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GET 04
- WHO IS TARGET ? -
팀장 넌 못느끼는 내 감정이잖아. 오로지 나만 느끼는 거잖아.
어떻게 이 감정을 그만하라고 하냐.
그만할 수 있는 거였으면, 진작에 그만뒀겠지.
하지만 오빠. 난 사랑할 수 없는걸.
"이번엔 제법 큰 사건이라 들었다."
나의 근황도 총리님의 근황도 아니였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사건 이야기 라니.
"네. 아직 말씀 안드렸는데 이미 알고계시네요."
나의 단정적인 어투에 총리님은 보고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쓰고있던 안경을 벗었다. 항상 느꼈지만 눈빛이 참 매서웠다.
대부분은 노년을, 자식을 생각하며 늙어가는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오십대 중반의 눈빛이 아니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갈망, 욕망에 뒤덮인 눈이였다. 세월이 지날 수록 점점 더 거세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자신은 있는거냐."
자신,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자신? 아, 아니면 당신의 명예를 먹칠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
총리님 전자는 확신해요, 근데 후자는 나도 모르겠어요. 당신을 보며 느꼈어요 권력이 얼마나 마약같은 존재인지.
썩어가잖아 몸도 마음도.
"자신이야 항상 충만하죠."
"당연히 충만해야지.
그리고 준면이한테 미리 말좀 해두거라. 매번 고생한다더구나."
"싫어요, 총리님 아드님은 너무 빡빡해."
조금은 칭얼거리며 말을 건네자 의자에 기대서는 나를 보며 웃어보였다.
"내 핏줄이니까, 날 닮은거겠지."
정말. 김준면은 그의 아버지를 닮았을까.
그리고 의미없는 대화들이 오고갔다. 박찬열은 아직도 나를 쫓아다니는지, 변백현은 집안에서 쫓겨나서 잘 지내는지
그리고 카이를, 아니 김종인을 찾아냈는지.
"내 온 인맥을 이용해도 아직이다. 벌써 삼년이 지났는데, 이젠 시체라도 찾는다고..."
"안 죽었어요."
카이는 그리 쉽게 죽지 않아요 총리님. 나도 이렇게 살아있는데.
내가 살아있는데 카이는 죽었을리 없어요.
"내가 살아있는 한, 카이는 죽지 않아요."
그 매서운 눈과 마주쳤다. 안쓰러움? 아니. 한심함.
하지만 총리님 내가 한심해도 나도 당신을, 당신도 나를 져버릴 수는 없잖아요. 우린 죽을때 까지 엮여야할 관계잖아요
"그래, 사람이든 시체든 찾아주마. 네가 그렇게 원하는데."
"찾아주는게 아니라."
"....."
"제가 찾아요. 내가, 찾아낼거예요."
총리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는 짧은 인사를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리실을 빠져나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삼년을 찾아 헤맸다,
정말 당신이 카이를 찾으려고 했을까.
웃기지 말라그래. 아직 당신은 서울이 아니야. 세종이지
그렇게 원하는 서울을 아직 갖지 못했잖아.
그러니까, 들키기 쉬운 거짓말은 함부로 내뱉으면 안되죠 총리님.
"총리님 만나고 왔구나."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사무실에 제일 먼저왔다. 역시나 변백현 박찬열 그 둘이 있었다.
아무말 없이 내 자리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려 하자 제일 먼저 내 기분을 알아챈 박찬열이 다가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내 머리에 손을 턱 올려놓고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초코, 민트"
어떻게 이 감정을 그만하라고 하냐.
감정을 논하던 그 말투 그대로 박찬열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어왔다.
순간 그 일이 머리 속에서 지나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해버렸다.
"또, 지 혼자 이상한 생각하고 있네. 초코야 민트야. 확 아메리카노 사온다."
"....초코"
"기다려, 사올께."
어물쩍 거리며 대답을 하자 내 머리에 올린 손을 강하게 흔들더니 코트 하나를 들고 나가버렸다.
우직하게도 항상 같아서 어려웠다. 그런 점에 내가 적응해버릴까 더 무서웠다.
"박찬열이 또 자기 좀 봐달라고 했어?"
내가 들어와도 계속 자료만 보고있던 변백현이 박찬열이 나가자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아무말 없자 빠르게 고개를 들더니 자신을 보고있던 나와 똑바로 눈이 마주쳤다.
"했어?"
"뭐를."
"찬열이가 고백했어 설마?"
절레 절레 고개를 젓자 혼자 혀를 차더니 그렇지, 쫄보새끼가 고백을 할리가 없지. 라고 하며 다시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집중을 한건지 서류를 읽을때 항상 쓰는 변백현의 안경이 코 끝에 걸려져있었다. 뒷통수를 살짝만 때려도 툭, 떨어질 것 같이 아슬아슬 매달려있었다. 그 안경을 쳐다보다 툭 내뱉었다. 툭 떨어진건 안경이 아니라 나의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이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해버렸어."
"뭐를."
그러게, 난 뭐를 그만 하라고 한거였을까. 박찬열의 감정을?
내 감정이잖아. 네가 그만하라고 하는거, 그거 웃긴거다
"그냥.... 나도 몰라."
내가 주제가 넘었나. 내 감정도 아니고 박찬열 감정을 하지말라고 운운한게.
백현은 서류를 내려 놓고 나를 바라봤다. 그런 나와 일분쯤 서로 쳐다만 보고 있을까 갑자기 입술을 삐죽내밀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 받았겠네 박찬열."
"........."
"너희를 모르는 사람들, 아니 이제 막 한글 뗀 유치원생이라도"
"......."
"너희 둘 보면 그럴걸. 저 남잔 저 여자를 사랑하죠? 라고.
박찬열은 온전히 너야.
누가봐도 알정도로. 그 새끼 숨긴다고 그걸 숨길 수 있는 애냐? 덩치만 컸지. 너도 알잖아 존나여려터져 가지고 너한테 고백도 못하는거."
변백현의 말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도 아무것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팀장 넌 박찬열이 싫어?"
"....아니."
"그럼 좋아?"
"........"
"그 나이 먹고 자기 마음을 몰라?"
아니. 내 마음정도야 잘알지. 난 박찬열이 좋아. 그런데 깝죽거리는 변백현도 좋고, 무섭지만 다정한 도경수도 좋고. 준면오빠, 우리 팀원들, 고깃집 사장님 다 좋지.
그런데 좋아한다는게 누구에게 말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감정이잖아. 우리 나이엔 그리고 특히 나한테는. 쉬운 말이 아니잖아.
그리고 상대는 박찬열이야, 내 감정을 말해버리면 상처받을 그 모습이 너무 선명히 보여서 안돼. 그리고 너무 순수해. 내가 망쳐버릴까봐 겁날 정도로
"됐다 됐어. 다 네 마음이지. 그치?"
백현은 아무말 없던 내가 답답했는지 대답을 듣는건 포기하고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내려간 안경을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올리더니 다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오분 쯤 지났을까 나는 숨이 턱 막혀있던게 풀린 것 처럼 한숨이 터져나왔고 책상에 엎드려 변백현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봐."
"김두식 대포폰 통화랑 문자 내역. 너 오늘 거래 현장 잠입하잖아. 확실히 해둬야지."
"그래서 그렇게 집중한거야? 감동."
"웃기고있네."
실없는 농담에 둘다 흐흐흐 거리며 낮게 웃었고 마음 무거운 일은 한 쪽으로 밀어두고 우린 다시 오늘 있을 수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응, 너는 웨이터 박찬열은 거래처 신입. 아까 경수오빠한테 연락해서 신분 위조 부탁해놨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한 자료들을 펼쳐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넌 술집여자고?"
"뭐, 어쩔 수 없었어."
"진짜 큰일날 여자네. 여기서 무슨짓을 당할줄 알고."
어깨를 으쓱하며 바라보자 화가 난건지 내려온 앞머리를 넘기고는 이마에 손을 얹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안 돼."
"확실히 조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거 알잖아."
"안된다고 했어."
"아니, 그러면!"
"이번엔 나랑 박찬열이 해. 이번 거래 조사만 하는거야 너까지 이렇게 위험하게 갈 정도 아니잖아."
이번 거래가 조금 작은 거래인건 맞지만 나만 혼자 아무것도 안한다는게 마음에 걸려 변백현을 바라보고 있자 백현이 굳었던 표정을 풀고 살짝 웃어보였다.
"자기, 오빠들 못 믿어?"
"......믿어."
그러자 눈이 잔뜩 접히며 나를 바라보았고 입꼬리는 쭉올라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두볼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으유, 우리 자긴 귀여워서 어떡해."
아, 그래 우리가 오늘 진지하긴 했지. 이런 짓 안하고 하루가 넘어갈리가 없지.
"....놔라....아오...변백현아"
내가 하려는 말을 문을 벌컥 열고들어온 박찬열이 숨을 고르며 대신 해줬다. 엄청나게도 뛰어왔는지 머리는 산발에 이 겨울에 땀도 조금 난것 같았다.
변백현 뒷통수를 한대 때리고는 나에게 자랑스럽게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내밀었다.
"따뜻하네."
건네 받은 잔은 따뜻했고 컵을 열자 생크림은 조금 흐트러졌지만 열기가 올라왔다.
그걸 보던 찬열은 해맑게 웃어보였다.
"어휴, 시발 팀원이란게 한명은 저렇게 멍청하고. 한명은 저렇게 무모하니."
"뭐라했냐."
"뭐라했냐."
혼자 중얼거리던 백현의 말을 들은 우리 둘은 동시에 째려보며 변백현을 쳐다보았고
"오-어쩜 저렇게 생각도 잘통해요."
변백현은 깐죽거리며 우리둘에게 박수를 쳤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러다 큰손이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하이파이브."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박찬열을 한번 내손에 들린 따뜻한 핫초코를 한번 바라보다 웃음이 나 나도 모르게 헛웃음 치며 박찬열의 손을 맞받아쳤다.
이주 만인가. 오세훈을 잡기위해 왔던 클럽에 다시왔다. 변백현은 웨이터 복장을 하고 룸을 지나다니고 있는 중이였고 박찬열은 아마 검은정장 차려입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나는 술집 여자로 잠입하려 했지만 뒤늦게 알고 버럭 화내던 박찬열 때문에 아예 클럽으로 못올 뻔 한걸 박박 우겨 현장까지는 따라올 수 있었다. 비록 차 안이지만.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설치하는 변백현 때문에 화면에 하나씩 하나씩 클럽 내부로 채워져가고 있었다.
-김두식 지금 지하로 도착했습니다.
-오케이.
팀원 무전을 들은 백현이 빠르게 룸 입구에 대기를 했고 김두식이 거래를 할 방안에 설치해야할 초소형 카메라를 만졌다.
"몸 조심해."
-나 걱정해주는거야? 감동.
"웃기고 있네."
화면으로 실실 웃는 변백현이 잡혔다. 그러다 김두식과 그의 부하들이 룸앞으로 다가오자 표정을 싹 거두며 그 들을 제일 끝 룸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무전에서도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제일 가운데 큰 화면에 김두식의 얼굴이 비쳐졌고 후 하고 숨이 내쉬어졌다.
잠시 룸을 나간 백현이 여러명의 여자들을 이끌고 룸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경찰이 성매매라니.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들었다. 룸 밖에 나온 백현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조금 무거워 보였다.
나머지 카메라들을 체크하고 백현이 차에 올라탔다.
"시발, 저 새끼를 빨리 잡아야 이 바닥이 조금 깨끗해 질텐데."
빨간색 웨이터 복장을 벗고는 차 안에 미러로 자신의 목에 달린 나비넥타이를 보고 욕을 내뱉더니 신경질적으로 풀렀다.
벗은 옷가지를 뒷자석에 던지자 그 옷에 묻어있던 먼지가 흩날렸다. 창고 어디 깊숙히 박혀있던 옷이였나. 그걸 보던 변백현은 한숨을 쉬며 화장실 좀 갔다올게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러던중 찬열이 운전한 차가 지하에 도착했다.
오. 박찬열 조폭도 나름 어울리네.
뒤에 타고있던 김두식의 거래상대, 건설업자 대표라지만 결국 똑같은 조폭이다.
차문을 열어주고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그 사람은 그런 찬열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깨를 한번 툭 쳤다.
박찬열이 예의는 있어도 저렇게까지 누구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사람이 아닌데.
거래 상대는 룸앞으로 다가갔고 박찬열과 몇몇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박찬열 빼고 나머지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룸안에도 김두식 과 그 부하 한명 뿐이었다.
이상해.
저 사람에게 박찬열은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다. 경수오빠가 워낙 휘황찬란하게 신분위조를 한 덕 일까? 하지만 저 바닥에서는 실력도 경력도 다 필요없다. 신뢰가 우선인데.
다들 어디로 간거지. 다른 CCTV 화면들을 둘러보자 거래 상대의 부하들이 3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3층. 3층엔 직원 휴게실. 그리고 창고
거긴 카메라가 없다.
룸안은 어두워서 물건 처럼 보이는 가방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박형사, 김두식이나 김두식 부하한테 물건처럼 보이는 가방있어? 있으면 손목 없으면 목."
집중하고 박찬열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슬쩍 주위를 둘러보다가 목을 매만졌다.
물건이 없다. 직접 거래를 하지 않는다.
김두식이 거래 방법을 바꿨다. 우린 무슨일을 해서든 나중을 위해 거래 현장의 증거들을 모아야한다.
차 한편에 변백현이 놓았던 초소형 카메라를 내 옷깃에 부착하고 차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고온 옷이 제복이니 정장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빠르게 클럽에 들어가 삼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사람 많은 날이라 그런지 삼층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다. 귀를 기울이며 직원 휴게실로 다가가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서 문을 열어보니 역시 아무도 없이 불이 꺼져있었다. 그리고 구석으로 다가가니 창고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낮에 살펴본 클럽 설계도에 창고는 복층으로 나뉘어져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를 갖다대어보자 말소리는 얼핏 들리긴 했지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다행히 윗층에 모여 있던 것 같았다.
조심히 발걸음을 옮기며 계단으로 다가가 위를 살짝 올려다 보자 구석에서 물건과 돈을 교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계단 바로 옆 행거가 놓여져있어 그 아래에서 바라보니
총 여섯. 두명은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카라에 붙은 카메라에 거래 현장을 담을 수 있었다.
"형님께서 LSD를 어렵게 공수해왔다고 합니다."
LSD? 우리가 쫓고 있는 범인들만 취급하는 물건이었다.
"이렇게 직접 와서 확인 안하셔도 됩니다. 저희 확실한거 알고 계시잖아요."
존대를 하며 격식을 차리는 말투에 주인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부하들만 있는게 아니었나.
"그럼 이만 가보죠."
한 남자의 말에 재빨리 계단을 내려와 나가려했지만 내려오는 속도들이 꽤 빨라 캐비닛 뒤로 숨었다.
숨을 죽이고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이 꺼지고 여러명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나갈 수 없었다.
한 명이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 발을 돌려 내가 있는 캐비닛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숨을 멈추고 온신경을 귀에 집중하였다.
한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가 뒤에 숨어있는 캐비닛 바로 앞에서 뚝 멈췄다.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큰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내 손목을 붙잡은 건 살인자였다.
"향기는 여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