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이 텅텅 비었다. 애꿎은 술병을 툭툭 건드려 보며 눈물을 참았다.
그녀가 죽고난 후 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원식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나마 세화가 원식의 곁에 오래 머물 수 있었을 지 모른다.
고개를 숙이고 한 치의 미동 없이 앉아있는 택운에게 물었다.
"너는 나를 원망하느냐?"
"……."
"나는 나를 지금까지 원망해왔다."
"……."
"세화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야. 15년 지기라는 허울 뿐인 족쇄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택운은 애써 고개를 주억였다. 숨이 막힐 듯 고요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꿰차고 들었다.
죄책감을 가져야할 사람은 박씨가 아니었다.
택운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눈자욱이 붉은것이.
길가에 핀 가느다란 홍련꽃 같구나.
"어머니는 아마 아셨을 겁니다. 당신의 마음을."
"……."
"그리고 용서 하셨겠지요."
"흑. 윽…."
"어머니를 무너지게한 것은."
저니까요.
-
답답한 마음에 집을 나섰다. 청량한 공기와 어스푸름한 하늘이 몸을 시리게 했다. 그 기분이 썩 마음에 들었다.
피실피실- 입에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괴상한 바람소리가 났다.
저 멀리 구름 뒤로 어머니가 지켜보고 계실까. 아직 남아있는 햇살에 눈이 부시어 고개를 돌렸다.
낡은 담벼락에 발을 올렸다.
이제는 길을 걷는 것보다도 쉬운 것이 담 넘기였다.
익숙한 담을 단숨에 훌쩍 넘었다.
풀석.
"어."
뭔가 이상했다. 딱딱한 흙의 감촉이 아닌 부드러운.
"으. 누구야아!"
고개를 내려보니, 웬 사내가 깔려 있었다.
택운은 놀라 벌떡 옆으로 비켜났다. 사내는 허리를 짚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일어 난 얼굴을 보니, 흙이 묻긴 했지만 잘 생긴 얼굴이었다. 게다가, 차려입은 것을 보아하니 깃에 금박을 두른 귀족들의 의복이었다.
사고 쳤구나, 라는 생각에 택운은 눈 앞이 깜깜해졌다.
사내는 눈을 휙 부라리며 옆에 서서 눈알만 굴리고 있는 택운에게 소리쳤다.
입술을 비죽이며 말하는 것이 꽤나 귀여웠다.
"아프잖아! 그러게 담을 왜 넘어! 담을!"
"아. 송구합…."
"아퍼! 내 허리. 엉엉……. 어?"
한껏 엄살을 부리던 사내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터벅터벅 택운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화들짝 놀란 택운은 얼굴을 뒤로 내빼려고 했지만, 사내는 택운의 얼굴을 놓고 놓아주지 않았다.
"와. 정말 어여쁘다."
"……."
택운은 아차했다. 슬쩍 사내의 뒤를 바라보니, 착지할 때 떨어져 나간 얼굴 가리개가 보였다. 어쩌지.
"너, 사내야?"
"예."
"우와! 어여쁘게 생겼다, 너!"
"아……."
이럴 땐 어찌 반응해야 하는 걸까.
택운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이리 순수하게 말 하는 사람이 얼마 없었던 지라 당황했다.
"안녕!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
"아, 어서! 내가 먼저 말해?"
"정…. 택운입니다."
"아, 택운이! 이름도 예쁘구나!"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방방 뛰며 좋아하는 모습은 그가 다 큰 사내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웠다.
활짝 웃으며 눈꼬리를 휘는 모습이 순수해 보였다. 그 미소가 조금은 부러웠다.
"아! 내 이름 석 자도 가르쳐 주어야지."
"……."
"나의 이름은 이재환이야! 호는, 굳이 알려줄 필요 없겠지. 목석 마냥 딱딱한 것은 질색이니."
사람을 이토록 편히 대하는 귀족이 있었던가. 괜스레 마음이 편해진다.
이 사람은, 나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일까? 아니면 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입소문을 듣지 못한 건가.
이……. 재환.
"나! 네가 마음에 쏘옥 든다."
"…예…?"
"앞으로 가까이 지내!"
손을 거리낌 없이 내밀며 또다시 활짝 웃는 그 모습에 택운은 저도 모르게 덩달아 손을 맞잡았다.
그에 당황해 급히 손을 빼려 했지만, 재환은 웃으며 그를 놔주지 않았다.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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