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넓다. 너징이 처음으로 서울역에 내려 꺼낸 말이었어. 비록 혼잣말이었지만 말이야.
너징의 언니는 (이하 인어라 칭한다.) 너징의 카톡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답이 없어.
그래, 마중 나올 사람이 아니지. 너징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저 멀리서 '오징어!'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익숙한 목소리에 너징이 입가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뒤를 돌아. 그래, 누구겠어. 외딴 서울 땅에 떨어진 너징을 부를 사람은 인어밖에 없었지.
집에서 바로 나왔는지 깔끔한 트레이닝복 하나만을 걸친 인어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키에 작은 얼굴, 그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파킹 잘 된 이목구비. 너징은 그런 인어를 보면서 모든 유전자를 언니에게 몰아서 준 하느님을 원망해.
아니, 못난 자신을 원망해. 너징이 누구를 원망하겠어. 제 자신을 원망해야지. 너징이 둔한 몸을 움직여 인어에게로 향했어.
인어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너징은 의기소침해졌지.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너징은 인어 앞에서는 굉장히 말이 많은 편이었어. 평소에도 말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유독 언니 앞에서만 그렇달까.
너징이 인어의 앞에 서 가만히 눈치를 살폈어. 살 더 찐 거 알면 화낼 텐데….
너징의 언니는 언제나 너징에게 살 빼라, 살 빼라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어릴 적에는 저보다 더 예쁘게 생겼던 게 너징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에 파묻혀 굴러다니다시피 하는 제 동생이 보기 싫었던 거지. 인어가 작게 한숨을 쉬고 너징에게 가자고 말했어.
너징은 또 한소리 듣겠다, 싶어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어 멍청하게 어, 어어. 하고 인어의 뒤를 졸졸 쫓았어.
서울역을 벗어난 너징과 인어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아 탔어. 버스를 찾아서 타기까지 꽤 많은 정신력이 필요했지.
물론 너징에게만.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에서는 너징이 했던 걱정들이 모두 현실로 다가왔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딱 그 꼴이었지.
너징과 인어를 비교하며 수군대는 사람들, 저렇게 뚱뚱한데 왜 살을 빼지 않느냐며 저들끼리 토론장을 열 기세인 여고생들.
저런 자기 관리 못하는 여자는 딱 질색이라며 비웃는 남자들. 너징은 처참한 기분에 입술을 물고 버스에 올라탔어.
인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너징의 버스비까지 내고 안쪽에 들어가 너징과 함께 앉았어.
그렇게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인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너징이 부끄러워서 인지, 아니면 고민거리라도 있는 건지.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는 인어였어.
집에 도착해 짐을 풀 때까지 인어는 말이 없었어. 너징은 어색한 분위기에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아, 맞다. 하고 입을 열었어. '언니는 나 서울 왜 온 지 알아?' 하는 너징의 말에 인어가 정리가 다 된 너징의 캐리어를 닫으며 모르는데. 하고 짧게 답했어.
너징은 그런 인어의 태도에 조금은 빈정이 상할 만도 했지만 곧 신나서 제가 대학에 붙었다며, 언니와 같은 학교에 가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늘어놓았어.
그런데, 인어에게서는 너징이 생각했던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어.
너징은 인어가 기뻐서 방방 뛰지는 않아도 축하는 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너징과 인어가 함께 학교를 다니는 건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처음이니까, 그냥 신나서.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 꺼낸 얘기였는데….
"쪽팔리니까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자."
너징이 멍하게 눈을 감았다 떴어. 인어의 입에서 나온 말은 200퍼센트 인어의 진심이었고, 너징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어.
+
인어의 모티브는 실제 우리언니.
진짜 말도 막하고 미운데 또 츤츤대면서 챙겨주는게 귀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