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아버지. 도를 넘으시는 것 같은데요"
"뭔 도를 넘어. 딱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잘 하고 있으니까 네 할일만 해."
"이렇게 되면 병원한테 좋은점은 뭡니까?"
"로얄. 로얄이 되지. 더 럭셔리한. 부의 상징이 된다니까?"
김재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저 심증뿐이어서 가만히 있었던 민석이었다.
3차이자 마지막 신축공사회의에서는 레지던트 투표와는 다른 신경과, 내과, 응급의학과가 들어갔다.
그리고, 이에대한 브리핑중, 내과에 들어간 기업 투자의 어마어마한 금액을 보고 말았다.
서류를 던지며 그만하라는 아들의 외침을 듣는다면 시작도 안했을 재준이다.
민중의 병원이 되어야 하는 병원을 부의 상징의 럭셔리한 병원을 만들겠다는,
더 나아가 그 병원의 중심이 되겠다는 재준의 야망은 점점 까맣게 색칠되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까매지고 있었다.
그저 이 일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아들이 괘씸할 뿐이었다.
"그러면 막아야겠네요."
"뭐를?"
"아버지를요"
"가만히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막는거야. 아들이라는 자식이 내 일을 안돕는것만으로도 마이너스니까"
"준면이가 송도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효도하려고요"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구만"
"저도 효도좀 해아겠네요."
"....?"
"아! 아파!"
"참아!"
"...씨이..."
",,,많이 아파?"
내가 퇴원을 하면, 꼭 드레싱에 더 신중하는 의사가 되리라고 결심했다.
가위에 찔린지 일주일쯤 되었나-
몸은 튼튼해서, 곧잘 일어나고 마취나 정신이 한번 나갔다 들어온 사람 치고는 굉장히 쌩쌩했지만,
그래도 아픈건 아픈거라고, 허리에 힘을 못주겠더라.
게다가, 드레싱이 이렇게 아픈건지는 몰랐다.
아니, 오세훈이 해서 그런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박교수가 지키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한시도 안떨어지고 있었다는 간호사의 귀띔도 놀라웠고,
"야, 너 울어?"
"미친, 내가 왜우냐?"
.....죽어도 안울었다는 오세훈이었지만, 여튼.
코가 벌게져서 코맹맹이 소리로 너 죽는줄 알았다며 가운 휘날리며 뛰어온 오세훈도 심하게 놀라웠다.
동기니까...걱정하는건 맞는데...울 정도라니.
게다가, 외상외과 레지던트가 드레싱을 해 준다고 가져오는 모든 장비들을 저가 가로채서는,
죽어도 지가 드레싱을 하겠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었다.
이세상에서 제일 귀찮은게 드레싱이거든. 환자 몇십명의 붕대를 하루에 매일 간다고 생각해보라. 한명이라도 덜하고 싶어지는게 드레싱이다.
아니, 그러면 좀 잘 좀 하던가!
살살 하는데 아픈건지, 외과의사 손이 왜그렇게 투박한건지,
붕대를 묶는데 숨이 안쉬어질 정도로 꽉 묶어서 다시 푸르질 않나,
또 너무 살살 묶지 않나. 지금은, 거즈를 너무 꽉 대서 아프다고 소리지르니 참으라고 도리어 성질을 부리다가, 아프냐며 슬쩍, 거즈를 다시 고쳐 댄다.
"야 근데,"
"어?"
"왜 니가 하냐, 드레싱?"
"싫으냐"
"아니이- 그건 아닌데, 너 안바빠? 여기 흉부외과랑 멀잖아"
"이 뱃살 레지던트들한테 보여주려고?"
.....시발,
옆으로 누워 같이 눞혀진 내 살들(...)을 콕콕, 찌르며 큭큭대길래, 확 머리채를 잡았더니, 악-! 하며 단발마의 비명을 지른다.
매를 벌어요. 매를!
"그래도 괜찮아"
"뭐가, 뜬금없이"
"살좀 쪄라. 그래도. 너 요즘 죽만먹어서 그런가 야윈것 같아"
오세훈씨, 치매세요? 아까는 살 많다면서 놀리더니, 이제는 야윈것 같다며 걱정하는게,
병주고 약주냐아? 살짝 삐딱하게 시비를 거니, 피식- 웃기만 한다.
"야, 그래도. 나 진짜 너 죽는줄 알았어"
"뭘 죽어. 그것가지고. 안죽어"
"그래도. 진짜 내가 얼마나 놀랬는 줄 아냐? 너 수술방 들어가있는동안, 내가 그날 당직만 안바꿨더라면- 그생각으로 얼마나 죽을뻔했는데"
"괜찮아. 남이 다치는것보다 나은거지"
"왜 그게 괜찮은거냐. 바보야? 니가 다쳤는데? 넌 니가 나한테....됐다"
갑자기 대화를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더니, 말을 하다가 만다.
뭐- 내가 너한테 뭐? 뚱하게 쳐다보니, 입맛을 다시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마지막 붕대 매듭을 맨다.
"빨리 나아"
"...."
"너 없으니까 죽겠다."
"...?"
"힘들다고-"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거야? 아니면 내가 없어서? 능글거리며 얼굴을 드리밀고 애교아닌 애교를 피우니,
정말 피식-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근데 그게 비위상하는 비웃음이 아니라, 진짜 맑게.
눈꼬리가 휘어져라 큭큭 대며 웃어서 나도 흐히히- 하고 웃으려는데,
"담당의 누구냐, 약 오더 잘못했냐?"
... 이런 멍멍이 같으니라고. 확 그냥 머리채를 잡으려는데,
"아따. 김여주. 입원하고 당분 먹으니까 힘만 쎄졌나. 세훈이 잡네. 잡아"
"아 얘가!!!"
"세훈이가 다 니가 좋아서 그러는거야. 관심의 표현 몰라? 쟤가 그래도 너 쓰러졌을때..."
"아 백현쌤.종대쌤 왜 오셨어요?"
"하여간, 쯧쯧. 뭐긴 뭐야. 오늘 송도 가는 교수님 최종발표나서 그렇지. 너네 뭐 들은거 없냐?"
"없는데요-"
"뭐야아- 연구실하고 수술실만 다니는 우리나 맨날 뺀질나게 회의하고 회진다니는 너네하고 다른게 뭐야? 그만큼 많이 다니면 소식도 빨라야지이!"
"아 내가 뭐랬어. 김종대. 쟤네를 믿느니."
"근데요, 경수쌤은요?"
"우리 여주는, 경수밖에 없어요. 경수밖에. 야. 그거 꼬맨거 나야!"
"감사합니다아-"
...순식간에, 산만해진건 기분탓이 아닐꺼다.
맨날 삼총사같이 다니던 셋 중에 경수쌤이 없어서 물어보니, 또 꼬리를 물고 넘어진다.
진...진짜! 순수한 의미였다고!
사실, 좀 섭섭(?) 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외상쪽이라 흉부외과에는 관련이 없었지만, 삼일에 한번은 꼭 와서 체크를 하고 가는 박교수도 있었고,
심지어 웰치스를 들고 병문안이랍시고 와서는, 내 담당의를 잔뜩 기합주고 떠난 민교수도 있었다.
게다가 매일매일 드레싱을 해준답시고 와서 놀아주고 가는 세훈이도 있었지만,
여튼, 사고나고 처음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말고는 한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경수쌤이었다.
...내가 걱정도 안되나?
걱정된다며 여기를 자주 오는것을 기대하는 나도 웃기지만, 여튼, 기분이 좀. 뭐랄까....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친한 친구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놀다 당연히 그 집에서 자는 줄 알고 이부자리를 폈는데 왜 안가냐며 친구가 고개를 갸웃? 하는 상황을 맞이한 기분이랄까.
당연히 그럴 줄 알았고, 내심 원했는데 안그러니까 나오는 토라짐이었다.
"도경수, 지금 정신 하나도 없어. 세미나에, 논문에, 거기다가 기업쪽에서 오퍼받은 연구도 해야되고 오늘은 컨퍼런스갔어. 하루에 한번씩 너 상태 물어본다. 야. 아주 견우직녀 나셨어요"
"야, 도경수하고 얘는 최소 썸이야 최소 썸. 어휴, 나 그때 얘 수술하고 나왔는데, 몸에 흠집 나면 의료소송걸꺼라고 했다고오!"
"아아아 시끄러워요. 지금 발표 났을텐데, 한번 들어가봐요. 여기 와이파이 되지?"
"응."
바빠서 못오는거였구나- 순간 내 마음이 창피해 지려는데,
종대쌤과 백현쌤의 놀림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니에요-! 하고 부정을 하려는데, 순식간에 내 노트북으로 모두가 시선집중된다.
"헐, 신경과하고 내과하고 응급의학과가 들어가네. 내과 뜬금없다..원래 외상학과가 더 어울리지 않나?"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하나보지...보자. 교수명단."
"성형과, 준교수님 진짜 가신데? 왜???"
"몰라. 다 뜻이 있으셔서 가시는걸꺼야."
"확실한거에요?"
"어, 명단도 떴다. 자, 신경과-"
"강민혁, 김강섭, 김민석......????????"
"민교수님이요?????"
"이번엔 너냐?"
"넌 왜가냐-"
"너만 효도하냐? 나도 효도좀 해보게"
"아이고, 이런 효자들좀 봐. 나도 아빠보고싶어지네. 야, 빨리 꿍꿍이를 말해. 김준면, 알고 있었어?"
"아니- 알았으면 말렸겠지"
송도를 간다, 그말인 즉슨, 딱 두가지다.
본원에서 무슨 싸움을 하던 상관을 안하겠다는 뜻,
아니면,
따로 힘을 키우겠다는 뜻.
과장들이 기업의 힘을 빌려가면서 입주에 열을 내는 것은 그 과의 성과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있어보이니까.
그리고 덤으로, 이런 감투싸움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자원에서 가는, 그런 거름종이의 역할도 해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결코 지들은 안간다. 힘의 중심이 외곽으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로 힘이 길러질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준면아,"
"어?"
"너는 아버지 어떻게 구할거냐."
"......"
"나도 우리아버지좀 구하고 싶어."
"....야"
"우리 병원도 구하고 싶고."
"......"
"우리, 소리없는 힘이 필요할것 같아."
".....김민석,"
"너도 동의하잖아. 그 생각하고 있을 거고"
"...여주는"
"......걘 왜?"
"아니, 너 여주 좋아하잖아. 못보잖아. 가면"
"때가 아닌 인연인거지. 그래도 다행이야, 감정이 정리될 수 있을정도여서. 완벽히 정리된건 아니지만, 어쩌겠어. 내가 할 일이 있는데."
덤덤히 말하는 민석의 눈에서, 안타까움이 살짝 묻어나다가, 다시 날카로워진다.
단순히 제 친구의 여자친구도 아니고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라고 해서 포기하는 민석은 아니다.
그정도로 이 일이 중요한 동시에, 민석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찬열 너는 여기 본원에서 과장들 동태좀 살펴주고, 혹시 되면 너네 아버지 병원쪽 기업 후원에 관련해서 좀 알아봐주라. 너네 아버지가 필요할 것 같아"
"김민석, 그래도 너무 일 크게잡지마. 서로 안좋아"
"생각해놓은 구도가 있어. 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될것 같아. 들어봐봐"
애써 이어진 인연을 차고 아버지를 위해 새로운 길을 떠나는 의사 한 명과,
힘이 약해진 아버지를 위해 천성과 맞지 않는 일을 위해 떠나는 의사 한명,
그리고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앞에서 막아주고 보고해줄 의사 한명이, 모였다.
셋의 눈이, 묘하게 빛난다.
"이제 천천히 걷는 연습하셔야해요"
"거 봐. 내가 뭐랬어."
"아픈데...."
"장이 자리를 잡으려면 근육이 어느정도 있어야하는데, 너무 격한 운동말고, 천천히 걸어다니면 근육이 붙을겁니다."
알아, 나도 안다고!
오랫만에 와가지고 갑자기 나보고 걷자는 민교수를 보며 심각하게 당황했다.
저...저...수술한 사람인데요.....
싫다고 징징대니, 레지던트까지 와가지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런다.
아, 안다고요. 어끄제부터 걷기 운동 하라고 했다고!
결국, 소금이 되어 일어나서 걸으려고 엉거주춤 일어서니, 너무 힘이 들어가지 않게끔 팔을 잡아주는 민교수님이다.
........
"좀만 쉬었다 가요"
제발, 제발 쉬었다 갑시다.
한마디도 안하고, 그대로 걷기만 하는 침묵이 무거워서,
그리고 내 배도 점점 아파오길래 벤치에 냅다 앉아버리니,
잉? 하는 표정으로 보다가, 푸스스- 웃으면서 옆에 앉는다.
"교수님 너무한거 알아요?"
"뭐가"
"송도 가는거"
"그게 왜 너무한거야"
"왜 가요...."
"그러게. 왜갈까."
"그게 뭐야. 진짜 준교수님이 가셔서 따라가는거에요? 백현쌤이, 둘이 부부라고 하던데"
"미친놈"
"아 그럼 왜 가는거에요?"
"나중에 보면 알아."
"치...가끔 놀러가면 커피 주시는거에요?"
"나 갈 날 아직도 멀었거든? 그리고 무슨 레지던트 3년차가 쉴 날이 있어?"
"아 농담도 못해...."
"박교수랑 잘해봐."
"...예???"
"좋은 애야. 혼자있잖아. 옆에서 지켜줘."
"..교수님들이 애도 아니고..."
"그래도 니 맘가는대로 해"
"....."
"넌 똑똑하잖아. 착하고."
갑자기 박교수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를 않나,
내가 똑똑하고 착하다고...하지를 않나.
처음듣는 직설적인 칭찬에 깜짝놀라 바라보니,
슬쩍 바라보면서 밝게 웃어주는 민교수님이다.
볼을 쭉- 늘리면서,
논문 준비는 잘 되가냐?- 라며 다시 현실로 타임라인을 돌린다.
이사람이, 심장을 들었다 놨다가, 뇌를 주물럭거리고 있다.
실밥을 푸르고, 어느정도 걷는 폼도 원활해지고 있었다.
완전히 일을 놓을 수 는 없었기 때문에, 연구작업부터 슬슬 시작하면서 일에 제동을 걸 고 있던 중에,
"오늘부터 병원 펠로우들 컨퍼런스 와"
"나?"
"어. 오고, 필기하고, 정리해서 펠로우들한테 검사 맡아야 돼"
열심히 물리치료실에서 걷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오늘부터 펠로우들이 교수들과 하는 컨퍼런스를 참관하라는 전달만 해주고는 수술실을 들어가야 한다며 나가는 세훈이다.
자기는 저번주부터 했는데, 박교수가 나는 회복을 한 뒤부터 하라고 했다나 뭐라나.
세시간정도의 컨퍼런스인데, 두-세명정도 한다고 하더라.
그...근데 환자복 입고 가야하나?
"김여주! 너 오늘부터 참관이야?"
....결국, 사복으로 갈아입지 못했다...
용모를 단정하게 했어도 워낙 통이 큰 환자복이다 보니, 옷 맵시도 안살고, 확 튀어버리더라.
게다가, 은근히 우리 병원에서 유명한 사건이 되어버렸는지, 나를 보면 수근대듯이 모이는게, 기분이 짜증아닌 짜증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해준것은, 진짜 오랫만에 보는 경수쌤이었다.
앉아서 책을 보는 척 하는 내 옆으로 다가와서, 놀란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몸은, 괜찮아? 가보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보고 싶었잖아요-"
"나?"
진짜 미안하다는 듯이 말끝을 늘이는 경수쌤이었지만,
왠지모르게 섭섭함과 투정 부리고 싶은 애같은 마음에 보고싶었다니까 민망할정도로 깜짝 놀라며 눈이 커진다.
왜, 왜... 보고싶으면 안되는거야?
"나도, 보고싶었는데. 통했네"
"유치해-"
"알아. 잘봐라. 너도 못봐가면서 한 논문준비를. 나 오늘 1차 첨삭발표야."
"헐. 대박. 힘내세요."
"잘 듣고 요약해라. 검사할 때 글자 하나라도 이상하면 리턴시킬꺼야"
"다른쌤한테 갈거에요."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들이 들어오신다.
"일단, 환자들 보고 부터 해."
"네."
"...그다음, 천용재 환자입니다."
순식간에 찾아온 침묵.
그리고, 발표하는 세훈이도, 잠시 나를 쳐다본다.
"...말해."
낮은, 박교수의 말에, 천천히 다시 말을 이러간다.
"김여주 선생을 가위로 찌르고 도주 한 날, 그 당일, 병원 앞 큰길가에서 쓰러져 다시 실려왔습니다. 폐에 있는 삽입관과 부착 약품들이 다 제 기능을 하기도 전에 격하게 움직여서
반대쪽 폐에도 급성 기흉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수술 집도는 누구야?"
"도경수 선생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처리는"
"급성기흉의 경우 약을 처리해서 구멍을 매꾸고, 삽입관은 새로 다시 끼웠습니다. 현재, 회복중입니다."
"다음환자."
다 나은줄 알았는데.
천용재 얼굴을 보자마자 올라올것 같은 헛구역질에 고개를 숙이고 안 듣는척을 하니, 옆에 있던 경수쌤이-
"괜찮아? 나갈까?"
라며 손목을 잡아온다.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해도, 어지러운건 어지러운거다. 그사람 보고가 끝날 때까지 경수쌤이 손목을 잡고 있었지만, 끝내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환자는 철골에 몸이 관통되어 소장 파열 및 3번,4번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간을 찌르게 된 복합성 외상환자입니다. 가장 심각한 점은 그 철골로 인하여 파상풍증세가 왔다는 것인데,
본 파상풍 균이 일반 항생제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선 칵테일 요법을 통해 (칵테일요법: 여러가지 항생제 및 치료약들을 섞어서 투여하는 법. 에이즈 치료에 많이 쓰임) 막아본 상태이지만,
파상풍을 일으키게 한 균들에 대한 정보와 약품에 대한 연구가 시급합니다"
"지금 투여하고 있는 약품들이 무엇무엇인데?"
"면역 글로불린을 투여한뒤 페니실린과 세팔로스포린을 투여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항생제를 많이 투여하면 다른 부분에서 내성이 생겨서 악영향을 주기때문에 많은 양을 투여하지는 못했습니다.
외상때문에 소장이 많이 약해졌는데 소장근에 염증이라도 생길 수 있어 합병증도 의심이 되고요."
"그러면 외과적 수술을 통해 균의 발견부분을 절개하는 방법을 쓰면, 칵테일을 쓸 정도로 강한 질병이 되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그 방법은 파상풍균이 어디에 발병했는지에 따라 방법 이용여부를 판단해야하기 때문에 좀 더 대중적인 방법을 고안해 보았습니다."
"약물적인 방법만?"
"아뇨. 외과적인 수술방법도 고안해 보았습니다."
"시작해 봐."
환자 브리핑도 끝나고, 펠로우들의 발표시간, 마지막 경수쌤의 발표는...
한마디로, 국가대표 탁구경기를 보는 듯 했다.
안그래도 펠로우 킬러로 소문이 자자한 박교수를 지도교수로 두어서 그런가, 더욱 더 날카로워진 질문은 마치 스메싱을 연상케 했고,
여유로우면서도 바꾸어야 할 점을 받아드리면서 부드럽게 이어가는 경수쌤.
한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디스커션에, 죽어나는 건 내 손가락이었다.
"잘하고 있나-"
병동에서 준 식탁으로 준 앉은뱅이 책상에 책들을 너저분하게 깔아 놓고,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데, 장난스런 말투로 찾아온 경수쌤이다.
"너무했어요-"
"뭐가 또 너무했어"
"정리할게 너무 많아요! 이것봐요. 아까 받아적은거. A4양면으로 2장 나왔어요.... 이거 언제 다 조사해서 정리해요...."
"지금 하고 있네. 어려운거 있으면 물어봐. 자문 찬스 줄께"
"뭐래. 나 삐졌어요."
책상 반대편에서 턱을 괴고 빤히 쳐다보면서 웃는 경수 쌤 얼굴에, 순간 심장이 멎을 뻔 했지만,
내가 아픈 동안에 한번도 안 온게 또 떠올라 추책없이 삐졌다며 토라진 척을 했다.
사실, 다 풀리긴 개뿔. 애초에 섭섭하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 경수쌤 앞에만 가면 나한테 관심을 달라는 표시를 하고 싶어진다니까?
사실, 입원을 한 기간에 김칫국을 한사발 드링킹해가면서 나름 내 감정에 대한 고찰을 해봤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해보니, 나에게 호감이 1%라도 있어보이는 사람이 박교수와 경수쌤인 것 같다.
민석쌤은, 있는지 안있는지 모르겠지만...잠깐잠깐 사람 심장 후드려 패는 능력에 놀아난건 내 죄니...큼큼
세훈이는, 가끔 챙겨주는게 고마운 친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랬을 때, 박교수와 경수쌤은 각각의 매력이 있었다.
경수쌤은, 진짜 나를 잘 받아줬다. 어르고 달래고. 게다가 잔잔한 구석이 있어서 편안해지고.
민교수는, 정말 화르륵 와서 떨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면, 경수쌤은, 찬찬히, 꾸준히 꾹꾹 누르는 떨림이랄까- 나 뭐라는거지, 아무튼!
박교수는 아무래도 잘 리드를 한다고 해야하나.
내 기분에 맞추어서 시원시원하게 리드를 쫙, 해주는 것도 있었고, 아무래도 수술실에서 그 나른한 눈꼬리는,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큰 키에 시원한 얼굴도 한 몫을 한다.
거기에다가 내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바쁜 시간 쪼개서 계속 컨디션을 체크해주고, 항상 볼을 툭툭- 두드리며 웃으시는 그 얼굴도 내 심장을 부여잡게 만든다.
아맞다. 그리고 잊고있었던 '날 사랑해주세요' 한마디와 함께 뜸해진 핑크편지의 주인공 누군가도.
....이렇게 되면 뫼비우스의 띠다.
돌고 돌아, 존나 문어발같잖아!
그래도, 이제는 내가 진짜 연인의 감정으로 좋아서 설레는 건지, 아니면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드라마적인 상황에 대한 설레임인지 확신이 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티비프로그램중 마녀사냥? 거기에 내보내고 싶을정도로 햇갈렸다.
누군가가 한명이 나서서, 내 마음속 햇갈리는 그린라이트를 박력있게 눌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확신을 달라고 확신을!
"삐졌어?"
"....."
"왜 기분이 좋지 난?"
"....."
"어떻게 풀어질까, 이렇게 해볼까-"
턱을 괴고 앉아있는 이 동글동글한 얼굴에, 내 얼굴은 주책없이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푸스스- 웃으면서, 어떻게 하면 풀어질까- 이러더니,
정말 순식간에,
쪽-
옅은, 비누 향이 코앞에서 슥-
말캉- 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에 닿고,
놀랄 새도 없이 떨어져 다시 웃는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풀려?"
"...."
"얼굴은 빨개져서- 이쁘네."
경수쌤이, 확실하지 않았던 내 그린라이트를 제 쪽으로 향하게 고정시켜버렸다.
더 사랑하는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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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최근글에 박력있게!
**************암호닉*************이렇게 달아주세요!! 최근글에 없는 암호닉은 죄송하게도 제가 등록을 못할수도 있습니다. 꼭꼭, 최근글에!!!!!!!
러브라인은 어느정~도 마무리를 짓고, 아버지를 위해 싸우는 세 남자이야기 중심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15화로 예상되어있었던 것이, 분량을 많이 넣다보니 번외를 포함해서 한 3~4화정도 단축될것 같아요.
7월 말을 기점으로 완결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시즌 투, 보다는, 새로운 컨셉을 잡아 가는게 어떨까 싶어요.
나중에 구체적으로 독자님들의 생각을 물어보겠지만,
생각으로는 이런 n각 관계로 청화대 경호팀하고 검찰팀 한번꾸려볼까 생각중(등장인물 다를수도 있어요)인데, 어떠신지요?
항상 달아주시는 암호닉분들만 달아주시구! 암호닉 한번 신청하고 댓글 한번도 안달아서 제가 기억 못하게 만드시면 아니되오!ㅜㅜㅜ
꼭 암호닉이 아니어도, 항상 응원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