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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제와 다름 없이 화창한 날씨였다. 좋게 말하면 화창한 날씨, 나쁘게 말하면 여름의 끝을 아쉬워 하는 해가 죽도록 내리쬐는 날씨.
아침부터 국왕의 처소에 갈까 했지만, 아침부터 가는 건 좀 오반가 싶기도 했고, 아침부터 회의가 있으시다는 최상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봄에는, 비가 안 오면 꽤 괜찮은 날씨라 좋았는데. 지금은 뭐.. 비가 오면 존나 춥고 안 오면 존나게 덥다. 진짜 그냥 모 아니면 도다. 그리고 봄에는,
이동혁이랑 꽃놀이도 갔는데.
갑자기 또 우울해졌다. 전에는 그래도 이동혁과의 추억을 상상하면 국왕을 탓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탓할 수 없어 괜한 우울감이 내 주위를 메꾼다. 이동혁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그 때, 늦은 봄에, 우리는 무엇이 좋아서 하루가 그렇게 빨리도 지나갔을까.
본래 생각을 하나 하면, 열까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름아!!!!"
"조용히 좀 해."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소란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니, 누군가'들'이.
한 명은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듯 안으로 들이닥쳤고, 한 명은 조용히 들어온 문을 닫고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꾸짖는다.
그리고 그 둘이 이태용과 이민형이라는 것을 안 나는,
"와 진심 오랜만!!!"
동혁이의 생각을 멈추고,
"민형이가 자꾸 여기 오자고 해ㅅ.."
"이태용이 오자고 해서 온 거야."
나를 보러 이곳까지 발걸음을 해 준 그들에게 집중했다.
"근데,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어?"
그들은 자연스럽게 내 앞에 나란히 앉았고, 이태용은 또 뭘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지, 짐을 풀기 시작한다. 또 내게 뭘 먹이려는 건지, 이태용이 한 상 가득 차리기 시작한다.
"어우, 이태용이 문 앞에서 이상한 짓 했어."
"응?"
이민형이 짜증난다는 듯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렸고, 그의 표정을 본 나는, 이태용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짐을 다 풀어가던 태용이가 나를 보고는
"저 한 번만 들여보내 주시면 안 돼요? 딱 한 번만!"
"..."
"이러니까 보내 주던데."
..무서운 놈.
그는 내게 그런 만행을 보여주자마자 덜 풀었던 짐들을 풀기 시작했고, 이민형은 토 하는 시늉을 했다.
"..태용아, 어디 가서 그런 거 하지 마."
"..응."
이유는 존나 잘 생겼으니까. 처음에 봤던 이태용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비주얼 쇼크였어. 생각해 보면 여기 사람들은 어찌 다 잘 생긴 것 같다. 여기서도 이태용 얼굴이 먹히네. 역시 사람 보는 눈들은 다 똑같아.
혼자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태용이가 먹어 보라며 음식을 권한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한과였다. 아, 미친 내가 원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러면서 나는 입에 넣고 있었다. 중간에 이민형이 "방금 좋아하는 과자 아니라며." 하고 시비를 걸어왔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싫어한다고는 안 했다. 너도 나 안 좋아하는데 보러 오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친구니까"
결국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논리를 펼친 날 본 이민형이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 헛웃음을 지었다.
"맛있냐?"
"응."
"짧은 시간 동안에, 국왕하고 사이가 좋아졌나 보네."
그의 말에, 멈칫.
잠시 멈칫 한 후 상 위의 한과를 바라보던 내 시선을 위로 들어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그에게 정말 모르겠어서 물어 보니, 그는 계속 먹으라는 손짓과 함께 입을 연다.
"그냥, 너 원래 모습보다 밝아 보여서."
"끝?"
"궐 안에 분위기가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저번부터 느끼는 점이지만, 이민형은 눈치가 진짜 빠르다. 진짜 오질나게 빠르다. 내가 이곳 사람이 아닌 것부터 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다 잘 알아맞춘다.
"그냥, 좋은 친구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깡도 세다. 국왕이랑 친구 먹겠다는 넌."
이민형이 살짝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넸고, 나는 그에게 비꼬지 말라며 입에 한과를 물렸다.
"와 그래도 이름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칠칠맞게."
이태용이 한과를 먹다 턱에 묻은 지도 모르고 먹길래 닦아줬더니, 또 고맙다고 웃는다.
그냥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하고 웃을 수 있는 존재들.
"내가 더 고마워."
"오글거리는 말 하지 마."
"넌 하나도 안 고마워."
이태용의 고맙다는 말에, 내가 더 고맙다. 하며 장난스레 진심을 끼얹어 보지만, 이민형에 의해 끊겨버렸다.
하나도 안 고맙다는 나의 말에, 이태용이 내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이 음식들이랑 다른 것들 다 민형이가 너 갖다 주자고 해서 사 온 ㄱ.."
"..그래?"
"아니야. 이태용이 산 거야. 거짓말 하지 마."
"그럼 그렇지 씨.."
전자는 이태용이요, 후자는 이민형이다. 이것들을 다 이민형이 샀다는 말에 나를 보며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이민형.
그럼 그렇지 네가 나를 이태용만큼 챙기겠냐! 싶어서 입술 꼬리를 내리니, "진짜 못생겼어." 하며 또 시비를 걸어오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무슨 여자애가 힘이 이렇ㄱ..!!!"
"아까부터 시비를 아주 그냥 막!!!"
"내가 뭘!!! 못 생겼다고 한 게 죄야?"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전에는 이러면 말렸을 법한 이태용이지만, 이제는 익숙한 듯 그저 보고 웃고만 있다. 분명 내가 살던 곳이었으면 웃으며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으리,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악!"
"ㅁ..민형아 너 피!!"
결국 일이 터졌다. 잘못해서 내 머리로 이민형의 코를 박았고, 그는 그대로 코에서 피가 주르륵 하고 흘러내렸다. 이태용이 급하게 휴지를 뭉쳐 이민형의 코에 갖다 댔고, 이민형은 이만큼이나 주면 들어가냐며 알아서 자신의 코 모양에 맞춰 만든 다음 끼웠다.
결국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웃으며 다음에 또 보자는 이태용과, 코에 휴지를 꼽고 나를 노려보며 나가는 이민형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또 나를 이렇게 즐겁게 해 주고 떠난다.
이젠, 궁에서 지내는 것도, 익숙해 져서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
또 나는 고민 중이다. 강녕전까지 올까 말까 고민을 몇 십 번이나 한 후에 밤길을 걸어 그의 침소 앞에 섰는데, 어떻게 들어가야 안 어색할 지. 아까 오다 주운 손수건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한 2분 째 문 앞에 서 있다.
어제 보고 오늘 보는데, 또 어색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어색한 건 죽도록 싫다. 진짜 싫다.
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
"..?"
문이 갑자기 열렸고, 나는 갑자기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국왕을 보자 깜짝 놀라
"아아악!!!"
"어어!"
뒤로 넘어지려 했다. 그런데, 그는 뒤로 넘어지려는 내 손을 잡아 그대로 날 일으켜 세웠다.
"ㄱ..고맙습니다."
"들어와요."
나를 강녕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손을 놓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국왕 때문에 당황한 나는 손을 빤히 쳐다봤고, 그제서야 눈치를 챈 그가 손을 놓고 나를 앉혔다.
"많이 피곤하세요?"
"아니, 괜찮아요. 오늘은 무얼 했습니까?"
딱 봐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인데, 아니라고 하니 뭐라 할 말을 못 찾겠다. 싶었는데 나의 오늘 하루 일과를 물어보는 그 덕에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친구들이 잠시 놀러 왔어요..!"
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내가 있는 곳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인지 싶어서. 내가 말을 마치자 마자 무엇을 하고 놀았냐는 그의 말에 사다 준 맛있는 것들도 먹고 얘기도 했다고 했다. 물론, 이민형 코피낸 건 말 안 했다.
"나중에, 한 번 소개 시켜 주세요."
"네?!"
"..?"
"아, 아니. 나중에 한 번 소개 시켜 드릴게요!"
존나 놀랐다. 이민형을 소개 시켜줘? 이태용을?! 이태용은 그렇다 쳐도 이민형은 국왕 앞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것 같았다. 존나 빡치게 나를 살살 긁다가 한 판 싸울 게 뻔했다.
내가 큰 소리를 내며 놀라자, 덩달아 놀란 그가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당황한 내가 알겠다며 나중을 기약하자, 그제서야 웃는 그를 보며 나는 아까 주웠던 손수건을 꺼냈다.
"사실, 이곳에 오면서 주운 게 있는데요."
"무엇인데요?"
"손수건이요! 여기 이름이.."
흰 손수건은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까지 더러워 진 곳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오른 쪽 모서리에 적힌 이름이..
"정재현이 누구에요? 아니, 이거 주인을 찾아줘야 될 것 같은데.."
"네?"
"비싸 보이는데.."
손수건에 아무것도 없는 민무늬가 아니다. 딱 봐도 고급지게 생긴 꽃들이 모서리에 작게 작게 피어났다. 한눈에 봐도 잃어버린 사람은 분명 찾고 있을 것 같았다.
"큽.. 이름이 뭐라구요?"
"정재현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끅끅대는 그를 보고 의아했다. 아니, 왜 저렇게 웃어? 이름이 웃기게 생겼나? 이름 예쁜데?
"이거 보세요! 정재현이라고 써 있는데!"
"정재현 맞네요."
거 봐 맞다니까!!! 나 문맹 아니라니까!!!! 속으로 억울함이 넘쳐 밀려왔다. 이젠 하다하다 그냥 내 얼굴을 보고 웃었나. 별 생각까지 다 든다.
"찾아줘서 고마워요. 그럼 이 손수건은 주인이 가지고 갈게요."
"...?"
그리고 그는 그 손수건을 자신의 서랍 밑에 넣었다. 응? 어디에? 자신의 서랍 밑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다가, 상황파악을 마친 내가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그럼 방금 내가 부른 게 국왕 이름이란 말이야? 국왕 이름을 함부로 그것도 엄청 크게 외치다시피 불렀다고?
"헙..죄송해요."
눈을 크게 뜬 채로 그에게 죄송하다 했다. 나 막 잡혀가는 거 아니야? 막 곤장 백 대 맞고 쓰러져 죽는 거 아니냐고.. 혼자 별 생각을 다 했다.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누가 내 이름 불러준 거 오랜만이네요."
"아니 그게.."
"근데, 아직까지 내 이름도 모르고 계셨네요. 보통 세자가 태어나면 그 이름은 다 알던데."
"제가 좀 무지여서.."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난 여기 사람이 아니었고, 이곳의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도착을 했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그렇다고 안 알려준 그를 원망할 수는 없지 않은다.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왕이 세자를 출산하면, 이름을 짓고 온 국민에게 알려 그 이름으로 아이 이름을 못 짓게 한다는 말을.
"난 중전의 성함을 알고 있는데."
"녜?"
윽. 이상했다. 혼란스러운 나머지 네?도 아닌 녜?. 그런 내가 웃기다는 듯 한 번 웃음을 참더니 나를 응시하며 말한다. 나는 알고 있었어요. 성함. 하면서.
"전 말씀드린 적이 없는ㄷ.."
"저는 그래도 다 알 수 있지요."
얼굴에 금방이라도 꽃이 필 것 같은 웃음을 머금고,
"내가 알고 있는 성함이 맞는 것 같은데."
그가 나를 응시하며 말한다.
"그렇죠, 이름아?"
!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니퍼입니다! ㅠㅠ 오랜만이죠..? 근데 조심스럽게 한 가지 말씀 드릴 게 있어요. 아마 다음 주에는 못 올 것 같아요 T^T 다음 주중에 올 것 같긴 한데 일요일보다 좀 늦을 것 같아요 그 날에 무언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맨날 늦는 작가 니퍼 항상 반겨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헝헝. 한 분 한 분 모두 감사드려요!! 모든 분들 좋은 하루 되세요!! ♥ 오늘도 많이 부족한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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