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 나비 흰 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택운은 담벼락에 기대어 습관처럼 눈을 감았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눈을 감고 쉬는 것은, 택운의 몇 안되는 취미 중 하나였다.
택운은 돌아 간 재환을 떠올렸다.
요즘 따라 재환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호흡 소리가 거칠어지며 힘겨워 했다.
그것이 걱정스러운 택운이었지만, 항상 괜찮다며 슬렁슬렁 넘어가 버리는 재환 때문에 어찌할 도리 없이 지나쳐 가곤 했다.
어디가 많이 아픈건가.
그동안 재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새삼스럽게 새록 새록 떠오른다.
어찌 된 일인지 재환은 고맙게도 마을 변두리에서만 택운과 만남을 가졌다.
마치, 택운이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하는 제 성미를 오롯이 아는 듯이.
재환이 어울리지 않게 개구리를 잡아 택운에게 내밀었을 때, 깜짝 놀라 괴상한 소리를 냈었지.
재환이 자신의 그림을 내걸어 주는 화백의 집에 데려가 여러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여주었었고.
마을의 설연호수에 데려가 함께 발을 담그고 어린 아이처럼 물장구를 치며 놀았던 것도.
택운은 덕분에 마을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재환과 마음껏 시간을 보냈다.
재환이 그려 준 그림이 한 장, 두 장 늘어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매일 밤 그 그림들을 꺼내어 보았다.
그 그림들에는, 재환의 손길이 묻어 있어서 너무나도 따스했다.
그래.
재환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서로가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구나.
너를 만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내 인생을 어쩌면 네가 바꾸었어.
한 평생을 어두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나를, 네가 밝게 비추어 주었어.
네 웃음 소리에 나도 미소 지을 수 있었고,
네 노랫 소리에 나도 함께 콧노래를 흥얼 거릴 수 있었고,
네 이야기에 나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너를 닮으려 하고 있었구나. 나는.
..
그리고 너를……. 사랑해 버리고 말았구나.
택운은 재환에게 더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이기에 안타까웠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냥 재환과 함께 가 줄걸.
다른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그를 혼자 보낸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나는, 대체.
할 수 있는 게 뭐야.
…….
너는 알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내 첫사랑.
-
"쿨럭, 쿨럭!"
"도련님! 정말 괜찮으신겝니까…?"
"…네. 괜찮아요. 나가 보십시오. 어머니껜, 말씀 드리지 마시구요."
이깟 거, 이틑날이 되면 나을 거야. 택운이에게……. 나비 그림을 그려 주기로 했으니까.
"쿨럭, 쿨럭."
각혈.
손수건을 적신 피에 정신이 아득하다.
심장을 다시 한번 움켜 쥐었다.
쿵.쿵.쿵.쿵.
야속하다.
이렇게 변함 없이 뛰고 있으면서…. 뭐가 그렇게 급해서 멈추려고 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멈추지 않는 눈물 큼 심장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적을 바래본다.
삶에 조금도 미련 없던 내가.
택운이 너 때문에.
택운이 언젠가 선물해 주었던 돌멩이를 꺼내었다.
택운이 처음 자신에게 주었던, 재환 자신을 닮았다며 준, 둥근 보름 달 같은 둥그런 돌멩이.
택운은 보잘 것 없는 돌멩이라고 했지만, 재환에겐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택운의 손길이 묻어 있어서…. 너무 따스해서 울음이 터졌다.
재환은 놀랐다.
이렇게나 보고 싶을 줄은 몰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너를 이렇게나 필요로 하고 있었다.
택운아. 보고싶어.
너는 알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내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