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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히비




[08]



" 김성규!!! "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정적이 지나가려던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아올려 인상을 찌푸린 우현이 소리쳤다.잡힌 멱살에 숨이 턱턱 막혀오는 느낌이 들어왔다!


" 시발,좋았냐,네 누나인 척 하고 나 만나니까? "
" 이거 놔! "
" 닥쳐! "


성규가 그대로 굳었다.이렇게까지 화내는건 처음 보는거라서 깜짝 놀라 그대로 가만히 멈춰있자 멱살을 잡아올린 손에 힘을 더 꽉 주다 힘을 풀어버린 그가 팔목을 세게 잡으며 허탈한 듯 웃었다.잡힌 팔목이 약간씩 아려오자 저절로 미간을 좁힌 성규를 보며 우현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 왜 그런거야,대체?그렇게도 나랑 만나고싶었어?죽은 누나인척하면서 나랑 만나면 내가 너한테 몸이라도 줄 줄 알았어? "
" 뭐? "
" 왜,시발.나랑 섹스하고 싶었냐?나한테 따먹히고 싶었어?꼴에 남자라고 달고 다니나봐? "


남아있는 손을 내려 성규의 것을 꽉 쥔 우현이 으르렁댔다.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상황에 눈물이 고여 떨어졌다.나,난 속이려고 한 의도가 아니였어.힘들게 말하자 더욱 이를 세운다.


" 이게 날 속인게 아니면 뭔데? "
" 난,난 그저 누나의 유언을 들어주려 한 것 뿐이야. "
" 유언?지금 누나 핑계하고있어? "



짝,뺨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힘 없이 돌아간 고개가 떨구어졌다.저절로 나오는 눈물에 떨리는 몸을 어쩔 줄 몰라하는 성규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리게한 우현이 입을 열었다.



" 더러운 새끼.당장 휴대폰에서 내 번호 지워. "
" ... "
" 아 시발.졸라 똥 밟은것도 아니고. "


바닥에 침을 뱉으며 골목길에서 나가는 우현을 보며 전봇대에 기댄 성규가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깜빡이는 가로등 밑에서 홀로 무릎을 잔뜩 끌어안으며 조심스레 다가와 우는 고양이 얼굴을 살짝 쓰다듬으며 마저 울기 시작했다.

그가 상처 받을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행동할 줄은 몰랐었다.칼로 찍힌 것처럼 잔뜩 헤지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푹 숙인 그의 뺨에 눈물이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간간히 고개를 들고 울 때면 목까지 타고 흘러내린다.그렇지만 닦지 않는다.닦으면 정말로 운 것을 인정해버리는 느낌이여서,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본 채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보름달이 뜬 밤,처음으로 호감을 가지고 설렜다고 느꼈던 그 시기,소년의 설렘 사라져버렸다.



집까지 들어가서 방에서 한참을 울고 힘들어 지쳐버려 그대로 탈진하듯 쓰러져 잠을 청하고 나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있었다.이제 누나 대신 일 나가는것도 필요 없어진셈이였다.심하게 부은 눈을 바라보며 냉찜질을 하던 성규가 선글라스를 끼고서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선 던져버리고싶었지만 누나의 옷이였고,일은 끝까지 마무리 지어야했기때문에 꾹 눌러참은 성규가 밖으로 나섰다.


화창한 날씨에 점점 더 울컥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누나,미안해.전할 상대가 없는 말이 입가에서 잔뜩 맴돌다 사라졌다.



" 김성유,왜 이렇게 늦었어? "
" 사장님,저 사정이 생겨서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
" 뭐?안 돼,너처럼 똘똘한 애가 또 어디있다고. "


죄송해요.몇 번이고 사정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서 고개를 숙인 성규를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평소에 주던 계좌로 줄게.


" 아,아니요.이번엔 다른 은행 계좌 만들어서 거기로 넣어주세요. "
" ...계좌 줘. "


종이에 계좌번호를 끄적이고서 몇번이고 죄송하단 말을 반복한 성규가 조심스레 가게 밖으로 나갔다.부담감이 컸는지 이미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있었다.타는 목에 물이 마시고싶어 편의점을 갈까 고민하다가 성규가 멈칫했다.


' 너가 더 일찍 나와서 더웠지,마셔. '
' 난 괜찮은데... '


우현이 줬던 오렌지 주스가 기억이 나서 발걸음을 돌린 성규가 근처 카페로 걸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훅 끼쳐왔다.차가운 기운에 팔을 쓸어내리며 카운터 앞으로 간 성규가 말했다.딸기 스무디 하나요.
답답한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고있다가 고개를 돌린 성규가 한 발자국 옆으로 걸어갔다.지금 제 옆에 서 있는게 우현이 아니길 바라고있었다.



" 딸기 스무디 나왔습니다. "
" 감사합니다... "



음료를 받자마자 빨대를 쪽 소리나게 빨면서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고개를 흘깃 돌린 우현이 성유와 닮아보여 빤히 쳐다보다 이내 머릿속으로 성규가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사라진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은 빠른걸음으로 걷다가 눈을 꽉 감으며 누군가와 부딪힌 성규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사과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자 두준이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어 다짜고짜 두준의 품에 안긴 그를 보며 두준이 물었다.


" 누구세요? "
" 아... "


선글라스 끼고있었지.선글라스를 살짝 아래로 내려 눈을 보인 성규를 보며 크게 웃은 두준이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랜만이다,김성규.
웃던 두준이 부어있는 눈을 보며 갸웃거리다 물었다.울었어?고개를 젓는 성규를 바라보다 두준이 팔을 잡아 끌었다.


" 술 사줄게. "
" ... "



호프집으로 가자마자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성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꼴을 보아하니 꽤나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걸로 보인다.


" 오,술 먹자. "
" 너가 계산하는거 맞지? "
" 응.그냥 마셔. "


고마워.조그맣게 중얼거리고서 그대로 술잔에 얼굴을 박은 그의 모습이 평소보다 안쓰러워 보여 두준도 군말없이 조용히 술을 들이켰다.그래,조용히 술만 마시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제 앞에서 술잔을 손에 쥐고 오열하는 성규를 바라보며 주위의 시선에 두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장을 하고있는 성규의 모습 덕분에 지금 상황은 자신이 봐도 남자가 여자를 울리는 꼴이였다.그만 울어,당황하며 말리자 성규가 고개를 들고 더욱 울먹였다.빨갛게 변한 눈가가 안쓰러웠다.



" 솔직히 내가 뭘 잘못했어?누나 유언만 들어준거잖아! "
" 그래도 일단 남우현 입장에선... "
" 아,그놈의 남우현 남우현!듣기도 싫어!"


다시 팔에 얼굴을 파묻고 테이블에 엎드린 그를 보며 한숨을 쉬던 두준이 시계를 힐끔 바라보았다.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딱봐도 심하게 취한 성규를 일으켸세워 부축하고선 밖으로 나왔다.


" 김성규,너네 집 주소 말해. "
" 웅...우리집이 어디였지이... "


한숨을 내쉰 두준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등에 업고서 웅얼거리는 주소를 겨우 알아들어 힘겹게 성규의 집 앞에 도착했다.가로등 불빛이 둘을 비추고있었다.집에 온 걸 알아채기라도 한건지 등에서 폴짝 뛰어내려 빙글거리며 도는 성규를 보며 미소짓던 두준이 갑자기 멈춰선 성규를 쳐다보았다.


" 감사합니다아. "
" ...어? "
" 손규 요기까지 데려다줘서 감사합니다아.누나가 고마우면 인사하래써요. "


허리를 꾸벅 숙이는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던 두준이 고개를 든 성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 성유야. "
" 으,흐으,나 누나 아닌데... "
" 울지 마. "
" ... "
" 연애할때도 그렇게 울더니 동생도 똑같이 우네. "


가로등 불빛 아래서,캄캄한 밤에 퍽이나 진지한 눈으로 오묘한 분위기였다.정신이 없던 성규가 그걸 알아챌 리 없었지만 약간 이상하단거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 나 갈게.잘 자. "



조금은 술이 깨는 느낌에 어안이 벙벙했다.




*




우현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자꾸만 책상에서 끙끙거리는 그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던 직원들이 조심스레 그의 책상에 커피를 올려놓았다.평소보다 떨어지는 집중력에 문서도 대강 작성하고 검토도 대강하는 일이 발생했다.이틀 째였지만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 탓이였다.



" 남팀장님,무슨 일 있으세요? "
"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


문서를 뭉텅이로 정리하는 눈에 초점이 없었다.



퇴근 길이였다.차를 가지고오지않아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할 때도 자꾸만 성유의 모습을 했던 성규가 떠올라서 괴로웠다.정말 보고싶지않은데 그 기간동안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의 모습을 하고있었다는게 아주 조금의 정을 들여놓은 것 처럼 말이다.

버스 좌석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손을 잡고가는 남녀가 눈에 보였다.입을 맞추던 사람도 보였다.그제서야 우현이 깨달았다.

성규가 자신과의 키스를 거부했던 이유를.


분명 회사에서 여름휴가를 3일 받고 나왔는데 할 일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이럴 때 성유가 있었으면,생각하다 죽었다는 말이 떠올라 다시 어깨가 늘어졌다.한숨만 나오는 입에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해도 자꾸만 성규가 생각이 났다.물론,성유의 모습을 한 성규였다.


우현은 지금 힘들었다.자신이 성유를 보고픈건지 아니면 성규를 보고픈건지 헷갈렸다.마음이 싱숭생숭했다.창문만 내다보는 와중에 떠올랐다.진짜 성유가 죽었을 땐 자신은 사망했던 것도 모르고 그것때문에 장례식도 가지 못했단 사실이 떠올랐다.



성규한테 얘기를 제대로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 전화번호부에서 성규를 찾던 우현이 '자기' 라고 저장되어있는 번호에 멈칫했다.번호를 누를까 말까,전화를 할까 말까.고민을 하던 우현이 자신이 이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더러운 새끼.당장 휴대폰에서 내 번호 지워. '
' ... '
' 아 시발.졸라 똥 밟은것도 아니고. '


그 때 그 심한말까지 하며 지우라고 했는데 정말로 번호를 지워서 자신인지 모를까봐 무서웠다.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는 생각도 하지않은 채 될대로 되란 식으로 전화번호를 누른 우현의 손에 땀이 났다.



번호,안 지웠다.침대에 누워 발장난을 치며 노트북을 하던 성규가 진동을 하는 제 휴대폰을 바라보다 액정에 뜬 전화번호에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 자기♥ -



받을까 말까,고민하던 성규가 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고 무서웠다.오랜만에 들려오는 느낌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앞섰다.번호를 지우라고했던 우현의 말이 떠올라 일부러 성규가 모르는 척,말을 하였다.



- 너...나랑 내일 잠깐 만나자.
" ...누구신데요. "
- ...네 누나 남자친구.


정말 끝까지 이런다.그 때 그렇게 수치심을 들게 하고도 끝까지 전화까지라도해서 괴롭히는게 취미일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답답하고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지려하자 성규가 손등으로 눈을 살짝 비비다 울먹이며 말하였다.

감춘다고 하여도 울 때의 그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 회사...는. "
- 휴가 받았어,3일.내일 맨날 만나던 곳에서 3시에 만나.
" ... "
- 나오는걸로 알게.중요한 얘기야.



끊긴 전화에 휴대폰만 바라보다 침대에 엎드린 성규의 어깨가 들썩였다.서럽게 울던 마음에 상처까지 더해지자 더욱 서러워져 펑펑 울던 성규가 눈물을 닦으며 제 자신을 미워했다.


미웠는데,분명히 미웠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리니까 보고싶은 마음이 드는 자신이 미웠다.자기도 모르는 새에 정이 든다는것이란 참으로 무서운것이다.




-



암호명 - 남나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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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아우ㅜㅠㅜㅜㅠㅜㅜ다음편 빨리 보고 싶어여ㅜㅜㅜㅜㅜㅜ
9년 전
독자2
으하 히비님 저 남나무예요 왜이리 진짜..글을 잘써 나보다 잘쓰는거같앙..요ㅜㅜㅜㅜ히비님 사랑해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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