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야, 학교 앞까지 우산 좀 들고 와줘]
구준회랑 한 지붕 아래에서 산지 육 개월 만에 휴대폰 번호도 공유를 했는데...
이게 단순히 연락만 하려고 공유한 번호가 아니더라고.
나한테 심부름 시킬 일만 생기면 다짜고짜 전화가 와서는 위에 대화처럼 자기 있는 곳으로 와돌라고 하는 거야.
또 멍쳥한 나년이 구준회 꾀에 속아넘어 간 거지ㅎ.
"미쳤냐? 내가 거길 왜가?"
[왜 못 와? 아 지금 밖에 비 엄청 내려.]
"그냥 좀 맞고 와."
[하.... 내가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요즘 과외 영 허술한 거 알지? 어?]
"헐, 지금 나 협박하는 거임?"
[협박이 아니고. 알아두라는 거지. 너와 나의.... 음.... 비즈니스 관계랄까?]
내가 이 말을 듣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될지를 모르겠는거야ㅋㅋㅋㅋ.
비즈니스??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같았으면 욕이란 욕은 다 해줬을 텐데,
저 땐 나도 모르게 당황을 했는지 말을 막 더듬거려버렸어. '이게, 진짜, 와.. 참나...' 이러면서ㅋㅋㅋㅋㅋ
구준회는 내가 할 말이 없었다는 걸 눈치 챘는지 "오분뒤에 나와" 이러고는 전화를 끊는 거야.
내가 언젠가는 복수할 거란 마음으로 우산을 챙겨들고 나갔어.
복수는...한 오십 년 뒤에 볼 수 있을 거야. (허탈)
**
학교 쪽으로 걸어가는 데, 지나가는 사람은 죄다 남정네들 뿐이요...
거기다가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치이고 난리도 아닌 거야ㅋㅋㅋㅋㅋ.
학교까지 무사히 잘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원래 사람이 좀 치이고 하면 다들 비켜주지 않나? 죄다 구준회 복제해놓은 사람인 줄.
나 오늘 사과만 오백 번은 한 거 같아...
정신이 점점 멀어져 갈 때쯤에 저 멀리서 구준회가 보이길래 이리로 오라고 손을 흔들흔들했어.
근데 이놈이 사람 불러놓고 자기 친구랑 떠든다고 날 본채도 안 하는 거야.
짜증 나서 "야!! 구준회!!" 하고 소리를 질러버렸어ㅋㅋㅋㅋㅋㅋ.
구준회는 그제야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정말 창피해하면서 고개도 못 들고 뛰어오는데,
얼마나 통쾌하던지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너 때문에 동네 창피해서 돌아다니지를 못해."
"그러게, 누가 네 맘대로 나 부르래? 자, 여기 우산"
"됐어. 안 그래도 복잡한데 뭣하러 따로 써. 그냥 써, 같이"
내가 겁나 꼬신 표정으로 구준회 쳐다보면서 우산을 건네주니까,
구준회가 당연하단 듯이 내 우산을 뺏어들고 같이 쓰고 가는 거야.
처음엔 나도 얘가 뭐하나 싶었는데, 뭐 같이 쓰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 거 같고ㅋㅋㅋㅋ.
"오는데 안 힘들더냐? 몰골 보니까 장난 아니게 치인 것 같은데"
"알면 닥쳐. 힘들어 죽을 뻔했으니까"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 안쓰러울 정도로 더 못생겨졌다."
"너 때문에 여기까지 온 사람한테 못생겼다가 뭐야"
"그럼 못생겼는데 못생겼다고 해야지 뭐"
이런 우리에게 설렘이란 게 나타날까?ㅋㅋㅋㅋㅋㅋ 나 이 글을 쓴 목적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