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죽을 만큼 행복한 연인들의 계절. 11월, 오늘 난 이렇게 너에게 이별을 고했다.
11:30
"야 이지훈." 6번의 부름. 어느덧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너는 처음 듣는 사람처럼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왜. 요근래 새삼 많이 달라져버린 너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어 너를 마냥 바라보기만 하며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안그럴려고 하는데. 약해지는 다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불러 놓고 아무 말이 없는 내게 화가 난걸까, 너는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으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작업 중에 건들여도 저런 태도를 취한 적은 없었다. 덩달아 치솟는 분노에 헛웃음을 뱉었다. 뭐해 너? 떨어지는 나의 음성에 너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불렀는데." "뭐?" "아, 이유 없이 불렀어?" 나를 비꼬았다. 것도 제대로. 마냥 벙쪄 벌리고만 있던 입술이 차츰 말라갈쯤 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녀석의 시선이 다시 작은 휴대폰으로 향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녀석은 언제 얼굴을 굳혔냐는등 밝은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 그럴꺼면 휴대폰이랑 만나지 그러냐. 내가 매번 휴대폰을 만질때마다 녀석이 내게 했던 말이였다. "......" 후로 일주일이 지난 새벽 4시 반. 혹시나 하고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을 켰지만 와있는 연락 중 너의 이름은 잠잠했다. "뭐야? 이지훈은?" "...무슨 소리야. 걔가 여길 왜와." 야작과 겹쳐진 너의 생각에 피곤해진 몸을 풀며 맥 없이 말했다. 걔 방금 여기로 갔던 것 같은데, 옆에 너 아니였어? 흐리멍텅한 정신이 단번에 잡아지는 기분이였다. 뭐?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 아닌가? 얼버무리는 세진이의 말을 끝까지 잡아챘다. 어디로 갔는데. 쌓여있던 과제로 인해 지저분해진 몸에도 불구하고 얘기를 해도 너의 얼굴을 보며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맨발에 슬리퍼 신고 동방 여기저기를 달렸다. "....." "....."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멈췄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생기없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새벽에 이지훈의 옆에 있는 사람은 몇일 전 신입생 오티때 봤던 아이중 한명였다. '새벽' 두 단어가 나를 열받게 하기에 충분했다. 밤을 함께 보냈을까, 설마 우연히 앞에서 만났겠지. 순식건에 수십가지 생각이 내 머리속을 가득채웠다. 그리고 허탈했다. 손에 꼽을 수도 없는 많은 데이트중 그렇게 내가 원했던 이지훈의 웃음을 녀석은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양말 한짝 신지 않은 발이 부끄러워졌다. 로션조차 바르지 않은 얼굴이 창피해졌다. 몇일째 입고 있는 옷이 쪽팔렸다. 내 사랑 이지훈이 미워졌다. 이주일째, 그 시간 안에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쏟았지만 그럴때마다 손가락을 깨물며 참았다. 너는 나를 사랑하긴 할까. 아니 사랑하긴 했나, 시간 안에서 난 너와 함께 했던 순간을 의심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일 뒤, 동방 앞에서 있었을때 말고 제대로 보는 너의 얼굴에 나는 서원 선배가 잡지 않았더라면 순간적으로 가게를 뛰쳐 나갈 뻔했다. "여주야 어디가." "네? 아, 그게." 횡성수설 하는 내 말에 웃음을 지은 서원 선배가 내 머리를 한번 헝클이더니 손목을 잡고 자리로 이끌었다. 우리과에 왜 이지훈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잡히는 숟가락으로 내 머리를 내려치고 싶어졌다. 내가 온 걸 보지 못한걸까, 너는 뭐가 그리 재밌고 즐거운지. 고생이란 고생은 나혼자 한건지 세상 모르고 권순영을 포함한 동기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허탈한 기분에 고개를 푹 숙였을까, 밑으로 보이는 서원 선배의 얼굴에 기겁하며 고개를 들었다. "야, 뭘 그렇게 놀래." 재밌다는듯 웃어오는 선배의 얼굴에 따라 장난스레 그 얼굴을 노려보았다. "야, 이서원 넌 근데 왜 늦은거야 오늘 공강인 새끼가." "얘 때문에." 기본 반찬을 질겅거리며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킨체 뱉은 선배의 말에 놀라 바라보니 정작 그 얼굴은 뭘 그리 놀래냐는듯 헛웃음을 뱉었다. "너 근데 요즘 왜그렇게 힘이 없어. 무슨 일 있었어?" 하마터면 주책맞게 눈물을 쏟을뻔했다. 다정한 말투가 누구랑 너무나도 닮아서, 말하지 않아도 지쳐 있는 나를 위로 해주던 누구랑 많이 닮아서, 지금 나와 눈이 마주친 이지훈이랑 많이 닮아서.11:30_00:38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