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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전체글ll조회 217l 4
우주비행사. 단어를 음미하듯 입 속에서 천천히 굴렸다. 단어에는 쓸데없는 로맨틱함이 내재되어있었다. 우주가 미지의 세계여서 일까요? 내가 묻자 그는 그저 미소 지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가 창가에서 생각하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졌고 나는 창가에 의자를 놓아두었다. 이후로 그는 의자가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 앉아 창 밖을 보았다. 

[오늘은 8년 만에 블러드문이 뜨는 날입니다. 자정부터 1시간 동안 관측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블러드문은……] 

내가 TV를 틀자 뉴스에선 블러드문에 관한 보도가 한창이었다. 그는 창가에서 천천히 일어나 한 걸음씩 느리게 걸어왔다. 그의 움직임이 워낙 신중했기에 나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토롱을 떠올렸다. 우주비행사는 우주에서 유영하듯 걸어왔다. 그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뉴스가 끝나자 그는 다시 느릿하게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걸었다. 창가의자에 앉은 그는 어둑한 하늘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거운 침묵이 공기를 가라앉혔다. 그 때문에 나는 지구의 중력이 잠시 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 그는 입 꼬리를 움찔거렸지만 입을 열진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겁게 닫혀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지금부터 쓰려는 글은 바로 그가 말한 이야기의 녹음본에 대한 것이다, 그가 한 이야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대화체로 옮기겠다. 

C는 나고 A는 그다. 

A: 저, 제 마지막 비행……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하시겠죠. 

C: 기억해요. 그건 안타까운 사고였어요. A씨, 괜찮아요. 이제 그 일은 지나갔고 당신은 안전하다고 약속해요. 

A: 아, 아니, 아닙니다. 아직 그 일은 끝……나지 않았어요. 

C: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A: 저, 제가 기자회담에서 발표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비행……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 뿐이었죠. 하, 하지만 그들은 전부……. 이, 이제 사실을 밝힐 사람……은 저 뿐입니다. 

(A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A는 진정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C: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에도 다른 무언가 있다는 건가요? 

(나는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살짝 흥분해 있었다.) 

A: 그, 그렇습니다. 아무 마, 말…… 말고 들어주세요. 

C: 저의 특기군요. 

(A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깊은 숨을 쉬었다. 그리곤 말을 뱉어냈다. 그는 마치 고해성사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A: 우주선은 평화로웠습니다. 

(A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말을 내뱉었다.) 

중대한 임무를 등에 진 것과 맞지 않게 우주선은 항상 가볍고 밝은 분위기 였습니다. 대원들은 일부러 밝게 행동했죠. 임무에 적합한 대원을 뽑는 데엔 성격도 한 몫 했기 때문에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8년 거리에 있는. 아, 물론 지구에선 8년이지만 우리에겐 2년 거리인 별에 가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습니다. 그 별은 NASA에서 발견한 별로 지구를 떠나기 위해 찾은, 지구와 닮은 별이었어요. 과학자들은 그 별에 물과 대기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죠. 우린 그걸 증명하러 가는 길이었고요. 그 별에 도착하기 전 날 우리는 들떠있었습니다. 애써 침착 하려 노력했죠. 새 땅을 점령하는 탐험가들! 콜럼버스들! 그런 생각을 하다 하루가 지났고, 우주선은 무사히 별에 착륙했습니다. 

(A는 손을 떨었고 나의 눈을 피했다. 그가 심하게 떨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담요를 가져다 주었다. 아까까지 기계적으로 말하던 그에게 역풍이 온 듯 그의 떨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A: 흠…. 계, 계속하겠습니다. 그 별은 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정말…, 끔직했어요. 우리가 첫발을 내디뎠을 때 우리는 그곳이 지구보다 미세하게 약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어요. 별엔 대기도 존재했습니다.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농도였어요. 조사를 마치고 정복자의 국기가 땅에 꽂혔습니다. 다들 흥분해 있었어요. 그 날 밤, 우리가 잠든 밤. 무인탐사기 로봇은 별의 곳곳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그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제서야, 우리는 그 별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C: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다르군요. 정말 놀라워요. 

A: 그렇습니다. 뉴스에선 그 별이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별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그 별엔 고도의 문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있었’었’죠. 우리가 갔을 땐 별은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고도의 문명은 흔적만 남아있었어요. 모든 게 무너지고 부식되고 있었어요.우리는 어떤 문명의, 또 종족의 몰락을 보고 있었습니다. 생체반응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은 학계에 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곳에서 ‘지구’의 멸망을 보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고도의 지능을 가진 종족의 멸망, 어떤 종족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 밤은 모두가 조용했고 저 또한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창 밖은 수많은 별들이 보였죠.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저는 있어야 할 별들 중 몇 개가 하늘에서 빠져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를 다른 비행사들에게 알렸고, 그들은 곧 이 별의 하늘에 대해 여러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유력한 가설은 이 별과 지구의 시간차로 이 별이 몇 년 더 빠른 하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별은 예언자였고, 아니죠. 그야말로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의 영역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굉장한 발견에 모든 걸 잊고, 하늘을 관측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당연히 지구였습니다. 지구의 미래. 지구가 그대로 인 것을 확인하고 우린 안도했습니다. 몰락한 문명을 보고 떠올린 것.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던 것. 그걸 확인한 셈이니까요. 모두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 고요한 밤에…. 순간, 하늘에 작은 불빛이 일었습니다. 마치 불꽃놀이, 아니 그보다 못한 불빛이…. 별 여러 개가 동시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개 중엔 지구도 있었어요. 우리 모두가 보고 있었습니다. 그 하늘을요. 그건 마치 착각처럼 느껴져서…, 우린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구는, 파란 별 지구는 달아오른 쇠 공처럼 붉었습니다. 그 뒤론 당신이 아는 것과 같을 겁니다.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복귀하던 중, 소행성과 충돌했습니다. 평소 같았더라면 충분히 피했을 테죠. 그 때 전 늘 훈련하듯 비상비행선으로 올라탔고 가까운 우주정거장에서 눈을 떴습니다. 동료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폭발하는 비행선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C:……. 

A: 어쨌든 지구로 돌아온 건 저 하나 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요. 사고가 있기 전, 우리는 지시 받은 대로 모든 사항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4년 만에 지구에 도착했을 때, 극소수의 과학자들 만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죠. 극비리에요. 이 사실이 새나가는 게 두려웠던 지도층이 그렇게 만든 거였어요. 전 반발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 걸로 알게 된 건 4년 뒤에 지구는 멸망한다는 겁니다. 그 이후로 4년 동안 감시당하며 살았습니다. 그 일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우주선에도 태워준다는 약속도 얻어냈습니다. 8년이면 지구를 탈출할 계획을 세우는데 충분하죠. 그리고 오늘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주선에 타기 위한 연락을요. 선생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인간들이 살아남아야 할지. 아니 그래도 될지를요. 그 일이 있던 후 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구는 어쩌면 면역작용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거. 그 생각이 저를 계속 괴롭힙니다. 자신의 몸에 침입한 병원체 ‘인간’을 없애기 위해. 선생님. 그 때 저는 비행선에서 명예롭게 죽어야 했습니다. 오늘은 감시도 붙지 않았습니다. 저 대신 우주선에 타셔도 좋습니다. 전 지구에 남을 겁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온 몸의 세포들이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A는 내게 우주선이 있는 주소를 알려주었고 그의 신분증을 내주었다.) 

A: 그 우주선은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움직입니다. 행성을 찾을 때 까지요. 그 안은 지구를 모방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세대를 거듭하고 거듭해서 질기게도 씨를 퍼뜨리겠다는 겁니다. 제가 그들을 막을 순 없겠지요. 그래서 제가 우주선 티켓을 드리는 조건은…. 제가 말한 것들을 어떻게든 그 후손의 후손의 후손까지, 또 다른 지구를 찾을 때까지 닿도록 하는 겁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단호하게 말 하면서도 연약해 보였다. 나는 곧 그에게서 유한성을 느꼈다. 또 유한성에서 무구한 무한성을 느꼈다.) 

C: 오늘 밤에 블러드문이 뜰까요? 

(갑작스레 퉁겨 나온 말이었다. 그 말에 그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그는 웅크려 자신을 끌어안았다. 그 등에 얼핏 보이는 척추가 그를 연약하게 만드는 듯 했다. 우리는 연약한 척추동물들 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는 사라졌고 나는 우주선에 올랐다. 우주선은 예상보다 거대했고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켰다. 인류는 기약 없는 항해에 올랐다.) 

 

 

 

순식간에 붉은 화염이 세상을 덮었다. 어느 때보다 밝고 아름다웠다. 세상은 끝까지 공평하지 못했지만. 나는 따스함을 느끼며 서서히 융화되어갔다. 태초의 그것으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하나로, 무로 돌아갔다. 나의 정신은 우주를 유영하듯 떠다녔다. 그 무한한 시간 속에서 나는 유한을 느꼈다. 나는 깊은 잠에 들었다. 그 따스함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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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잘봤어요 많은 생각이 들어요
4년 전
글쓴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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