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아! 운아! 그런데……. 너 얼굴이 왜 그래?"
"…아…."
"어디 다쳤느냐? 흉 지겠다."
재환이 손을 들어 택운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택운이 움찔했다.
너무 심히 몸을 움찔였나, 택운이 슬쩍 재환의 눈치를 보았으나, 재환은 아무렴 상관 없다는 듯 밝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꼭 치료해! 흉 지면, 예쁘지 않으니."
"……."
고개를 끄덕이는 택운을 보며, 재환이 웃으며 택운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택운은 대뜸 재환이 자신을 끌고 가는 것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처음 본 사내를 이렇게 편하게 다루는 사람이 과연 재환 말고 또 있을까?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지.. 재환의 통통 튀는 엉뚱한 행동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운아!"
"…예…?"
"예…? 가 뭐야! 말 놔!"
"아…. 응."
정신없는 사이에 말을 놓아 버렸다. 모르겠다.
택운은 그 새 재환이 편하게 느껴지는 자신에게 놀랐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우리, 꽃 구경 가자!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어."
.
.
.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택운을 홍련의 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싫어하고 있었다.
그간 홍련에게 목을 매고 살았던 사내들도 홍련이 죽자 온갖 잡것을 홀리는 요물 중의 요물이라며 흉을 보기 일쑤였다.
그 사내들은 이 나라의 관리가 대다수였으며, 매우 높은 관직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연화루에 찾아가 홍련에게 구애하다 거부 당한 수치심이 남아 그러는 것이겠지. 치졸했다.
그의 영향이 있어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특히나 홍련을 싫어했다. 나라의 물을 흐리는 원인이라며..
택운이 재환과 붙어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든 해코지를 할 테지.
택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태어나 처음 사귄 벗의 앞에서 그런 꼴을 보이기는 싫었다.
재환도 마을 사람들처럼 변하게 될까. 나에 대한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손을 가차 없이 놔 버리겠지.
"…저기…."
"왜?"
택운은 재환의 손을 살며시 놓았다. 재환은 걸음을 멈추고 택운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택운은 얼굴 만큼이나 섬섬옥수도 어여쁘구나.
재환은 고개를 들어 택운을 보았다.
재환은 처음 택운을 보았을 때 매우 놀랐다. 여태껏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그 얼굴에서 묘하게 흐르는 색기를 마주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택운의 얼굴은 어딘가 그늘져 있었다. 재환으로서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무작정 택운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해버렸다. 그 예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택운의 근심어린 표정을 보자 재환의 가슴이 다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
"걱정하지 말고, 따라 와. 재미있는 구경 시켜줄 테니까."
"하지만……."
"나랑 좀 놀아줘! 나 친구 없어!"
"…후."
택운은 재환이 활짝 웃어 보이는 것이 좋았다. 저에겐 없는 활기참과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서 자신도 기분이 좋아졌다.
재환이 자신을 떠나더라도, 그 웃음만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
결국 재환을 따라 와 버렸다. 그곳은, 매우 아름다웠다.
재환은 여기가 마을 변두리에 있는 가장 커다란 꽃밭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은, 어머니가 사랑을 꽃피운 장소이기도 했다.
여기구나.
"어때? 아름답지 않느냐?"
"응. 아름다워."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워.
재환은 택운의 뒷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분명히 가녀린 몸은 아니었다. 오히려 단단하고 강직해보였다.
선이 고와서일까. 재환은 택운을 뒤에서 꼭 껴안아 보고 싶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재환으로서도 괴로웠다.
내가 사내를 사랑하는건가?
고개를 휘저어본다. 단지 택운이 너무 고와서 그런것이라고 치부한다.
운아, 하고 부르자 택운이 뒤를 돌아본다.
햇살에 등진 택운의 모습은 예뻤다.
재환은 꽤 솔직한 편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 없이 내 뱉는 성격이었다.
"운아! 너 무지하게 예뻐!"
"뭐어?"
예쁘다고 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아주 잠깐씩 노려보는 택운이 귀여웠다.
재환은 무언가 생각 난 듯이 손을 탁 치며 소리쳤다.
"운아! 내가 여기다 네 얼굴을 그려줄까? 여기, 나뭇가지도 있어!"
"땅바닥에?"
"응! 나, 아버지께 수묵화를 배웠거든. 그래서 그림 되게 잘 그린다?"
"…푸우, 그래, 그려 줘."
재환은 택운을 앉히고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슬렁슬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환은 택운의 얼굴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그림을 그렸다.
괭이 같은 눈매, 부드러운 콧날, 오목조목한 입술.
재환은 그리는 내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뭇가지를 열심히 움직였다.
택운은 그런 재환을 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꼭 아이 같았다.
그리고 짧은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재환의 솜씨에 놀랐다.
대충 그리는 것 같은데도 정확하게 그어내렸고, 흙바닥인데도 선의 강약을 조절하며 그렸다.
자신이 이렇게 생겼었나. 어렸을 때 홀로 물가에서 놀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몇 번 본게 다였다.
재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더니, 택운을 일으켜 주었다.
"다 그렸다!"
"벌써?"
"그래! 잘 그렸지 않느냐?"
"응. 잘 그렸어."
"헤헤. 아, 잠깐만 기다려 봐."
재환은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꽃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택운의 그림을 꽃으로 휭휭 둘러버렸다.
그리고는 빙그르르 돌며 꽃밭에 풀썩 누워 버렸다.
택운도 그 옆에 누웠다.
하늘이 맑았다. 재환이 옆에서 나비를 보며 와하하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난생 처음 벗을 사귀었다.
난생 처음 누군가와 함께 어딘가를 오게 되었다.
난생 처음 나를 위한 그림을 받았다.
난생 처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택운은 생각해본다.
택운은 슬며시 눈을 감고 꽃 향기를 머금은 산들 바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