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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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설렘주의보! |
남자친구가 반존대를 써요/채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망개를 쳐다보았다. 뭐라구요? 라고 되묻고 싶었는데, 잘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말을 더듬는 나를 지켜보던 망개는 '잊어먹었구나.'하고 입맛을 다셨다. 아무렇지 않게 해장국 그릇을 치우던 망개는, 여기가 제 집인 양 싱크대에 남은 국물을 쪼르르 흘려보내고 익숙하게 정리한다. 나무젓가락은 쓰레기통에, 해장국 그릇과 일회용 숟가락은 쓰윽 씻어서 분리수거통에. 곧 같이 들고 왔던 검은 봉지에서 귤을 두 개 꺼내 하나를 까 내게 건넨다. 아직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나는 망개에게 세모 꼴의 눈을 하고 노려보았다.
"거짓말이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면 그렇게 생각해요." "……응?" "술떡이 나한테 뽀뽀한 건 저얼대 안 변하는데, 뭐어."
망개가 입을 빠죽이면서 얘기하는데. 그러니까, 얘기하는 와중에도…. 뽀뽀를 했다고 하니까, 입술밖에 보이는 게 없다. 그러니까 망개의 예쁜 눈, 코…를 지나서 두꺼운 입술 밖에는 눈에 안 들어오는 거다. 저 오물거리는, 통통한, 빨간, 예쁜 입술. 나는 눈을 부릅 뜨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과는 다르게 자꾸… 망개 입술에……. 아니, 그러니까. 이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망개는 언제 집에 갈 입술해요?"
네? 되묻는 망개가 이내 크게 웃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주먹을 꼭 쥐고 비장한 얼굴을 한 망개는 마른 세수를 하며 웃었다. 그나저나 망개 입술이 정말 예쁘게 생겼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울상을 지으며 망개를 따라 마른 세수를 했다. 제발 정신 차리자. 얼른 뽀뽀, 아니, 그 집에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미쳤나보다. 방금 나 뽀뽀라고 한 거 맞지?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역시나 망개의 눈은 호선에서 바뀔 생각을 않는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볼에 파인 보조개도 없어질 생각을 않고. 그리고 예쁘게 휘어진 저, 저입술도…. 내가 언제 뽀뽀를 했을까.
"제가 언제 뽀뽀했어요? 그것만, 그것만 말해주세요." "음, 안 말해줄 건데에."
고개와 함께 까딱까딱 흔들리는 망개의 손가락을 꼭 잡고, '제발요.'하고 말했더니, 망개가 침을 꼴깍 삼킨다.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말해주세요오.'하고 말 꼬리를 늘이니, 망개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망개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떨린다. 그러니까 여기서 뽀뽀했는데, 그 어제 여기 데려다주고 나서 뽀뽀했는데에…. 꼭 잡은 손가락에서 땀이 슬슬 차오른다. 그러고보니 망개, 엄청 당황한 것 같다. 고작 손가락 하나 잡았다고 이러는 걸까. 으으, 귀여워서 어떡하지. 얼굴도 약간 빨개진 것 같다.
16.01.15 김여주, 씹덕사로 묻히다.
5. 산타 할아버지, 제 소원은요
망개가 제 집에 가고 나서 한동안 집을 쓸고 닦았다. 솔직히 어제도 들어왔다기에 조금 부끄러웠는데 말이지. 오늘도 쳐들어와서 더 부끄러워졌다. 우리 집은 엄청 더러우니까. 여기저기 옷들에, 설거지들에. 자고로 여자는 여성스러워야 한다고 항상 할머니가 말해왔는데. 할머니가 우리 집을 보면 내 등짝을 세게 갈길 거다, 아마.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집을 쓸고 닦는 거지. 만약에 망개가 아니었다면, 집도 이렇게나 깔끔히 치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청소했다. 그치만 청소는 언제나 귀찮은걸. 나는 부엌을 치운 뒤에 지쳐서 침대에 누웠다.
「카톡!」
시체처럼 누워 팔만 뻗은 채로 핸드폰을 확인하니 망개다.
망개 [심심해요] 오후 04:16 [놀아줘요 너무 심심해 ㅠㅠ] 오후 04:16
망개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칼같이 전화 벨이 울렸다. 나는 올라가는 입 꼬리를 참지 못하고 씨익 웃으며 망개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집 비었으니까 영화 보러 올래요? 보러 와요, 제발. 나 너무 심심해애. 전화를 받고 '여보세요.'하고 말하자마자 망개는 단도직입적으로 제 할 말들을 쏟아냈다. 결국 웃음이 터져버리자 망개는 더욱 울먹이는 말투로 말해왔다. 제바아알. 태형이 나가서 오늘 안 들어온대요. 너무 심심해애애애. 말 꼬리를 질질 늘어뜨리며 졸라대는 망개의 애교에 결국 '알았어요. 갈게요.'하고 대답해주었다. 왠지 순식간에 밝아져있을 망개의 얼굴이 떠오른다. 알았어요! 내가 세팅 다 해놓을게. 얼른 와요! 그것을 증명하듯 높게 올라간 망개의 하이 톤도.
그냥 가려다가 왠지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화장을 했다. 고데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최소 30분은 잡아 먹은 것 같다. 시간을 보기 위해서 핸드폰을 봤더니, 기다렸는지 알람이 가득하다.
망개 [수우우우우울떠어어어억] 오후 04:29 [왜 안 와요오오오오ㅗ오오오오] 오후 04:35 [아 저기 ㅗ이거는 잘못 보낸 거에요... ㅠㅠ] 오후 04:35 [얼른 와요 세팅 다 해놨어 ㅠㅠㅠ] 오후 04:38 [혹시 탈났어요?] 오후 04:42 [막 오다가 미끄러지고 그런 건 아니죠? ㅋㅋㅋ] 오후 04:47 [헐... 진짠가 ㅠㅠㅠ 걱정되게 ㅠㅠㅠ 카톡은 왜 안 봐요] 오후 04: 49 [불안하니까 얼른 카톡 봐요 전화도 안 받고..] 오후 04:49 [어!!!!!!!!!! 읽었다!!!!!!!!!!!!!!!] 오후 04:52 [어디에요 다친 거예요? 아님 어제 술 때문에 그런가?] 오후 04:52
아차 싶어서 얼른 계단을 타고 내려가, 망개의 집 문을 두드렸다. 낮잠을 잤는지 망개 눈이 팅팅 부었다. 걱정했잖아요오…. 그리고 부어있는 눈만큼 입술도 쭈욱 나와있다. 아기 오리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미안해요, 라고 애교스레 말하고 망개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앉아요. 망개의 말에 소파에 냉큼 앉았다. 화난 줄 알았더니 망개 얼굴이 또 금세 풀려있다. 망개의 눈치를 보며 애꿎은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자 망개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그게, 그러니까…. 이럴 땐 잘 돌아가던 머리도 굳나보다.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되나 봐. 그치만 망개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말은 너무…… 부끄러운걸.
"예뻐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내게 망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해왔다. 둘 다 부끄러워져서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슬쩍 망개를 보니 귀가 새빨갛다. 이 남자는 도대체 어느 부분이 씹덕 포인트가 아닌지 새삼 궁금해진다. 으으. 정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느 영화 볼 거예요?'하고 물었다. 망개의 귀가 더욱 빨개진다.
"어바웃 타임인데, 혹시 봤어요?" "아니요, 안 봤어요." "아, 다행이다."
망개는 내 옆에 밀착해 앉고는 리모콘을 몇 번 눌렀다. 불도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제 곧 해가 질 때라 그런 건지, 커튼을 쳐서 그런 건지 실내가 어둡다. 그리고 뭔가, 뭔가가 정말 분위기가 묘해지기 시작한다. 미묘해진 분위기에 따라 심장도 느리게 뛰는 것만 같다. 손등이 살짝 살짝 스칠 때마다 소름이 돋는 것만 같다. 으으, 이걸 어쩌면 좋지.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특히 남녀가 밤을 함께 보내는 야릇한 장면에는 부끄러워서 망개를 쳐다볼 수도, 앞에 차려진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저 침만 꼴깍꼴깍 삼켰더니 영화가 끝나 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도 혹시나 소리가 날까 봐 엄청 조심히 먹고, 눈물이 날 땐 화장이 번질까 봐 소매로 조심스레 닦아내고.
"내가 중요한 걸 말을 안 했는데." "으응……?"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가만히 있던 망개는 소파에 제 몸을 기대며 말해왔다. 세 시간만의 말 치고는 굉장히 뜬금없는 말이었다. 어제 있잖아요. '어제'라는 말에 다시금 심장이 느리게 뛰기 시작한다. 나한테 소원 8개 들어주기로 했는데. 망개는 씨익 웃으며 여유롭게 말해왔다. 8개요? 언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망개를 쳐다보자, '술 게임.'하고 대답한다. 술 게임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언제 술 게임을 했는지, 무슨 술 게임을 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망개가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아서 수긍하기로 한다.
"나 두 개 쓸래요." "네? 지금요?" "응." "뭐, 뭔데요?"
다소 뜬금없는 망개의 선언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망개의 눈이 다시 반짝거린다. 아까 뽀뽀를 말하던 때처럼. 어바웃 타임 보니까 생각났는데. 망개가 말을 잇는데, 왠지 불안한 기운이 엄습한다. 일단 하나는 나한테 요리해주기, 배고프니까! 소원 하나는 별로 수준이 높지 않은 거라 고개를 끄덕였는데. 두 번째 소원을 듣고 조각상처럼 굳어버렸다.
"나도 술떡 먹어볼래요."
하고, 입을 맞춰오는 망개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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