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준회
때는 바야흐로 작년 체육대회였던 것 같다.
우리 학교 체육대회는 여러 반을 한 팀으로 해서 총 여섯팀으로 팀전 형식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체육대회라 모르는 얼굴이 대다수였다.
구석에 앉아 예선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툭툭 치는 것이었다.
"뭐야."
"야 할 것도 없고 심심한데 한 대만 피고오자."
짜증을 맘껏 부리며 뒤를 올려다보니 김동혁이 서있었다.
체육대회랍시고 기집애들이 해주는 사과머리를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같이 가기 싫어졌다.
하지만 한 대만 피고오자라는 말에 급 땡기는 걸 봐서 맘에 내키지는 않지만 저 놈이랑 같이 가기는 가야겠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엉덩이를 툭툭 턴 후 가방에 고이 모셔놓은 돛대를 꺼낸 뒤 호주머니에 잘 숨겼다.
동혁을 따라 뒤뜰로 간 뒤 입학식 날 부터 찾아놓은 사각지대로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데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씹."
선생만 아니길 빌자. 학기 초부터 걸리면 귀찮아 질테니.
점점 말소리와 함께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거슬렸다. 시발, 버려야 하나. 돛댄데 시발.
김동혁은 벌써 버린지 오래다. 아 나 어쩌냐.
벽 사이로 드러난 모습에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뒤에 숨긴 담배가 신경 쓰였다.
앞머리가 없는 긴 생머리에 동그란 얼굴형,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훌쩍거리며 나랑 똑같은 반티를 입은 여자애가
절뚝 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김동혁은 그 모습에 얼마 피지 못하고 버린 담배에 대한 미련을 가득 담은 채 하나를 더 꺼내고 있었다.
"흐허어어어엉.. 오빠.."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쏟아내는 것도 벅차보이는 자그마한 몸이 떨리며 점점 나와 가까워졌다.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 지나가던 여자애는 내 뒤에서 흘러나오는 담배냄새에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떴다. 그러고는 마주쳤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실 부끄러워서 말은 못하지만 밤마다 생각난다.
그 눈이 어땠는지 역설하자면 그 날 바로 집에가서 쓰지도 않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는 얘기만 들어도 알 것이다.
"콜록.. 훌쩍.. 켁..켁.. 훌쩍"
내 담배냄새가 독한지 기침을 하며 우는데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손에 들려져 있던 담배를 버렸다.
주위에 뿌옇게 흩어진 연기를 온 힘을 다해 쫒았다. 생각도 할 겨를 없이.
"풉.."
미친 듯이 온 몸을 사용해 연기를 쫒고 있는데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던 행동을 멈추고 웃음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양 볼과 코가 빨개 진 채 차마 흘러나오지 못한 눈물을 머금은 눈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입술과 함께 휘어졌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생각도 할 겨를 없이 멍하니 얼굴을 쳐다봤다.
순간 빨개져 오는 얼굴에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는데
그 여자애의 무릎이 눈에 보였다. 저 조그만한 다리에 사정없이 긁힌 상처가 너무 신경쓰였다.
아까부터 내 행동에 대해 어이없다는 듯 담배를 입에 물고 쳐다보는 김동혁을 한번 쳐다봐 주고는 그 여자애의
손목을 잡고는 향했다. 양호실로
똑똑-
노크를 한 뒤 양호실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붙들려 진 손목을 조심스럽게 놓고는 먼저 들여보냈다.
양호실 선생님도 체육대회라고 밖에 계신 듯 했다. 문이 안잠겨져 있는 게 새삼 고마웠다. 다시 돌아서 밖으로 나가기엔 좀 민망했으니까.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니 아무 말 없이 사뿐사뿐 걸어 침대에 걸터 앉는다. 땅에 닿지 않은 발이 귀여웠다.
이리 저리 뒤적거리다 빨간약과 함께 밴드를 가지고 그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빨간 약의 뚜껑을 살살 돌리며 열려는 데 창문으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그 바람에 의해 여자애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향기가 느껴졌다. 뭔가 달콤한 향. 사탕같은 아이스크림같은.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왔다. 온 몸을 뚫어버릴 듯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이 기분을 들키면 변태소리를 들을 것 같은 예감에
떨리는 손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그마한 발목을 붙잡았다.
움찔-
놀란 듯 움츠리는 다리에 괜찮다는 듯 호호 불어주며 빨간약을 발라주었다. 마무리로 깔끔하게 밴드까지 발라주고는 확인차, 그저 확인차
눈을 살짝 들어 올려다 봤다.
얼굴에 이리저리 머리카락이 붙어져있고 불그스름한 볼에 빨간 입술이 반쯤 열려있었다.
꿀꺽-
손에 들린 밴드 껍질을 구개며 일어서려 하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고개를 끄덕여줬다. 실은 대답을 하려했지만 입술이 열리지 않아서.
내 모습에 살짝 미소를 띄우고는 다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름이 뭐야?"
"구.... 구준.. 구준회."
"준회? 와 멋진 이름이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런 기분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 내가 뭘 하려 했던 건지도 다 잊어버렸으니까.
한 쪽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로 계속 앉아 있으니 내 눈치를 보던 그 여자애는 살짝 옆으로 비껴가 내 옆에 섰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고 영차 하며 나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아까 내가 했던 행동과 같이
내 손목을 붙잡고는 양호실 밖으로 이끌었다.
"어.. 음.. 난 이만 갈게. 약 발라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아 그리고 오늘 담배 핀거 신경 안써도 돼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
어.. 그럼 이만!"
절뚝 거리는 다리를 용케 움직이며 쪼그만한 몸이 뽈뽈 복도를 걸어갔다.
그때부터 였다. 내 마음에 한 마리 강아지가 살기 시작한 건.
안뇽하세요. 구준회가먹으라구준회에요!
좀 늦었죠 ㅎㅎㅎㅎㅎ 아무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