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송보송, 까칠까칠 003
부제 : 여러분은 20대 초딩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전한 경종 크러쉬
전쟁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그 재앙의 주축들이 등교를 한 후, 꿀보다 더 달콤한 정적과 행복을 느끼다, 곧 들이닥칠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을 생각하며, 우리의 큰 오빠는 늘어진 몸을 꾸물꾸물 일으킵니다. 먹을 거, 없고. 집은 뭐 대충 치웠으니까 됐고. 내가 걔네한테 잘 보일 필요 없고. 그럼 됐네, 뭐. 몸을 일으킨지 정확히 20분만에 승철은 아까의 그 자세로 돌아왔습니다. 시계를 보아하니, 한 10분 쯤 남았네. 노래 3곡쯤 들으면 되려나... 하고 요즘 꽂혀있는 노래를 딱 3번 들었을 즈음에, 제 집 마냥 비밀번호까지 치고 들어오는 애증의 친구들.
"아, 짜증나! 너네 집 오는데 또 누가 나한테 페로몬 흘렸어. 이것들이 어디서 수작이야. "
"하긴, 니가 좀 예뻐야지."
"최승철! 니가 어떻게 좀 해 봐. 짜증나잖아"
"내가 왜, 니가 해결해. 그러니까 머리 좀 자르고 다니랬잖아. 미용실 가서 머리도 좀 자르고, 털도 밀어라. 여름 다 돼 가잖아. 홍지수 같이 좀 가 줘"
"싫어, 내가 왜 가. 윤정한이 어린 애야? 그리고 가려면 니가 가야지. 양이랑 사슴이 시너지가 나는 조합이냐?"
여러분은 여전히 경종이 당당하게 중종에게 개기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너무도 자연스럽게 쇼파에 안착하는 저 존재는 사슴의 혼현을 가진 홍지수 라는 미스테리 교포구요. 그 앞에 앉아 짜증난다면서 죄 없는 우로빠 다리만 때리는 이쁜이, 잘생긴 오빠는 양의 혼현을 가진 윤정한 오빠에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으로 만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본인들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지수 오빠가 승철이 오빠한테 먼저 영어로 말을 걸었다고 해요. 무려 사슴이 늑대에게 먼저, 그것도 꽤 다정하게. 그 때 우리 오빠는 경계도 하고 서열 정리도 할 겸 혼현을 살짝 흘리고 있었는데, 그게 저 미스테리 교포 조슈아 홍한테는 안 통했던건지. 옆에 앉아서 막 뭐라뭐라 떠들면서 친구가 되자 말했다고.. 그래서 '이 놈을 적으로 뒀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오빠가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뭐 그러네요. 아, 정한이 오빠는 원래 지수오빠랑 친했대요.
"이것들이.. 너네 계속 잊고 있나본데. 나 늑대야, 늑대라고. 개기지 마"
"잊기는 뭘 잊어. 최승철이 늑대인 게 내 인생 최고의 빽인데. 그리고, 니가 보통 늑대냐?"
"아니지. 내 백은 우리 칠봉이. 최칠봉 잘 못 건드리면 다 죽는 거잖아. 윤정한 너는 승철이를 빽으로 쓰고, 난 칠봉이로 할게"
"야! 홍지수! 니가 진짜 죽고 싶지? 칠봉이 건드리지 마"
그게 자기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저번에 오빠가 얘기했었는데, 비밀로 해 주고 있습니다. 교우관계를 깨트리는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저 셋 관계가 묘한 게 좀..
많이 이상해요.
같이 TV 보다가 양고기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는 커녕 '야, 맛있겠다' 라고 우리 오빠가 얘기하지를 않나. 학교에서 늑대랑 사슴이랑 싸움 난 적이 있었는데,(결과야 뭐 뻔하죠) 그 때 지수 오빠랑 승철이 오빠 사이는 묘해지긴 커녕 '잘 해.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시끄러. 너 나 때리면 신고할거야' 하는 시덥잖은 농담만 주고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어서...
"우리 칠봉이 보고 싶다. 칠봉이 누구 애기~ 하면 정한이 오빠 애기! 하는데"
"야! 내 새끼지 걔가 왜 니 애기야. 최칠봉 최승철 애기거든? 넌 니 동생한테 가서 그런 거 해. 내 동생이야!!"
"그래, 좋겠다! 니넨 동생 있어서! 이거 뭐 외동은 서러워서 살겠냐? 아이고~ 엄마한테 늦둥이 동생이라도 낳아달라고 해야지!"
"완전 좋지! 너 우리 동생 봤냐? 진짜 귀여워. 양으로 변해도 예뻐"
"에이, 아무렴 최칠봉이 짱이지. 걔는 여우라니까 여우? 그것도 붉은 여우. 잘 때 찍은 사진 안 봤어? 보여 줘?"
현실에 없는데 현실에 존재하는 여동생 바보들. jpg. 물론 양이랑 여우가 안 예쁠 수 없는 동물들이지만 부모님들이 어떻게 키우셨는지 참 바람직하네요. 덕분에 형제라고는 없는 소파 위 영혼이 짜게 식어갈 뿐. 어머님께서 여리디 여리신 분이라 지수를 낳고 아이를 더 가졌다간 혹여나 위험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외동이 된 지라 형제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없지 않아 있는데 앞에서 이렇게 염장질을 해 대니. 듣고 있자니 슬슬 열이 올라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족발당수를 한 번씩 날려주고 옷을 챙겨 일어났습니다.
"와.. 이것들 진짜. 야, 나 갈 거니까 니네들끼리 놀던가 알아서 해. 내가 서러워서라도 조만간 동생 만들어 온다"
"정 안 되면 아예 하나 낳아오는 것도 방법이야, 지수야. 니 새끼는 얼마나 예쁘겠니."
"아기 사슴이라니.. 눈 초롱초롱 해서 '삼촌-'하면, 내가 다 해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우리 조카를 위해서 내가 뭔들 못 해 주겠냐. 야, 낳아만 와. 삼촌들이 늑대, 호랑이, 곰 다 있으니까 걱정 말고"
"응~ 고마워~ 그 마음 가득 담아서 한 대씩만 때려도 괜찮을까? 이거 진심인 거 알지?"
결국.. 나이는 20살도 더 되신 분들이, 개도 없는데 개싸움 한 판 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고 합니다. 하.. 저 사람들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부끄럽고, 그 중에 우리 오빠가 있는 건 더 부끄럽다. 잠깐만 최승철을 모르고 싶네요. 늑대의 품위와 자존감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개뿔.. 최한솔이 봤으면 최소 20년짜리 놀림감이다.
"가라, 가. 빨리 꺼져"
"니가 그렇게 말 안 해도 갈 거거든? 칠봉이도 없는 이 곳에 미련 따위는 없다고"
"칠봉이 얘기 하지 말랬지! 내 새끼 건들지 말라고!"
"걔가 왜 니 새끼야! 니 동생이고 너네 부모님 새끼지."
"꺼지라고!"
마무리까지 아름답게 쿠션 펀치 한 번씩 맞고 떠나시는 애증의 홍윤 브로..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저 셋 되게 친합니다. 같이 여행도 가고 밥도 해 먹고 서로 집 비밀번호도 알고 있는 그런 훈훈하고 다정한 친구들이에요~ 하하하. 자기들끼리 얼마나 챙기는데요.
비록 별 도움은 안 된다는 게 매우 큰 함정이지만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울 수 있는 거..죠! 말빨로는 윤정한이 어디 가서 져 본 적이 없어요! 가끔은.. 뭐...
"아, 그리고 다음번에 올 때는 맛있는 것도 좀 사 놓고 그래라. 먹을 게 없어 먹을 게"
"시끄러. 안 가? 니네가 사 와야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니네 돈으로 사서 오라고"
"쓰읍- 손님 대접 해 줘야지. 승철아.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치셨니?"
한 번에 가면 그게 어디 오빠들인가. 신발 다 신고 현관 앞에서 극딜 한 번 더 해 줘야, 이게 홍윤이지~ 하는 것을. 끝까지 잊지 않고 아주 그냥 탈탈 시비를 털어주시는 덕분에 결국 오빠가 친히 현관 앞으로 나와서 또 초딩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셋 다 밖에선 다정하고 매너 좋은 선배인 척 하는데, 그거 다..연기에요.
"가라고 했다. 니네가 무슨 손님이야, 불청객이지. 그리고 너네 집도 먹을 거 없긴 매한가지거든?"
"초식동물 집에 찾아와서 고기 찾는 니가 이상한 놈이지. 신선한 채소는 항상 마련되어 있어"
"그래, 늑대랑 친구인 건 이해한다해도, 늑대를 위해 고기를 마련해 둘만큼 우리 부모님 심장이 튼튼하지 못 해"
"다음 번에 왔을 때 냉장고에 양고기, 사슴고기 채워 두는 수가 있다. 말로 할 때 꺼져"
이것 봐, 얼마나 다정해. 서로 식습관도 고려해주고. 차이를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배려가 시작되는 거거든요. 서로 저러면서 과일 사 두고 그래요. 걱정하지 마. 과일이랑 과자랑, 가끔 당해봐라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거 사 놓긴 하지만! 작은 이벤트 쯤으로 생각 해 줄 수 있는 거, 알죠? (하.. 포장하느라 고생했어,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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