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흙장난을 치며 함께 놀 수도 없었고, 길을 달리며 술래잡기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그 어린 나이에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느낄 수 있었나보다.
하루는 어머니 몰래 집 밖으로 나와 하루종일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셨다. 그리고 나를 불러 그림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커다란 종이에 내가 바라던 세상을 그리곤 했다. 자유로운 그것…….
어쩌면 나에게는 불가능할 지도 몰랐던 세상을 종이에는 마음껏 그릴 수 있었으니까.
몸이 커가고, 제법 어른스럽고 사내다운 티가 나게 되어도, 허약함은 감출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심장 부근이 약한 것이라고 하셨다. 충분히 나을 수 있다는 격려와 함께…….
제 몸은 제가 가장 잘 아는 법. 그 지병은 쉬이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이 몸이 그리 대답 해 주고 있는데.
함박 웃음을 내걸며 고통을 숨겼다. 약한 사람이라고 울어가며 살기는 죽어도 싫었다.
웃고 다니기라도 하면, 적어도 우울한 병자처럼은 보이지 않을 테니까.
한참을 고통 속에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부유한 집안에서 행복하게 자란 이씨 가문의 아들로 보이겠지.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뭘 하며 살 수 있을까…. 끝 없는 괴리감 때문에 잠을 설치며. 그래, 그랬었다.
그러다,
정택운.
택운이를 만나게 되었다.
운이는 나를 처음으로 사귄 벗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기에 더욱 친근함이 들었다.
택운이를 처음 만난 그 날부터 매일 택운이를 불러내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꼭 누가 보면, 연정을 품은 사이라고 볼 정도로…….
그런 나를 귀찮아 하지 않고 매일 미소로 보답해주는 택운이 더욱 좋아졌다.
택운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택운이가 나에게 뭘 해준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꽉 찼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택운이를 향한 나의 마음은, 우정이 아니라.
…….
…….
-
상태가 갑자기 이상하다.
잘 버티어 왔는데……. 오늘따라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른다.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난다.
어머니께는 말씀 드리지 않고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조찬을 먹었다.
바깥으로 나왔을 때 정신이 혼미했지만 택운을 만날 생각에 아픔을 모두 잊고 길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담벼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택운을 보자, 미친 듯이 뛰던 심장도 가라 앉고 불덩이 같던 몸도 식혀졌다.
……택운아.
"운아!"
"아, 왔어?"
살짝 미소 짓는 택운에 재환은 얼굴을 붉혔다.
언제봐도 어여쁘다.
내 첫사랑아.
"…재환아. 너…. 어디 아퍼?"
"…응? 아, 아니. 아니야."
귀신 같이 알아채고 손을 내 이마에 얹으려는 택운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허약한 모습은 죽어도 보이기 싫어. 너에게 만큼은.
"아프지 않다. 괜찮아."
"얼굴 빛이 사색인데…. 게다가 식은 땀까지 나는데도?"
"오면서 뛰어 왔거든! 그래서 그래…. 응. 응."
재환은 말을 얼버무리고는 택운의 깊은 눈매를 정신 없이 탐했다.
택운과 만나 친구가 된 지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나는 너를 사랑으로 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너를 만나 사랑 할 수 있었던 건, 아마 네가 내 인생의 '처음' 이기 때문인것같다.
내가 벗을 사귄 것도.
내가 그린 그림을 받은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도.
다 네가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듯 해.
네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아.
그저 내가 네 곁에서 함께 웃을 수만 있다면 좋아.
세상이 핑글 핑글 돌았다. 심장을 움켜 쥐고 나즈막히 욕을 뱉었다.
버틸거면 죽을 때까지 잘 버텨주라고.
왜 하필…….
젠장 할.
"택운아."
"응?"
"오늘 그림 그려 주기로 한 거, 내일 그려 줄게."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냐. 급한 용무를 잊어먹었거든. 미안해."
"난 괜찮아. 어서 가 봐."
다리가 후들거렸다. 택운이에게서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질 때마다 눈물이 났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고개를 뒤로 돌려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아이를 바라봤다.
나를 보고 있구나. 아직도 내 눈에는 선명히 보인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다시 네 곁에 갈 수 있겠지.
택운아.
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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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막글의 결정판이네요.. 지금까지 쓴 글 중에 가장 정신없는 글이었던것같아요ㅠ 몰입이 잘 안되셨죠...ㅠㅠㅠㅠㅠㅠ 다음편엔 더 열심히 쓰겠습니당 ㅠ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