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김팀장 16
김종대는 다음 날 아침 좋아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실실거렸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대로 비밀번호를 따고 우리 집에 들어와 아직 자고 있는 나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자기야."
"으..."
"자기야, 언제 일어날거야, 응?"
아침 댓바람부터 들려오는 김종대의 '자기야'하는 호칭이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침잠이 많은터라 그 소리를 듣고도 그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는 끙끙거렸다. 김종대가 귀여워, 하고 말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내 옆에 누운 그가 나를 자신의 품에 끌어당겨 꼭 안았다. 따뜻한 느낌에 몸을 돌려 안기자 그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귀엽다, 우리 여주."
"...졸려어-"
"하루만에 이렇게 귀여워지기 있어? 나 죽겠다, 여주야."
김종대는 나를 끌어안은채로 여기저기에 입 맞추기에 바빴다. 사실 잠은 깬지 오래였는데, 그와 이렇게 있는 시간이 좋아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한참 내 온 얼굴에 입을 맞추던 김종대는 나에게 물었다.
"키스해도 돼?"
"아니, 그건 안돼."
"왜?"
"아침이잖아."
김종대는 키스해도 되냐고 물어봤고 나는 당연히 안된다 대답했다. 아니, 방금 일어났는데 무슨 키스는 키스야. 내 말에 김종대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는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후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김종대는 여전히 내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야, 김종대. 나가."
"왜?"
"나 옷 갈아입을거야."
그 말에 김종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 내가 이 말을 왜 했지.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김종대는 진짜 엄청난,
"나 볼래."
"..."
변태라는걸...
"ㅂ,보긴 뭘봐."
"뭐긴."
김종대는 다시 한번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니 몸-악!"
"이 미친새끼가, 진짜 죽고싶냐?"
김종대는 내게 몇 대를 맞고 나서야 방을 나갔다. 김종대는 진짜 어마어마한 변태가 틀림없다. 맨날 저렇게 야한 말만 해대는데, 욕구가 아주 그냥 흘러넘치는 듯 하다. 그냥 웃 갈아입는건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자 김종대는 식탁에 앉아 언제했는지 밥을 다 차려놓고는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헐, 뭐야 이건?"
"오다가 반찬가게 들려서 사왔어, 너 밥 안먹을까봐."
김종대는 숟가락으로 밥을 떠 반찬을 올려주고는 내 입에 가져다댔다. 나는 얌전히 입을 벌려 받아먹었고. 그렇게 한참 김종대가 내 밥을 떠먹여주고 있었을 때였다. 김종대가 내뱉은 말 때문에 나는 하마터면 먹던 밥을 뿜을 뻔했다.
"여주야, 우리 같이 살래?"
"푸흡, 뭐?"
"동거하자고."
김종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농담이 아닌듯한 그의 진지한 눈빛에 나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진심이야?"
"당연하지."
"..."
"어차피 나랑 결혼 할거잖아."
"..."
"나랑 결혼 안할거야?"
김종대는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물론 김종대하고 결혼할거긴 한데, 이건 좀 당황스러웠다.
"여주야."
"...응?"
"나 능력있어."
"..."
"나 아직 스물여덟이야."
"..."
"그런데 팀장이야."
"..."
"그렇게 비싸다는 강남 오피스텔에 살아."
"..."
"차도 있고."
"..."
"얼굴은 뭐, 이정도면 봐줄만 하고."
"..."
"성격도 괜찮지."
"..."
"어때? 같이 살고싶지?"
"..."
"너 나 놓치면 후회한다."
"...근데."
"응?"
"근데, 변태잖아..."
"ㄴ,내가 무슨 변태야!"
김종대는 변태라는 말에 펄쩍 뛰었다. 아무래도 쟤가 지금까지 하는 말을 종합해봤을 때 지금 나보고 같이 살자고 꼬시는것 같은데, 다른걸 다 떠나서 김종대는 변태이기 때문에 절대 안된다.
"야, 좋아하는 사람하고 스킨십하고싶은게 잘못된거야?"
"내가 언제 잘못됐대? 넌 좀 과하다고."
"우리 10년을 떨어져 살았어."
"근데."
"그럼 그동안 내가 참았겠지, 그치."
"뭐래, 지도 여자 많이 만나놓고서는."
"ㅁ,뭐래애!!!"
나의 말에 김종대는 누가봐도 의심할 정도로 심하게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뭐래애!!! 하고 소리쳤다. 그 모습이 우스워 픽 웃었다. 누가 여자 많이 만난거 모를줄 알았나?
"너 키스 잘하더라."
"..."
"누가 모를것 같았어? 너 여자 많이 만난거."
"..."
"우리 고등학생 때 키스한적 없었잖아."
"..."
"나 못 잊었다면서, 잘도 만났나보네."
점점 우리 대화의 주제가 변질되어갔다. 김종대는 불안한듯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과거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근데 별로 상관 없어."
"...?"
"과거는 과거지 뭐, 안그래?"
"...나는 아닌데?"
김종대는 나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본인은 아니라 했다. 그 말에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뭐래, 갑자기."
"...너도 남자 많이 만났잖아."
"...ㅁ,많이는 아니거든?"
"너 그럼 미국에서...아 씨! 짜증나!!!"
김종대는 갑자기 짜증난다며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다시 정리해주었다.
"안되겠어, 너랑 빨리 스킨십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어."
"왜?"
"질투나서."
김종대는 그대로 내 두 볼을 잡고는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나는 그를 밀어내느라 끙끙댔지만, 그는 이내 내 양 손목을 가볍게 한 손으로 포박해버렸다.
"읍-,야, 양치도 안했는데!"
"그딴게 무슨 상관이야."
김종대는 그렇게 그냥 내 입술을 먹다싶이 했다. 한참 후에 입술을 떼자 얼얼하기까지 했다.
"야, 아프잖아..."
"아파?"
내 아프다는 말에 김종대는 내 입술 가에 잔키스를 남겼다. 그렇게 한참 쪽쪽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입술에 입맞추던 김종대는 기분좋은 웃음을 지었다.
"정화 끝-"
"...유치한 놈."
"맞아, 나 유치해."
"..."
"그리고 너는 유치한 나를 좋아하는 더 유치한 애지."
김종대의 말을 듣고는 으휴,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김종대는 어김없이 나를 쫄쫄 따라왔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위에 입고 있던 티를 벗었다. 오히려 당황한건 그였다.
"ㅇ,야. 방에 나 있어."
"어쩌라고."
"근데 그렇게 옷을 벗어?"
"너가 보고싶다며."
"..."
김종대가 침을 꿀꺽 삼키는게 보였다. 떨리는지 손은 꼭 주먹을 쥐고 있다. 미친, 귀엽잖아. 이러나 저러나 그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나도 웃겼다.
"종대야."
"...?"
"많이 궁금해?"
김종대는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점점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점점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상체에 얇은 나시 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어느새 내 코앞에 서있게된 김종대는 내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의 달아오른 귀만이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했다. 그의 왼손을 내 맨 어깨에 올려놨다. 그가 왼손을 어찌할 바를 모르곤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는것이 느껴졌다.
"왜 기회를 주면 받아먹질 못해."
"..."
"소심한 김종대야."
"아, 야-"
그의 목을 장난스럽게 깨물었다.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자신의 목을 쓸어내렸다.
"야."
"응?"
"니가 먼저 시작한거야."
김종대는 그대로 나를 끌어당겼다. 바로 키스할줄 알았는데, 그는 그대로 내 목에 입술을 묻었다. 그의 뜨거운 입술에 당장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릴것 같아 그의 팔을 꼭 잡았다. 그의 입술이 내 목과 쇄골을 배회했다.
"아, 종대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앓는 소리를 내자 그는 내 어깨를 더 단단히 잡아왔다. 그의 열기는 한참동안 내 목과 어깨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참 후 내 어깨에서 묻었던 고개를 든 김종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김종대와 나의 뜨거운 입김이 섞였다. 김종대는 떨리는 손으로 아까 입술을 묻고 있던 내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그는 빨개진 귀를 하고는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나도 덩달아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는 멍하니 옷을 갈아입으며 화장대 위의 거울을 봤다. 그리고.
"아, 김종대!!!"
내 목에 선명히 남아있는 자국을 보고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
"아, 김종대 진짜아!"
"미안, 미안해."
김종대는 차 안에서도 내게 사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종대를 한참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저질른걸 어떻게 하겠어... 그나저나 하루종일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니게 생겼다.
"어디 한번 보자."
김종대는 내 머리카락을 걷어내더니 유심히 내 목을 봤다. 그 눈빛이 뭔가 부끄러워 살짝 피하자 피하지 못하게 꽉 잡고는 한참 바라보는 김종대였다.
"예쁘네."
"..."
"내꺼라고 표시한거잖아."
"아오, 이 철없는 놈."
김종대의 정소리를 한대 내리치자 김종대는 악! 소리를 내며 내게 떨어졌다.
"하여튼 맞을 짓만 하지."
"예뻐서 그렇다니까."
"..."
"자기야."
김종대는 자기야, 하고는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김종대는 내가 약한 포인트를 너무 잘안다. 저렇게 끼부리면서 눈웃음을 지으면, 나도 모르게 김종대에게 약해지고 만다.
"...하여튼 김종대."
"응?"
"귀엽다고."
"으아-"
김종대의 볼을 쭈욱 잡아 늘리자 김종대가 나에게 그대로 질질 끌려와서는 끙끙댔다.
"나 귀여워?"
"응, 귀엽네."
"헤헤."
김종대는 바보같은 웃음을 흘리며 핸들을 잡았다.
***
"나도 사탕 줘."
다른 사원들 몰래 먼저 점심을 먹고 온 터라 사원들이 다 빠진 사무실에는 김종대와 나만 있었다. 김종대는 내가 사탕을 입에 넣는걸 보고는 자기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사탕 줘, 하는 말투가 어린애와 다를게 없어 웃음이 나왔다.
"싫은데?"
"아 왜애! 나도 줘!"
김종대는 내 말에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그 찡찡거림이 귀여워 그 모습을 한참 보다 김종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사탕 먹을래?"
"응."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입술을 가리켰다. 무표정이던 김종대는 그런 나를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끼부리네."
"끼부리는건 너고, 맨날 눈웃음 치면서."
"넌 가만히 있어도 끼가 흘러넘쳐."
"뭐래."
김종대는 그대로 내게 입을 맞췄다. 내 입 안의 사탕 때문에 달달한 맛이 퍼졌다. 그렇게 한참 김종대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뚜벅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헉..."
급하게 입술을 떼자마자 보이는건 입을 틀어막은 백현씨였다.
"아니, 저, 그게-"
물론 백현씨야 나와 김종대의 관계에 대해 대충 알긴 했지만, 이런 직접적인 스킨십을 본건 처음이라 서로 당황했다. 김종대도 당황했는지 아직도 본인의 입에 있는 사탕을 깨물었다. 콰직, 하고 사탕이 입에서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ㅈ,좋은 시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백현씨는 곧바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미친...
***
백현씨는 내게 외로워 죽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백현씨에게 백현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금방 애인이 생길거라고 한참을 위로해줬다. 그 와중에도 김종대는 마음에 안드는지 백현씨의 등을 토닥거리는 나를 죽일듯 쏘아보았다.
"김종대. 표정 좀 풀지?"
"내가 지금 그러게 생겼냐?"
김종대의 가시돋힌 말에 백현씨는 움찔 하더니 조심스럽게 내 손길을 피해 슬슬 옆으로 몸을 옮겼다.
"백현씨."
"ㄴ,네?"
김종대가 백현씨를 부르자 백현씨는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그런 백현씨가 안쓰러워 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감사하다구요."
"네?"
김종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백현씨도 말이다.
"...그냥, 백현씨가 어디까지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주랑 저, 많이 돌아왔어요."
"..."
"제가 여주 마음고생 엄청 많이 시켰거든요, 그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셔서 감사했다구요."
"..."
"제가 나쁜놈이라,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거에요."
김종대의 말에 백현씨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김종대는 얼른 들어가자며 우리를 다시 안으로 이끌었다.
***
"여주야, 내일 주말이잖아."
"근데?"
"놀러가자."
"어디?"
"놀이동산?"
"뭐야, 우리가 고딩이냐."
"놀이동산이 뭐가 어때서..."
김종대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입술을 손가락으로 잡아 늘리자 김종대는 아!아! 하며 내 손을 살살 때렸다.
"초딩이냐? 뭐만하면 입술 내밀어."
"그야 자기가 맨날 나 서운하게 하니까 그러지."
"어이구~ 서운해쪄요?"
"응, 나 서운했어."
김종대는 내 어깨에 기대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하여튼 귀엽기는 겁나게 귀엽단 말이다.
"그래, 가자."
"진짜아???"
"그럼 진짜지 가짜냐."
"근데, 여주야."
김종대는 뭘 말하려는지 뜸을 들였다.
"...하루 자고올래?"
"...?"
하루 자고 오는게 뭐가 어때서, 김종대가 괜히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떨려하며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변태야?"
"...아마도."
그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
"진짜? 진짜?"
"응, 진짜야 바보야."
그 말에 김종대는 환호성을 지르더니 핸드폰을 집어들고는 내 입술에 연달아 쪽쪽거리며 입을 맞췄다.
"자기야, 내가 제일 좋은 방으로 잡을게."
"그러든가."
"자기야 사랑해애!"
"어~ 그래."
하여튼 김종대는 귀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