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피
"다쳐서 오니까 속상하잖아."
지민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태형의 입가에 약을 발라주며 말을 했다. 자신에게로 꽂히는 시선은 답지않게 퍽 다정했다. 아무도 없는 양호실의 문에는 '출장 중입니다.' 라고 써있는 안내 메세지가 붙여 있었다. 자연스레 뜸해진 학생들의 발걸음에 고요하던 양호실의 공기는 찾아 온 두 사람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아. 아프다 지민아." 면봉으로 살짝 약을 발라주던 지민이 고의적으로 꾹 누르자 푸스스 웃으며 태형이 얘기했다.
"아픈데 왜 웃어."
"좋아서."
"아픈 게 좋아?"
아닌 거 알면서. 태형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매일 아프고 싶다. 그럼 너가 매일 이렇게 약도 발라주고, 간호도 해 줄 거잖아. 튀어나오려는 진심을 꾹꾹 눌러삼키며 태형은 웃음으로 무마시켰다. 이런 일이야 익숙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지민에게는 가득 담긴 진심이 오히려 독이 됨을 태형은 모르지 않았다. 아슬아슬 한 줄타기에 태형은 망가질대로 망가짐을 느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도 지민인데 유일한 해결책 또한 지민이라는 점이 꽤 모순적이었다.
"정국이 때리지 마 태형아."
"……."
"부모님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떡해."
참 웃기는 말이지만, 태형과 정국은 자신의 부모님들 앞에선 연기를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아니 지민까지 끼면 셋도 없는 친구 사이로 말이다. 오직 셋만 알고 있는 오묘한 분위기를 정작 제일 즐기는 건 너면서. 걱정 해주는 척 하기는. 참 영약한 여우였다.
"지민아. 나 없으면, 전정국이랑 같이 집에 갈 거야?"
"응."
"…안 가면 안 돼?"
지민은 태형에게 남은 마지막 상처에 약을 마저 발라주고 약 뚜껑을 닫았다. 읏챠- 소리를 내며 원래 있던 약 통에 집어넣는 지민을 태형은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말이다. 정신이 아득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제발. 대답해줘. 제발. 태형은 지민이 간절했다. 물론, 지민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양호실 침대에 앉아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태형을 등 진 채로 지민은 양호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내는 소음이 둘 사이의 정적을 채워주었다.
"나 너 좋아해 태형아. 친구 이상으로."
"……."
"그런데 연인 감정은 아니야."
아직까지는. 나 갈게. 좀 쉬다 와. 지민은 마지막 말까지 끝마치곤 나갔다. 굳게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태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음을 주면서 완전히 내어주지 않는 지민의 행동에 태형은 항상 갈증이 끓었다. 완전히 포기할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바라지도 못하는 자신이 병신 같다고 생각했다.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태형은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불쌍했다. 또한 정국도 불쌍했다. 태형은 정국과 자신의 관계를 동정했다. 아마 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민이 친구가 되자고 말한 순간부터 우리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었음을.
그러므로 난 양보할 생각이 없다. 자리를 내어 줄 생각 또한, 없다.
오만과 편견
김태형 X 박지민 X 전정국
아이들이 모두 떠나간 교실에 정국은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시간을 얼마나 보냈을까, 뒷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지민이 들어왔다. 흘끔 던지는 시선의 끝엔 미안하다는 듯 머쓱게 웃는 지민의 모습이 보였다. 나한테 미안한 이유가 뭘까. 정국은 지민을 찬찬히 흝어보았다. 태형의 페로몬 냄새가 드뭇드뭇 묻어있었다. 너에게는 저런 냄새가 어울리지 않는 걸 알까. 정국은 꽁꽁 묶여있던 페로몬을 옅게 내었다. 내가 허용하는 유일한 사람에게. 지민에게 남아있는 냄새를 나로 하여금 조금씩 지워져갔다. 이러면 된다. 너가 태형의 흔적을 잔뜩 달고 오는 날엔 다시 내 흔적으로 온 몸을 덮으면 된다. 그러면 너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태형이 아닌 내가 될 것이다.
"늦게 와서 미안해 정국아."
지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미리 싸뒀던 가방을 어깨에 맸다. 궁금했다. 내가 없는 너와, 태형과, 그 속에 담긴 사사로운 감정 마저도. "무슨 얘기 했는지 알고 싶어." 그리고 그 궁금증은 즉석에서 풀어야 한다. 너를 향한 궁금증으로 끙끙 앓으며 하루를 보낼 생각은 없다.
"별 얘기 안 했는데."
"……."
"태형이한테 좋아한다고 했어."
"……."
"그 눈빛은 뭐야?"
지민의 앞에 서면 뜻하지 않는 감정들 마저도 내보일 때가 있다. 정국은 자신의 치부를 꿰뚫린 것 치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너 그러고 가면 부모님이 속상해 하실 텐데."
"상관 없어."
"누구랑 싸웠냐고 그러면?"
"넘어졌다고 할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민은 정국을 타박하고 옷을 잡아 이끌며 반을 나섰다. "우리 둘이 가는 거 오랜만이지?" 지민은 그렇게 얘기하고 정국을 보며 웃었다. 참 지긋지긋 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태형 뿐만이 아니라 너 역시도 바뀐 게 없었다. 그 웃음은, 언제 봐도 자신의 벽을 허무는데 용의했다. 그에 반응하는 나 까지도. 똑같았다. 벗어 날 수 없는 굴레와 같았다. 뫼비우스의 띠.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는 데에는 취미가 없다. 그러니까. 끝낼 때가 온 것이다. 머리 아픈 우리의 관계를 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 역시도 빼앗길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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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잡에 새로 올라가는 편인데 글잡은 처음이라 사실 뭐 이렇게 하는 거 맞긴 하겠죠...? 엄청 긴 분량을 가져오겠다 약속 했는데 여기서 더 미뤄버리면 안 될 거 같아서 올려요. 정말 다음부터는 스크롤 꽉 찬 글 들고 올게요..
이번 편은 정국이와 태형이가 슬슬 시작하는 뭐랄까 그런 편인데 0.1도 모르겠다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애들이 지민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는 편이 아닐까 싶어요...
아 그리고 전 지민이를 정국이나 태형이 중 한 명이랑 이어 줄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플링이 뷔민국민뷔인 이유는 일단 저 자체로도 누구랑 이어줘야 할 지 확신이 들 지 않고 응답하라의 남편찾기 코드 처럼 독자 여러분들도 누구랑 이어질까 도키도키 한 마음을 가지고 읽을 수 있게끔 네 뭐.. 그랬어요.
사랑해요!
아 맞다 그리고 처음에 올린 사진은 어떤 탄이 독방에다가 제 글 속의 뷔민국과 비슷하다면서 올린 사진인데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사진으로 발려버렸습니다.
아 맞다 암호닉.. 해주는 사람 없을까봐 안 했는데 굳이 신청을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대구리 박고 일캐 절 할게요ㅠㅠㅠㅠㅠ 신청은 그냥 [닉네임] 요거 하나만 쓰고 가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