치 회사에 입사하려는 생각은 접었다. 아니, 25살이면 아직 한창인데 쓸모없게 느껴지도록 만들어버리다니, 이 빌어먹을 사회가 잘못했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잘조잘 떠들며 들어오는 여고생들에게 경이는 어서 오라고 인사를 했지만 여자애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인사는 금방 묻혔다. 경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멍하니 다시 앞을 주시했다. 그래, 어렵게 잡은 알바인 만큼 열심히 하자. 조금 심심한 게 흠이지만. 여자애들이 삼각 김밥과 음료수를 잔뜩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먹으면 살찔 텐데, 그런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며 경이는 묵묵히 바코드를 찍었고 4200원입니다, 라고 여자애들에게 말해줬다.
10시 반의 편의점은 너무나도 한적하다. 야간까지 하면 페이를 더 준다는 말에 우지호가 팔짝 뛰든 말든 무시하고 9시에 나와 새벽 2시까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는데, 저는 사람들이 많아서 페이가 더 많은 줄 알았다. 저녁에 의외로 편의점을 찾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벌써 일주일 동안 새벽까지 온 사람은 죄다 취객일 뿐이었고 그것도 아주 소수였다. 그저 시간 죽이러 오는 것 같았다. 알바가 아니라.
“허.”
그렇게 다른 잡념에 빠져있는데 아까부터 계속 진동하는 핸드폰이 몹시 거슬렸다. 경이는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집어 들어 우지호가 보낸 카톡을 확인했다. 20개나 와 있다. 엷게 두통이 밀려왔다.
알바부터 반대했던 우지호가, 그것도 야간 알바하려는 저를 얼마나 뜯어말렸는지. 정말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노트북을 제 앞에 들고 와 편의점에서 일어난 각종 사고를 보여주며 겁을 주는데 사실 야간 알바가 위험하다고는 경이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 묻지 마 살인도 요즘 많이 일어나고 사이코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대한민국에서 저녁이 얼마나 무서운지, 물론 제가 남자여도 말이다. 게다가 체구가 왜소한 저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편의점 알바를 할지 말지 고민을 했지만 우지호의 뜻대로 알바를 그만두기는 싫어서 경이는 모든 불안함을 무시하고 야간 알바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우지호와 긴 전쟁을 치렀다.
우여곡절 끝에 경이가 지호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전혀 안 그럴 것 같았던 우지호가 제가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뒤로 안절부절못하며 시도 때도 없이 문자나 카톡, 전화를 하지 않나 집에 들어오면 저를 꼭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러니깐 있을 때 잘해야지. 그렇게 말했어도 경이는 다시 지호가 저에게 목을 걸고 저 없으면 안 된다는 듯이 구는 모습이 지호의 사랑을 확인받는 거 같아 내심 알바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왜 또.”
― 뭔 일 없어? 술 취한 아저씨가 너한테 막 뭐라고 안 그래? 혹시 껄떡대는 놈 있냐?
“없으니깐 제발 좀…….”
아무리 생각해도 우지호는 음악PD뿐만 아니라 소설가 쪽으로도 한 번 나가봐야 할 것 같다. 취객은커녕 사람 한 명 없어 심심해 죽겠는데, 무슨. 경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 없어서 심심해 죽겠어. 너 일 안 해?”
― 곧 다시 녹음 들어가. 아씨, 불안해 죽겠다니까. 너 알바 그만두라고, 내가 잘못했어.
“너 알바 그만두라는 소리 오늘만 세 번 한 거 알아?”
― ……나 같으면 정성이 갸륵해서라고 그만두겠다.
“내가 너는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 월급도 못 받았거든?”
― 요즘 월급 다달이 안 주는 악덕 사장이 얼마나 많은데, 혹시 모르니깐…….
“됐다, 됐어.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끊어!”
― 아 왜, 나 아직 녹음 안 들어갔단 말이야.
“시끄러, 손님 오셨어.”
― 야, 너는 손님이 더 중요하냐?
응, 하고 경이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는 얼굴이 빨간 중년의 남자를 보고 조금씩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취객한테 잘못 걸리면 끔찍한 것을 이미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닌 경이는 취객을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취객은 비틀거리며 걷더니 여러 차례 편의점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한쪽에 진열되어있는 빵을 손에 한가득 쥐어 오더니 계산대에다가 내려놓았다. 술 냄새가 확 밀려왔다. 경이는 저절로 구겨지려는 인상을 간신히 피고 차분하게 바코드를 찍고 값을 불러주었다. 하지만 투박한 손길로 주머니에서 꺼낸 돈은 빵을 사기엔 조금 부족한 돈이었다.
“에, 시발.”
벌써 세 번은 주머니를 뒤져 헐렁한 주머니를 계속 만지작거리던 남자는 급기야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냅다 집어 던졌다.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바닥에 부딪혀 액정이 나간 핸드폰을 보고 경이는 땀을 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불안함이 발끝에서부터 점점 밀려왔다.
“저, 손님 진정하세요.”
경이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까지 말했지만 남자는 돈이 되지 않자 신경질이 났던 건지 계산대 올려놓았던 자신의 돈을 핸드폰처럼 아무 대다가 던져버리고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취객은 처음인데. 당황한 경이의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내일 다시 올게! 내가, 내일 와서 기필코, 갚을 거니까!”
“손님 외상은 안돼요…….”
내일 갚는다는 말을 하고 빵을 집어 가져가려는 남자의 팔뚝을 황급히 부여잡으면서 경이는 소심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경이의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남자를 피하고자 빵을 가지고 사라져 달라 하고 싶었지만 그런다면 CCTV를 보고 저를 단숨에 잘라버릴 사장을 알기에 경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남자를 계속 저지했다. 남자의 언성이 점점 더 높아져만 갔고 경이의 식은땀은 계속 쉬지 않고 흐르는 듯했다.
“개새끼야, 너 내가 돈 없을 줄 알고 이러는 거지?”
“아뇨, 손님 그게 아니라…….”
“시발, 내가 네 아버지뻘이야. 어디서 위아래도 없어?!”
“손님, 그거랑 이거는 별개잖아요,……제발 진정을 하시고.”
딸랑, 하고 말게 울리는 종소리에 취객과 경이의 눈이 유리문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말쑥한 정장을 빼입고 경이 또래로 보이는 사내가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취객이 한 명 더 들어올까 봐 순간 겁을 먹었던 경이는 한숨을 내쉬고 사내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려 했지만 사내는 저에게 눈길 한번 안 주고 무엇을 고르려는 지 바로 진열대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젠장. 경이는 다시 만면에 어색한 웃음을 띠고 어서 취객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온갖 노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손님 다음에 와서 계산하는 게 - .”
“너 나 없다고 무시해? 시발, 더러워서. 안 사 먹어!”
하고 계산대에 올려져 있던 빵들을 다 집어 던지기 시작하는 데 어째 일이 더 커지는 것만 같다. 경이가 말릴 틈도 없이 모든 빵을 다 던져버리고 남자는 화가 더 나기 시작했는지 어깨를 위아래로 크게 들썩이더니 고래고래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진열대에 올려져 있는 다른 상품들도 막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경이가 기겁하며 계산대에서 나와 남자의 팔을 부여잡았지만 남자는 무서운 힘으로 경이를 밀어냈다. 경이는 엎어지려다가 말고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경이의 얼굴이 점점 울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깜박 잊고 있었던 존재의 젊은 사내와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경이는 도와달라는 표시로 눈꼬리를 한껏 내려트렸다.
“이 좆같은 세상, 돈이 없으면 뭐 어떻다고 날 이렇게 좆같이 만드는 건데! 시발, 이럴 바엔 다 뒤지는 게 더 나아!”
갈수록 남자의 말은 점점 험악해지고 드디어 보다 못했는지 정장을 입은 사내가 취객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경이도 얼른 취객에게 다시 다가가 자제하라며 팔뚝을 잡았다.
“그만 하시죠, 이 물건들 다 물어내실 겁니까?”
“넌 또 뭐야, 아하……꼬락서니 좀 보아하니 잘사는 놈 같은데, 왜 내가 더럽냐? 더러워?”
“아저씨, 제발 진정하세요!”
경이가 애원 복걸을 해봐도 이미 남자는 젊은 사내에게 온 집중이되 있는듯했다. 날파리를 쫓듯 저를 밀어내는 손길에 경이는 정말로 지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호를 만난 후로 이렇게 보고 싶었던 적도 없을 거다. 젊은 사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혐오와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말을 하는 취객은 어느덧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 불만을 젊은 남자에게로 다 돌린 듯했다.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경이도 땀을 삐질 흘리며 핸드폰을 들어 취객의 눈치를 살피고 얼른 112를 눌렀다.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냐고 경찰이 물어왔지만 크게 소리 내면 제가 어떤 화를 당할지 몰라 경이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편의점 주소를 대고 얼른 와달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수화기 너머로 경찰이 묻는데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경이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난 곳이자 취객과 남자가 서 있는 곳으로 시선을 던져다. 둘의 상황을 보자마자 입이 밑으로 떡하니 벌려졌다. 정말 제대로 미친 건지 취객은 옆에 있던 와인 병을 들고 진열대에 내리친 다음 흉기로 만들어 젊은 남자에게 들이밀고 있었다. 경이는 여보세요? 대답하세요? 라고 외치는 경찰의 말을 무시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황급히 취객에게 다가가다가 멈칫했다. 제가 잘못 끼어들었다가 더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을까 싶어 경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젊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대치 상황은 몇 분째 이어졌다. 편의점 안에 있는 세 명은 그 짧은 몇 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긴장으로 인해 땀이 나기 시작했다. 위협당하고 있는 남자도 그래 보였다. 이내 취객이 죽으라는 말과 함께 젊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경이는 기겁하며 취객에게 다가가 취객을 옆으로 밀었다.
“으억!!”
경이의 손짓으로 인하여 복부로 향하던 뾰족한 와인 병이 불행 중 다행으로 팔을 찌르고 떨어져 나갔다. 젊은 남자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잠시 비틀거렸고 남자의 정장은 축축하게 젖어가 색이 진해지기 시작했다. 이내 정장 소매에서 삐죽 튀어나온 하얀 손을 타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헉, 내, 내가!”
남자의 피를 보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취객은 벌벌 떨었다. 그리고 황급하게 제 뒤에 있던 경이를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경이는 일단 이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할 틈도 없이 취객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취객을 따라 뛰쳐나갔다. 중년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남자는 재빠르게 달려 점점 경이와의 격차를 크게 벌려나갔다. 결국 경이는 중년을 놓치고야 말았다.
“허억, 허억.”
죽어라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취객을 잡지 못한 저의 무능력한 다리를 잠시 원망한 경이는 다시 천천히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다가 제가 부상당한 젊은 사내를 그대로 놓고 왔다는 생각에 얼른 다시 뛰기 시작했다. 무슨 영화에서나 보던 게, 지금 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 머리가 다 아파왔다.
“괜찮아요?!”
계산대에 기대 주저앉아있는 남자의 상태는 몹시 안 좋아 보였다. 바닥에 고인 피가 흥건했다. 경이는 얼른 제가 입고 있던 편의점 유니폼을 벗고 남자에게 다가가 상처부위를 지그시 눌렀다. 빠르게 유니폼이 붉게 젖어갔고 경이는 이상하게 차오르려는 눈물을 애써 꾹 참았다.
“어떡해요, 어떡해……많이 아파요?”
“하……그나저나 119에 전화했어요?”
다친 건 남자인데 어째 경이보다 더 침착해 보였다. 그제야 제가 당황해 119에 전화를 할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경이는 황급히 119에 전화를 했고 안색이 창백한 사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기 시작했다.
“저기요, 죽으면 안 돼요……진짜 미안해요…….”
울먹이며 남자를 걱정하는 경이의 목소리를 듣고 남자는 조용히 웃었다. 아무래도 죽지 말라는 제 말이 웃긴 것 같았지만 사람은 정말 한순간에 간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경이는 진지한 어조로 사내에게 경고했다.
“사람이 골로 가는 거 한순간이에요, 진짜로요! 웃긴 게 아니라……조금만 더 정신 차려 보세요. 정신줄 놓치면 안 돼요, 알겠죠?”
“알았어요, 알았어…….”
결국 10분 뒤, 빨간 사이렌과 함께 경찰과 응급차가 편의점 앞으로 나타났고 경이는 젊은 사내를 부축한 뒤 응급차에 같이 탔다. 응급구조대원들이 재빨리 남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것을 보고 경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때, 편의점에 경이가 놓고 온 경이의 핸드폰은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