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는 도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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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지금 생각해보니 도경수 씨와 화해한 날 내 꼴은 정말 추접스럽기 짝이 없었다. 씻지도 않아 꼬질꼬질 한데다가 후줄근한 잠옷차림이라 없던 정도 떨어졌을텐데 그것도 좋다고 도경수 씨는 나한테 진한 뽀뽀를 해주었다. 딱히 키스라는 말이 오글거려서 그러는 건 ㅇ..아님..!! 무튼 그런 내 모습도 좋아해준다는 것이겠지..
지금 생각만해도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다. 강남을 향해 달려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설레는 마음에 흐흣 웃음만 새어나온다. 누가 봐도 어떠랴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니 닐리리야
문가에 서서 누가 훔쳐볼까 몰래 휴대폰을 쳐다보며 아침에 도경수 씨와 나눈 톡을 정주행했다.
ㅎㅎ.. 뭔데 이렇게 귀엽고 난~ 리~ ( ͡° ͜ʖ ͡°)
히히 미친년마냥 웃으며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문뜩 카페에 홀로 있을 박찬열이 생각난다.
이모에게는 별 같잖은 아양을 다 떨면서 멋대로 알바 쉬어서 죄송하다고 사과드렸지만 박찬열에게는 아직도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 때 내가 막 화내고 나와서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괘씸하다.
뭐? 내가 철이 없어? 누가 할 말을 지가, 나 참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래놓고 자기가 잘했다 이거지? 어? 나 힘들어했던 거 잘 알면서 그런 말이나 하고,아직까지 사과도 없고. 진짜 박찬열 넌 아웃이야 아웃
꽁알꽁알 속으로 연신 꽁알 거리며 찬바람에 종종걸음으로 카페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박찬열 너는 아직도 카페에 늦장부리면서 와서 지금 아마 이모가 일을 다 하고 있겠.
분노를 가득 담아 세차게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카운터에 넋 놓고 앉아있는 박찬열이었다.
... 오늘 내가 지각을 했나... 다시 문을 닫고 핸드폰을 봤지만 지각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원래 오던 시간보다 좀 더 빨리 도착한 것 같은데.. 머리를 긁적거리고 다시 문을 열어 정말 박찬열이 맞나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지만 저 금방이라도 날아갈듯 팔랑거리는 귀는 박찬열이 분명했다. 계속 찬바람이 들어오자 내 존재를 눈치 챈 녀석이 똑바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
뭐 임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눈싸움 하듯 눈 한 번 깜빡거리지도 않고 버티자 점점 커지는 박찬열의 눈
새로운 결투 신청 방법인가 싶어 더욱 인상을 험악하게 쓰고있으니 박찬열은 이내 갓 태어난 기린 새끼마냥 몸을 부들부들 떨며 카운터에서 나온다.
" ..○.....○○○... "
예상 외로 내 이름을 애잔하게 부르며 다가오는 박찬열에 내심 당황을 하며 눈치만 보고있으니 더 애잔한 척을 한다. 그런 애잔보스를 오히려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니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때마다 조금씩 무릎을 굽히는데 곧있으면 땅 속으로 꺼질 것 같다.
결국 내 바로 앞에 왔을 때는 완전히 무릎을 꿇고 정수리만 보여주는 박찬열, 세상에.. 이렇게까지 사과할 줄 몰랐는데.. 사람 하나 죽인 대역죄인마냥 굴어...
" 미안해.. "
미안해 라고 말하면 분명 내가 뭐가 미안한데, 뭘 잘못했는데 라고 말했겠지만 긴장감 조성을 위해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 ... "
" 내가... 철 없다고 한 것도 화낸 것도 미안해... "
박찬열이 쩔쩔 매는게 너무 웃긴 나머지 억지로 표정을 숨기고 건방지게 팔짱을 끼며 놈을 내려다보았다. 하하 가소롭군
" 미안해.. 미안.. "
" 야, 미안하단 말로 다 되면 경찰은 왜 있고 법은 왜 있어? "
놈의 말을 칼같이 끊고 재수없게 쏘아붙이니 놀란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박찬열이라서,
오세훈 같았다면 애초에 무릎도 안꿇었고 만약 꿇었더라도 내가 재수없게 굴었다면 아오 이런 재수없는년아 사과 받기 싫으면 받지 마 하고 뛰쳐나갔겠지. 하지만 박찬열은 아직까지는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기때문에 내가 이런 짖궃은 장난도 칠 수 있는 것이다. 열아... 네가 내 친구라...참..좋다...^^
" 미안하면 "
" ... "
" 가서 빵사와 "
배고프니까
물론 80% 농담이 섞인 말이었다. 내 말에 박찬열도 하하 웃으며 뭐 이런게 다있지 하며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 알았어. 무슨빵 먹고싶은데, 초코롤? 단팥빵? "
...
충실한 빵셔틀이 생겼다. 마치 내가 일진짱이 된 것 같궁...^^..
" 나 편의점 빵 안받을건데? "
" 알았어 여기 앞에 빵집 있으니까 내가 잘 골라올게 "
그리고 쌩하니 나가버린다. 원래 저렇게 말 잘듣는 애가 아니었는데...진심으로 나한테 미안해하는 것 같다.
뻘쭘하게 인중을 긁으며 주방 안으로 들어가니 스에상에,
혹시 이모가 채찍을 휘두르면서 마감 제대로 하라고 노역시킨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깔끔하다. 카페에 집 요정 도비가 있나... 역시 사람 바뀌는 건 한순간인듯 싶다.
커피콩이 깔끔하게 담긴 그라인더를 보며 희열감을 느끼고 꽤 오랜시간동안 커피를 안내려서 감이 죽지는 않았을까 깔끔깔끔 광이 나는 포터필터를 손에 잡았다.
한참 열심히 내린 커피에 물을 타 아메리카노를 만드는데 채 10분도 안걸린 사이 종소리가 우렁차게 카페 안을 채우고 문이 열렸다,
" 빵 사왔어!! "
... 벌써? 아무리 빨라도 지금쯤이면 빵 고르면서 자신의 선택장애를 원망하고 있을 시간인데..
헠헠 거리며 숨을 고르는 박찬열은 온갖 인상을 쓰며 손에 들고 있는 하얀 빵 봉지를 내밀었다. 모양을 보니 뭘 그리도 많이 담았는지 두둑하다. 흐앙 힘들어, 하고 테이블 하나를 잡아 풀썩 엎드려앉은 박찬열을 뒤로하고 빵 봉지 안을 살펴보니, 단팥빵, 소보루빵, 크림빵
...
나는.. 좀 더... 특별한 걸 먹고 싶었는데... 센스도 없는 새끼...
힘들어, 하며 징징거리는 놈을 보니 차마 대놓고 면박 줄 수 없어 그저 얼른 소보루빵을 들어 입에 쑤셔넣었다.
" 야 고맙다. 잘먹을게 "
" 유웰컴, 내 사과 받아주는거지 "
" 근데 너가 웬일이냐, 오랫동안 안나왔는데 청소도 깔끔히하고 "
수고했다는 뜻으로 크림빵 하나를 집어 던져주니 그 긴팔로 한 번에 잡아 곧바로 포장을 뜯는 박찬열
" 이모님이 변하셨어... "
" 왜 "
" 너 하나만 있을 때에는 깔끔했는데 왜 나는 못하냐고 막 뭐라고 하시는거야!!! "
그러며 작은 크림빵을 쥐어짜듯 손에 힘을 준다. 크림빵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으아아아아아ㅏ아ㅏ!!! 하며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불쌍한 크림빵
" 너 없는 동안 진짜 노예처럼 일했다니까? 그라인더는 이렇게 청소해라, 커피 머신도 닦아라, 창고도 정리해라!!! 택배도 받아서 남은 재고 파악해라!!!!!! 진심 끔찍.. "
지금 이렇게 보니까 박찬열 눈가에 다크서클이 생긴 것 같기도...
" 너가 돌아와서 다행이야..정말.. "
" 결국엔 지 힘들어서 반가워한거 아냐, 왠지 너가 그냥 미안하다고 무릎까지 꿇고 미안하다고 빌고 그럴리가 없었어 "
" 아니야~ "
" 뭐가 아니야, 넌 혼자 더 일해봐야 정신차리지 "
내 말에 말로 하는 대답 대신 정말 정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못생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격하게 흔든다.
" 아 안돼!! 나 그럼 너네 집에 찾아가서 카페에 끌고나올거야 "
" 뭐래 "
카운터쪽에 앉아 내가 만든 아메리카노와 빵을 번갈아 먹으며 살짝 출출해진 배를 채우는데 박찬열이 갑자기 짝 귀가 찢어질 듯 박수를 한 번 치고 크게 입을 벌려 반쯤 남은 크림빵을 한번에 쳐넣더니 나한테 삿대질을 한다.
크림빵이 너무 맛있어서 정신이 나간건가? 했지만 곧 꿀꺽 입 안에 있던 빵을 넘기고 말하는 박찬열
" 야 너 경수형 만났어? "
" ... "
" 어? "
싸우고 화해한 건 우리인데 자기가 더 궁금해하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나는 또 짖궃게도 조용히 시무룩한 얼굴로 손에 들고있던 빵을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다.
" ... 내가 원래.. 그런 거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니잖아.. "
" ... "
내 대답에 박찬열은 얼굴 가득 담고있던 웃음을 지워버리고 얼척이 나간 표정을 했다.
" .. 아무리 일 때문이라도.. "
" ..야 너..이씨...미친... "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갑자기 울먹거리는 녀석에 하마터면 웃음이 빵 터져버릴 뻔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박찬열의 표정을 관찰하다 말했다.
" 근데 도경수 씨는 이해가더라, 도경수 씨가 나 사랑한대 "
" ... "
진한 뽀뽀한 건 안알랴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빵을 들고 냠냠 먹으니 으악! 표효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찬열
" 야!!!!!!!!! 존나 심쿵했잖아!!!!!!! "
" 아니 천사누나가 너보고 꺼지라는 소리도 안했는데 심쿵할게 뭐있담 "
얄미운 표정을 하며 짭짭 거리며 마저 빵을 먹었다. 나를 보는 박찬열에 얼굴에는 딥빡의 기운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하하 신난다! 찬열이는 역시 놀려야 제맛이지!
.
.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듯 얼굴 마담 박찬열은 주문 받고 나는 커피를 만들고 평화로운 낮시간을 보내는데 점심시간이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 등 뒤에서 ○○씨- 하고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경수 씨가 너무 보고싶어서 헛게 들렸나 하고 마저 커피 위에 휘핑크림을 올리는데 다시 한 번 ○○씨-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 많이 바빠요? "
주문하는 쪽이 아닌 카운터에 달린 작은 문쪽에 꼭 붙어서 애타게 나를 부르고있는 도경수 씨가 보였다. 반가운 나머지 재빨리 컵 뚜껑을 닫아 박찬열에게 건내고 그에게 다가갔다.
" 뭐에요? 점심시간에 웬일이에요? "
" 보고싶어서 잠깐 들렸어요 "
흐흥..왜 이렇게 적극적~ 좋아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대놓고 좋아하고 있으니 자신의 양 손바닥을 내 눈 앞에 쫙 펼쳐보이는 그, 나 또한 아무 말없이 두 양 손을 꼭 맞대니 부드럽게 손깍지를 껴온다.
" 점심은 먹었어요? "
" 점심 시간 끝나고 먹으려구요 "
카페 특성상 회사원들과 엇갈리는 점심 시간인지라 아까 박찬열이 사온 빵으로 에너지를 연명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도경수 씨가 한쪽 손깍지를 풀더니 팔목에 걸린 종이 봉투를 건내주었다.
" 그럴 줄 알고 샌드위치 사왔는데 "
샌드위치..!! 오늘 탄수화물이 터지는 날인가보다. 그래도 샌드위치 사이에 들어가있는 햄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 괜찮은데.. 어떻게 샌드위치까지 사왔어요 "
이런 맛있는 샌드위치에는 깊은 전설이 있다. 비록 편의점 샌드위치였지만 그 샌드위치로 도경수 씨의 쿠크다스를 깨뜨린 적이 있는... 그런.. 슬픈.. 전설.. ☆ (2화 참조)
여기서 눈치없이 그 이야기를 꺼내면 안될 것 같아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향기로운 샌드위치 냄새만 킁킁 맡으며 도경수 씨와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하는데
" 어이구 아주 그동안 얼굴 못보고 어떻게 살았대? 잠깐 들리기는 무슨 "
얼굴에 잔뜩 나 언짢음이라고 쓰여진 김종인 씨가 또 어디선가 톡 튀어나와 말했다.
" 나 원래 점심에 카페에 안오려고 했는데 도경수 씨가 밥 먹기도 전부터 카페에 가야된다고 막 닥달을 하는거야! "
한 번 입구멍을 트자마자 시어머니한테 다 일러바치는 시누이마냥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하는 김종인 씨
" 그래서 내가 저녁에 가자, 저녁에 어차피 오래볼 거 아니냐, 그랬는데도 안된대, 자기는 저녁시간은 물론이고 꼭 점심시간에도 가야겠대!! "
" ... "
" 근데 또 내가 명색에 좋은 친구인데, 안따라오면 쓰겠어? 꾸역꾸역 찬바람을 뚫고 카페까지 걸어오는데, 또 ○○씨 점심 안먹었으면 어떡하냐고 배고프다고~ "
...
네.. 김종인 씨 많이 고생하셨네요...도경수 씨한테 시달리느라 고생했겠어..
혹시 과장은 아닐까 묵묵히 듣고만 있는 도경수 씨의 표정을 바라보니 평온하기 짝이 없다.
그는 곧 김종인 씨의 말이 정말이라는...
*
" 도경수 씨가 드디어 일을 할 줄 아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도록 해 "
허허 웃으며 한 최팀장님의 말씀에 팀내 무겁게 가라앉았던 정적은 화-하고 풀렸다. 한동안 줄기차게 까이기만했던 우리의 사장님 아들, 경수가 성공한 것이다.
" 감사합니다 "
경수의 일의 능률은 그녀와 화해를 하고 난 날 이후부터 쭉쭉 하늘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이 기세로 사장자리는 금방이라도 찍어눌러버릴 듯이, 심지어 인사 이동 후 한동안 하지 않았던 좋은 아침입니다- 하는 인사도 다시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날마다 바뀌는 경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집에 대기업과 비밀리에 도경수 클론 1호, 2호 ,3호를 만들어서 매일 바뀌는게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문도 돌았지만 다시 밝은 분위기의 도경수 클론 2호가 돌아왔으니 그저 계속 2호가 함께하기만 바랄 뿐....
" 도경수 씨 오늘 기분 좋아보이네 "
" 도경수 씨 무슨 일 있어? "
하루종일 사내사람들은 모두 경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에만 집중했다. 설마설마 하던 경수의 초고속 승진이 코 앞으로 다가와 자신이 한순간에 상사로 있다가 부하직원으로 전락해버리는 건 아닌지 아니면 리터소프트의 막대한 주식을 넘겨받아 대주주로 신분 급상승을 해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했지만.
무슨, 그를 지켜보는 종인에겐 가당치도 않은 상황이었다.
" ○○씨랑 화해해서 그렇게 좋아? "
" 네, 좋습니다 "
함께 점심을 먹기위해 지하 일층 구내식당 입구에서 만나서부터 계속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경수에 종인은 소름이 돋았다. ○○씨.. 그렇게 안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놔...
" 도경수 씨 밥 먹다말고 왜 그래 "
" ... ○○씨는.. 밥 먹었을까요 "
밥을 크게 한 술 떠서 입에 넣으려다 말고 갑자기 우울모드에 돌입한 경수. 종인의 멘탈엔 대공황이 찾아왔다. 아아, 이 사람이 옛날에 그 똑부러지고 자기 할 일은 엄청나게! 완벽하게! 해내던 초파워엘리트가 맞단말인가..!! 이는 사장님께 30장에 걸친 보고서를 작성해 당신의 아드님이 요즘 이런 상태입니다. 하고 알려야 할 지경이다.
" 카페는 점심 때가 가장 바쁘니까, 점심 끝나고 먹겠지 "
" .. 배고플텐데 "
" 알아서 밥 챙겨먹겠지, ○○씨가 본인 못챙겨먹고 일 할 사람으로 보여? "
종인은 그동안 술자리를 같이 했을 때 주위가 아무리 개판이어도 꿋꿋이 자신의 것은 끝까지 챙겨먹는 ○○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렴... 충분히 잘챙겨먹고 말고.. 우리보다 더 잘 먹을지도..
" 빨리 먹고 가봐야겠습니다 "
" 그동안 안챙기던 사람이 왜 이래!! 지금 우리 챙겨먹기도 바빠! "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찬을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경수에 종인은 할 말을 잃었다. 그냥 한대리님이랑 먹는게 나았을까...? 아니야 그 쓰레기같은 드립 받아쳐주기도 힘든데.. 근데 지금도 힘들고...하...
그러다가 너무 급하게 먹었는지 콜록콜록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는 경수에게 아유 천천히 먹으라니까! 하며 잔소리를 하는 종인의 모습은 흡사 엄마 같았다. 집에 엄마 한 명, 회사에도 엄마 한 명, 경수에겐 엄마가 두 명
호로록 밥을 흡입한 경수 덕분에 경수의 엄ㅁ.. 아니 종인 또한 허겁지겁 밥을 입에 우겨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니 꼭 이래야해? ○○씨는 알아서 잘 챙겨먹는다니까? 저녁에도 실컷 볼 수 있잖아 "
" 주변에 샌드위치 전문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
지금 경수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모든 신경은 카페에 있는 그녀에 집중되있을 뿐, 한 번 그녀와 다시는 겪기 싫은 경험을 해보고나니 원래도 애정이 맨틀을 뚫을 정도로 깊었지만 이제는 내핵까지 찌를 정도로 더 깊어진 듯 싶다.
다급히 구내 식당에서 나온 경수를 뒤쫓아 나온 종인은 성가시다는 듯이 머리를 한 번 털고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 ... 알았어 가자.. "
*
" 나 밥도 제대로 못먹었다니까!! "
....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마저 내게 다 일러바치는 김종인 씨. 네.. 정말정말 고생하셨어요...
" 도경수 씨가 이렇게 팔불출인 줄 몰랐어! "
ㅍ..팔불출?
도경수 씨가 바로 말로만 듣던 팔불출이라구요???? 이 사람이?? 내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
...
생각해보니 도경수 씨가 크게 나한테 사랑해요!!! 나는 ○○씨 밖에 없어요!!! 하고 말로 표현은 안해서 그렇지 맞는 것 같기도하고... 아무리 면전에다 대놓고 하는 앞담화를 들어도 아련터지게 칸막이를 사이에 놓고 내 손을 놓지못하는 그를 다시 한 번 더 바라보니 여전히 싱글벙글 평온한 얼굴이다.
" 야!! ○○○!! 빨리 커피 안만들고 뭐해! "
주문을 받다가 내가 없는 사이 대신 주방에서 미친듯이 커피를 만들고있는 박찬열이 소리쳤다. 아차 도경수 씨에 너무 정신이 팔렸나보다.
아쉽지만 지금은 여기까지... 스르르 손을 놓으며 말했다.
" 앞으로 점심 천천히 먹고 와요 "
" 그래도 많이 배고프ㅈ "
" 천천히 먹고 와요, 체하니까. 저는 알아서 잘 챙겨먹고 있으니까 꼭 천천히 먹고 와요 "
이렇게라도 안말하면 도경수 씨 뒤에 있는 김종인 씨한테 미움 살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김종인 씨가 절 엄청 노려보고 있거든요.
네, 알았어요. 대답은 이쁘게 잘하는 도경수 씨를 두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샌드위치 하나를 까서 열심히 컵에 초코 소스를 펌핑하고있는 박찬열의 입에 물려주었다. 아무래도 오픈형 주방이다보니 도경수 씨도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도경수 씨의 얼굴을 보게되는데.. 딱히 그의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내 손을 쫙 벌린 크기 하나하고도 반만 한 샌드위치 세개를 사왔으면서 나눠먹는게 보기싫은가 보다. 내가 이걸 다 먹을 것처럼 생겼나..
커피를 다 만들동안 박찬열은 샌드위치를 입에서 놓지못하다가 다만들고 나서야 겨우 손으로 잡아 한 입 뜯으며 내게 물었다.
" 웬 샌드위치? "
" 도경수 씨가 우리 배고플까봐 사왔대 "
내 말을 듣자마자 도경수 씨바라기답게 박찬열은 켱수형.... 하며 도경수 씨를 찾았다.
" 경수형... 진짜 경수형은 천사에요. 어떻게 저 배고픈거 알고.. "
" ... "
" 이거 제가 완전 좋아하는 치킨데리야끼 샌드위치인데.. 진짜 경수형은 제 취향도 잘알고.. "
원래 의도는 이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박찬열의 엔젤이 된 도경수 씨는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머쓱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 ..많이 먹어요 "
" 진짜 켱수형... 너무 좋아 "
도경수 씨는 샌드위치 하나로 빠돌이 한 명을 얻었다.
" 그러고보니 세훈군이 없네요 "
" 어 그러게 세훈이가 요즘 안보인다. 싸웠어? "
어느새 잊혀진 오세훈의 존재를 먼저 기억해준 건 도경수 씨였다. 김종인 씨는 그렇게 오세훈이랑 박찬열이랑 놀았으면서 어떻게 이제야 알아채, 너무해
" 이야기 못들었어요? "
점심시간 후반에 다다르자 여유로워진 카운터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말하는 박찬열
" 무슨 이야기? 도경수 씨는 들었어? "
" 아뇨.. 그냥 언제부터인가 안보이던 것 같은데.. "
박찬열은 에잉, 훈이한테 관심이 없구만 하며 혀를 끌끌 찼다.
" 세훈이 연예인해요 "
" ... "
연예인이라는 말에 도경수 씨와 김종인 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아직 연습생이긴한데, 아이돌? 한다고 하는 것 같아요. 걔 나이도 나이니까 빨리 데뷔한다고 "
" 세훈이가???? 세훈이 꿈이 연예인이었어?? "
" 아뇨, 세훈이 원래 꿈 없었는데 집 앞에서 떡볶이 먹다가 길거리 캐스팅 당했대요. 기획사도 괜찮고, 꿈도 없었으니까 바로 들어간 것같아요 "
지금 생각해도 오세훈의 캐스팅 일화는 너무 어이가 없다. 커피를 만들던 나는 자랑스럽게 캐스팅 매니져분의 명함을 팔랑거리던 오세훈의 모습이 떠올라 멋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 하긴.. 세훈이가 반반하니 잘생기긴 했지.. 근데 연예인을 할 줄은.. "
" 저도 몰랐습니다 "
김종인 씨는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 와, 그럼 세훈이 데뷔하면 소녀팬들 엄청 끌고다니겠네? "
떠야 끌고다니죠. 지금 개뿔도 없는ㄷ....ㅔ... 아이돌치고 나이도 많고
" 살다가 연예인 인맥도 다 만들어보고,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
" 그러게 말입니다 "
" 그럼, 찬열이 너는 "
문뜩 화살은 박찬열에게 돌아갔다.
" 저요? 저는 왜요 "
" 너는 뭐할거야, 세훈이는 연예인하는데 너는 "
난데없이 자신에게 박히는 화살에 당황한 박찬열은 아..ㅇ...갑자기 왜요.. 하며 말을 더듬었다.
" 군대 갔다와서 졸업도 멀었고... "
" 시간 금방이야 찬열아, 빨리 정해야지 "
김종인 씨의 시간 금방이야, 라는 말이 왜 이렇게 찔리는지..^^ 저한테 한 거 아니죠? 그렇죠??
" ... 저는.. 저도 리터소프트 들어갈까봐요 "
.. 뭐래 미친. 박찬열의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던 김종인 씨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 찬열이 너 컴공과야? "
" .. 아뇨 "
" 그럼 뭐 정보보안학과? "
그건 더 아닌 거 같은데...쟤 저랑 같은 과거든요.. 박찬열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 리터소프트를 들어가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IT기업에
" ..꼭 그쪽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습니다 "
조용히 말을 듣고있던 도경수 씨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리터소프트 최측근 중 가장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말에 얼른 손님에게 커피를 건내드리고 박찬열 옆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 진짜요??? "
김종인 씨의 말에 연신 시무룩해하던 박찬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다시 소생했다.
" 오히려 개발부나 기획부, 전산실쪽 아니면 학과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을 겁니다, 총무부라던가, 홍보부같은... "
" 우와!! 그럼 저는 어디에 들어가면 좋을까요? "
안돼요 도경수 씨, 얘가 리터소프트 들어가면 망해요..!!
" 찬열군은... "
" ... "
" 영업부? "
..소름.. 잘 어울려서 소름...
" 대신 요즘은 해외 마케팅에 치중하는 편이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으면 좋구요. 없으면... "
" 없으면..? "
" 배워야죠. 영어 자격증은 필수입니다 "
내가 아는데, 박찬열은 자기 입으로 영어를 잘한다고는 하지만 영어 자격증은 하나도 없다. 자신의 주제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는 박찬열은 순식간에 김샌다는 표정으로 온몸에 힘을 뺐다.
" 인턴쉽 프로그램도 있고 취업 설명회도 있고, 여러가지 잘 이용하면 입사할 수 있을겁니다 "
도경수 씨는 나름 희망을 준다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박찬열은 이미 희망이 와장창 깨진 표정이었다. 힘빠진 녀석의 등을 토닥여주며 우리 함께 힘쇼를 외쳤다. 그래... 영어 자격증은 요즘 당연시 되는거야..
" 아... 천사 누나랑 사내 연애하려고 했는데.... "
힘쇼 취소, 엿이나 먹어라 이 새끼야.
박찬열의 터무니없는 소리에 기껏 조언을 해준 도경수 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요 얘한테 조언을 해주는 시간이 아깝다니까요?
" 도경수 씨, 시간 "
갑자기 옆에서 도경수 씨를 툭툭 치는 김종인 씨는 벽에 달린 시계를 가리켰다.
도경수 씨와의 꽁냥거림으로 시작한 점심 시간은 어느새 박찬열의 취업 컨설팅으로 끝맺었고 저녁에 다시 오겠다며 회사로 향하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녁에 또 봐요.
*
[ 개발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도경수 씨 ]
카페에서 돌아와 한참 열심히 업무를 보는데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작게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평소에는 업무용으로 쓰라고 만든 메신저로 아아아아ㅏ, 도경수씨이이이이, 심심심심심, 심심해~ 하고 쓸모없는 채팅만 보내던 김종인 씨였는데 오늘은 좀 단조롭다. 읽고는 아무 답장도 보내지 않으니 다시 한 번 더 메신저가 울린다.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읽고 씹지말고 중요한 이야기인데 들어야지 ]
중요한 이야기?
[ 하세요. ]
그 중요한 이야기가 뭔지는 들어봅시다.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놀자 ]
...아무래도 그냥 업무에 집중하는게 나을 듯 하다. 김종인 씨한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잠깐 모니터 쪽으로 기울였던 허리를 쭉 폈다.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읽고 씹지말라고 ]
[ 중요한 이야기가 놀자 입니까? ]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놀자 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몰라? 약속 했잖아 ]
그 놈의 약속, 사나이가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는 거 아니라고 배웠지만...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이번 주말이 기회야, 1박 2일로!!! 가자!!!!!!!!! ]
[ 계획은 있습니까? ]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내가 또 기획부 김종인 아니야, 당연히 있지 ]
[ 계획표 짜서 보내세요. ]
얼마나 계획이 알차면 이렇게 닥달하는건지, 어디 한 번 그 계획 좀 봅시다.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계획표가 뭐가 필요해!! 그냥 가서!! 놀고!!! 먹고!! 마시고!! 자고!! 먹고!! ]
...
[ 어디 갈 지부터 정하는게 먼저 아닙니까? ]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오오오오1! 그럼 어디 갈지부터 정하자!! 어디갈래!! 가는거다!!!1!!!!11!!!!!도경수 씨!!!1!!! ]
단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메신저가 시끄럽다. 회사 자체 제작 그룹 웨어인데 언제 음성지원 기능까지 만든 건지 모르겠다.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어디 가?? 온천???스키장????? ]
온천...? 스키장...? 온천은 왠지 좀... 그렇고.. 스키장은.. 어렸을 때 몇번 타보고 말았는데 지금은 어떠련지, 아무튼 ○○씨 앞에서 멋지게 스키장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면 안된다. 절대
[ 다른 곳으로 생각해오세요. ]
[ 개발 기획 1팀 김종인 사원 : 생각해오세요???? 지금 주임이라고 벌써부터 상사로서 사원인 나한테 명령하는거야???? ]
[ 다른 곳으로 생각해보세요. ]
초등학교 문제 내는 것도 아니고 해보세요라니... 이건 이것대로 이상하다.
내 말에 정말 다른 곳을 생각하는 중인지 답장이 없는 김종인 씨에 나도 하던 업무를 살짝 밀어놓고 초록창에 무언가 타이핑 하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겨울 여행지, 아직까지 찬바람이 부는 이 시기에는 정말 어디가 좋을까
평창...대관령... 부산... 영 다 마땅치않다. 여행이라고 따로 이렇게 친구들하고 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처음 김종인 씨로부터 우리끼리만 여행가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한 번 가자고, 말로만 그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실행에 옮기니 감회가 색다르다. 여행이라고는 어릴 적 가끔 방학 시즌이 되면 엄마가 머리 식히러 해외에 다녀오자고 할 때 일본이나 프랑스 잠깐 다녀온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갑작스럽지만 가족하고가 아닌 친구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씨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떨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슬슬 김종인 씨의 재촉에 여행이 실감이 나면서 절로 나오는 미소를 참지 못했다.
바쁘게 스크롤을 내리며 여행지를 검색하는데 문뜩 두 단어가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커플 여행지
....
무심코 내 손이 그 글을 달칵 클릭했다.
그리고 곧바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펜션 사진과
장미잎으로 이쁘게 꾸며진 침대
...
순간 멍하니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혹여나 누가 봤을까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마저 급하게 스크롤을 내렸다. 이게 대체 여행지 추천인지 펜션 자랑인지.
ㄱ..괜히 클릭했나... 얼굴에 열기가 훅 끼쳐온다.
일단 여행지는 카페에 가서 정하기로 하고 모든 인터넷 창을 꺼버렸지만 자꾸만 그 장미잎으로 꾸며진 침대가 기억에 남는다.
파일을 뒤적거려 가장 골아픈 일을 꺼내도, 단순한 타이핑 업무를 해도 머릿속을 지배하는 빌어먹을 침대
이런... 보는게 아니었어..
*
" 여행이요??? "
" 그래!! 여행!! 재밌겠지!!! "
사람없는 카페 문을 열자마자 여행 가자!!!! 라고 외치며 입장한 김종인 씨에 박찬열과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저 여행이요???? 하고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합의가 되있었던 건지 도경수 씨는 아무말 없이 종알종알 떠드는 김종인 씨 맞은 편에 따라 앉는다.
난데없는 여행이야기에 박찬열과 눈짓을 몇번 주고 받다가 김종인 씨가 커피는 필요없다고 빨리 앉으라며 닥달하는 바람에 카운터에서 나와 도경수 씨 옆에 앉았다.
" 나하고 도경수 씨,○○씨,찬열이,세훈이 이렇게 가자고 "
" 뭐에요, 저만 여자잖아요 "
" 여자 취급은 도경수 씨한테나 받고 "
ㅎ 네
내 맞은편 그러니까 김종인 씨의 옆에 앉은 박찬열이 폰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 근데 세훈이 시간 되려나? 연습하느라 바쁘지 않아? "
" 아.. 오세훈.. "
예전에 카페에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리던 오세훈...
" 뭐? 정말? 훈이 얼굴 보려고 영상 통화도 해줄 거야? " (19화 참조)
....
" 기다려봐 내가 방법이 있어 "
나는 잠깐 기다려보라는 듯이 손바닥을 보여주고 오세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솔직히 핸드폰을 쓰면서 한 달에 한 번 할까말까한 영상 통화였는데 오세훈 덕분에 써보고 참 좋은 경험을 해본다.
자기가 전화 해달라고 해놓고 안받는 건 아닐까 했지만 도경수 씨와 내가 나오도록 살짝 핸드폰을 기울여 조금 기다리니 금방 화면에 오세훈의 눈이 가득 찼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 뭐야 」
" 받았다 받았다!!! "
호들갑을 떨며 옆에 있는 도경수 씨를 치니 화면에 있는 오세훈에게 살짝 목례를 한다.
「 오 경수형 완전 오랜만이에요. 둘이 여전히 딱 붙어있네 」
음량을 최대로 하니 카페 안에 오세훈 목소리가 가득 찬다. 그를 들은 박찬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뒤로 달려왔다.
" 세훈아!!!! 보고싶어!!! "
박찬열을 본 오세훈의 눈이 커지더니 이내 폰을 멀리 떨어뜨려 자신의 얼굴 전체를 보였주었다.
「 열아!!!! 대박이다 진짜, 지금 카페에 다있는거야??? 」
언제온건지 김종인 씨도 어느새 내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세훈아, 연예인한다며, 할만 하냐. 더 잘생겨진 것 같다 "
「 죽을 맛이에요 형, 저보고 일단 춤이나 열심히 추래요 」
" 지금은 뭐하고 있어 "
「 방금 막 집에 들어와 쉬고있어요. 아침부터 하루종일 춤만 췄더니 탈골 될 거 같아서, 나중에는 합숙도 한대요. 미쳤죠. 」
ㅋㅋㅋㅋㅋㅋ 이제는 오징어처럼 리듬타는 거에서는 벗어났나보네
" 그럼 세훈아, 너 이번 주말에 시간 돼? "
「 저요? 저.. 잘모르겠어요 」
잘모르겠다니, 뭐 이딴 그지같은 대답을.. 말을 얼버무리는 오세훈에게 크게 외쳤다.
" 우리끼리 여행갈건데!! 너 바쁘면 그냥 빼고 갈게!! "
이어서 박찬열이 바통을 받아들었다.
" 아쉽다!!! 한 번 우리끼리 엠티아닌 여행가나 했는데!!!
그리고 김종인 씨
" 그러게 세훈아!! 춤 열심히 추고!! 나중에 티비에서 봤으면 좋겠다!!! "
김종인 씨의 말이 끝나고 우리는 일제히 도경수 씨를 바라보았다. 한꺼번에 우르르 몰린 시선에 당황한 도경수 씨는 한참 입을 우물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 여행 경비는 모두 제가 내는 거라 부담없이 가는 여행인데 아쉽네요. 몸만 오면 되는데 "
...? 그런거였어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김종인 씨를 보니 김종인 씨도 똑같은 얼굴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박찬열만 오예! 하며 기쁨의 탄성을 지를 뿐
한동안 대답없이 멀뚱멀뚱있던 오세훈이 아아아아!! 하고 외쳤다.
「 스탑!! 잠깐만!! 」
" 야 오세훈 정말 아쉽다 "
「 아 진짜!! 잠깐!! 나 주말에 시간 돼!! 」
" 아니야 많이 바쁘면 안와도 돼 "
오세훈 놀리는 데에 재미들린 우리는 다함께 핸드폰에 대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ㅂㅂ
「 아아아아아안돼!!! 훈이도 데리고 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놀리는 거 허니잼. 이내 오세훈 얼굴이 보이던 화면이 미친듯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언뜻언뜻 안돼!! 하며 징징거리는 오세훈의 일그러진 얼굴이 비춰졌다.
" 알았엌ㅋㅋ 가자가자 "
그제야 흔들리던 화면이 평화로워지고 곧 오세훈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 그럼 이제부터 정해야지, 어디갈지 "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 김종인 씨의 말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 아직 갈 곳도 안정했어요? "
" 당연하지 "
뭐가 당연하지야 이 싸람아!!!!!!!!!!!!!!!!!!!!! 김종인 씨가 은근히 계획이 없는 사람이네
「 오 그럼 나는 부산 」
테이블 한 가운데에 올려둔 핸드폰에서 바로 옆에 있는 것마냥 크게 오세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안돼, 부산은 너무 멀어. 주말동안 갔다올거죠? "
" 우리는 직장인이니까 그래야지, 토,일 1박2일 "
그러자 꿈뻑꿈뻑 눈을 깜빡거리던 박찬열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 전주 어때, 먹방투어. 페이스북 보니까 쩔던데 "
" 야 전주나 부산이나 똑같이 멀어, 이왕이면 경기도나 강원도쪽으로 생각해봐 "
자기 방 침대에 앉아있는 오세훈도, 작은 테이블에 올망졸망 모여앉아 있는 우리도 예외없이 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키장? ... 스키도구 비싸.. 스파? ... 아니야 안돼.. 겨울이라 한창 포동포동 찐 내 옆구리 살의 봉인을 풀 수 없지.. 음... 그럼...꽁꽁 싸매고 다닐 수 있는...
...
바다?
" 겨울바다? "
" 겨울바다요? "
도경수 씨의 되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겨울하면 겨울바다죠. 속초 어때요? "
「 추워 」
겨울은 원래 추워 세훈아
" 속초, 좋네요. 겨울바다 보러 가죠 "
" 뭐야 도경수 씨, ○○씨가 가자니까 또 좋다고하는 거 봐 "
" 아니면 딱히 갈 곳도 없지않습니까 "
" 하긴 "
내 나이스 아이디어와 도경수 씨의 서브에 목적지는 슬금슬금 속초로 기울었다.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지는 순간..!!
" 그럼 이동수단은 "
검지손가락으로 주르륵 우리를 훑던 김종인 씨의 손이 도경수 씨 앞에서 멈추었다.
" 유일하게 차 있는 부르주아 도경수 씨 "
" 왜 도경수 씨에요! "
도기사는 나만 볼 수 있단 말이에요! 발끈하며 테이블을 내려치자 워, 하며 김종인 씨가 손가락을 접었다.
" 나 대학교 때도 학교 다니면서 알바하랴, 또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랴 바빠서 면허 못땄어 "
" 고속버스 있잖아요! "
안그래도 바쁜 사람한테 운전이나 시키고!! 정작 도경수 씨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 있는 내가 화를 냈다.
" 고속버스 불편하잖아,비싸고. 도경수 씨 차 뒷자석에 낑겨타는게 더 편할 거 같아 "
" 맞아, 경수형 잘 부탁해요 "
「 드디어 경수형 벤츠 타보는 거야? 흐흥ㅎㅎ 」
내 열렬한 쉴드에도 도경수 씨는 그러나마나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화낼 때 같이 화냈어야죠!! 답답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김종인 씨의 말을 들었다. 목적지도, 이동수단도 정했겠다. 남은 건 숙소인데..
" 그럼 숙소는 "
"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
... 또다시 자신의 부를 뽐내는 도경수 씨에 분위기가 묘하게 적막해졌다. 김종인 씨는 하- 하더니 머리를 쓸어넘겼다.
" 지금 도경수 씨 뭐하는거야? "
" ... "
김종인 씨 혹시 화ㄴ...
" 그럼 너무 고맙잖아, 사랑해 "
...
하긴 이런 거에 자존심 부릴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김종인 씨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 근데 도경수 씨한테 사랑한다는 말은 빼주시죠?
" 그럼 이제 끝났네, 다 됐네 다 됐어 "
" 다 정한 건가요? "
" 뭐가 벌써 끝나요. 밥은 어디서 먹고, 어디에 가고, 뭐하고 놀건지는 안정해요? "
보통 여자애들이랑 놀러가면 주구장창 인터넷만 들여다보면서 여기가 맛있다더라~ 여기가 좋다더라~ 여기서 놀면 그렇게 재밌다더라~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데 나 말고 죄다 남자들이다 보니까 저녁 약속도 아닌 여행 약속이 엄청 간단하다. 이런 여행 약속은 처음...
" 뭘 그런 걸 정해, 가면 다 아무거나 주워먹게 되있어, 거기도 어차피 우리나라인데 "
반박 불가
방학동안 이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보니까 나도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
「 그럼 우리 토요일 날 언제 어디서 만나는거에요? 」
웬일로 오세훈이 필요한 질문을 한다.
" 그거는 우리를 속초로 인도해줄 도경수 씨가 정하자 "
" 제가 말입니까? "
그리고 도경수 씨는 나를 힐끔 쳐다보다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그럼 오전 열 시에 ○○씨 집 앞에서 만나도록하죠 "
흐에에에에엥?????? 우리 집앞이요?????????? 도대체 알 수 없는 도경수 씨의 말에 우리 모두 제 귀를 의심했다.
" 다들 ○○씨 집은 한 번 갔다왔으니 알지않습니까, 그러니까 ○○씨 집 앞에서 만나도록하죠 "
나야 아홉시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 나가면 되서 편하기는 하다만 다른 사람들은 불만이 많아보이는 표정이었다.
" 아니 경수형 차라리 카페 앞에서 만나자고 해요! "
" 그니까 ○○씨 집앞이라니 "
「 ○○○ 존나 좋겠다 」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볼멘소리에 도경수 씨는 내게 고개를 돌려 더 환하게 웃어보이며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내 한쪽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 그럼 고속버스 타고 가세요 "
도경수 씨의 말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나도
" 저는 ○○씨랑 제 차 타고 갈테니까 "
아마 도경수 씨는 단순히 그냥 착해서 다 받아준게 아닌 듯 하다... 다 생각이 있었어.... 치밀한 사람...! 처음보는 그의 모습에 내심 놀랐지만 심장이 도키도키해진다.
괜히 고소해진 기분에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없이 웃으니 김종인 씨는 조용히 눈을 감고 콧바람을 내뿜었다.
" 내가 차가 없어서 참는다 "
" 와 진짜 경수형.. 오늘 샌드위치 봐서 참을게요 "
「 훈이는 착하니까 그냥 참을게요 」
결국 순순히 포기하는 남자들에 도경수 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더 꼭 잡아왔다.
.
.
.
정신없이 여행 약속을 잡고 카페 마감 후 도경수 씨와 가로등만이 길을 비춰주는 캄캄한 골목길, 여러모로 이 곳에는 추억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둘
방학동안 서울에만 짱박혀 있던 나는 여행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 저 진짜 아까 완전 깜짝 놀랐잖아요 "
" 왜요? "
" 그럼 고속버스 타고 가세요, 도경수 씨가 이런 말 할 줄 몰랐어요 "
도경수 씨는 아직 생각해도 뿌듯한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저도 오늘 깜짝 놀랐는데 "
" 왜요? "
되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한걸음 발을 옮겨 마주보는 그. 음란마귀인 나는 눈을 감을까, 어떡해야하지 내적 갈등을 때리는데 도경수 씨는 한 손을 올려 오늘 특별히 고르고 골라 쓴 머리띠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 너무 이뻐서요 "
" ... "
" 제가 사준 머리띠 썼네요 "
사실 오늘 머리띠 쓴 거 도경수 씨가 알아봐주겠지? 하며 기대했는데 아무 말도 안해서 실망했건만, 역시..ㅎ
" 요일별로도 쓰고, 기분에 따라서도 쓰라면서요. 오늘은 특별히 기분에 맞춰서 썼어요 "
" 오늘 기분이 어떤데요? "
" 완전 좋아요 "
" 그럼 맨날 이 머리띠만 썼으면 좋겠어요 "
오글거리지만 기분 좋은 도경수 씨의 말에 음흉하게 웃었다. ㅎㅎ.. 맨날 내가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뜻~?
" 괜찮아요. 오늘보다 더 기분이 좋을 때 쓰는 머리띠도 정해놨어요 "
" 그래요? 그럼 토요일 날 그 머리띠 쓰고 올래요? "
흔쾌히 좋아요! 하며 히히 웃으니 도경수 씨도 나를 따라 한참 웃다가 아, 하고 말했다.
" 우리 토요일 날, 저번에 산 옷하고 운동화도 신을까요? "
차를 얻어타는 세 남자들이 욕을 할게 분명했지만 나는 그래도 좋다. 욕을 하든 말든!!
" 오 좋아요!! "
온 세상에 우리가 커플이라는 걸 광고합시다!!! 도경수 씨는 내 남자다하하ㅏ아아하ㅏㅏㅏ!!!!!!!!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내 머리를 결대로 부드럽게 쓸어주던 도경수 씨에 기분이 더 좋아진다.
날 보는 그의 눈이 이쁘게 휘었다.
" 그럼 기대할게요 "
염장 장전 준비 완료에 행복한 도경수 X 기분이 좋을 때 쓰는 머리띠는 있지만 정작 기분이 나쁠 때 쓰는 머리띠는 안정한 카페 노예
*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요!
드디어 사담을 요약으로 안해도되는 군요!!! 하하, 다시 해피해피 깨발랄 도부자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해피해피가 좋네얌
21편하고 22편은 우셨다는 독자분들이 많으셔서.. 제가 잘못했져.. 네... 근데.. 흐규 저도 우러규ㅠㅠㅠㅠㅠㅠㅠ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
됴됴륵님/종순이님/몽구님/복숭아님/핫초코님/첸스님/모나리자님/쀼님/2평님/맴매맹님
꽯뚧쐛뢟님/이웃집여자님/제인님/베이비파우더님/데후니님/안녕님/안열님/랭거스님/6002님/사랑둥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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