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는 도부자
22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도경수 씨가 그대로 떠나가버리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뚝뚝 눈물만 흘리며 겨우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방 안에 홀로 남은 나는 이젠 흐느낌도 못참아서 엉엉 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울었다. 침대 위에 주저앉듯이 앉아 엄마 잃은 아이처럼 펑펑 울기도, 도경수 씨에 대한 화보다 나 자신에게 나는 화가 너무 커져 침대를 쿵쿵 내려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않는 마음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누워버렸다.
내 앞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던 도경수 씨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 매번 ○○씨 얼굴이 차올라서 말조차 다 못할 때가 다반사였어요. 저도 많이 힘들었다구요. "
너무 내 힘든 것만 생각한걸까. 도경수 씨도 많이 힘들었을텐데 직장일 하는 사람이라 나보다도 더 많이 시달리고 고생했을텐데, 베개에 얼굴을 더 깊이 묻었지만 몰칵 터져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 제 사랑이 많이 부족했나 봐요. ○○씨가 느끼기에는 제가 "
" 많이 부족한가 봐요
나한테 너무 과분한 사람에게 내가 대체 무슨 말을, 오히려 부족한 사람은 나인데, 분에 넘치는 것도 모르고.
내 멋대로 좋아하고, 내 멋대로 힘들어하고, 내 멋대로 기다린 건데, 생각해보니 다 내 잘못이다. 도경수 씨는 아무 잘못 없이 나같은 여자 좋아해주기만 했는데, 내가 뭐라고 그런 사람한테 상처를 주고 날이 선 말을 내뱉고.
아까 전 일그러질 정도로 솟구쳐 오르던 원망과 분노는 어느새 후회와 미안함이 되어 한 번 더 내 가슴을 찌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내가 먼저 보고 싶었다고... 많이 보고 싶었다고 말해줄걸.. 왜 그런 생각은 나지 않고 무작정 화만 났는지, 지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달려가서 도경수 씨를 붙잡고 싶을 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파도처럼 밀려오는 후회에 숨이 넘어갈 듯 눈물을 삼켰다. 내가 미안해요. 내가 많이 미안해요.
그동안 애써 부정해왔지만 아직 정말 어린가보다. 도경수 씨는 내 모든 것을 받아줄 줄 알았다. 어리광도, 투정도, 정작 힘든 사람은 신경도 안쓰고 내 힘든 것만, 내 기다려온 시간만 생각하고 도경수 씨를 헤아려주지 못했다.
" 저도 지금은 조금, 많이 힘드네요 "
나 혼자 힘든 것도 모자라 그를 힘들게했다.
" ○○씨가 듣고 싶은 말이 뭔지는 모르지만 지금 제 마음만은 알아달라고 발악하는 거예요 "
그 말을 끝으로 나를 떠나가는 도경수 씨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서 두려워진다. 그 모습이 내게 끝일까 봐. 꼭 어디 멀리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다시는 이쁘게 웃는 그를 볼 수 없는 걸까, 항상 나를 위해주고 기다려주던 그는 더이상 없는 걸까.
누군가에게 설레임을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런, 그토록 소중한 존재를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며 깨닫지 못했다.
너무 멍청한
너무 이기적인
내가
내가 한숨 쉬고 있을 때
저도 한숨 쉬고 있으리
꽃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울고 있을 때
저도 울고 있으리
달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그리운 마음일 때
저도 그리운 마음이리
별을 보며 생각한다.
너는 지금 거기
나는 지금 여기.
< 멀리 > 나태주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온 몸을 얽매어왔던 긴장이 싹 가셔버린 경수는 방에 들어와 굳게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 흘러내리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맨날 사랑을 속삭이던 그녀의 집 담벼락 아래. 우리는 서로에게 모진말을 하고 상처를 주었다. 아니 먼저 상처를 주었던 건 나였겠지. 삼 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아무 목적없이 보상없이 기다리게 만들었으니까.
" 힘들어요.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었다구요 "
그런데 내가 오히려 울려버리고 말았다.
" 저도 지금은 조금, 많이 힘드네요 "
아까까지만 해도 다 운 줄 알았는데, 다시금 눈물이 크게 터져버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매만지며 차오르는 숨을 하, 하고 내뱉었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해서 뚝뚝 떨어질 뿐이었다.
이 순간에도 내 말에 상처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잊혀지지 않아서. 아직까지 내 모진 말에 울고 있지는 않을까 해서 나 자신이 너무 미워진다.
옆에 주머니에서 툭 떨어진 핸드폰을 조금씩 떨리는 손으로 집어들었다. 보고싶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키는 핸드폰 바탕화면에는 아까 전 붉게 빛나는 그 가로등 밑에서 밝게 웃으며 다정하게 붙어있는 그녀와 내가 자리잡고있었다. 여전히 이쁜 그 모습을 혹시 그녀에게라도 닿을까 애틋하게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보았지만 더 울컥해지는 마음뿐이었다.
아무리 웃어보려고해도 눈물만 거세지고 아... 하는 탄식의 목소리만 작게 새어나온다.
톡톡 소리내며 액정 위로 떨어진 물방울은 천천히 굴러 내려와 내 손을 적셨다. 자꾸만 희미해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소매자락으로 핸드폰을 닦아보고 눈물도 닦아보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는 손은 그만 핸드폰을 놓아버렸고 나는 그대로 힘을 쭉 빼고 머리를 굳게 닫힌 문에 기대었다.
오른팔로 눈을 꾹 누르며 억지로라도 새어나오는 눈물을 막아보려 했지만 뜨겁게 젖어가는 팔은 금세 차게 식어버리고야 만다.
" 아... "
눈물에 잠긴 후회의 목소리가 목을 타고 넘어온다. 작은 흐느낌은 어느새 너무나도 커져버려 감당 할 수 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에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사랑 싸움은 지독히도 아팠다.
그녀에게 내 모든 걸 주기에 나란 사람은 너무 부족한 걸까, 내 욕심을 위해 한창 이쁘게 피어나는 꽃을 꺾은 걸까.
다른 사람 곁에 가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활짝 필 수 있는 걸까
그대를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 속에다 놓아줄까
< 붉고 찬란한 당신을 > 이병률
그리움과 슬픔에 울고, 사진을 보면서 웃고, 그 때를 떠올리며 화내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방에 틀어박혀 있기 어느 덧 사흘이 지났다
엄마는 아무것도 먹지않는 나를 보며 제발 뭣 좀 먹으라며 화를 내다가 도경수 씨에게 찾아간다고 소매를 걷고 대신 욕을 해주기도 했으며 나를 안쓰러움의 눈빛으로 볼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그저 괜찮다며 상태를 얼버무렸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속이 꽉 막힌 느낌, 아무것도 들어갈 상태도 무언가 할 상태도 아니다.
그저 처음으로 그리고 갑자기 겪은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매일 눈물로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저녁도 역시 전과 다름없이 침대 위에 앉아 조용히 커플링을 빼서 바라만 보고있는데 띵동- 누군가가 종을 울렸다. 가만히 앉아 엄마가 나가기만을 기다리는데 계속해서 울리는 종소리에 아까 전 방 밖에서 잠깐 세탁소에 다녀오겠다며 내게 조심스럽게 말한 엄마가 생각났다.
평소같았다면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부리며 문을 열어주러 갔겠지만 이제는 그럴 힘도 없어 무표정하게 축 처진 몸을 이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요.라고 묻지도 않고 아무생각 없이 달칵 연 문을 갑자기 끌어당기는 상대에 흠칫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있으니
" 안녕 "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민석 오빠
주춤거리며 문고리를 놓자 발로 어영부영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온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몸을 비킬 생각도 없이 멀뚱히 서있자 한 손 가득 무언가 가득 찬 쇼핑백을 흔들어보인다.
" 아주머니 계셔? 엄마가 반찬을 너무 많이 해서 "
" 엄마.. 어디 잠깐 나갔어요.. "
그러자 민석 오빠는 으음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나 잠깐 들어가도 돼? "
그에 나는 서둘러 현관을 막고있던 몸을 옆으로 피했고 오빠는 고마워, 하며 들어오자마자 익숙하게 바로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리없이 민석 오빠의 뒤만 졸졸 따라가 싱크대 옆에 하나하나 반찬통을 꺼내 이거는 배추겉절이, 이거는 고구마줄기무침 하며 설명해주는 민석 오빠의 뒷모습만 바라보는데 갑자기 흐음, 하고 길게 콧바람을 내뿜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몸을 싱크대에 기대며 말했다.
" 많이 힘들어보이네 "
민석 오빠의 말에 조용히 시선만 피했다. 거의 방에 틀어박혀있다시피 하니 많이 초췌해보이겠지
" 원래 내가 반찬 가지고 오면 이거 맛있겠다. 저거 맛있겠다. 옆에서 떠들던 애였는데 "
내 이런 모습을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처음인지라 빨리 이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불안함이 가득 담긴 나를 들키고 싶지않아 이리저리 눈동자만 피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이내 시선을 바닥 쪽에 꽂은 오빠가 말을 이어나갔다.
" 꽤 오래 안보이더라, 도경수 씨하고 너 "
" ... "
" 잘 어울려서 보기 좋았는데 "
보기 좋다는 말, 잘 어울린다는 말 되게 오랜만이네.. 겨우 민석오빠의 얼굴을 마주한 나는 속절없이 낮게 헛웃음을 쳤다.
" 이럴 때 배워야하는 거야, 몸으로 부딪히면서 때로는 힘들어하면서, 나름대로 상처도 받으면서 "
아직 채 회복되지도 않은 몸상태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줄어든 야근에 업무에 대한 강도는 한결 가벼워지긴 했지만 야근이 없더라도 집 이외에 갈 곳이 없는 경수에게는 인력 지원이 무의미해져버렸다. 차라리 일더미에 짓눌려 다른 생각이 안들었으면 좋겠으련만
" 정신 차려, 긴장 풀지 말라고 "
거기다 평소 절대 큰소리를 낸 적이 없던 최팀장님께 호되게 혼났으니 심리적 부담감과 압박감은 배가 되었다. 다른 사원들 같았다면 눈물 한 방울정도 흘리거나 잔뜩 심통이 난 상태로 사무실을 빠져나갔겠지만 경수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돌아오니 힐끔힐끔 모든 상황을 눈치껏 지켜봐왔던 팀원들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의자에 앉아 다시 업무에 들어가기 전 경수는 정신차리라는 팀장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잠시 턱을 괴고 허공을 응시했다.
김종인 씨가 있었더라면 옆에서 최팀장님 대체 왜 저러시냐며 자기가 대신 잔뜩 꿍얼거려주었을텐데, 그리고 퇴근하고 카페에 가서 ○○씨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고,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면
모든게 다 풀려있을텐데
느릿느릿 눈을 꿈뻑거리며 언제였을지도 모를 때를 회상하니 꼭 인사 이동 하고 2년은 지난 것 같다.
답답한 마음 어디에 풀 곳도 없고 썩히기만 하니 곧있으면 악취가 돌 듯 하다. 괜히 팀장님의 눈치를 한 번 보고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데, 언제부터 붙어있었던 건지 모니터 왼쪽 아래끝에 파란색 포스트잇이 팔랑거렸다.
[ 답답할 때에는 한 번씩 옥상에서 바람 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도경수 씨 ^▽^ ]
특성상 모든 업무는 컴퓨터로 하기때문에 각자의 손글씨를 볼 일이 없는데 왠지 이 자글자글한 글씨는 누구 글씨인지 알 것 같다. 대체 언제 이런 걸, 픽 작게 실소를 터뜨리고 포스트잇을 고이 모니터 옆에 붙여두었다.
일 년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옥상에 올라가본 적이 없는데, 나쁘지 않다니까.
옥상에 올라갈 일도,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이렇게 계단을 올라와 문을 열려니 긴장이 된다. 몇번을 쭈뼛쭈뼛 문고리를 잡았다 놨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큰 소리를 내며 옥상문을 열긴했지만
" 어, 도경수 씨 "
문을 열자마자 넓디넓은 옥상 난간에 서있던 김종인 씨가 뒤를 돌았다.
" ...답답할 때에는 한 번씩 옥상에서 바람 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해서 왔습니다 "
" 이제야 포스트잇 봤어? 나도 딱 마침 답답해서 올라왔던 차에 이렇게 만나네. 역시 우린 좋은친구야 "
세게 휘날리는 바람에 미간을 찌푸리며 김종인 씨가 있는 난간가로 다가갔다. 실내에만 있어 턱하고 막힌 숨이 조금씩 뚫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아직 속 안에 크게 뭉친 응어리는 남아있지만
깊게 숨을 내뱉고 수없이 많은 빌딩들 사이 저 멀리 반쯤 가라앉아 붉게 물든 해를 보고있으니 그녀 생각이 뼛속까지 사무친다.
" 옥상, 괜찮네요 "
탕, 철로 된 난간을 손바닥으로 한 번 쳐주고 꽉 붙잡으니 찬 기운이 손을 타고 올라와 온 몸의 열을 식혀주었다.
" 뭐가 답답해서 올라왔을까 도경수 씨는 "
" ... "
김종인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을 하려다 문뜩 김종인 씨가 들고있는 커피 컵에 눈길이 갔다.
" 아, 이거, 카페 갔다왔는데 아직 ○○씨는 쉬고있더라고 "
" ... "
" 찬열이가 내린건데 더럽게 맛이 없네. 역시 커피는 ○○씨인데 "
멋쩍게 웃으며 서둘러 컵을 숨기는 김종인 씨를 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어 "
" 어? "
" 라고 김종인 씨가 말했잖습니까 "
" .. 도경수 씨 "
" ... "
" 나 도경수 씨 바쁜 거,힘든 거 다 아는데 "
" 근데 또, "
" ... "
"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어 "
그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말이 드디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 이후 마치 맞지 않았던 톱니바퀴를 갈아낀 것 처럼
" 그래, 기억난다. "
" .. 저는 왜 몰랐을까요 "
" 왜, 이제야 알았어? "
나는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많이 힘들었을텐데, 저 혼자 다 이해할 거라고, 기다려줄거라고 마음대로 확정지어놓고... "
" 도경수 씨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
그리고는 키득키득 개구진 웃음소리를 내는 김종인 씨
" 는 농담이고. 다 그런거지 "
" ... "
" 굳이 말 안해줘도 다 알아줬으면 좋겠고, 누구든 그런 거 아니겠어? "
김종인 씨는 한 입 크게 커피를 다 빨아마시고는 뒤늦게 맛이 없다는 표정을 하며 컵을 가볍게 쓰레기 통에 던져넣어버렸다.
나는 몇날며칠 밤을 새며 심각하게 고민을 했는데 생각보다 김종인 씨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에 내심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라면 그녀를 놓아줘야 할까 생각도 했지만 누구든 그런 거 아니겠느냐는 말에 생각 할 때 마다 가슴을 콕콕 찌르던 나쁜 생각은 공중에 흩어져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정말 누구든 그런 걸까요
"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거야 "
" ..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해야 할까요 "
많이 화났을텐데, 놓치고 싶지않은 사람인데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도경수 씨! "
김종인 씨는 잔뜩 움츠러든 내 등을 짝 큰소리나게 쳤다. 나는 그와 함께 화들짝 놀라며 난간을 잡았던 손을 놓고 아린 등에 인상을 찌푸렸다.
" 뭘 어떻게해, 가서 사과해! "
" ... "
" 첫사랑싸움이라 영 서투르네 "
" ... "
" 기다리게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
갑자기 뚝 말을 끊던 김종인 씨는 팔꿈치로 날 슬쩍 치며 말했다.
" 화해의 뽀뽀 찌-인하게 하던가 "
오늘도 나도 모르게 김종인 씨의 농담에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 등을 으악 소리 날 정도로 세게 쳐준 덕분인가 잠깐 놓았던 정신도 돌아온 것 같고
" 근데 도경수 씨 "
김종인씨가 말을 걸자마자 다시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옥상 난간에 나란히 서있던 우리는 그대로 바람에 머릿결을 맡긴 채 기분 나쁘지 않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반쯤 가라앉았던 해는 어느새 그 끄트머리만 조금 내비치고 있다.
" 언제 이렇게 컸어, 얻그저께까지만 해도 ○○씨한테 말도 못걸어서 절절매더니 "
" 제가 언제 절절맸습니까 "
" 어? 기억안나? 처음 같이 휴게실에서 ○○씨한테 톡보내는 거 도와줬을 때 "
아.. 그 때.. 그때 생각을 하니 얼굴로 확 열이 뻗쳐온다.
" 무슨 문제 있어요? 어떡하죠... 이러는 거 도와줬더니, 제가 언제 절절맸습니까? "
" 아.. 그건.. "
" 으휴 아들래미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더니 "
" 아들래미? "
" 아무렴 도경수 씨는 연애면에서는 거의 내 아들이지 아들 "
그러고보니 어쩌면 ○○씨하고 내가 교제를 할 수 있게 된 시작은 김종인 씨의 도움이 컸었던 것 같다. 근데 또 이렇게 싸우면서도 김종인 씨의 도움을 받다니 내 체면이 말도 아니다.
" 애인하고도 싸워보고 아들 다컸네 다컸어, 이제 나 필요 없겠네 "
" .. 필요 없다뇨 "
" 앞으로 연애 문제로 나 찾지마. 나중에 할아버지 되서도 할매하고 싸워가지고 나있는 노인정까지 찾아올거 아니잖아 "
또 차마 반박 할 수가 없는 말이다.
" 사실 도경수 씨가 내 연애 컨설턴트 사업 첫번째 손님이야 "
" 그렇습니까 "
" 근데 첫번째 손님치고 너무 성공적이라서 뿌듯하게 사업 접을 수 있겠어 "
무언가 대단한 거라도 해냈다는 듯이 주먹을 꼭 쥐어 흔드는 김종인 씨
" 벌써 사업 접으시는 겁니까 "
" 나도 여자가 없는데 무슨 연애 컨설턴트야. 웃기는 거지 "
조금 가벼워진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어둑어둑 해진 하늘에 하얀 입김이 그대로 공중에 퍼진다.
" 아쉽네요. 그래도 제가 첫손님이라 다행입니다. 덕분에.. "
" 나도 도경수 씨 커플이 내 첫손님이라 다행이야. 덕분에 ○○씨도, 찬열이도, 세훈이도, 너무 좋은 친구들이 생겼잖아 "
핸드폰을 잠깐 들어 시계를 보던 김종인 씨는 쯧, 혀를 한번 차고 이내 다시 주머니에 꾸역꾸역 폰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 무튼 그건 그거고, 연애 컨설턴트는 아직 값을 제대로 안치뤘는데 도경수 씨 "
" 값이요? "
내 물음에 유쾌하게 한 번 고개를 끄덕거린다.
" 값은, 도경수 씨 사장될 때까지 같이 회사에서 점심 먹기! 나 한대리님이랑 먹기 싫단 말이야 "
의외의 요구에 낮게 웃음이 터졌다. 이거 너무 값이 적은 거 아닌가요
" 사장돼서도 회사에서 같이 점심 먹죠 "
" 오 정말? 완전 감동이야, 그리고! "
사장돼서도 같이 먹자는 말에 신이 난 김종인 씨가 그리고! 하며 입을 열었다.
" 우리 약속 했던거 안잊었지 "
" 약속? "
" 도경수 씨하고 ○○씨하고 열이하고 훈이 다 데리고 여행가는 거, 가야지! 이제 곧 대학생들 개강일텐데 "
이제는 얼어붙을 듯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조금씩 난간에서 멀어지 듯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아무 대답없이
" 어디가!! 가자고!! "
" ... "
" 여행 가자고!! 약속했잖아!! "
다급히 김종인 씨가 옥상문을 여는 내게 달려와 자켓을 붙잡았다. 나는 조용히 그런 김종인 씨에게 미소만 지어주었다.
먼저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먼저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편지1> 이성복
*
민석 오빠가 돌아가고 난 뒤 침대 위에 한참 앉아서 핸드폰을 보며 고민했다. 언제 전화해야 도경수 씨가 전화를 받을까, 혹시 오늘도 야근은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건 아닐까. 애꿎은 머리만 쥐어 뜯으며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내가 전화를 했는데 그 때 딱마침 도경수 씨도 전화를 해서 연결이 안되는 건 아닐까
머리를 가득 채우는 쓸 때없는 걱정에 조금씩 짜증이 나 저 멀리 핸드폰을 치워버리려고 하는데 어두운 방 안을 밝게 비추는 핸드폰 불빛에 잠깐 숨이 멎었다.
며칠만에 온 도경수 씨의 전화
저번에 도경수 씨 얼굴을 볼 때는 그렇게 화만 나더니 오늘은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감격에 북받쳐 또다시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아직 받지도 않은 전화에도 금방이라도 도경수 씨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 너무 반갑다.
조급한 나머지 몇번의 헛손질 끝에 겨우 받은 전화
전화 너머로 아무 목소리도 들리질 않는다. 하지만 전화에 귀에 대고 가만히 있을 그가 눈에 선해서 주륵주륵 눈물이 새어나온다. 한 손에 눈을 묻고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코만 훌쩍이는데
「 보고싶어요 」
하고 도경수 씨의 그립고 그리웠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나는 더이상 참지못하고 크게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못한 채 계속해서 울다가 턱턱 막히는 숨에 자꾸만 끊기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말했다.
" 저도.. 저도 보고싶어요.. "
보고싶어요. 그 한 마디 하기가 왜 그리도 힘든지,
하- 하고 살짝 떨리는 숨결을 내뱉는 도경수 씨
" ... 집 앞인데 "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더이상 통화할 새도 없이 핸드폰을 던져놓고 정신없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날 덮쳐오는 찬바람이 시렸지만 그도 느낄 시간이 아까워 발이 꼬일 정도로 큰 슬리퍼를 겨우겨우 끌고 대문을 열었다.
" 도경수 씨!! "
거친 숨을 내쉬며 가로등 밑 홀로 서있는 도경수 씨를 부르자 나를 보던 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던 그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휑한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 춥잖아요 "
내가 아무리 모진 말을 했어도 여전히 날 걱정해주는 도경수 씨, 말라버릴 새도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미안해요.. 미안해요.. 하니 묵묵히 날 끌어안는 그
" 미안해요.. 이해 못해줘서.. 바쁠 수도 있는 건데.. 바쁜 사람인데.. "
넘어가는 숨으로 억지로 말을 하니 도경수 씨는 달래주듯 조용히 내 뒷머리를 쓸어줄 뿐이었다.
" 어리광 피워서 미안해요.. 힘들다고 한 것도 다 엄살이에요.. "
한참 내 머리를 쓸어주던 그는 이제 내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 저도 미안해요 "
" ... "
"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
도경수 씨의 목이 살짝 울렁였다.
" 무작정 이해해달라고 해서 미안해요, 저도 힘들다고 한 거 다 엄살이었어요 "
" .. "
" 그리고 그 때, 달래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
날 끌어안던 팔에 살짝 힘을 푼 그가 얼굴에 달라붙은 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걷어주며 애틋하게 볼을 감싸 엄지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도경수 씨의 손길에 꼬옥 내 볼을 감싼 그의 손을 붙잡았다.
" 앞으로 다시는 안그럴게요. 약속할게요 "
붉어진 눈가로 나를 바라보던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다른 한 손으로도 내 얼굴을 완전히 감쌌다.
슬픔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그칠 줄 모르는 내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주던 도경수 씨는 작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 이제, 울게 할 일도 없을거에요 "
" 약속.. 할게요 "
서서히 다가오는 도경수 씨에 나는 지긋이 눈을 감았고 고운 숨결이 내 볼에 살짝 닿았을 무렵 그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 사랑해요 "
그리고 입술 위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날 포근히도 감싸는 그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단순한 인연임에도 우리가 만나온 시간은 특별했고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부는 시기임에도 우리에겐 꽃이 만개하는 봄이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속에 이미
피어있기 때문이다
<나의 꽃> 한상경
오늘도 사담은 여기루 ㅇㅅㅇ 오늘 분량 이야기도 있어용 |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요!!
오늘 아마 보시면서 어, 오늘은 양이 좀 적은데 ㅡㅡ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겠,,,네... 맞스빈다...사실 진행상 두편으로 갈라서 써야 할 수 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라서.. 본래 그렇게 길게 끌 생각도 없었구...
양은 좀 적지만 그래도 나름 빨리 돌아온 것...ㄱ..... 죄송합니다.. 다음 화부터는 틈틈이 나오는 시 없이 다시 혜자 분량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흐뷰
무튼 이제야 둘이 화해를 했네요 하하, 어휴.. .싸움에는 익숙치 않아서.. 항상 인간관계에서 저는 최대한 싸움은 피하는 닝겐인지라.. 그래서 더더욱 다투는 에피소드에서는 꼭 누구 하나 나쁘다! 착하다! 를 나누기가 싫었는데 다행히도 독자여러분들께서 그런 제 속마음을 잘 알아주시구 ㅎㅎ
음 오늘 쓰면서 느낀건데 참 왠지 씁쓸하게도
어느덧 완결분위기가 살짝 무르익어 가네요. 4화부터 시작된 종인이의 연애 컨설턴트도 끝났구요. 대신 종인이가 안나온다는 건 아닙니다 (단호)
1-2주 전만해도 미리 완결 스토리를 어느정도 짜놓으려고 키보드를 잡았을 때에는 괜히 아련해져가지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도 못썼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마음이 정리된 모양인지 조금씩은 써나가고 있네요. 솔직히 다급한 마음이 없잖아 있긴 있습니다. 새로 나오시거나 복귀하고 계시는 재밌는 글잡 작가분들도 많고 도부자는 그 분들이 잠깐 없으신 틈을 타 인기글에 오르고 하던게 버릇이 되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결 전에 중간중간 번외편을 내려고 했지만 계획을 살짝 바꿔서 3월 전에 정식 25화 다 끝내고 그 후에 번외를 내는 걸로 하려고 합니다.
아
벌써 완결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다니
진짜.. 아들 하나 장가보내는 것 같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 무튼 그래도 아직 완결까진 좀 남았스빈다! 그때까지 ㄱㄱㄱㄱ!
우리 독자 여러분 이제 제가 영국 출국 임박해서 답댓글을 성실히 못다는데 음.. 기회가 되면 암호닉분들을 중심으로 달려고합니다 그래도 암호닉 신청 안해주신 분들의 댓글도 꼼꼼히 챙겨보고있으니 서운해하지마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독자여러분 싸라해요!!!!!!!!!!!!!!!!!!!!!!!!!!!!!사ㅏ랑사랑 여러분들 덕분에 인기글 첫페이지에도 올라보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흐규 감더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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