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나에게는 꿈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대학교의 로맨스 겪어보기 즉, 서울 남자와 연애해보기. 두번째는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회사 파일들을 든 채 거래처와 연락하면서 길거리를 거닐는 커리어우먼 되기. 지금 생각해보면 티비, 바보상자 속 드라마와 인소의 폐해였다. 시발. 하지만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환상만 가득찼었기 때문에 오로지 멋진 서울 남자와 연애하는 서울 여자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모범생들 중에서도 어렵다는 ‘쌍코피 터지기’를 해봤고 너무 힘들어서 공부하는 도중 쓰러지는 바람에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실려가고 난 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나는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을 했다.
새하얀 천장,… 지독한 소독약 냄새……는 잘 모르겠지만, 시발 존나 멋져!
인소에서만 보던 병원 침대에서 쓰러진 내가 멋지다며 난리를 쳤었다. 한 마디로 미친년이었다, 나는.
그렇게 환상을 끊없이 키워며 공부를 한 결과일까 당당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서울로 가겠다고, 서울에서 돌아올 때는 신랑감 하나 데려오겠다며 굳은 다짐을 술술 늘어놓았다. 엄마랑 아빠는 못 말린다는듯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나의 서울 상경을 허락하셨다. 진짜 기뻤다. 남자들의 환장한다는 ‘혼자 자취하는 여자’가 바로 내가 된다니! 야호! 신난다!
나의 서울 상경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어렸을 때 부터 알고지낸 농촌 친구들이 나를 나무랐다. 그냥 여기있지 서울로 왜 가냐, 넌 가도 남자 못 물어온다, 등등 별별 잔소리를 했지만 이미 서울에 마음을 줘 버린 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들이였다. 두고봐라. 내가 너네들 때문에 썩은 눈을 서울 가서 정화하고 올테니. 결혼할 남자 데리고 농촌으로 내려왔을 때 너네 아는 척 절대로 안 할거다. 그렇게 서울로 가기 직전까지도 아직 정신 못 차린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존나 흑역사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나의 환상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교의 로맨스는 개뿔 과제와 시험에 시달리느라 연애는 꿈 꿔보지도 못 했다. 꿈 꿔 보려해도 학교 안에서 내 이상형이다, 존나 첫 눈에 반했다 싶으면 십중팔구 여친이 있거나 바람둥이였다. 친구들이 소개팅을 주선해도 에프터를 못 받는게 대다수요-, 에프터를 받아도 애인 사이로 발전 못하는게 그 다음 수요- 사귀더라도 얼마 못 가 헤어지는 나의 불쌍한 연애였다. 실패하는게 다 인소와 드라마로 높아진 내 눈 때문에 그런 것 같지만, 그걸 인정해버리면 내 자신이 초라해질까봐 지금까지도 부정하고있다. 내 못생긴 외모 때문에 그런거라고. 내 성격 탓이라,‥ 슬프니까 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
그래도 남은 희망의 끈은 여전히 놓지 않았었다. 커리어우먼.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자기소개서도 개같이 써놓고는 당당하게 원서를 넣었다가 당당하게! 떨어졌다. 이때쯤이면 슬슬 현실에 눈을 뜰 때도 됬는데 여주인공 착각의 늪에서 아직도 허우적 거리던 나는 더욱 눈을 감았던 것 같다. 아 맞다ㅋ 여주인공은 힘든 순간을 겪어봐야지ㅋ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ㅋ 하면서 룰루랄라 지원서를 다시 썼다. 시발 생각하니까 나 정말 또라이같다. 진짜 과거의 나한테 가서 정신 좀 차리라고 머리를 쥐어박고싶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중소기업의 취직 된 후 내 환상은 완벽히 무너졌다.
커피는 무슨, 또각또각 하이힐은 무슨, 커리어우먼? 개나 주라지.
심지어 상사도 망나니 중에서 개망나니라는 상사를 만나서 이때까지 경험했던 고생은 발도 못 내밀만큼 개고생을 했다.
그래서 그만 뒀다.
존나 멋있게 사표와 스타킹을 그 상사 얼굴에 던지듯 뿌리며 나왔다.
그리고 하루 만에 후회했다. 당장 이틀 후가 월세 내는 날이라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다. 월세 때문에 쫓겨나기 전전날.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전날.
* 농촌놈들 *
김한빈정대는놈ㅗ
「 무슨 굼벵이세요? 존나 늦어 」
「 마을 입구거든ㅋ 」
「 집착 쩌.시.네.여. 」
김한빈정대는놈ㅗ
「 기차에서 내린다는게 언젠데 고작 마을 입구? 」
김한빈정대는놈ㅗ
「 서울에 살더니 살만 뒤룩뒤룩 쪄서 속도가 느리구나! 」
오, 신이시여. 제가 김한빈 죽이고 천국 가겠습니다. 이 망할 친구놈을 때려죽이고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겠습니다.
마중 나와주는 것도 아니면서 언제 오냐면서 떼를 쓰는 김한빈때문에 짜증이 솟구쳤다. 아니 내가 작년 추석에 못 와서 거의 일 년 만에 보는건데 어떻게 친구들이라는 것들이 코빼기도 안 보일 수가 있어? 모든 짐을 싸오느라 엄청 무거운 캐리어로 머리를 날려버릴라. 겨우겨우 마을 입구에서 마을 회관까지 도착하자 힘이 빠지는 듯 했다. 마을이 이렇게 넓었었나. 어렸을 때는 하도 돌아다녀서 그런가 작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보다도 나 놀러온 줄 알텐데, 여기서 늘러붙을거라는 말을 어떻게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을 회관 문을 여는 순간, 별안간 펑- 펑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졌다.
오랜만이라며 어깨를 툭 치는 김지원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작년 추석때 왜 안 왔냐며 성화다.
왜냐구요? 시발 망할 개같은 상사한테 시달리느라 추석 때도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했거든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리를 잡아 앉았는데 질문들이 날아온다. ‘회사에 취직했다는데 잘 하고있냐’ , ‘누가 괴롭히지는 않느냐’ , ‘얼굴이 반쪽이 됐다’ , ‘사귀고 있는 남자는 있냐’ 등등. 하하 회사는 잘렸, 아니 제가 그만뒀구요, 상사였던 사람이 지독히도 괴롭혔구요, 얼굴은 반쪽이 아니라 두배가 아닐까요? 사귀고 있는 남자는 아쉽게도 없네요! 하하하하. 솔직하게 말 할 수도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서 어른들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어넘기고 대답은 속으로 했다. 저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야.”
시부럴. 깜짝아. 언제 온건지 폭죽 터트릴 때만 해도 없던 구준회가 옆에서 무심하게 날 부른다.
“왜. 아니 그것보다, 너 내가 누나라고 부르랬지.”
“뭐래. 근데 너 왜 짐이 왜이리 많냐. 마치 여기서 살 사람처럼.”
1차 심쿵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진환이 오빠 말에 2차 심쿵
다들 못 본사이의 굿이라도 한건가? 아님 뭐 독심술사 그런거? 그에 아무말도 못 하고 있으니 내가 와서 신나있던 엄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시발,… 존나 도움 하나도 안 되는 구준회를 김한빈과 함께 죽이고 천국행 티켓 끊겠습니다, 신이시여. 구준회와 진환 오빠의 말에 한 순간에 나에게로 시선 집중이 되어버렸다. 밝혀야겠구나,…. 밥이라도 먹으면서 말 하려 했었는데 밥이고 뭐고 얻어터지겠구나.
엄마와 아빠를 향해 경건하게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에 나는 두드려 맞겠지? 인생 Happy- 했ㄷr..★
“나 회사 때려쳤어. 여기서 다시 살라고.”
***
예 음 안녕하세요? 농촌놈들이라는 제목으로 온 디셈버라고 해요
우선 이 글은 무슨 물이냐! 하실텐데요 소소한 일상물..? 역하렘물..? 개그물..? 농사짓는법...?
그냥 24살이나 되서야 인소와 드라마에서 빠져나온 여주와 시골에서 살고있는 아이콘의 생기발랄한 물이라고 생각해주세여!
연재 주기는 제가 삘 받을 때 쓰는 편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빨리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당!
이번 편은 짧아서 5p 걸어놨는데 다음편은 10p 걸어둘지도 몰라요..(소심)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