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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김진환을 처음으로 본 것은 내가 삼촌 심부름을 왔을 때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병원에서 풍기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머리에 쓴 털모자를 조금 더 당겨 내리고, 목에 감고 있던 목도리 속으로 고개를 조금 더 파묻었다. 목도리에서 풍기는 섬유유연제 향기가 독한 소독제 향기 위를 덮었다.
엘리베이터는 금방 4층에 도착했다. 삼촌이 있다는 곳을 찾아 복도를 따라 걷는데 병원 한켠에서 은은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병원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노랫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긴 내 발걸음이 쉼터 앞에서 멈춰섰다. 하얀 환자복을 입고 팔에는 저마다의 줄을 단 채로 앉아있는 환자들 앞으로, 한 남자 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참 나긋했다. 제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팝송을 부르는 그 아이는 잠깐 숨을 쉬는 틈마다 예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귓가에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두드렸고, 이어서 내 마음까지 부드럽게 두드렸다. 꼭 홀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김진환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 마이크를 한 손으로 잡고 입에 가까이 댄 채로 노래를 부르던 그 아이는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노래가 끝난 건지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그 아이를 향해 구경을 하던 환자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 분위기에 맞춰 나도 손을 들어 작게 박수를 쳤다. 마이크를 끄고 바로 옆 스피커 옆에 살짝 내려놓은 김진환은 제 앞에서 여자 아이가 내미는 사탕을 손으로 받았다. 그리고는 웃으며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병실로 가려는 건지 제 팔에 끼워진 바늘과 연결된 링거액 걸이를 손으로 잡은 김진환은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 아이가 걸으면 나도 함께 걸었고, 그 아이가 잠깐 멈춰설 때면 나도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서서 그 아이가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복도를 쭉 걸어가던 김진환은 갑자기 뒤를 돌았다. 하필 그 순간 복도에는 나와 김진환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던 김진환은 그 순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왜 자꾸 날 따라와?”
김진환의 물음에 순간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아, 그게…. 우물쭈물거리는 날 바라보던 김진환은 조금 전 보였던 그 눈웃음을 다시 지으며 내게 물었다.
“젤리 좋아해?”
뜬금없는 물음에 잠깐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환은 그럼 들어와, 하는 말과 함께 바로 옆 병실 문을 열었다. 따라 들어오라는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로 그 때의 김진환을 따라 병실 안으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병실 안으로 사라진 김진환의 모습을 따라 쪼르르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병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복도의 향기와는 다르게 병실 안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침대 위에 털썩 앉은 김진환이 이마 위를 덮은 앞머리를 정리하며 앉아, 하고 내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옆에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김진환은 서랍장 위에 놓여져 있던 젤리가 담긴 봉지를 손으로 잡았다. 지렁이 모양의 젤리 하나를 꺼내 제 입에 쏙 넣은 김진환은 입을 우물거리며 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 안의 젤리를 꺼내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도 새콤한 맛에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내 표정이 웃겼던 건지 김진환이 입을 우물거리면서도 웃는 소리를 흘렸다.
“몇 살이야?”
“22살.”
“진짜로?”
“응. 진짜로.”
“진짜 나랑 동갑?”
못 믿겠다는 듯 되물어오는 김진환의 말에 나도 덩달아 놀랐다. 우리는 서로 동갑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별안간 웃음이 터져서 킥킥 웃었다. 22살처럼 안 보여. 내 말에 김진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마찬가지야.
내 앞으로 젤리 봉지를 놓아준 김진환 덕분에 봉지 안에서 지렁이 한 마리를 또 꺼내 입 안에 넣는데, 김진환의 시선이 내게 닿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구석구석 살피는 김진환의 시선에 젤리를 우물거리다가 김진환을 바라보자 눈이 딱 마주쳤다. 그제야 나는 잠깐 잊고있던 삼촌이 떠올랐다.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던 주머니 속의 MP3 플레이어도 함께.
“…아, 맞다. 삼촌.”
“삼촌?”
삼촌? 하고 되묻는 김진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 오늘 삼촌 심부름 온 거 였는데. 까먹고 있었어.”
“삼촌이 누군데?”
내 삼촌이 누구냐고 묻는 김진환의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말하면 알아? 하고 되묻자 김진환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모르는 환자는 없어.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삼촌은 환자 아냐.”
“그럼?”
“여기 의사야. 송민호 선생님. 알아?”
내 말에 김진환은 아,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송쌤 조카야? 친한듯 물어오는 김진환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환이 이번엔 젤리가 아닌 옆에 놓인 초콜릿을 집었다. 포장지를 벗겨 입에 쏙 넣은 김진환이 한 쪽 볼을 볼록하게 만들곤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보니까 좀 닮은 것 같기도 해.”
“눈만 닮았어.”
“송쌤 눈은 안 예쁜데.”
“어?”
“네 눈은 예쁘다.”
선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는 김진환의 목소리가 조금 전 노래를 부르던 그 목소리처럼 귓가를 간지럽혔다. 잠깐 김진환을 바라보다가 다시 목도리 사이로 얼굴을 살짝 파묻으며 말했다. 나 이만 가볼게. 내 말에 김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내 뒤로 김진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 알아?”
그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곤 몸을 살짝 틀어 김진환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닿자 김진환은 또 그 예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김진환이야. 언제든지 놀러와.”
1월 19일
김진환은 머리에 검은색 비니를 눌러쓰고 있었다. 병실 안에서 왜 모자를 쓰고 있어? 내 물음에 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머리카락이 좀 많이 빠져서. 그 대답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김진환을 바라보자, 괜찮다는 의미인 건지 내 이마 위를 손가락으로 툭 튕기며 그 예쁜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은 무슨 표정이야?”
“그냥.”
“못생겼어.”
새삼스럽게 그러지 마. 내 말에 김진환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킥킥 웃었다. 침대 위의 김진환과 맞은 편 쇼파에 앉아 테이블 위의 과도를 집어들었다. 앞에 놓인 사과를 반으로 자르고 또 반으로 자르자 김진환이 내 손이 움직이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통 사과는 한 줄로 쭉 돌려서 깎지 않아?”
“내 마음이야.”
사과를 조각내서 깎는 건 처음 보는 건지 김진환이 꽤나 신기하다는 듯 내 행동을 관찰했다. 사과를 깎다 말고 힐끔, 김진환을 바라보니 꼭 호기심 가득한 아이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바람 빠진 웃음을 짓자 김진환이 날 바라보며 물었다.
“왜 웃어?”
“귀여워서.”
“뭐가?”
“너.”
김진환은 내 말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딜 봐서 귀엽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남자다운데. 그 말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김진환이 억울하다는 듯 침대 위를 툭 쳤다.
“진짜야.”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곤 사과를 마저 깎자 김진환은 내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은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제가 입고있던 병원복의 목부분에 손가락을 걸고 당겨 제 몸을 한 번 확인하곤 그대로 옷을 다시 놓았다. 아, 예전에는 여기 식스팩도 있었는데. 아쉬운 듯 말하는 모습에 킥킥 웃으며 지금은? 하고 묻자 김진환이 묻지 마, 하며 손으로 제 배 위를 문질렀다.
“사과나 먹어.”
포크로 사과를 하나 찍어서 김진환에게 가져다주자 김진환이 사과를 받아들곤 침대 위 비어있는 제 옆 부분을 툭툭 쳤다. 익숙하게 그 곳 위에 몸을 앉히자 김진환이 내 허벅지를 벌러덩 베고 누웠다. 야, 뭐 해. 내 목소리에 김진환이 웃으며 제 손에 들린 사과를 내 입가로 밀었다. 내밀어진 사과를 입으로 한 입 베어물자 김진환이 만족한다는 듯 사과를 옆 접시에 내려놓곤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러고 있는 거 진짜 편하다.”
“난 불편해.”
“그럼 일어날까?”
“…아니.”
내 대답에 김진환이 그럴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다시 노래를 흥얼거렸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그 말과 함께 김진환은 전에 들었던 그 나긋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편안하게 노래를 부르던 김진환은 노래를 잠깐 멈추곤 눈을 떠서 날 바라보았다.
“난 이 부분이 좋아.”
“어떤 부분?”
“바로 다음 가사.”
“뭔데?”
내 말에 김진환은 나와 눈을 맞추며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불렀다. I can't stop singing, it's ringing, in my head for you…. 노래가 끝난 것 같진 않았는데 노래를 멈춘 김진환이 씨익 웃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 내게 묻는 김진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 보느라 가사 못 들었어. 무슨 뜻이야? 하고 묻는 내 물음에 김진환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 양쪽 어깨를 잡아 내 몸을 제가 앉은 방향으로 틀었다. 뭐야? 하고 묻는 내게 김진환이 눈을 맞추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노래하는 걸 멈출 수 없어.”
“…….”
“너를 향한 노래가 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거든.”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을 맞추고 있던 내가 시선을 피하자 김진환이 킥킥 웃으며 내 어깨를 잡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좋아하는 노래 있어?”
“당연히 있지.”
“무슨 노래야?”
“말하면 불러줄 거야?”
장난을 담아 물어오는 내 질문에 김진환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원한다면.
1월 23일
반쯤 열린 병실 문 안으로 김진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음악 CD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복도에는 탁, 하는 청아한 소리가 울렸다. 아무 것도 잡고 있지 않던 손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차올랐고 혹시나 울음이 새어나올까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놔! 놓으라고! 씨-이발, 놔아! ”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몇 명과 간호사 몇 명이 김진환의 팔과 다리를 잡았다. 김진환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놓으라는 말을 반복하며 소리를 지르던 김진환은 침대 위에서 몸을 비틀며 잡히는 물건마다 바닥으로 던졌다. 김진환의 몸을 눌러 행동을 막은 병원 사람들은 김진환의 허벅지에 주사기를 꽂았다. 바둥거리던 김진환은 숨을 쉬기 힘든 건지 얼굴이 빨개져있었고, 그런 김진환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온몸이 작게 떨려오고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떨어진 CD를 그대로 지나쳐 병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해 미친듯이 달렸다.
1월 27일
김진환의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얀 얼굴에 잘 어울리던 김진환의 붉은 입술은 최근들어 색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입술 뿐만 아니라 얼굴이 전체적으로 생기를 잃고 수척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 같았다. 살구색에 가까워진 그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김진환이 내 시선을 느끼고는 제 입술로 손을 뻗어 만지작거렸다.
“왜 그렇게 봐?”
“아픈 사람 같아.”
“아픈 사람 맞잖아, 나.”
그 말을 못 들은 척 몸을 일으켜 김진환에게로 다가갔다. 날 빤히 바라보는 김진환을 마주보고 서서 주머니를 뒤적거려 손에 잡힌 것을 꺼내자 내 손을 바라본 김진환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건 갑자기 왜 꺼내? 설마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김진환을 보며 피실피실 웃곤 손에 들린 틴트를 흔들었다.
“너 발라주려고.”
“뭐? 안 돼. 내가 무슨 여자애도 아니고.”
“요즘엔 남자들도 이런 거 바르는 사람들 있어.”
내 말에 김진환은 그래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해. 완강하게 고개를 젓는 김진환의 모습에 정말 싫어? 하고 되묻자 엉, 하는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김진환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왕 꺼낸 김에 내 입술에 바르자 싶어서 거울 좀, 하고 말하자 김진환이 옆에 놓여져 있던 작은 거울을 내게 내밀었다.
“잠깐만 거울 좀 잡아주면 안 돼?”
그 말에 김진환이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치도록 잡아주었다. 틴트를 열어 한 손으로는 틴트통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술에 틴트를 콕콕 찍어 바르는데, 그 모습을 김진환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입술을 몇 번 붙였다 떼며 틴트를 잠궈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김진환과 눈을 맞추자 김진환이 내 눈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 내 입술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빤히 봐?”
“진짜 빨개졌어.”
“빨간색을 발랐으니까.”
“신기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진환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렸다. 너 좀 있으면 약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김진환의 시선을 피한 채로 말하는데 김진환이 내 팔을 툭툭 치며 야, 하고 불러왔다. 어? 하고 김진환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자 갑작스럽게 내 입술에서 생소한 느낌이 느껴졌다. 짧게 쪽, 하고 닿았다 떨어진 김진환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김진환은 씨익 웃으며 다정한 눈길로 날 바라보았다.
“예쁘다. 네 입술.”
부드러운 그 목소리에 눈을 마주치다가 금새 시선을 피하자 김진환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행동과는 다르게 김진환의 그 얼굴은 조금 붉어져 있었다.
1월 31일
“괜찮아?”
변기를 붙잡고 한바탕 속을 다 비워낸 김진환이 내 물음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숙였던 몸을 일으켜 바로 옆 세면대에서 입을 헹궜다. 김진환의 눈가에는 눈물이 한 방울 맺혀 있었다. 걱정스러운 내 표정에 애써 웃는 김진환의 표정이 어색했다. 입술을 꾹 깨물고 김진환을 바라보자 입을 다 헹궈낸 김진환이 손등으로 제 입가를 닦으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주보고 선 김진환이 내게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나는 괜찮아.”
“거짓말.”
“정말인데. 나는 너한테 거짓말 안 해.”
말이나 못 하면. 괜히 입술을 삐죽이며 김진환의 가슴을 아프지 않게 톡, 치자 김진환이 킥킥 웃음을 흘렸다. 화장실에서 나와 침대 위에 다시 몸을 앉힌 김진환의 따라 나도 바로 옆 의자에 몸을 앉혔다. 아, 배고프다. 제 배를 문지르며 말하는 김진환의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물자 김진환이 작게 인상을 썼다.
“입술 깨물지 마.”
“그럼 넌 인상쓰지 마.”
“왜?”
“주름 생겨.”
내 말에 김진환이 피실피실 웃음을 흘렸다.
“주름 좀 생기면 어때.”
“못생겼을 게 뻔해.”
“아닐걸. 주름 많이 생겨도 난 아마 잘생겼을 거야.”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내 모습에 김진환도 덩달아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건지 아, 하고 제 손을 부딫혀 짝 소리를 내곤 내게 말했다.
“전에 네가 듣고 싶다던 노래 말야.”
“응?”
“연습 해봤는데 되게 어렵더라.”
“그래?”
“응. 그래서 자신 없어. 그래도 들려줘?”
김진환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환이 그 예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큼, 하고 목을 한 번 가다듬은 김진환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노래를 시작했다.
This love is reaching to my heart, Feels so good, don't want to break apart, Hold me close, don't let me fall away, I thank you for each and every day….
천천히 노래를 이어가던 김진환의 노랫소리에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귓가에 감기는 그 익숙한 멜로디에 김진환의 목소리가 올려진 그 소리는 세상 그 어느 소리보다도 달콤했다. 김진환의 노랫소리에 맞춰 작게 따라부르며 몸을 좌우로 까딱였다. 좋다. 노래가 흘러갈수록 내 마음이 더 콩닥거렸다.
들려오던 김진환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어? 하고 눈을 떠 김진환을 바라보는데, 갑작스럽게 제 입을 막은 김진환이 나를 지나쳐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아까 전처럼 김진환이 속을 비워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환아, 괜찮아? 놀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부르며 재빨리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2월 4일
김진환은 가만히 침대 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런 김진환의 곁으로 다가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손을 조심스럽게 잡자, 잠깐 움찔거리던 김진환이 서서히 눈을 떴다. 나와 눈을 맞춘 김진환이 눈을 접으며 예쁘게 웃어보였다.
“몸은 어때?”
“별로야.”
“…….”
“괜찮다고 거짓말은 안 할래. 너에겐 거짓말 안 한다고 했잖아.”
쉬어버린 목소리로 나긋하게 말을 이어오던 김진환은 몸을 일으켜 앉으려는 듯 상체를 들었고 나는 그런 김진환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그 몸을 다시 눌러 김진환을 눕혔다. 누워 있어. 내 말에 힘 없는 웃음을 지은 김진환이 내게 잡혀 있는 제 손에 힘을 넣어 내 손을 꼭 잡아왔다. 목이 다 쉬었네. 내 말에 김진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약 때문도 있고, 내가 자꾸 소리를 지르니까…. 말을 흐리는 김진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으니 왠지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날 잡은 김진환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으며 김진환에게서 고개를 돌리자 김진환이 잡고 있던 손을 조금 당겼다.
“왜 고개 돌려.”
“그냥.”
“나 봐줘.”
“싫어.”
“보고 싶어서 그래.”
그 말에 나오려던 울음을 겨우 삼키곤 김진환을 바라보았다.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김진환은 다시 제 몸을 일으켜 앉으려는 듯 몸을 움직였다. 막는 내 손길에도 기어코 몸을 일으켜 앉은 김진환이 날 아무런 말 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나긋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아. 처음으로 다정하게 날 불러오는 그 목소리에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은 눈물이 결국 두 눈에 차올랐다. 애써 입을 꾹 다물고 저를 바라보는 내게 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뭐가….”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
“울어도 괜찮아.”
그 말이 기폭제라도 된 듯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흐으, 하고 터져버린 내 울음에 김진환이 나를 살짝 당겨 제 옆에 앉혔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안해…. 울고 싶은 건 내가 아니라 너일 텐데. 울면서 중얼거리는 내 말에도 김진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날 다독이는 김진환의 손길이 다정했다.
괜찮아, 괜찮아. 내 귓가에서 중얼거리는 김진환의 쉬어버린 목소리가 내 울음소리에 묻혔다.
2월 7일
안녕, 김진환.
나는 오늘 이 편지지를 사기 위해 참 오랜만에 학교 앞 문구점을 들렀어. 그 곳 입구에는 꼬마 아이들이 동전 몇 개를 오락기 위에 올려둔 채로 쪼그려 앉아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더라. 그런 아이들을 겨우 지나쳐서 편지지가 걸린 곳으로 갔는데 종류도 얼마 없는 편지지들 위에는 먼지가 가득했어. 아마 요즘 세상에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아서겠지. 그러니까 넌 내게 감사해야 해. 손으로 편지를 쓰는 건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란 말야. 몇 년만에 쓰는 내 손편지의 주인공이 바로 너야. 또, 이 편지지가 거기 있던 편지지들 중 제일 예쁜 거라는 사실도 넌 알아야 해.
그 곳은 어때? 네가 떠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이 곳은 여전히 너무나도 추워. 병원 쉼터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지만 여기서도 입김이 나올 정도야. 아마 한 달 전 쯤에 나는 이 쉼터에서 널 처음 봤던 것 같은데.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 때의 넌 꼭 천사 같았어. 하얀 옷을 입고 마이크를 쥔 채로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노래를 부르던 네 모습에, 아마, 음, 난 그 때 네게 반했던 것 같아. 그래서 네 병실까지 졸졸 따라간 거겠지. 이렇게 말을하고 나니까 이제야 궁금해진다. 그 때의 너는 왜 내게 네 병실로 들어오라고 했던 거야? 어째서 처음 보는 내게 자주 놀러오란 말을 했던 거야? 미리 물어봤으면 좋을걸, 이제야 이런 것들이 궁금해지네. 바보같이.
너는 늘 내게 그랬지? 울고 싶으면 울어도 좋다고. 사실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나는 눈물이 끊이질 않아. 몇 번을 펜을 놓고 한바탕 눈물을 쏟다가, 다시 펜을 잡고를 반복하고 있어. 지금 내가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 마음이 닿는대로 글을 쓰고 있을 뿐야. 너에게 솔직하게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을 그대로. 나는 아직도 네가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분명 난 어제도 너를 봤는데, 어제의 너는 내게 웃어줬는데, 이렇게 새벽에 갑자기 네가 다신 못 볼 사람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는 새벽에 걸려온 네 전화를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았어야 했는데…. 미안해.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었지만 그럴 순 없을 것 같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환아.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너를 참 많이 좋아했었어. 날 보며 웃어주는 네 모습도 좋았고, 노래를 불러주는 그 목소리도, 날 다정하게 쓰다듬는 네 손길과 그 다정한 눈빛도 모두 다 좋았어.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해. 이것 봐, 난 너에게 미안한 것 투성이야. 그런데 어떻게 미안하단 말을 안 해. 조금 더 빨리 고백하지 못 해서 미안해. 그리고 네 마음도 이렇게 늦게야 알아버려서 미안해. 너도 나도 참 바보다. 우린 그렇게 사랑에 대한 노래를 함께 불러놓고도, 왜 너와 내가 하고 있었던 게 사랑이라는 걸 몰랐던 걸까.
나는 네가 원망스럽기도 해. 그렇게 가버릴 거면 날 좋아했다는 그런 말은 남기지 말지 그랬어. 나는 꼭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몰라. 정말, 정말 너는 모를 거야.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 한 마디라도 내게 남기고 가준 네가 고마워. 나 되게 이상하다. 미안. 이것도 미안해.
나는 네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새 편지지 한 장이 다 찼어. 이 편지는 바다에 띄울 거야. 그럼 그 물길을 따라 흐르고 흘러서 어딘가에 도착하겠지. 그 곳이 네가 있는 곳이었음 좋겠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그냥 내 바람이야. 이 정도 꿈은 꿔도 되잖아.
이 편지가 네게 처음으로 쓰는 편지이지만 그렇다고 마지막으로 쓰는 편지는 아니야. 다음 편지는 널 생각해도 눈물이 나지 않을 때, 그 때 다시 쓸게.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한 달? 두 달? 어쩌면 그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래도 기다려줘. 꼭 다시 네게 편지를 쓸게. 어쩌면 이건 좀 씁쓸한 일인지도 몰라. 널 생각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건 내가 괜찮아졌다는 걸 의미하는 거니까. 그래도 약속해. 꼭 다시 편지를 쓸게.
널 잊으라는 네 마지막 말은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난 널 못 잊어. 안 잊을 거야. 이것도 약속해. 정말 많이 좋아했어 진환아.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면 네가 좋아하던 그 노래 다시 한 번 불러줄래?
보고 싶을 거야. 아니. 사실은 지금도 보고 싶어.
안녕. 안녕 김진환.
♡
시한부 진환이랑 그와 짧은 사랑을 나눈 여주를 담은 이야기에요 제목 Blue sea는 bgm의 제목입니다 제가 우울할 때면 듣는 노래에요 한 바탕 눈물을 쏟아낼 수 있도록 저를 자극하는 노래인데, 오늘도 이 노래를 듣다가 그냥 떠오른 생각에 진환이를 주인공으로 썼습니다 흐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진환이는 2월 7일 새벽에 세상을 떠난 거에요, 여주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편지 내용은 나와있지 않지만 여주의 편지에서 조금씩 진환이 편지 내용으로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생각이 많은 밤이에요 혹시나 bgm 없이 글을 읽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 글은 거슬리더라도 꼭 bgm과 함께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우울한 마음은 금방 다시 괜찮아 질 거라고 믿으며 저는 이만 자러가요, 제 이쁜이들도 얼른 잠들길! 사랑해요 쪽쪽
덧붙이는 이야기로 2월 7일은 진환이 생일이에요! 여주는 아마 그 날이 진환이 생일인지도 몰랐겠죠, 말해준 적 없었을 테니까 미안 진환아..♡ 그래도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