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桃源), 혹은 천상계라고도 불리는 이 곳.
투명한 비가 내리는 지상세계와는 다르게 도원에서는 찬란한 금색 빛깔의 비가 온다. 시냇물 또한 가지각색으로, 에메랄드 빛이 흐르는 시냇가도 있는 반면 오색돌이 녹아 신비한 오색의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도 존재했다. 도원을 이루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순수한 천인이 대다수였지만 가끔 지상 세계의 인간들 사이에서 낳은 혼혈인 사람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혼혈인 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도원의 질서들을 이끌어나가는 사방신들이 모두 혼혈이기 때문이었다.
소파에 벌렁 드러누운 채 열심히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던 태형이 순간 아, 소리를 낸다. 그리고서는 저 쪽에 앉아있던 석진을 향해 조금 큰 소리를 냈다.
"나 하트좀!"
"태형아, 이 게임 폐인아. 그만 놀고 가끔씩은 사신의 자세를 갖춰 봐. 백호가 게임 폐인인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니?"
"우와, 고수다 하고 칭찬하겠지."
"헛소리하지 말고."
"형은 꼭 나한테만 그러더라, 김남준한테도 뭐라고 해. 그 인간이 더 게임 많이 한단 말이야."
"둘다 똑같아."
"똑같긴 뭐...."
그 때, 펑 하고 멀리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자 두 명은 동시에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염이 단숨에 크게 폭발하는 소리. 이제 몇 번 들었다고 익숙해진 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박지민 또 폭발했나 보네."
* *
"망했네."
지민이 환하게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숲을 조용히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푸르른 초목들을 자랑하고 있던 숲이 단숨에 타들어가고 말았다. 또 알면 난리나겠군... 지민이 손을 휘두르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화염에 휩싸였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매서운 불길에 그새 새카맣게 변해버린 나무들은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어쩔 수 없지 뭐."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마치 다른 사람이 용서해주듯 대인배의 미소를 걸친 지민이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돌아서려는 순간 또 짜증이 솟구쳐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만다.
벌써 3개월 째였다, 3개월 째. 보좌관 자식을 찾지 못한 게. 사방신들은 인간의 몸 안에 신의 힘을 집어넣는 만큼 그 힘을 제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좌관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사람에게서 각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민은 아직도 계승식 날에 벙쪄있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수많은 눈들을 기억했다.
"나타나기만 해 봐라, 진짜 가만 안 둬."
지민은 이를 으드득 씹었다. 도원에 보좌관이 없다는 게 확인되었다는 건, 아마도 지상에 있을 확률이 크다는 거였다. 만약의 확률로 정말 자신에게 평생 보좌관이 없을 수도 있었으나... 지민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정말 답이 없으니까 말이다.
비록 지금까지 자리를 이어왔던 주작들 중에서 박지민 그 자신이 역대 최강이라고 해도, 방대한 힘을 혼자 조절하기에는 체력이 많이 소모가 된다. 제발 빨리 찾아냈으면 좋겠다. 지민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 채 청룡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오랜만에 꿈을 꿨다.
아주, 아주아주 기분이 더러운 꿈을 말이다. 꿈 속에서 나는 클럽에서 다른 여자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싼 채 키스를 하고 있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실 클럽을 한번도 안 가봐서 정말 클럽의 모습이 이럴까 궁금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여튼, 꿈에서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가 바로 바람을 피는 사실을 목격했단 말이었다. 찝찝한 기분을 접은 채 일어난 후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래 꿈은 반대지, 를 주구장창 열창해댔다. 우리는 한 달도 되지 않은 나름 상큼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 꿈을 꾼 지 이틀 뒤, 정말 상큼하게도,
아르바이트를 같이 해서 남자친구의 존재를 아는 언니에게서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문자 속의 사진에는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고 있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죽일까."
손에 쥐어진 구식 핸드폰이 빠드득 소리를 냈다. 미안, 내 핸드폰아.
현재 시각은 밤 11시. 이걸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 문자를 수없이 보냈고 -안타깝게도 내 핸드폰은 시대에 뒤떨어진 폴더폰이라 개나소나 다 가지고 있는 카톡이 없었다- 전화도 주구장창 해댔지만 여자에게 작업 시간을 투자하시는 건지 답이 없었다.
너무 열이 받아서 시뻘개진 눈으로 새벽 두 시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 계속해서 기다렸지만 다음 날 아침까지도 답이 없었다. 니가 날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나 볼까. 결국 주말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씩씩거리며 울분을 또하고 잠이 들려던 일요일 밤, 문자 두 통이 연달아 날아왔다.
- 아, 봤네. 미안.
- 헤어질까?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 바로 그놈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수신거부 설정까지 완벽하게 끝내놓고서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가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서 울화통이 터졌다. 어쩌면 조금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부터 이상하게 내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보육원에서도 조용조용하게 지냈고, 학창 시절에서도 내내 조용하게 지냈다. 물론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적은 없었다. 반 아이들과 인사는 하지만 방과 후에 놀러가고 그런 것들은 못했던 사이들? 어쩌면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자연스레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던 거였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보육원도 완전히 나온 지금에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권서연이라는 친구 한 명밖에 없다. 그래도 난 만족했다. 인생에 진정한 친구 한 명이라도 얻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서연이는 항상 나랑 만날 때마다 너는 애가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남자친구를 못 사귀냐며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딱히 남자에 관심이 없어 지금까지 별 위기감이 없었지만 왠지 걔가 그러니 꼭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더랬다.
'21살인데 늦어도 지금부터는 슬슬 연애를 시작해야 되지 않겠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모습에 나는 그저 말없이 입을 비죽였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생겼던 날 바로 서연이에게 전해 '나는 멀쩡하거든?'하고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문자를 보냈다. 첫 연애 예쁘게 잘 하라고 친구가 격려까지 해주고 그랬는데... 이 자식이 개자식일 줄은 나도 몰랐지.
"짜증나아....."
그래도 걜 볼 때마다 조금 떨리는 것도 같고, 설레기도 한 것도 같았는데 한 순간에 된통 깨져버려서 서러웠다. 하지만 청승맞게 혼자 울어대기 싫어서 꾹꾹 눌러내린 채 잠을 청했다. 나도 모르게 의외로 단순한 건지, 화나고 서러운 와중에도 잠은 왔다.
* * *
청룡, 전정국. 20세.
관장하는 계절: 봄.
청룡 보좌관, 민윤기. 23세. 천인(天人)
특이사항: 지상 세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주작, 박지민. 21세.
관장하는 계절: 여름.
특이사항: 보좌관이 없다.
백호, 김태형. 21세.
관장하는 계절: 가을.
특이사항: 최근 모바일 게임 중독증세를 보이며, 라이더 자켓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백호 보좌관, 김석진. 23세. 천인(天人)
특이사항: 지상 세계에 매우 궁금증이 많다.
현무, 김남준. 22세.
관장하는 계절: 겨울.
특이사항: 김태형과 마찬가지로 최근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현무 보좌관, 정호석. 22세. 천인(天人)
특이사항: 지상 세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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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1화부터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