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김팀장 17
명색이 첫 데이트인데, 아무 옷이나 입고 나갈수는 없었다. 옷장을 열고는 온갖 옷을 다 꺼내보고 있을 때였다.
"아씨, 저 새끼는 또 마음대로 들어왔어."
"뭐? ㅈ,저 새끼? 이게 남자친구한테!"
"뭐! 뭐! 진짜 죽고싶냐?"
한대 때리려고 손을 들었는데, 김종대는 내 팔목을 가볍게 잡고는 나를 품에 끌어당겼다.
"안 놔?"
"자기."
"뭐."
"자기는 성격 조금만 죽이면 더 예쁠것 같아."
"..."
그 짧은 말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김종대는 매번 나한테 애교에, 자기야, 자기야 하면서 온갖 잔망은 다 떠는데 나는 김종대한테 맨날 욕이나 쳐하고...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김종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ㅇ,응?"
"내가 성격도 더럽고 막, 표현도 잘 못해서..."
"..."
"나도 너한테 잘해주고 싶은데..."
김종대는 내 말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다 가까이 당겨 꽉 끌어안았다.
"내가 더 미안해."
"..."
"괜히 그런 말은 왜 해가지고."
"..."
"나는 너가 어떻게하든 다 좋으니까, 미안해 하지마."
"..."
"바보네, 우리 자기. 내가 저번에 너가 뭘 해도 좋다고 얘기 했었잖아."
김종대는 다정스레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 그에게 안겨있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를 밀어냈다.
"치마입으면 혼난다-"
옷장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던 김종대가 말했다.
"위에도 파인거 입으면 죽는다, 진짜."
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김종대를 보다 무난한 청바지에 니트를 꺼냈다. 그런 나를 김종대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 안나갈꺼야?"
"진짜, 진짜 눈 감고 있을게!"
김종대는 눈을 꼭 감더니 손을 들어올려 눈을 가렸다. 물론 전혀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를 억지로 방 밖으로 끌고나가기도 지쳐 한숨만 쉬고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도 갈아입고 이제 위에 입고 있던 티를 벗었는데,
"...오."
그럼 그렇지, 저 변태새끼가 진짜.
김종대가 작은 감탄사를 흘리는 바람에 뒤를 확 돌아보자 김종대는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손을 들어올렸다.
"...너 진짜 죽고싶지."
"아니, 아니, 악! 때리지마!"
김종대를 배게로 한참 때리고 있는데, 김종대가 갑자기 내 팔을 잡고는 자기한테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바람에 나는 그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
김종대는 순식간에 위치를 바꾸어 내 위에 위치했고, 그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나한테 힘으로 이기려 하면 안된다니까."
"..."
그는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웃어보였다.
"...너가 안보겠다고 했잖아."
"그게 마음대로 되나."
"뻔뻔하긴."
"섹시하다."
김종대는 눈을 내려 내 상체를 훑었다. 그에 그의 눈을 손으로 가리자 그가 뭐하냐는 듯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우리 어제 아침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 아니었나?"
"그 때도 너가 이렇게 변태같은 짓 했잖아."
"대신 어제는 너가 적극적이었잖아."
"여기서 더 이상한짓 하면 죽인다."
"이상한 짓의 기준이 뭔데?"
김종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가리던 내 손을 깍지를 끼며 내렸다. 얇은 나시 위로 그에게 빠르게 뛰는 심장이 들킬것만 같아 떨렸다. 김종대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내 입술에 입맞췄다.
"김종대, 우리 안 가?"
"...그냥 가지 말까?"
김종대가 나른한 목소리로 입술을 떼고는 말했다. 그대로 내 목에 입술을 묻은 그는 칭얼대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가기 싫어졌어..."
"뭐래, 방까지 잡아놓고는."
그를 부드럽게 밀어내고는 위에 니트를 입고 화장대 앞에 앉자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화장하게?"
"응."
"안하면 안돼?"
"오늘따라 왜 이렇게 투정이야."
화장을 하기 시작하자 그가 내 뒤에서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너 화장하면 너무 예쁘잖아."
"..."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예쁜데, 화장까지 한거 다른 남자들이 보는거 싫어."
"너한테만 예뻐보이는거니까 걱정 마."
김종대의 말에 웃다 걱정 말라하자 김종대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한테만 그런거 아니야."
"..."
"객관적으로 봐도 너 예뻐."
"...뭐래애..."
"진짠데."
김종대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내 뒤에 계속 매달려 있었다. 화장을 마치자 김종대는 가자, 하며 내 손을 이끌었다.
"우리 다음에 데이트할때는 커플티 입자."
"그래."
"말 잘듣네."
김종대는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더니 안전밸트를 채워주었다.
***
"여주야, 다 왔어."
김종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잠이 덜 깬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가 좋아 그를 살짝 껴안았다. 그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안았다.
"너 그렇게 계속 애교부리면 나 못살아."
"왜애..."
"심장마비로 죽을수도?"
"뭐래..."
내 입술에 쪽 하는 소리를 남기고는 몸을 일으킨 김종대는 얼른 차에서 나와 내 쪽으로 걸어와서 나를 부축해 내려줬다.
"헐, 우와! 오랜만이야!"
"언제는 나보고 고딩이냐면서."
"헤헤, 그건 그냥 한 말이고."
김종대는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내 손을 잡고는 이끌었다.
"자유이용권 끊을거야?"
"응."
"우리 그정도로 놀 수 있어?"
김종대는 내 말에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 돈 많아서 상관없어."
"오, 김종대 잘났네?"
내 말에 김종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조차 귀여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고개를 약간 숙여주는 김종대였다.
"종대야. 우리 뭐부터 탈래?"
"가볍게 회전목마부터?"
김종대는 신이나서 나를 이끌고는 뛰어갔다. 그 뒷 모습이 어린애같아 웃음이 나왔다.
"종대야."
"응?"
"우리 이러니까 진짜 커플같다, 그치."
"뭐야, 그럼 지금까지는 가짜 커플이었어?"
김종대는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도 큭큭대며 어깨를 기댔다. 그리고 김종대는 내게 속삭였다.
"여주야."
"응?"
"이제 진짜로 노는거야."
"어...?"
"놀이공원 왔는데, 이제 시작이지."
"악!!! 야!!!"
***
"야아...나 힘들어..."
"벌써 힘들면 어떡해!!"
김종대는 힘들다는 나의 말에 펄쩍 뛰었다. 역시 김종대, 체력왕이다.
"점심! 점심먹자!"
"점심?"
"응, 뭐 좀 먹고. 힘들어-"
"알겠어."
김종대는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식당에 들어가서도 김종대는 본인이 먹기는 커녕 나에게 음식을 먹여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종대야, 너도 먹어."
"난 너 먹는거만 봐도 배불러."
"...웃긴다 진짜."
"웃겨? 난 진지한데."
이번에는 내가 김종대에게 포크에 돈까스를 찍어 내밀었다. 오, 하는 입모양을 하며 놀란듯 나를 바라보던 김종대는 기분좋게 웃으며 입을 벌렸다.
오물오물 먹는 그 모양새가 퍽 귀여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종대야, 너 되게 귀엽다."
"ㄱ,그래?"
김종대는 답지않게 부끄러워했다. 뭐야, 부끄러워? 하고 장난스레 묻자 양 볼에 손을 올리고는 열을 식히는 그였다.
"아, 진짜아..."
"뭐."
"너한테 남자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푸흡-"
"이런거 싫은데에..."
그의 말에 어이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장난하냐, 지금?"
"ㅇ,왜! 뭐!"
"너 일부로 내 앞에서 귀여운척 하는거 모를것 같아?"
"...알면 모른척 좀 해주지."
"속보인다, 김종대."
"근데 너 앞에만 서면 귀여워지는건 사실인데?"
"...?"
"너가 계속 이렇게 나 받아주니까 그러잖아~"
김종대는 내 어깨에 기대더니 팔짱을 끼며 애교섞인 말투로 말했다. 귀여워서 봐준다.
***
김종대는 엄청난 강심장이었다. 나는 심장이 떨어질뻔했던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따위의 놀이기구를 가리지 않고 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우리 저기 가자."
김종대가 가리킨 곳은 나에게 거부반응을 이끌어 내기에 완벽했다.
"ㅅ,싫어!"
"왜?"
"그냥 싫어!"
"우리 여주 무서워?"
김종대는 장난스레 웃었다. 김종대가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귀신의 집이었다. 나로서는 귀신을 집을 왜 들어가는지 이해 불가였다. 저게 재밌을까?
"...너가 하자는거 다 했잖아, 지금 머리띠도 하구, 응? 종대야아..."
"싫어. 갈거야."
"아아, 종대야-"
"가자, 우리 여주~"
김종대는 나를 힘으로 질질 끌고 입구로 향했다. 원망스럽게도 앞에는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나 들어가면 뭐해줄건데."
"들어가면...음..."
"뭐해줄건데, 빨리이!"
"내가 나중에 선물 줄게."
"...뭔데?"
"쉿, 일단은 들어가고."
김종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손을 잡고는 입구로 향했다. 입구부터 풍겨오는 으스스한 분위기와 한기에 소름이 돋았다.
"종대야."
"응?"
"나..."
"...?"
"무서워."
"풉."
"더 가까이 오면 안돼...?"
내 말에 김종대는 웃음을 꾹 참으며 나에게 와서는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러면 좀 괜찮나?"
"응, 좀 낫네."
"가자, 자기야."
김종대는 벌써부터 실실 웃으며 나를 이끌었다. 나는 그를 더 꽉 끌어안았다. 김종대의 안그래도 올라간 입꼬리가 주체를 못하고 치솟는것이 보였다.
"으아아아아악!!!!"
"자기, 벌써부터 놀라면 어떡해."
조심조심 통로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았다. 식겁하며 발버둥을 쳤더니 김종대는 이런 내가 웃긴듯 한참을 빵터져 웃었다. 그런 김종대를 보다 괜히 원망스러워 그보다 앞서 걸었다.
"어어, 여주야, 혼자가게?"
"..."
"무서울텐데-"
"씨이, 빨리 와!"
김종대는 내게 와서는 단단하게 내 손을 잡았다.
그 이후는 사실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귀신들이 튀어나올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김종대한테 안겼고, 그 때마다 김종대는 좋아 죽으면서 나를 꽉 끌어안았었는데, 내게 기억나는거라고는 하늘로 승천할것만 같았던 김종대의 입꼬리였다.
"김종대 진짜, 끕, 미워 죽겠어!!!"
"여주야, 울어?"
"..."
"푸흡, 진짜 미치겠다, 내가."
나와서는 김종대의 소매를 두 손가락으로 쥐고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진짜 김종대 미워 죽겠다. 내가 이런걸 얼마나 무서워하는데...
눈물이 고인것조차 부끄러워 억지로 그에게 안겼다. 그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다. 나를 품 안에 넣고 한참을 다독거리던 김종대는 웃음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여주야, 그렇게 무서웠어?"
"...당연하지..."
"내가 미안해, 응?"
"알면, 잘하라고오..."
"그런데 너 진짜 귀여웠어."
"뭐래..."
"그리고 여주야."
"...응?"
"미리 미안."
"...왜?"
"오늘 너 나때문에 또 울텐데."
"...? 무슨 말이야?"
"비밀이야."
"ㄴ,너 설마."
"뭐?"
"헤어지자고 할거야...?"
그의 품 안에서 얼굴을 떼고는 말했다. 말도 안된다. 이게 무슨-
"무슨 말이야."
"그럼 너가 나 울린다고-"
"꼭 운다는게 슬퍼서 운다는것만은 아니지."
"에...?"
김종대는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앞서나갔고 나는 그런 김종대에게 뭔데, 뭔데 하고 종알대며 따라갔다. 김종대는 끝까지 비밀이라며 잡아땔 뿐이었다.
"아, 김종대! 진짜 뭔데!!"
"여주야."
"응?"
"우리 이거 타자."
김종대 앞에는 다름아닌 관람차가 있었다.
***
"이거 너 스타일 아니잖아."
"왜?"
"너 스릴있는거 좋아하잖아."
"이것도 너랑 타면 충분히 스릴있게 탈 수 있어."
"...그거 무슨 뜻이야?"
"너가 생각하는 그 뜻."
"..."
김종대는 다시 한번 음란마귀가 가득 낀 말을 뱉었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아니길 바라며 되물었지만 역시 김종대는 김종대다.
"여주야."
"왜?"
"여기 옆에 와서 앉아."
김종대는 본인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에 그의 옆자리에 가서 앉자 김종대가 내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기대왔다.
"여주야, 있잖아."
"응."
"내가 놀이공원에 로망이 두개 있거든."
"근데?"
"근데 지금 하나를 이룰 수 있을것 같아."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내 얼굴에 손을 뻗더니 그대로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여전히 그는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상태라 그런지 상당히 불편해보였다. 잠시 후 끙, 하는 소리와 내게 떨어진 그는 뭔가 마음에 안드는듯 미간을 찌푸렸다.
"목 걸려."
"당연하지, 그 자세로 있는데."
"이리 와봐."
김종대는 나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 관람차는 아직도 정점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너 로망이 이거였어?"
"응, 관람차에서 키스하는거."
"참 로망도 너답다."
내 말에 김종대는 작게 웃더니 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왜, 로맨틱하잖아."
"조금 그렇긴 하네."
김종대는 다시 나를 끌어당겨 부드럽게 입맞췄다. 처음엔 가벼웠던 입맞춤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입술과 맞물리던 그의 입술이 귀로 향했다. 온 몸에 힘이 풀려 그에게 매달리며 하염없이 이름을 부를 뿐이였다.
"하, 종대야, 김종대-"
"쉿-"
그렇게 한참을 탁한 눈으로 그의 이름만을 부를 때였다. 관람차가 덜컥, 하고 흔들렸다. 그에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거의 땅과 가까워져있었다.
"야, 야, 종대야. 다왔어."
"아..."
김종대는 못내 아쉬운 듯 했다. 마지막으로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긴 김종대는 내 귀에 속삭였다.
"나머지는 나중에."
"..."
"알지?"
그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김종대는 웃으며 나를 반대편 의자에 앉혀주었다. 밖에 나가서는 나는 내내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마치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와 김종대가 관람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아는것만 같았다.
***
BGM. 최고의 행운 - CHEN
어느새 해질녘이었다. 한참 겨울인터라 해가 빨리 졌다. 나는 김종대보고 춥다며 빨리 호텔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김종대는 꼭 퍼레이드를 보고가야한다며 나를 붙잡아두었다.
"꼭 봐야겠어?"
"응."
"생각보다 동심의 세계에 빠져있네."
"너도 알잖아, 나 순수한거."
"뭐래, 진짜 뻔뻔하다, 너."
김종대와 시덥지않은 대화를 나누며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있었다. 인파에 휩쓸려 다리가 휘청거렸다. 김종대는 그런 나를 보더니 나의 뒤에 서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괜찮지, 이제?"
"응."
김종대와 맞잡은 손을 만지작거렸다. 김종대도 기분이 좋은지 작게 콧노래를 불렀고,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나는 녹아들것만 같았다.
"여주야, 한다."
김종대가 손을 뻗어 저기를 가리켰다. 김종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와!"
"유치하다면서, 본인이 더 좋아하네."
"이뻐!!"
김종대는 이런 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에 고개를 묻고 웃었다. 그러다 어느덧 우리의 앞까지 온 행렬에 김종대에게 좀 보라며 손을 톡톡 쳤다.
"종대야, 김종대!"
"여주야."
진지한 그의 목소리가 내 귀 옆에서 바로 들렸다. 조금 전까지와도 상반되게 진지한 그의 목소리에 당황해 그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사랑해."
"...응?"
"너를 알게된지 벌써 12년이야."
"..."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너를 마음 속에서 떠나보낸적이 없어."
"..."
"내가 못되서, 너한테 상처 많이 준것도 알아."
"..."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게 다 너를 내 옆에 두고싶은 욕심이었어."
"..."
"이런 나 받아줘서 고마워."
"..."
"내가 말을 못해서, 지금 솔직히 떨리고...그래서 잘 못하겠는데,"
김종대는 떨리는 숨을 한번 내뱉었다.
"이 말 꼭 해주고싶었어."
"..."
"너는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
"그 다른 무엇하고도 비교 못해."
"..."
"그래서,"
여전히 나를 뒤에서 껴안고 있던 김종대가 나를 품에서 놓았다. 그가 나를 돌려세웠다. 수많은 인파 속 오직 그만이 선명하게 내 앞에 서있었다.
"결혼하자."
"..."
"너한테 부담주려는거 아니야, 너 아직 준비 안됐다는것도 알고."
"..."
"그냥, 내가 욕심나서 그래. 다른 사람한테 뺏길까봐."
김종대는 그 말까지 하고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올렸다.
"이건 족쇄."
시선을 내리니 김종대가 내 손에 조심스럽게 반지를 끼워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보야."
"응?"
"이런건 언제 준비했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참 눈물도 자주 흘리는것 같다. 원래는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그만 보면 흘러넘치는 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너 또 울거라고."
"진짜,"
"여주야, 내가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
"항상 너에게 충실할거야. 그것만은 약속할 수 있어."
"..."
"울지말고, 우는것도 예쁘긴 한데, 나는 너가 지금 웃었으면 더 좋겠는데."
김종대의 그 말에 나는 울면서 웃었다. 그런 나를 보고 그는 웃음을 지었다.
"대답은, 예스야?"
"...당연하지, 바보야."
김종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껴안았다. 그의 품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너가 아까 말했던 선물이 이거야?"
"응, 그런데 사실."
"...?"
"선물 더 있는데."
"뭐...?"
내 물음에 김종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 귀에대고 속삭였다.
"아까 밤에 주기로 한 선물 있잖아."
***
"너부터 씻어."
김종대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허둥대다 화장실에 들어왔다. 씻으면서도 한참을 멍했다. 김종대랑, 어쩌다.
그 와중에도 섹시하게 웃으며 아까 밤에 주기로 한 선물 있잖아, 하며 내 귀에 속삭이던 그를 생각하면, 동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샤워가운을 입고 나오자 김종대가 자기도 씻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 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나는 떨리는 마음에 침대에 앉아 이불을 쥐었다, 놨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마침내 욕실에서 나온 그가 머리를 털며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나를 보며 미소지은 그는 내 어깨를 밀어 쓰러트리더니 그 옆에 누웠다.
"여주야."
"응?"
"오늘 어땠어?"
"좋았어..."
"그래?"
그는 기분이 좋은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 머리를 번뜩 스쳐지나간 생각에 김종대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종대야."
"응?"
"우리 회사 사람들한테 들키면 어떡해?"
"설마."
"꼭 들키는건 아니어도, 언젠가는 밝혀야되지 않아?"
"그건 그렇지."
"결혼하자며."
김종대는 놀란듯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큼, 하고 목을 가다듬은 김종대는 말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자."
"..."
"나는 너 이상한 말 듣는거 싫어."
"..."
"사내연애하면 온갖 소문 다 뒤따라다니는거 알잖아."
"..."
"너가 그런 말 듣는것도, 특히 나 때문에 그런 말 듣는거 싫어."
그런 김종대를 보다 살풋 웃었다. 김종대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달달하기 짝이 없었다.
"종대야. 나 걱정하지 마."
"걱정되는걸 어떡해."
"나 괜찮거든요."
"조금만 수상해도 이상한 말 도는거 너도 알면서..."
김종대의 손을 잡고는 다독여주었다. 김종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여주야."
"응?"
"나 때문에 힘들게 되면, 나를 더 꽉 잡아."
"..."
"놓을 생각하지 말고."
"..."
"그게 너라면 붙잡혀줄게."
"...종대야."
"지켜줄게, 내 모든걸 바쳐서."
그의 다정한 눈빛이 내 눈에 내려앉았다. 그의 입술이 맞닿아 오는 것을 느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단 한 군데도 따뜻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이런 그가 내 옆에 있다는건 하나의 축복이자,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