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신 전 해 드 립 니 다 W. 문달 # 대신 전해만 주다가 직접 전하고 싶어졌다. -대신 전해 드립니다. S# prologe 달문 대학교 대나무 숲 좋아요 팔로잉 공유하기 더보기 #200813번째_달에 띄우는 편지 도서관 앞에서 전화 한 통 빌려주셨던 베이지 트렌치 코트를 입으신 남자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너무 친절하시고, 진짜 진짜 잘생기셨어요...♡ 이동혁 나재민 니가 말한 게 이거?? 나재민 님이 답글을 남겼습니다. #201827번째_달에 띄우는 편지 ㅇㄱ과 ㄴㅈㅁ씨 너무 잘생기셨어요!ㅠㅠ 혹시 여자친구 있으신가요? 이동혁 나재민 주작 작작하세요^^ 답글3개 #204567번째_달에 띄우는 편지 운 좋게 같이 교양을 듣는데요, 오늘은 머리도 밝은 색으로 염색하시고 동그란 안경도 끼고 오셨더라구요. 안 그래도 잘생겼는데 더 잘생겨서 심쿵했습니다..진짜 왜 그렇게 잘생기셨어요 ㅇㄱㄱ17 ㄴㅈㅁ씨? ㅠㅠ 여자친구 없으시면 제가 옆자리 노려봐도 될까요? 이동혁 야 이거 음모다 진짜 이제노 황인준 황인준주작각입니다. 글에서 나재민 냄새납니다. 나재민 친구들 그냥 인정 좀^^ #206060번째_달에 띄우는 편지 달님 이건 꼭 익명이어야 합니당!!!! 좀 예전에 도서관에서 전화를 빌려주신 남자분 얘기를 달님께 띄운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그 남자분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ㅠㅠ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이 인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대숲에 자주 올라오는 분이라서요.. 어떻게하면 그 분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206080번째_달에 띄우는 편지 달님 안녕! 저는 요새 한창 짝사랑에 속앓이 하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에요. 우연히 도서관 앞에서 만난 분인데 어느과인지 이름이 뭔지도 다 알긴 하는데 접점이 도무지 생기지 않아요.. 그나마 교양을 같이 듣긴 하는데 말도 먼저 못 걸겠어요. 게다가 팀플도 없는 수업이라 혹시라도 같이.. 이런 것도 없네요. 어떡하죠오 저에게 힘을 주세요오오 ㅠㅠ! #206813번째_달에 띄우는 편지 ㅇㄱㄱ ㄴㅈㅁ씨!! 여자친구 있으신가요??? 이런 비슷한 글 많이 올라오던데 여자친구 존재 여부는 안 나와서요! #208813번째_ 달에 띄우는 편지 ㅇㅇㄱㅇㄱ ㄴㅈㅁ씨 제발 여자친구 없게 해주세요...진심으로 제 이상형이에요.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저 관심 많아요 이동혁 리얼인가봐...이제노 황인준 황인준 ㅅㅂ 나재민 찾는 글에서 나 부르지 마 귀찮아 좋아요 1개 이동혁 인준아 너 왜 말을 그따구로 해 이제노 그래 동혁아 작작해^^ #209982번째_달에 띄우는 편지 대숲에서 유명하신 ㅇㅇㄱ ㄴㅈㅁ씨를 정문 셔틀 타는 곳 앞에서 보았습니다.. 주인분이랑 산책하던 말티즈 보면서 웃어주시던데 지나가는 저에게도 그 건치 미소 지어주셨음 좋겠다 생각했네요 ㅠㅠ 진짜 개존잘이세요 ㅠ 그래서 여자친구 있으시다구요?ㅠ 이동혁 여친은 없는데...^^ 나재민 좋아요 2개
S# 1. 달문대학교 익명 대나무 숲 : 달에 띄우는 편지 시립 도서관 바로보는 동서양 신화 저자 저문달 출판사 문학달동네 국어국문 201602014 이여름 책의 옆면에 굵게도 써 있었다. 여름은 과제를 책상 한 쪽으로 밀어버리고 새 인터넷 창을 켰다. 안경 알에 노트북 화면 귀퉁이가 찍힌다. 달문 대학교 익명 대나무 숲 - 대신 전해드립니다. S# 2. 이여름 "선배님 혹시요, 선배님이 달님 하실 때도 그 사람 글 많이 올라왔어요?" 한창 봄이다. 바람도 이젠 쌀쌀하기보다는 선선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일주일 봤나, 비 몇 번 내리고 황사 탓에 흐리고 개니 벚꽃이 진다. 연한 잎들이 자리를 채워갔다. "그- 유교과 니은 지읒 미음 씨요. 요새 어엄청 올라오잖아요. 진짜 무슨 연예인인 줄. 저 들어가서 확인해보면 팔십퍼는 그 사람 글이에요." 바람이 분다. 여름의 앞머리가 불어오는 방향따라 흩날리고, 동그란 꽃잎들도 따라 쓸려간다. 여름은 대충 거슬리는 머리들을 한 손으로 모아 이마에 딱 붙인다. "그래요? 허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학교 다니면서 예쁜 여자들은 많이 봤는데 그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었나." - 유교과 일칠학번 유명한데? 잘생긴 애들 있다고. 저번 축제 때 유교주점 대박 났었잖아. 여름은 그저 갸우뚱한다. 축제 재미 없어서 자취방에서 뒹굴거렸죠. 선배와의 통화는 건진 것 없이 끝났다. 아, 그 사람 잘생겼단거. 전부터 잦게 올라왔었단거. 잘생겨봤자 얼마나 잘생겼겠냐.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두 팔 들어 기지개를 켰다. 하품은 덤으로 나온다. 이 좋은 날에 도서관에 박혀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봐. 공부를 해. "아, 한강 가서 치맥 하고 싶다." 여름은 학생들이 숨막히게 들어찬 학교 도서관에서 고갤 처박고 퍼질러 자고 있을 친구에게 카톡 하나를 넣어놨다. '우지우 한강 치맥 고?' 달문대학교 중앙도서관 1층 "자리 싸움 기껏해서 들어가놓고 딴짓만 할거면 대체 왜 오냐?" "야, 나 놀기만 하는 거 아니거든? 열심히 공부 했거든?" "나처럼 시립 도서관을 이용하렴. 얼마나 자유로운데." "거기 멀잖아~ 힘들어, 다리 아파~" "다리 아프다는 곳에서부터 너 데리러 걸어온 나는 뭐죠?" 넓은 복도에 지우와 여름의 목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정면에 보이는 문 밖의 풍경이 눈부시다. 품에 안고 있던 책을 가방에 집어넣으려고 낑낑 거리는 지우를 한심하게 보던 여름이 짐을 들어준다. "땡큐~ 어?" 뭘 본건지 갑자기 자신의 옷깃을 잡고 목을 움츠리는 지우에 여름이 그녀가 보는 방향을 같이 쳐다본다. 베이지 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반듯한 인상의 남자가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여름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가벼우면서 산뜻한 향이 옅게 코 주변을 맴돌다 사라졌다. 봄 같다고 여름은 생각한다. 저도 모르게 지나간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지우의 입에서 대박, 이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마주치면 안되는 사람이야? 왜 숨어?" "어? 너 쟤 몰라?" "누군데? 너 아는 사람?" "쟤 대숲남이잖아. 유교과 걔." "어어어? 진짜?" 여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놀라든 말든 지우는 먼 곳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여름의 옷을 쥐고 있던 손은 어느새 가지런히 모아져있다. "진짜 잘생겼다.. 또 보고 싶다." "잘 모르겠는데. 좀 생겼긴 했는데." "너 렌즈는 꼈니?" "아니, 깜빡하고 안경도 렌즈도 놓고 옴." "그러니까 모르지. 개존잘인데." "에이, 진짜 개존잘이면 흐릿해도 보일 수 밖에 없지." "뭐래니, 이게 엿인지도 구분 못하는 게, 메롱." 가운데 손가락막 펴보이며 혀를 내밀던 지우는 곧 여름에게 뒷목을 잡혔다. 〈반포 한강 공원 > 지우의 울렁이는 목을 뚫어져라 보던 여름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콜라를 마저 비웠다. 너무 신기해. 술 뭔 맛으로 마셔. 지우가 손가락을 흔들며 여름더러 애기라 놀려댔다. 눈길도 안 주고 여름이 말했다. 그러다 맞지? 그만하라는 말이었다. 지우는 눈치껏 방정맞은 손을 치운다. 어쩌다 양념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치킨을 먹던 여름의 머리 위로 새들이 날아다녔다. 지우는 새똥이라도 맞을까 걱정하며 머리를 만지고, 여름은 치킨이라도 뺏길까 젓가락과 입 사이 간격을 가까이 한다. "유교과 17이 그렇게 잘생겼다고 하더라." "어. 너 빼고 다 알아." "잘생긴거 좋아하는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진짜 이상하다." "너가 아싸라서 그으래." "뭐야..마상.. 아싸랑 친구인 너는 뭐야.." "나도 아싸라서? 키키" 양념 치킨은 여름이 지우 눈치를 보며 마지막 한 조각까지 먹어치웠다. 그 많은 치킨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며 여름을 노려보던 지우는 젓가락을 한 번 쪽 빨고는 내려놓았다. "유교과 17이랑 과팅하고 싶다.. 우리 학번만 과팅 금지령 있었잖아, 말이 되냐? 나 아직도 억울해!" "야, 헌내기 다 돼서 무슨 과팅이냐, 그것도 17이랑." "뭐 어때서? 걔네라고 다 어린 애들만 있는 거 아니잖아? 우리랑 과팅 좀 하면 어때서어!"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고 학회장을 찔러." "안 그래도 졸라대고 있는 중이얌..근데 걔네랑 하고 싶다는 과 많아서 거의 안 될 수도 있다니까 그렇지." "사귈 애들은 다 알아서 잘 사귄다~" 인생 n 회차 내공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올 법한 여름의 말에 지우가 약간은 경멸 섞인 눈으로 여름을 쳐다보다 다시 도리질을 한다. 내가 너랑 사랑에 관해서 뭔 말을 하냐, 아이돌로만 유사 연애 먹는 애한테. 지우의 말에 욱한 여름에게 지우는 결국 조마조마했던 뒷목을 잡혔다. "달님, 그래서 유교과 나재민 여자친구 있대요?" 오직 지우만이 여름이 학교 대숲 관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름은 관심 없다는 듯 몰라 댓글 안 봐 라는 말만 대충 던져주곤 남은 치킨 무들까지 싹쓸이 했다. 맛있는 걸 먹는건 덕질 다음으로 큰 기쁨. 뿌듯해하며 부른 배를 통통 두들기는 여름을 지우는 끝까지 도끼눈을 하고서 째려봤다. "단순히 잘생겨서 그렇게 대숲에서 찾아댄다고 사람들이?" "매력도 쩌나보지. 나도 말 한 번 안 섞어봐서 모르겠네~" "흠, 진짜 이해할 수 없다. 우리 티용이 급으로 생기면 모르겠는데," "너의 티용이는 탈인간 아니니?" "그지? 머글인 네 눈에도 우리 티용이 개 쩔지? 아~ 진짜 티용이랑 결혼하고 싶다~" 연예인엔 눈곱만큼도 관심없는 지우의 입에서 나온 최애의 이름에 여름의 눈이 반짝인다. 하여간에 돌덕질 관련 얘기만 하면 죽은 동태 눈깔이 막 피어나는 계절의 꽃마냥 펴진다. "티용이 실물 한 번이라도 봤니?" "으응, 딱 한 번.. 진짜.. 너도 실제로 봤어야 한다. 우리 티용이 후광 쩐다고. 분명 보고 있는데 그래픽 보는 것 같다니까? 현실성이 존나 없음. 개말라 인간인데 살기 위한 마른 근육이 개오짐. 비율 존나 쩔고! 와 진짜..말하니까 보고싶다 우리 티용." "그래..너는 티용이랑 살아.." 지우는 여름과는 연애 관련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면 무슨 얘길 해야 하지? 외롭다 썅. 늦잠 자다 잊은 겨울이 지우의 옆구리를 시리게 만든다. 변덕스러운 일교차 생각 않고 얇게 입고 와서 그럴 수도 있고. 주책맞게 최애 찬양을 하느라 바쁜 여름에게로 몸을 더 붙여보는 지우다. 그 뒤로도 관리자 달님은 유교과 나재민씨에 관한 제보글들이 올라오는 걸 봐야했다. 어디 대숲 안에서 뿐인가, 인식되기 시작하니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다보면 나재민의 '나' 자 하나 듣기가 그렇게 쉽다. '유교과 나재민 알아?' '아 그 유교과 대숲남? 어어 걔가 그렇게 잘생겼다며? 그 정도야?' '진짜 특출나게 연예인 수준으로는 모르겠는데 거기 비빌만 한 정도? 멀리서 우연히 봤는데 눈에 띄더라.' 뭐, 이런 대화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래, 잘 모르겠지만 오질라게 잘생겼나보다. 그런데 달님인 여름을 성가시게 만드는 건 교내 카페 테라스 앞에서 따듯한 햇빛을 맞으며 기분 좋은 우주 공강을 보내고 있을 때 들었던 대화였다. '너 유교과 대숲남 알지' '아아 그 나재민씨? 알지 알지. 나 본 적 있어. 개존잘.' '왜 대숲에 주기적으로 비슷한 내용으로 유교과 찾는 글 있잖나, 알아?' '엥? 아니. 뭔데?' '그 뭐지, 자기가 도서관에서 전화 빌렸었는데 그게 유교과 걔래. 그 뒤로 뭐드라, 암튼 당사자한테 직접 말하지만 않았지 편지 형식으로 글 계속 올려서 고백하던데. 좀 소름 돋기도 한데 다들 누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열렬히 구애하냐고 궁금해하더라.' '아 진짜? 누구지. 달님이라면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거 서버 관리자도 절대 누가 보내는 지 모른다 하지 않았나?' '에이 아무리 그래도 관리자라면 관리자 권한?뭐 그런걸로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그나저나 나도 달님 해보고 싶다. 그건 어떻게 하는거냐.' 이 뭔 개소리냐. 거기서 내가 왜 나와..? 그들이 말하는 '달님' 이었던 여름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 요거트 스무디를 시켰다. 충전이 필요해. 굵은 빨대로 빨아대느라 옴폭 들어간 뺨이 아플 정도로 마시며 여름은 생각했다. 이러다 달님 신상 털리는 거 아니겠지. 그 정도로 달문인들이 비도덕적이지는 않겠다만 여름은 쓸데없이 걱정이 많았다. "하루종일 생각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왜? 티용이가 하루종일 생각 나? 언제는 안 그랬냐 니가." "아니. 티용이 말고." 짜장면 먹을래? 아니 짜장면 말고. 식으로 흘러가던 대화에서 지우는 여름의 대답에 먹던 아아메를 뿜어버렸다. 턱 밑으로 줄줄 새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새로 산 흰 블라우스에까지 흑갈색 물이 흐르는 건 용서치 않겠다. 지우가 흘린걸 수습한다고 정신 사나운 와중에 여름은 상관 않고 계속 중얼거렸다. "운동장 트랙에서 앞구르기로 굴러가도 이해 할 수가 없네..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대숲에 자꾸 구애를.. 우리 티용이처럼 미치게 잘생긴 것도 아닐거면서." 어우 여름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교수님 오시면 말 좀 "티용이 하니까 보고싶네..티용이가 나랑 같은 학교 다녔으면 나도 대숲에다가 맨날 좋아한다고 오늘은 또 어떻게 잘생겼다고 촐싹댈텐데.."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여름은 그제서야 지우를 찾다가 얼결에 우지우를 부르는 목소리에 맞춰 화장실 핑계를 댔다. S# 3. 대신 전해주긴 글렀다. 중앙 도서관, 재민 앉아서 폰으로 손이나 놀리는게 더 편하지 굳이 아날로그 FM 을 고수하냐는 이동혁에 핀잔에도 불구, 재민은 학생증을 찍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대체 동화책을 왜 대학교 도서관에서 찾아?' '연 교수님은 그런 식상한 동화를 원하지 않아. 어른의 책을 아이들의 동화로 바꿔보겠어.' '그런 변혁적인 판은 네가 유치원 원장 되면 해줄래?' 뭐라 씨부리든 일관된 먹금이 동혁을 다루기엔 최고의 극효약이었다. 인준은 동혁을 뒤로 제치고 손짓하며 재민을 보냈다. 야, 가라 가. 아니 나재민 괜히 과팅 나가기 귀찮아서 도서관 핑계 대는 거라고 인상을 쓰며 꿍시렁대는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서 재민은 책을 꺼내다 말고 살풋 웃어버렸다. 정숙한 공간에서 작은 웃음도 소음이 될까 주변을 의식하며 두리번 거리다 꺼낸 책들을 팔로 안고 나왔다. 여름 시점 도서관 팀플 자료조사는 도서관이 최고지, 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여름은 전공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삐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금쪽 같은 공강 시간 아껴 점심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쉴틈 없는 발, 신속한 자료 검색과 한 번에 찾는 눈이 필요하다. 세 박자의 리듬 속에 얼렁뚱땅 쳐버린 건 발이었다. 여러분 계단에서는 뛰지 마세요. 날다람쥐라도 된 것 마냥 뛰어내려가던 아슬아슬한 몸뚱이는 결국 공중에 잠깐 붕 떠 새처럼 되길 소망하다 추락해버렸다. 순식간에 하늘과 땅 위치가 뒤바뀌더니 이윽고 묵직한 고통이 맨 먼저 내려앉은 얼굴에서부터 느껴졌다. 쪽팔림보다는 살면서 자주 보지 않는 아픔에 몸이 떨려왔다. 가까운 주위에 있던 여성 한 분이 대신 소리를 질러주시며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피를 대강이나마 닦아주셨다. 손바닥 안에서 손금 줄기를 타고 흐르는 새빨간 피에 여름은 그저 어어- 하고 버벅거렸다. "일어날 수 있어요? 저랑 같이 건강관리실 갈까요?"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가 눈물이 차오르려는 여름에게로 쏟아졌다. 여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옆에서 제일 먼저 다가왔던 여자분이 일어나는 걸 도와주었다. "발목 삐었어요? 업히실래요?" 여름이 절뚝이며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남자가 말했다. 정신이 혼미해서 판단이 빠르게 안 서는 여름을 대신해 옆의 여자가 업히는 걸 돕겠다고 말했다. 남자의 등에 업혀 건강 관리실로 가는 동안 욱신거림을 느끼며 여름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건강 관리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턱으로 넘어져 혹시 모르니 가까운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손에 들고 있다 같이 넘어진 핸드폰은 메인보드가 고장나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여름은 절망했다. 엄마 보고싶다. "국문과 학회장한테 연락 지금 했거든요? 온다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요." 여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사하다 겨우 답했다. 학교 다니면서 여긴 올 줄 몰랐는데 하며 학창시절의 보건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익숙한 풍경을 둘러보는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아까 도서관 앞에서 여름을 업고 건강 관리실까지 데리고 온 남자였다. "아, 저 아까 그 쪽 업고 온, 네. 괜찮으세요? 어떻대요?" 여름이 눈 밑에 반쯤 마른 눈물을 닦고 고개 숙여 힘없이 인사했다. 진짜 감사합니다. "병원 안 가봐도 돼요? 앞으론 조심해요. 맞다, 이거 그 쪽 안경 맞나요? 아까 근처에 떨어져 있던데." 하며 알이 깨진 안경을 건네받았다. 여름은 애써 써보려고 다리를 조심히 펴서 관자놀이로 끼어넣었다. 드디어 초점이 맞았다. 선명해졌다. "안경 새로 맞추셔야 겠네요." 그리고 눈도 맞았다. 수평이 맞지 않아 달각거리던 안경이 미끄러졌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 재민 이요. S# 4. 짝사랑 전조 증상 여름은 미칠 것 같았다. 일 그램의 거짓됨 없이 심신이 여유로울 때면 한가득 나재민 석 자를 채워넣었다. 제어가 안됐다. 흐리던 초점이 선명해졌을 때 뚜렷이 드러난 그 존잘력에 여름은 넘어갔다. 이래서 대숲남이구나. 관심 없을 땐 그렇게 떠들어대더니, 눈에 불을 켜고 학교 안에서 재민을 찾는 요즘엔 그림자도 찾기 힘들었다. 마치 여기 존재 않는 사람처럼. 여기 유교과 많이 출몰하는거 내가 봤는데 왜 안 보이지. 본인 수업 강의실을 지나쳐 다른 강의실 안을 기웃거리던 여름은 우뚝 서서 생각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헐..나 뭐하고 있는거야 지금? 그 인간 찾는거야?" 보고싶다. 또 만나고 싶다. 누구를? 재민을. 여름은 계단에서 넘어진 그 이후로 재민만 그리며 지냈다. 혼자하는 망상에서는 이미 재민의 여자친구였다. 그건 지우에게도 말 못할 부끄러운 상상이었다. 여름은 손으로 입을 막고 경악했다. 나 지금 짝사랑 하고 있는거야? 얼굴을 찰싹 치며 여름은 정수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찬 물을 연거푸 따라 마시니 가슴쪽에 찬 기운이 돌았다. "안녕하세요?" "? 에?! 어어?" 젖어 너덜너덜해진 종이봉투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막 몸을 돌린 순간 꽤 가까운 거리에 보고싶던 그 얼굴이 있었다. 심지어 먼저 걸어온 인사에 속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로 드러낸 여름은 한참 뒤에야 제대로 말을 뱉었다. "아아안녕하세요!" "그때 다친 데는 어때요, 괜찮아요?" "아아.. 아직 다 나은건 아닌데 거의 낫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정말 다친게 얼마나 나았는지만 궁금했던지 여름의 대답을 듣고나서 미련없이 가려는 재민을 스치다가 여름이 손을 뻗었다. 무작정 잡힌 팔에 재민이 물음표를 띄우고 돌아보자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기!" "네."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 "네?" "여자친구는 있으시구요?" "아니요." "그러면 제 번호 좀 가져가실래요? 내키시면 연락 주세요. 저, 저, 제가 나재민씨한테 관심이 있어요."
"우와. 상당히 적극적이시네요." 물을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은 입안이 말랐다. 재민의 안색이 좋아보이진 않다는 걸 확인한 여름은 자신의 성급함을 탓했다. 그의 옷을 붙든 손에 점점 힘이 풀렸다. 이딴 말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는 걸. 재민을 잡고 있던 여름의 손은 점점 뒤로 물러나더니 등 뒤로 숨게 됐다. 야- 나재민-! 가까운 강의실 문 쪽에서 얼굴만 슥 내민 채 재민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가 보였다. 재민이 고개를 돌려 손짓을 섞어가며 뭐라뭐라 입모양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그와중에 여름은 재민의 날렵한 턱선과 목빗근에 입을 헤 벌렸다. "그래서 번호가 뭔데요?" "네?" "주신다면서요, 번호." "아! 그, 어, 혹시 핸드폰.." "잠깐 나온거라 폰을 두고 와서. 불러주시면 외울게요." "고,옹일공 팔칠육오 사삼이일이요!" "내키면 연락할게요." 잠깐 설레발 좀 쳤다. 내키지 않았는지, 외운다 해놓고 돌아서서 까먹었는지는 몰라도 여름이 지쳐 새벽에 잠에 들 때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대학로 술집-'주접'(酒楪) 신명나게 뚜껑 날라가는 소리가 들리고 거품이 요란하게 끓어넘쳤다. 안주로 나온 김치찌개 맛을 보던 여름을 지우는 고깝게 쳐다본다. 여름은 괜히 찔려서 지우의 눈치를 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최대한 지우와 제일 멀리 있는 해물파전으로 젓가락을 들이댔다. 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파전을 크게 찢다가 급하게 작은 조각으로 나눴다. "그래서 연락은?" "안왔지.." "내가 뭐랬어. 잘생겼다 했지? 그럴 줄 알았어." "보통 잘생긴 게 아니라 존나게 잘생겼다고 했어야지.." "이미 수십 번은 더 개존잘이라 했을텐데?" "내 취향으로 존잘일 줄 몰랐지..시발 진짜 어떡해." "뭘 어떡해. 계속 그렇게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 "그렇게 하다가 안됐잖아 지그음~!" 결국 제 머릴 쥐어뜯으며 쿵쾅대는 여름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다. 여름이 왜 대화를 주먹으로 하냐며 발끈하자 지우는 말하기 귀찮아서라고 둘러댔다. 사실 지우는 여름이 조금 얄미웠다. "너보다 먼저 좋아해놓고 말 한 마디 못 해본 나보단 불도저가 낫잖아." "지우지.." "뭐 뭐므마뭐모!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거침없이 털어넣는 손 동작에 걱정스런 눈길로 지우를 쳐다보던 여름이 잔을 가로채간다. 야 이년아 간접 키스 사절이야. "아주 들이대? 막 그냥 들이대애?" "어~~ 들이대~~~네 좆대로 아주 들이대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채 나온 여름과 지우는 고성을 질러가며 비틀비틀 자취방으로 향한다. 나 토 해, 토. 토 할 것 같다며 헛구역질 하는 지우를 여름은 으슥한 골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가로등 아래로 데려갔다. "우우우웨엑!" "아 디러." "으엑!" "흐미-" "흐으..내가 더러웡? 더러웡?? 치, 치사한 년.." "미안냉..그치만..그치만 나재민 너무 잘생겻서.." "누우가 그거 멀라서 이래? 짓차..너 지짜..너 인생 그러케 살지 마러라. 어? 막 친구 짝남한테 어? 들이대고오!" 다시 어깨동무. 천불이 나는지 자꾸 몸을 뒤집으려는 지우에 여름은 턱에 힘을 줘가며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서로 몸을 파닥거려가며 가서는 현관문 앞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내 대가리 누가 깼어.." "누가 깨 니 대가리를.. 니가 혼자 박았겠지." 다음 날 숙취에 쩔어 부은 얼굴로 지우와 여름은 학교를 나갔다. 느긋이 지각이 잡힌 상태였다. 셔틀에 사람이 많으니 걸어가지 말고 다음 셔틀을 기다리자 하는 게으름을 부리기도 하였다. "와 날씨 겁나 좋다." "그러게..야 나 속쓰려." "입 열지 말자. 술 냄새 난다." 턱을 목 가까이 붙이고 숨을 헙 참는 여름을 보며 지우가 낄낄거렸다. 너 꼬라지 진짜 초췌해. 혼자 듣기 서러운 말 하네. 서로를 보며 비웃다가 지우가 아무런 감정 없이 말을 꺼냈다. "근데 이러다 재민씨 마주치면 어떡해." "안돼. 진짜 안돼. 이 꼴로 만나면 진짜 뒤져." 재민의 이름을 들으니 숙취에 쩔은 두뇌가 무작정 가동을 시작했다. 초당 재민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고싶다, 이 모습으론 말고. "씨벌.." 이러면 꼭 마주치더라. 햇살이 눈부셔 찡그리는 그 모습마저 아름다운 나재민씨가 셔틀 버스를 타려고 줄을 막 섰다. 정류장 의자에 늘어져 앉아있던 여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 앉아있던 입술 색 없는 지우가 그런 여름을 보며 흐느꼈다. "우리도 줄 서자." 먼저 자리에서 끙차 일어나 손 내미는 지우에 여름도 주춤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조마조마한 심장을 붙들고 재민을 막 지나가는데 어,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나더니 여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왔다. 당신은 그 흔한 안면 인식에 오류가 없니? 떨떠름하게 맞인사를 하고 여름은 열심히 지우의 허리를 꾹꾹 누르며 빠르게 걸어갔다. "푸학 진짜 웃기다. 모자에 마스크를 껴도 알아보네? 진짜 신기하다." " 내 말이. 좀 모르는 척 하면 안되나." "너 인상 되게 강렬했나보다 야, 잘해봐라~" "조용히 해..쪽팔리니까." 버스에 올라타서도 비교적 일찍 줄을 서 앉아있는 재민 근처에 가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사람들 틈을 비집고 맨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보고는 싶어서 노란 뒷통수가 단지 햇빛이 따사로워서 따가운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쳐다봤다. "뚫리겠다, 뚫리겠어. 짝사랑 중이라고 광고하냐?" "너 조용히 좀 하라니까." "너 뭐 들으러 가?" "나 교양데이야 오늘. 심리학이랑 동서양." "으, 수고 해. 좀 있다 봐~" "우웅~" 날씨는 더럽게 좋았다. 그래서 후리하게 가리고 나온 올블랙 차림의 여름은 더 초췌해보였다. 집 가고싶다. 주머니 속 모나미 볼펜만 손 안에서 돌리며 우루루 내려가는 인파 틈에 떠밀려가듯 힘없이 걸어내려갔다. "연락도 안 하면서 아는 체 하는건 뭐야, 어장이야? 흥." 그냥 나재민 안 좋아할까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여름은 걷다 뒤를 봤다. 재민은 저와 같은 곳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걸 버스 뒷문에서 확인까지 했으면서. S# 5. 작정한 불도저 두더지 돌직구 직진 고 스트레이트 노빠꾸 운동장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런 것도 있고. 대숲에 소홀했더니 불만들이 팝핑캔디 터지듯 터져나왔다. 유일하게 딱 하나 남아있던 슈팅스타를 발견해 집어든 지우는 그저 만족스럽다는 얼굴이다. 바밤바를 맛없게 빨고 있던 여름은 한참 말없이 멍을 때리다가 동그란 머리부분을 와작 깨물며 말한다. "바밤바는 과학이야. 바에서 시작해서 바로 끝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기도 어렵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법도 모르는 사람들 얼마나 많아. 그래서 바밤바는 천재야." "이건 뭔 개소리야? 벌써 더위 먹었어? 닉값하네." "왜, 세상에 개처럼 짖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정도면 논리적인 개지." "우리 여름이 요새 힘드니, 짝사랑한다고?" "후우..아냐. 꼭 나재민씨 때문만은 아니고." "여전히 대숲에선 핫하더라." "그래?" "넌 달님이 대숲 돌아가는 판을 나보다 모르냐." "알거든." 하얀 구름과 대조되게 파란 하늘이 보고싶은데 빌어먹을 미세먼지가 눈치가 없다. 위에서 먼 곳으로 옮겨가는 여름의 시선에 운동장 한 켠의 농구 코트가 잡힌다. "저기 저거 나재민씨 맞지?" "어? 어디? 어어 맞네. 헐,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가봐. 우리 운동장 돌래?" "아니?" "뭐래. 가까이서 보고 싶은거 다 알거든? 일어나라." 엉덩이가 무거운 여름을 억지로 일으키는데 성공한 지우가 제가 더 신나서는 팔짱을 껴왔다. 여름은 핸드폰의 까만 액정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운동장 트랙 그냥 산책하는거야, 절대 나재민 보려고 이러는 거 아니고 응. 정직한 여름의 몸은 이미 재민에게로 대놓고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중이었다. 땀 때문인지 재민의 상기된 얼굴이 반들반들했다. "헐 미친 야. 온다,온다,여기로 온다. 미친." 지우가 옆에서 팔뚝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름은 바짝 긴장해서 손에 꽉 쥔 바밤바 막대로 물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재민이 다가와 손을 가리켜서야 알아챘다. 지우가 어색하게 아무말로 핑계를 대가며 자리를 비켜줬다. 후다닥 달려가는 신난 뒷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보다 그대로 재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 농구 하시나보네요!" "네. 보시다시피." 흔들림 없이 올곧게 여름만 뚫어져라 보는데, 여름은 그 눈빛을 알게 모르게 피하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아무 감정이 없기에 저럴 수 있는건지 뭔지. "저, 나재민씨 좋아해요." "네에. 감사합니다." "헐. 너무 아무렇지 않으신거 아니에요? 고백 받아본 거 원투데이 아니다 이런건가?" 여름의 말에 재민이 그제서야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마치 저가 강압적으로 따지고드는 입장이 된 것 같아 여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제 안 좋아하려구요,나재민. 저 나재민 안 좋아해요." "왜요?" "글쎄요, 아무튼 안 좋아해요." "삐졌어요? 연락 안 해서?" "네? 아니거든요, 그런거?" 재민이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별 수 없죠.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친구분한테 가보세요." "헐, 이렇게 쿨하게?" 안녕- 손까지 흔들어주는 재민에 여름은 어처구니가 탈탈 털렸다. 우리 티용이도 내 통장 이렇게까지는 안 털어간다. 고양이는 액체 동물이라 그랬다. 아무리 잡아도 늘어나고 빠져나간다고. 재민이 꼭 그랬다. 대놓고 잡히려 하지도 않으니 여름은 오기가 생겼다. 내가 너 꼭 꼬신다. 나한테 목 매달게 만들거야. 이를 부득불 갈며 여름은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ㅅ-,' "지우지! 나 나재민 꼭 꼬신다!" '어어 그래 잘 안됐나 봐 얘기가?' "꼭! 꼬신다구!" 와중에 얼굴이 가렵다. 뺨을 긁으면서도 재민을 노려보는 걸 대충하지 않는다. 재민은 여름을 신경도 쓰지 않고 지쳐 발라당 누워있는 친구들 옆에 쭈구려 앉아서 이온 음료를 들이키는 중이었다.
"우와. 상당히 적극적이시네요." 물을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은 입안이 말랐다. 재민의 안색이 좋아보이진 않다는 걸 확인한 여름은 자신의 성급함을 탓했다. 그의 옷을 붙든 손에 점점 힘이 풀렸다. 이딴 말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는 걸. 재민을 잡고 있던 여름의 손은 점점 뒤로 물러나더니 등 뒤로 숨게 됐다. 야- 나재민-! 가까운 강의실 문 쪽에서 얼굴만 슥 내민 채 재민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가 보였다. 재민이 고개를 돌려 손짓을 섞어가며 뭐라뭐라 입모양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그와중에 여름은 재민의 날렵한 턱선과 목빗근에 입을 헤 벌렸다. "그래서 번호가 뭔데요?" "네?" "주신다면서요, 번호." "아! 그, 어, 혹시 핸드폰.." "잠깐 나온거라 폰을 두고 와서. 불러주시면 외울게요." "고,옹일공 팔칠육오 사삼이일이요!" "내키면 연락할게요." 잠깐 설레발 좀 쳤다. 내키지 않았는지, 외운다 해놓고 돌아서서 까먹었는지는 몰라도 여름이 지쳐 새벽에 잠에 들 때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대학로 술집-'주접'(酒楪) 신명나게 뚜껑 날라가는 소리가 들리고 거품이 요란하게 끓어넘쳤다. 안주로 나온 김치찌개 맛을 보던 여름을 지우는 고깝게 쳐다본다. 여름은 괜히 찔려서 지우의 눈치를 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최대한 지우와 제일 멀리 있는 해물파전으로 젓가락을 들이댔다. 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파전을 크게 찢다가 급하게 작은 조각으로 나눴다. "그래서 연락은?" "안왔지.." "내가 뭐랬어. 잘생겼다 했지? 그럴 줄 알았어." "보통 잘생긴 게 아니라 존나게 잘생겼다고 했어야지.." "이미 수십 번은 더 개존잘이라 했을텐데?" "내 취향으로 존잘일 줄 몰랐지..시발 진짜 어떡해." "뭘 어떡해. 계속 그렇게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 "그렇게 하다가 안됐잖아 지그음~!" 결국 제 머릴 쥐어뜯으며 쿵쾅대는 여름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다. 여름이 왜 대화를 주먹으로 하냐며 발끈하자 지우는 말하기 귀찮아서라고 둘러댔다. 사실 지우는 여름이 조금 얄미웠다. "너보다 먼저 좋아해놓고 말 한 마디 못 해본 나보단 불도저가 낫잖아." "지우지.." "뭐 뭐므마뭐모!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거침없이 털어넣는 손 동작에 걱정스런 눈길로 지우를 쳐다보던 여름이 잔을 가로채간다. 야 이년아 간접 키스 사절이야. "아주 들이대? 막 그냥 들이대애?" "어~~ 들이대~~~네 좆대로 아주 들이대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채 나온 여름과 지우는 고성을 질러가며 비틀비틀 자취방으로 향한다. 나 토 해, 토. 토 할 것 같다며 헛구역질 하는 지우를 여름은 으슥한 골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가로등 아래로 데려갔다. "우우우웨엑!" "아 디러." "으엑!" "흐미-" "흐으..내가 더러웡? 더러웡?? 치, 치사한 년.." "미안냉..그치만..그치만 나재민 너무 잘생겻서.." "누우가 그거 멀라서 이래? 짓차..너 지짜..너 인생 그러케 살지 마러라. 어? 막 친구 짝남한테 어? 들이대고오!" 다시 어깨동무. 천불이 나는지 자꾸 몸을 뒤집으려는 지우에 여름은 턱에 힘을 줘가며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서로 몸을 파닥거려가며 가서는 현관문 앞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내 대가리 누가 깼어.." "누가 깨 니 대가리를.. 니가 혼자 박았겠지." 다음 날 숙취에 쩔어 부은 얼굴로 지우와 여름은 학교를 나갔다. 느긋이 지각이 잡힌 상태였다. 셔틀에 사람이 많으니 걸어가지 말고 다음 셔틀을 기다리자 하는 게으름을 부리기도 하였다. "와 날씨 겁나 좋다." "그러게..야 나 속쓰려." "입 열지 말자. 술 냄새 난다." 턱을 목 가까이 붙이고 숨을 헙 참는 여름을 보며 지우가 낄낄거렸다. 너 꼬라지 진짜 초췌해. 혼자 듣기 서러운 말 하네. 서로를 보며 비웃다가 지우가 아무런 감정 없이 말을 꺼냈다. "근데 이러다 재민씨 마주치면 어떡해." "안돼. 진짜 안돼. 이 꼴로 만나면 진짜 뒤져." 재민의 이름을 들으니 숙취에 쩔은 두뇌가 무작정 가동을 시작했다. 초당 재민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고싶다, 이 모습으론 말고. "씨벌.." 이러면 꼭 마주치더라. 햇살이 눈부셔 찡그리는 그 모습마저 아름다운 나재민씨가 셔틀 버스를 타려고 줄을 막 섰다. 정류장 의자에 늘어져 앉아있던 여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 앉아있던 입술 색 없는 지우가 그런 여름을 보며 흐느꼈다. "우리도 줄 서자." 먼저 자리에서 끙차 일어나 손 내미는 지우에 여름도 주춤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조마조마한 심장을 붙들고 재민을 막 지나가는데 어,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나더니 여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왔다. 당신은 그 흔한 안면 인식에 오류가 없니? 떨떠름하게 맞인사를 하고 여름은 열심히 지우의 허리를 꾹꾹 누르며 빠르게 걸어갔다. "푸학 진짜 웃기다. 모자에 마스크를 껴도 알아보네? 진짜 신기하다." " 내 말이. 좀 모르는 척 하면 안되나." "너 인상 되게 강렬했나보다 야, 잘해봐라~" "조용히 해..쪽팔리니까." 버스에 올라타서도 비교적 일찍 줄을 서 앉아있는 재민 근처에 가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사람들 틈을 비집고 맨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보고는 싶어서 노란 뒷통수가 단지 햇빛이 따사로워서 따가운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쳐다봤다. "뚫리겠다, 뚫리겠어. 짝사랑 중이라고 광고하냐?" "너 조용히 좀 하라니까." "너 뭐 들으러 가?" "나 교양데이야 오늘. 심리학이랑 동서양." "으, 수고 해. 좀 있다 봐~" "우웅~" 날씨는 더럽게 좋았다. 그래서 후리하게 가리고 나온 올블랙 차림의 여름은 더 초췌해보였다. 집 가고싶다. 주머니 속 모나미 볼펜만 손 안에서 돌리며 우루루 내려가는 인파 틈에 떠밀려가듯 힘없이 걸어내려갔다. "연락도 안 하면서 아는 체 하는건 뭐야, 어장이야? 흥." 그냥 나재민 안 좋아할까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여름은 걷다 뒤를 봤다. 재민은 저와 같은 곳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걸 버스 뒷문에서 확인까지 했으면서. S# 5. 작정한 불도저 두더지 돌직구 직진 고 스트레이트 노빠꾸 운동장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런 것도 있고. 대숲에 소홀했더니 불만들이 팝핑캔디 터지듯 터져나왔다. 유일하게 딱 하나 남아있던 슈팅스타를 발견해 집어든 지우는 그저 만족스럽다는 얼굴이다. 바밤바를 맛없게 빨고 있던 여름은 한참 말없이 멍을 때리다가 동그란 머리부분을 와작 깨물며 말한다. "바밤바는 과학이야. 바에서 시작해서 바로 끝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기도 어렵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법도 모르는 사람들 얼마나 많아. 그래서 바밤바는 천재야." "이건 뭔 개소리야? 벌써 더위 먹었어? 닉값하네." "왜, 세상에 개처럼 짖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정도면 논리적인 개지." "우리 여름이 요새 힘드니, 짝사랑한다고?" "후우..아냐. 꼭 나재민씨 때문만은 아니고." "여전히 대숲에선 핫하더라." "그래?" "넌 달님이 대숲 돌아가는 판을 나보다 모르냐." "알거든." 하얀 구름과 대조되게 파란 하늘이 보고싶은데 빌어먹을 미세먼지가 눈치가 없다. 위에서 먼 곳으로 옮겨가는 여름의 시선에 운동장 한 켠의 농구 코트가 잡힌다. "저기 저거 나재민씨 맞지?" "어? 어디? 어어 맞네. 헐,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가봐. 우리 운동장 돌래?" "아니?" "뭐래. 가까이서 보고 싶은거 다 알거든? 일어나라." 엉덩이가 무거운 여름을 억지로 일으키는데 성공한 지우가 제가 더 신나서는 팔짱을 껴왔다. 여름은 핸드폰의 까만 액정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운동장 트랙 그냥 산책하는거야, 절대 나재민 보려고 이러는 거 아니고 응. 정직한 여름의 몸은 이미 재민에게로 대놓고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중이었다. 땀 때문인지 재민의 상기된 얼굴이 반들반들했다. "헐 미친 야. 온다,온다,여기로 온다. 미친." 지우가 옆에서 팔뚝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름은 바짝 긴장해서 손에 꽉 쥔 바밤바 막대로 물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재민이 다가와 손을 가리켜서야 알아챘다. 지우가 어색하게 아무말로 핑계를 대가며 자리를 비켜줬다. 후다닥 달려가는 신난 뒷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보다 그대로 재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 농구 하시나보네요!" "네. 보시다시피." 흔들림 없이 올곧게 여름만 뚫어져라 보는데, 여름은 그 눈빛을 알게 모르게 피하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아무 감정이 없기에 저럴 수 있는건지 뭔지. "저, 나재민씨 좋아해요." "네에. 감사합니다." "헐. 너무 아무렇지 않으신거 아니에요? 고백 받아본 거 원투데이 아니다 이런건가?" 여름의 말에 재민이 그제서야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마치 저가 강압적으로 따지고드는 입장이 된 것 같아 여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제 안 좋아하려구요,나재민. 저 나재민 안 좋아해요." "왜요?" "글쎄요, 아무튼 안 좋아해요." "삐졌어요? 연락 안 해서?" "네? 아니거든요, 그런거?" 재민이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별 수 없죠.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친구분한테 가보세요." "헐, 이렇게 쿨하게?" 안녕- 손까지 흔들어주는 재민에 여름은 어처구니가 탈탈 털렸다. 우리 티용이도 내 통장 이렇게까지는 안 털어간다. 고양이는 액체 동물이라 그랬다. 아무리 잡아도 늘어나고 빠져나간다고. 재민이 꼭 그랬다. 대놓고 잡히려 하지도 않으니 여름은 오기가 생겼다. 내가 너 꼭 꼬신다. 나한테 목 매달게 만들거야. 이를 부득불 갈며 여름은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ㅅ-,' "지우지! 나 나재민 꼭 꼬신다!" '어어 그래 잘 안됐나 봐 얘기가?' "꼭! 꼬신다구!" 와중에 얼굴이 가렵다. 뺨을 긁으면서도 재민을 노려보는 걸 대충하지 않는다. 재민은 여름을 신경도 쓰지 않고 지쳐 발라당 누워있는 친구들 옆에 쭈구려 앉아서 이온 음료를 들이키는 중이었다.
"우와. 상당히 적극적이시네요." 물을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은 입안이 말랐다. 재민의 안색이 좋아보이진 않다는 걸 확인한 여름은 자신의 성급함을 탓했다. 그의 옷을 붙든 손에 점점 힘이 풀렸다. 이딴 말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는 걸. 재민을 잡고 있던 여름의 손은 점점 뒤로 물러나더니 등 뒤로 숨게 됐다. 야- 나재민-! 가까운 강의실 문 쪽에서 얼굴만 슥 내민 채 재민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가 보였다. 재민이 고개를 돌려 손짓을 섞어가며 뭐라뭐라 입모양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그와중에 여름은 재민의 날렵한 턱선과 목빗근에 입을 헤 벌렸다. "그래서 번호가 뭔데요?" "네?" "주신다면서요, 번호." "아! 그, 어, 혹시 핸드폰.." "잠깐 나온거라 폰을 두고 와서. 불러주시면 외울게요." "고,옹일공 팔칠육오 사삼이일이요!" "내키면 연락할게요." 잠깐 설레발 좀 쳤다. 내키지 않았는지, 외운다 해놓고 돌아서서 까먹었는지는 몰라도 여름이 지쳐 새벽에 잠에 들 때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대학로 술집-'주접'(酒楪) 신명나게 뚜껑 날라가는 소리가 들리고 거품이 요란하게 끓어넘쳤다. 안주로 나온 김치찌개 맛을 보던 여름을 지우는 고깝게 쳐다본다. 여름은 괜히 찔려서 지우의 눈치를 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최대한 지우와 제일 멀리 있는 해물파전으로 젓가락을 들이댔다. 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파전을 크게 찢다가 급하게 작은 조각으로 나눴다. "그래서 연락은?" "안왔지.." "내가 뭐랬어. 잘생겼다 했지? 그럴 줄 알았어." "보통 잘생긴 게 아니라 존나게 잘생겼다고 했어야지.." "이미 수십 번은 더 개존잘이라 했을텐데?" "내 취향으로 존잘일 줄 몰랐지..시발 진짜 어떡해." "뭘 어떡해. 계속 그렇게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 "그렇게 하다가 안됐잖아 지그음~!" 결국 제 머릴 쥐어뜯으며 쿵쾅대는 여름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다. 여름이 왜 대화를 주먹으로 하냐며 발끈하자 지우는 말하기 귀찮아서라고 둘러댔다. 사실 지우는 여름이 조금 얄미웠다. "너보다 먼저 좋아해놓고 말 한 마디 못 해본 나보단 불도저가 낫잖아." "지우지.." "뭐 뭐므마뭐모!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거침없이 털어넣는 손 동작에 걱정스런 눈길로 지우를 쳐다보던 여름이 잔을 가로채간다. 야 이년아 간접 키스 사절이야. "아주 들이대? 막 그냥 들이대애?" "어~~ 들이대~~~네 좆대로 아주 들이대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채 나온 여름과 지우는 고성을 질러가며 비틀비틀 자취방으로 향한다. 나 토 해, 토. 토 할 것 같다며 헛구역질 하는 지우를 여름은 으슥한 골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가로등 아래로 데려갔다. "우우우웨엑!" "아 디러." "으엑!" "흐미-" "흐으..내가 더러웡? 더러웡?? 치, 치사한 년.." "미안냉..그치만..그치만 나재민 너무 잘생겻서.." "누우가 그거 멀라서 이래? 짓차..너 지짜..너 인생 그러케 살지 마러라. 어? 막 친구 짝남한테 어? 들이대고오!" 다시 어깨동무. 천불이 나는지 자꾸 몸을 뒤집으려는 지우에 여름은 턱에 힘을 줘가며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서로 몸을 파닥거려가며 가서는 현관문 앞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내 대가리 누가 깼어.." "누가 깨 니 대가리를.. 니가 혼자 박았겠지." 다음 날 숙취에 쩔어 부은 얼굴로 지우와 여름은 학교를 나갔다. 느긋이 지각이 잡힌 상태였다. 셔틀에 사람이 많으니 걸어가지 말고 다음 셔틀을 기다리자 하는 게으름을 부리기도 하였다. "와 날씨 겁나 좋다." "그러게..야 나 속쓰려." "입 열지 말자. 술 냄새 난다." 턱을 목 가까이 붙이고 숨을 헙 참는 여름을 보며 지우가 낄낄거렸다. 너 꼬라지 진짜 초췌해. 혼자 듣기 서러운 말 하네. 서로를 보며 비웃다가 지우가 아무런 감정 없이 말을 꺼냈다. "근데 이러다 재민씨 마주치면 어떡해." "안돼. 진짜 안돼. 이 꼴로 만나면 진짜 뒤져." 재민의 이름을 들으니 숙취에 쩔은 두뇌가 무작정 가동을 시작했다. 초당 재민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고싶다, 이 모습으론 말고. "씨벌.." 이러면 꼭 마주치더라. 햇살이 눈부셔 찡그리는 그 모습마저 아름다운 나재민씨가 셔틀 버스를 타려고 줄을 막 섰다. 정류장 의자에 늘어져 앉아있던 여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 앉아있던 입술 색 없는 지우가 그런 여름을 보며 흐느꼈다. "우리도 줄 서자." 먼저 자리에서 끙차 일어나 손 내미는 지우에 여름도 주춤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조마조마한 심장을 붙들고 재민을 막 지나가는데 어,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나더니 여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왔다. 당신은 그 흔한 안면 인식에 오류가 없니? 떨떠름하게 맞인사를 하고 여름은 열심히 지우의 허리를 꾹꾹 누르며 빠르게 걸어갔다. "푸학 진짜 웃기다. 모자에 마스크를 껴도 알아보네? 진짜 신기하다." " 내 말이. 좀 모르는 척 하면 안되나." "너 인상 되게 강렬했나보다 야, 잘해봐라~" "조용히 해..쪽팔리니까." 버스에 올라타서도 비교적 일찍 줄을 서 앉아있는 재민 근처에 가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사람들 틈을 비집고 맨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보고는 싶어서 노란 뒷통수가 단지 햇빛이 따사로워서 따가운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쳐다봤다. "뚫리겠다, 뚫리겠어. 짝사랑 중이라고 광고하냐?" "너 조용히 좀 하라니까." "너 뭐 들으러 가?" "나 교양데이야 오늘. 심리학이랑 동서양." "으, 수고 해. 좀 있다 봐~" "우웅~" 날씨는 더럽게 좋았다. 그래서 후리하게 가리고 나온 올블랙 차림의 여름은 더 초췌해보였다. 집 가고싶다. 주머니 속 모나미 볼펜만 손 안에서 돌리며 우루루 내려가는 인파 틈에 떠밀려가듯 힘없이 걸어내려갔다. "연락도 안 하면서 아는 체 하는건 뭐야, 어장이야? 흥." 그냥 나재민 안 좋아할까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여름은 걷다 뒤를 봤다. 재민은 저와 같은 곳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걸 버스 뒷문에서 확인까지 했으면서. S# 5. 작정한 불도저 두더지 돌직구 직진 고 스트레이트 노빠꾸 운동장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런 것도 있고. 대숲에 소홀했더니 불만들이 팝핑캔디 터지듯 터져나왔다. 유일하게 딱 하나 남아있던 슈팅스타를 발견해 집어든 지우는 그저 만족스럽다는 얼굴이다. 바밤바를 맛없게 빨고 있던 여름은 한참 말없이 멍을 때리다가 동그란 머리부분을 와작 깨물며 말한다. "바밤바는 과학이야. 바에서 시작해서 바로 끝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기도 어렵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법도 모르는 사람들 얼마나 많아. 그래서 바밤바는 천재야." "이건 뭔 개소리야? 벌써 더위 먹었어? 닉값하네." "왜, 세상에 개처럼 짖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정도면 논리적인 개지." "우리 여름이 요새 힘드니, 짝사랑한다고?" "후우..아냐. 꼭 나재민씨 때문만은 아니고." "여전히 대숲에선 핫하더라." "그래?" "넌 달님이 대숲 돌아가는 판을 나보다 모르냐." "알거든." 하얀 구름과 대조되게 파란 하늘이 보고싶은데 빌어먹을 미세먼지가 눈치가 없다. 위에서 먼 곳으로 옮겨가는 여름의 시선에 운동장 한 켠의 농구 코트가 잡힌다. "저기 저거 나재민씨 맞지?" "어? 어디? 어어 맞네. 헐,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가봐. 우리 운동장 돌래?" "아니?" "뭐래. 가까이서 보고 싶은거 다 알거든? 일어나라." 엉덩이가 무거운 여름을 억지로 일으키는데 성공한 지우가 제가 더 신나서는 팔짱을 껴왔다. 여름은 핸드폰의 까만 액정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운동장 트랙 그냥 산책하는거야, 절대 나재민 보려고 이러는 거 아니고 응. 정직한 여름의 몸은 이미 재민에게로 대놓고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중이었다. 땀 때문인지 재민의 상기된 얼굴이 반들반들했다. "헐 미친 야. 온다,온다,여기로 온다. 미친." 지우가 옆에서 팔뚝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름은 바짝 긴장해서 손에 꽉 쥔 바밤바 막대로 물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재민이 다가와 손을 가리켜서야 알아챘다. 지우가 어색하게 아무말로 핑계를 대가며 자리를 비켜줬다. 후다닥 달려가는 신난 뒷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보다 그대로 재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 농구 하시나보네요!" "네. 보시다시피." 흔들림 없이 올곧게 여름만 뚫어져라 보는데, 여름은 그 눈빛을 알게 모르게 피하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아무 감정이 없기에 저럴 수 있는건지 뭔지. "저, 나재민씨 좋아해요." "네에. 감사합니다." "헐. 너무 아무렇지 않으신거 아니에요? 고백 받아본 거 원투데이 아니다 이런건가?" 여름의 말에 재민이 그제서야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마치 저가 강압적으로 따지고드는 입장이 된 것 같아 여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제 안 좋아하려구요,나재민. 저 나재민 안 좋아해요." "왜요?" "글쎄요, 아무튼 안 좋아해요." "삐졌어요? 연락 안 해서?" "네? 아니거든요, 그런거?" 재민이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별 수 없죠.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친구분한테 가보세요." "헐, 이렇게 쿨하게?" 안녕- 손까지 흔들어주는 재민에 여름은 어처구니가 탈탈 털렸다. 우리 티용이도 내 통장 이렇게까지는 안 털어간다. 고양이는 액체 동물이라 그랬다. 아무리 잡아도 늘어나고 빠져나간다고. 재민이 꼭 그랬다. 대놓고 잡히려 하지도 않으니 여름은 오기가 생겼다. 내가 너 꼭 꼬신다. 나한테 목 매달게 만들거야. 이를 부득불 갈며 여름은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ㅅ-,' "지우지! 나 나재민 꼭 꼬신다!" '어어 그래 잘 안됐나 봐 얘기가?' "꼭! 꼬신다구!" 와중에 얼굴이 가렵다. 뺨을 긁으면서도 재민을 노려보는 걸 대충하지 않는다. 재민은 여름을 신경도 쓰지 않고 지쳐 발라당 누워있는 친구들 옆에 쭈구려 앉아서 이온 음료를 들이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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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누가 너 꼬신다고 소리 지르는데. 알아 모르는 척 해 줘. 새끼 쳐웃는 거 봐. 어휴 인기 많아서 좋겠다. 그래? 나 웃고 있어? 그 뒤로 여름의 짝사랑은 전투적이었다. 그러나 재민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오죽하면 둘 더러 이보다 죽이 잘 맞을 수 없다고들 했다. 그 말에 여름은 조만간 이뤄질거라 했고, 재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저 좀 좋아해보실래요?" "각박한 세상에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할까요." "저랑 학식 딱 일곱 번만 먹읍시다!" "학식 알레르기 있어요." "그런게 어딨어요." " 아무튼 있어요." " 그냥 싫다고 말해요!" " 싫어요." "아.. 싫다고 말하래놓고 세상 상처 다 받은 얼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으면 좀 먹어줘요.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해야겠어?" "본인이 나 좋아하는 입장이면서 거 되게 유난이네요." "트렌치 코트 한창 입고 다닐때요, 되게 잘 어울렸어요." "알아요." "네?" "안다구요,잘 어울리는거. 그래서 멋지다는 것도 알고 일부러 자주 입어요." 아무리 당당한 짝사랑이라고 해도 여름이 어쩔 수 없이 제가 더 많이 좋아한다고 느낀건 재민의 뻔뻔한 모습에서도 저가 흐믓하게 웃을 때였다. "허, 참 나. 내가 당신 얼굴만 보고 쫓아다니는 줄 알아요?" 재민이 지그시 쳐다보면 어디 홀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맞아요. 잘생긴거 최고니까요." 재민은 여름이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 할 때마다 그저 웃어주었다. 예쁘게 웃지 말라고, 그러면 더 반한다고 말하면 윙크를 하며 반하라고 하는 거라는 흔한 멘트를 날렸다. 여름은 그것마저 좋았다는 거. 자기도 느꼈다. No answer.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결국 마주쳐버렸네요." "저 피하고 계셨어요?어쩐지~ 요새 안 보이더라~" "장난이에요. 그럼 이만." "머리! 좀 뽀글뽀글 하네요?" "네. 동기가 고데기 해줬어요." "잘 어울리네요. 예뻐요. 예쁜 김에 저랑 데이트나 할래요?" "와아..대박이다 진짜. 그거 알아요? 나 만나면 어떤 신박한 말을 할 지 이젠 기대가 돼요." 그리고 재민은 아무래도 윙크를 해주는 거에 맛이 들린 모양이었다. 여름은 그때마다 숨이 가빴다. 존나 좋아서. 어떤 날은 주접 이라는 자주가는 술집에서 진탕 마시고 재민을 불렀다.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기까진 했는데 그렇게 연락을 많이 하지 않았다. 여름은 그 날 처음으로 재민에게 전화라는 걸 걸었다. 제 손으로. "원래 남자들은 지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못 잊는 다잖야.." 그 날 왜 그렇게 이기지도 못할 술과 동기화가 될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를 했냐, 재민이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꼬추 달린 놈들 첫사랑만 순정이고 고결이냐? 나도 내 첫사랑 영안실 들어갈 때까지 못 잊어어!" 처음 좋아했던 여자를 잊지 못해서 아직까지 여자친구를 만들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 말에 여름은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기분을 처음 느껴봤다. 의지가 푹 꺾이더라. 안 사귀는 거라잖아. 그 사람을 못 잊어서. 얼마나 좋았으면 안 사귀냐고. "첫사랑? 너 모솔이라며." 여름의 등을 토닥이던 지우의 손이 멈춘다. 여름이 지우의 눈을 피하며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짜..짝사랑도 처음이면 첫사랑이지 뭐." "주접 떤다 진짜. 아니에요, 술집 이름 비하 아니에요 사장님." 직접 안주 서빙을 하던 사장님의 상처 받은 표정에 지우가 열심히 손을 저었다. 여름이 한창 사람 구분 못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 건 욕밖에 없을 때 연락을 받은 재민이 크게 오르내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곤 멀리 보이는 여름에게로 다가왔다. 지우가 재민에게 여름을 넘겨주고 삐진 사장님을 달래러 갔다. "이여름." "지우지 왜 나 성 붙여서 불러..정 업떠.." "이여름 나 봐. 나재민 왔어." "어? 미친 나재민이 왜 이써?" "니가 불렀잖아." "그래? 헐 도랐네. 야아 나재민 존나 나쁜 새끼야아!" 재민은 말없이 여름의 솜방망이질을 받았다. 살짝 살짝 밀리면서도 재민은 눈에 여름만 담았다. "못됐어 나재민..못됐어..진짜 못됐어.." "응 알아. 그런데 너도 알고 있잖아. 알면서 좋아하잖아, 못된 나재민." 말로는 전부터 가볍게 속상해, 짜증나, 미워 라는 말을 재민의 이름 뒤에 붙이고 살았다. 그래도 실상 받는 타격은 그 말이 담은 무게만큼 무겁진 않았다. 그랬는데. 여름에게 오늘은, 참 슬픈 날이었다. S# 6. 열 번 찍히고 싶지 않았던 나무 그만 받아줘라. 불쌍해. 그런 연민으로 시작하니까 네가 맨날 차이는거야 동혁아. 욱한 동혁의 발길질을 쉽게 피하며 재민은 동방 문을 열고 나갔다. 뒤에서 그래서 오늘 방연과랑 과팅은! 이라고 외치는 동혁의 외침은 자비 없이 닫히는 철문 소리에 먹혔다. 봄 기운 느낀지도 얼마 안됐는데 뭐 했다고 벌써 종강이 다다음주였다. 녹음이 물씬 나는 교정 안 작은 공원을 거닐다가 벤치에 혼자 앉아 멍을 때리고 있는 여름을 먼저 발견했다. 순간 멈칫하던 발이 고민을 잠깐 하다가 여름에게로 향했다. "이여름-" "말 걸지 마. 나 광합성 중이거든." "그럼 갈게." "가라고는 안 했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빙글 돌아 히죽거리며 여름의 옆에 앉았다. 유독 여름이 앉아 있는 벤치 주변엔 대나무를 많이 심어놓았는데, 가는 대나무들 사이로 조각 조각 비치는 햇빛에 대나무잎의 그림자가 여름의 전신에 찍혔다. 재민은 그 모습이 딱 그림같다고 생각했다. "나재민." 재민이 대답 대신 얼굴을 여름 쪽으로 돌렸다. 여름은 여전히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턱을 들어올린 채였다. "너 첫사랑 못 잊어서 좋다는 사람들 안 받아주는 거라면서." "..." "내가 생각을 많이 해봤어. 처음엔 그게 뭐야 싶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로 마음이 기울더라. 나무 입장에선 얼마나 또 빡치겠어. 자기는 그냥 이대로 있고 싶은데 도끼로 자꾸 찍어대니." "그래서, 포기한다고?" "..포기할까? 그럴까?" "그걸 왜 나무한테 물어봐. 도끼 주인은 너잖아." "도끼는 내려놓을게. 대신 뿌리째 뽑아다가 우리집 마당에 어떻게 이사는 안되겠어?" 딴건 몰라도 재민 웃기기엔 도가 튼 건 확실했다. 박수까지 치며 웃는 재민을 보며 여름은 해탈했다. 그래, 웃어라 웃어. "날씨 좋다." "웃다가 하는 소리가 그거냐?" "날씨가 좋은데 그럼 뭐라고 해." "그러네.." 사이, 바람이 불었다. 새끼 손가락은 언제 걸었는지 동시에 두 입이 다물렸다. "가을이 제일 좋은데." "그래? 난 여름이 제일 좋던데." "뭐? 말 똑바로 해줄래? 오해하거든?" 여름이 좋다는 재민의 말에 여름이 부러 큰 소리로 나무랐다. 재민은 여전히 눈꼬리에 장난이 가득했다. "난 여름이 좋아." 의도적으로 말과 말 사이에 긴 바람이 지나가게 내버려둔다. 강조하고 있다. "그 여름도 좋고, 이 여름도 좋아." 의도적인 웃음이다. 대놓고 홀리라고, 반하라고 꺼내든 무기다. "친구가 말을 했으면 답을 돌려 줘야죠, 여름 어르니." 나무 벤치의 끝 부분을 만지고 있던 손을 주먹졌다. 여름의 귀는 타들어가기 일보직전이었고, 햇빛은 그렇게 뜨겁지도 않았다. "나 실은 문대숲 달님인데, 유교과 나재민 여자친구 있냐는 글 대신 전해만 줬거든? 근데 전해만 주기 싫어졌어. 직접 말하고 싶어졌어. 여자친구 없으면 나랑 사귈래?" 재민은 언제나처럼 빙긋이 웃었다. 자리에서 말없이 일어나더니 손을 내민다.앞으로 나 찾는 글 없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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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 선물 같은 거예요. 럽미럽미는 드럽게 안 써지는데 참.. 이 날 재민이 제 인생 재민이라서 꼭 써보고 싶었어요 ㅎㅎㅎㅎ 좀 있다 종이 호랑이도 올릴게요 일 하면서 올리려니까 쪼까 힘에 부치네요 ㅋㅋㅋㅋ |
인생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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