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표현이 서툴렀다. 심지어 부모님 앞에서조차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특히 '좋다.'라는 표현은. 어디에선가부터 시작된 일종의 강박관념은 나를 옭아맸다. 그 결과 '좋아'라는 말보다는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고 부모님도 나의 뚱한 반응에 간혹 짜증을 내시기도, 걱정하시기도 하셨다. 나는 그것에 대해 항상 울어야 했다.저것만 빼면 나는 보통 아이들과 똑같았다. 내가 숨기면 내 감정은 아이들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고, 그에 대해 크게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나에게는 다행이자 불행이었을지도. 그런데 내게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가 있었다. 물론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기고, 사고 싶은 옷,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혼자 인터넷을 뒤지곤 한다. 하지만 예의 그 강박관념 때문에 항상 혼자 생각하는 거에 그칠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일은 좀 달랐다. 나조차 잘 모르던, 얼마나 됐을지도 모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도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 에게 이런 울림을 이끌어낸 건 '김종인'이었다."변백현……."나를 부르는 그 남자다움과 소년다움이 혼합된 목소리부터,"백현아, 우리 놀이공원 가자.""놀이공원?""어, 내가 이미 표랑 다 구해놨어. 너 주말에 약속 없다고 했지?""응"차가운 외모와는 다르게 세심하게 날 이끄는 배려심,"김종인""왜?""나…좋아해?""좋아해."그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뱉어내는 말.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와 차이 나는 그가 좋았다.하지만 거기까지였을 뿐, 내가 말로써 그걸 나타낼 기회조차 없었다.-춥던 겨울날, 얼마 안 남은 고3에 객기라도 부리듯 친구들을 끌어모아 술판을 벌였다.그중에 당연히 김종인도 있었고 장소는 부모님께서 여행을 좋아하시는 바람에 자주 비는 우리집으로 결정되었다."으항항항항 변백현 이 새끼 좀 봐!! 진짜 취했나?""박찬녀얼, 거울이나 쳐보고 와 사마귀 새끼야""아, 둘 다 취했잖아!!"술판을 벌이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벌써 코를 골며 뻗은 애들도 있었고, 박찬열과 김종대처럼 축늘어지고 꼬여진 발음으로 술주정하는 놈들도 있었다. 나는 집의 주인이라는 책임감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 정신이 멀쩡했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건 김종인. 계속 혼자 따르고 혼자 마시고 있는데, 취한 티도 나지않는다. 나는 엉덩이를 끌어 그 옆에 앉아 술병을 뺏어 들고 종인의 술잔에 따랐다. 종인의 눈은 그런 나를 지독하게 보고 있었다. 얼마 마시지않은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인지 미미하게 손이 떨리고 얼굴에 열이올랐다. 다시 술을 따르자 종인은 술잔에 눈길을 한 번 주고 거실을 둘러보더니 내 손목을 잡고 내 방으로 날 끌었다. 꽉 잡힌 손목이 따뜻했지만 아팠다. 약간의 술기운과 얼떨떨함에 끌려간 나는 어찌할 줄 몰라 땅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백현아, 백현아"특유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왔다."왜….""백현아-""응. 나 여깄어."종인은 취한듯 연거푸 나를 불렀지만, 눈빛만큼은 지독히도 또렷했다. 쫓아오는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턱에 종인의 손이 닿아왔다. 손끝의 온기가 나를 타고올라오듯 내 고개도 들렸다. 결국, 눈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입안이 말라와 티 나지 않게 침을 살짝 삼켰다. 어두운 정적의 순간 입술에 매끄럽지만 거친 것이 닿았다. 김종인의 입술이었다. 항상 그렇듯 이런 갑작스런 순간에도 놀란 나를 배려하는 것인지 종인의 입술은 담백한 키스만으로 떨어졌다."김종인""왜?""나…좋아해?""좋아해."나는 어떠한 말도 종인의 말에 해주지 못했다. 나는 내가 종인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종인의 고백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종인에게 끌린건지 솔직하고 배려깊은 그의 성격에대한 동경인건지 분간이 안 갔다. 내 머리는 후자쪽을 들어주고있었다. 분명 종인이 싫지 않은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종인은 그런 나를 아주 천천히 오래 바라보다가 미안. 그래도 진심이야. 라는 말과 함께 내 집을 나섰다. 문 닫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머리에는 과부하가 걸렸다.나는 잔인하게도 그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단 듯이 굴었다. 사실 어떻게 해야되는지 몰랐다는게 맞는 말이다. 복잡했다. 뚜렷이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감정에 한해서는 일곱살 어린 애보다도 못하니까. 김종인은 이런 날 평소처럼 받아줬을 뿐이다. 하지만 이 날 이후로 김종인은 날 바라보다가 내가 보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행동을 계속했다. 수업시간에는 항상 뒤통수가 따가웠다. 이런 날이 반복되어도 나는 항상 똑같았다. 김종인도 변함이 없었다.그러다 큰 뒤틀림이 나타났다. 김종인이 홀연히 전학을 갔다. 겨울방학을 얼마 안 남긴 시점이였다. 번호를 바꾼 것인지 연락도 되지 않았다.나는 깨달았다. 내가 김종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좋아하지만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내 강박관념이 낳은 결과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기회를 잡아먹은 것은 바로 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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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써본거예요 아마 내일 일어나서 지울지도 몰라요.. 굿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