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거센 비는 바람을 몰고 왔다. 내 방 창문을 두드렸고, 그 덕에 겨우 잠에 드려 했던 난 다시 베개에 머리를 붙이지 못 하고 일어난다.
거센 비는 바람만 몰고 온 게 아니었다.
"..아."
네 생각을, 너를 몰고 와 버렸다.
결국 나는, 내 방 창문을 강타한 이 비바람 때문이 아닌
네 생각에 밤을 지새운다.
너는,
궁에서 잘 생활하고 있을까.
*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날씨가 또 난리다. 최상궁의 말로는 어제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아직까지 오고 있다고 하는데, 끝이 안 보인다.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 비 덕분에 오늘도 나는 이곳. 교태전 신세다.
방의 모서리에는 아무도 보지 못 하게 숨겨두다시피 한 전에 끊은 토끼풀 팔찌가 숨어 있고 나는 며칠째 국왕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중이다. 안 그러려 해도 안 그럴 수가 없다. 자꾸만 마음이 거부를 한다. 이동혁 아니면 안 된다고.
국왕이 주었던 물건들을 다 눈에 안 보이게 치워 버렸다. 난 아직 철 들긴 글렀나 보다. 괜히 국왕이 준 물건을 보면 이동혁이 자꾸 생각이 난다. 그가 내게 준 물건들과 국왕이 준 물건들이 하필이면 교묘하게 겹쳐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둘 다 치워 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갑갑해서 밖에 나가려 하는 난
무의식 중에 또 이동혁이 준 장갑을 손에 끼고 아무 목적 없이 밖에 나간다.
내게 네게 너의 고백에 대한 답이 내려졌던 날. 그 날처럼 어설프게 큰 장갑을 끼고
너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며.
*
우산을 쓰고 걷는다. 물론 내 의지가 아닌 옆에 있는 최상궁이 큰 우산을 내게 씌워주고 있다. 여전히 내 뒤에는 열 다섯 명 정도의 궁녀들이 따라붙고 있다. 어째 날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느낌이야
땅만 보고 걷는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축축히 비에 젖은 땅을 밟으면, 굽이 꽤 있는 신이 움푹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잠시 장갑을 벗고 비가 들지 않는 그늘에 놓았다. 발을 보고 걸으려면 치마를 들어야 하는데 장갑을 끼니 치마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발이 젖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기분이 나쁘지 않아 그냥 계속해서 걷는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다. 그냥 잘못 가고 있으면 쵝상궁이 알려 주겠지!
한참을 걸었을까,우산을 들고 있던 최상궁의 손이 높아졌다.그리고 나는 잠시동안 비를 맞는다. 그것도 잠시, 곧이어 다시 내게 아까보다 더 큰 그늘이 드리워졌다.
"왜 자꾸 안 좋은 행동만 하실까."
"..?"
"곧 발이 젖을 것 같은데요."
"..아."
어느새 나는 국왕의 그늘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 큰 우산 안에. 키가 커서 나를 내려다 보는 그의 눈빛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의 하루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까지야 없어요."
".."
"미워 보이진 않았어요."
".."
"재미 있으면 다음에 같이 할래요?"
그의 새하얀 얼굴은 그늘이 져도 하얬다. 내가 방금 한 행동을 같이 하자는 그의 말에 뒤에서는 전하-. 하며 내시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나중에 같이 걷기야 하겠어.
"지금 하는 일 없으시면, 잠깐 산책 좀 하죠."
그의 말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미 보는 눈이 많다. 여기서 거절하면 최상궁이 중전이 아닌 성이름으로서의 나를 매섭게 꾸짖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와 걷는다. 빗속을.
"식사는 입에 맞는지, 안 맞으면 ㅂ.."
"아뇨, 잘 맞아요."
"밤에 방은 따ㄷ.."
"따듯해요. 온도 적당해요."
"아.."
이동혁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동혁과 이민형, 이태용은 모두 나를 친구로 보고 대해 주는데, 이곳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국왕이 내게 존댓말을 쓰며 나를 높여 준다. 편하지 않아서, 그의 말에 빨리빨리 대답했다. 미친, 뒷통수가 따갑다. 최상궁의 눈빛이 느껴진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런데, 먼저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마마..!!!"
무례한 나의 행동에 최상궁이 놀란 듯 내게 소리를 친다. 그에 국왕은 그렇게 하라며 나를 들여보낸다.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내 교태전으로 들어왔다.
물론 오는 내내 최상궁에게 이러시면 아니 되온다며 폭풍 잔소리를 들으며.
*
밤이 되었다. 아마 지금 시간이 현대로 따졌다면 여덟 시 쯤 되지 않았을까? 여전히 이곳은 춥다. 아직도 내리는 비 때문에.
근데 아까부터 뭔가 찝찝하다. 뭘 놓고 온 느낌.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미친 성이름.
갑자기 떠오른 이동혁의 장갑 때문에 나는 밖으로 나왔다. 따라 오겠다는 최상궁을 만류하고 혼자 우산을 쓰고 뛰어 나왔다. 분명 그곳에 있을 터인데 뭐가 자꾸 불안한지 빨리 가려고 뜀박질을 한다. 그걸 왜 놓고 왔어 성이름 등신아. 나를 자책하며 아까 걸었던 그곳에 다다른다.
"와 씨.."
이동혁이 줬던 장갑을 손에 쥐고서야 만족한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할 길과 내 몰골을 한 번 살펴본다. 아직도 세차게 내리고 있는 비와 우산을 썼지만 뛰어 오느라 다 젖어버린 나를. 이젠 콧물까지 줄줄 나온다. 옆에 이민형이 없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분명 이민형이 날 봤다면 코찔찔이라 놀렸을 게 뻔하니까.
"..응?"
그리고 이곳이 어디인지 살펴본다. 얼마나 온 거야? 아까 이렇게 많이 왔었나. 문을 끼익 여니, 수백벌의 궁녀옷이 걸려 있다. ..도벽은 아니지만 이 중에서 한 벌 정도는 입고 다시 걸어놔도 모를 것 같았다. 왜..드라마에서 보면 막 옷 훔쳐 입고 그러잖..아?. 어차피 잠시만 입을 건데. 아무거나 집어 들어서 갈아입었다.
물에 젖은 솜같이 무겁고 축축한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느낌이었다. 편하다 편해. 어째 궁녀옷이 왕비가 입는 옷보다 좋아 보인다. 편하면 장땡이니까.
그 때 문이 벌컥 열렸다.
"얘! 너 여기서 뭐 해! 너 침방나인이야?"
".응?"
"침방나인이 아니면 쉬는 시간에 왜 여기에 들어와 있어?"
아 이곳이 침방나인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 보다. 궁녀복을 입은 아이에게 얼떨결에 맞다고 대답해 버렸다. 아니라고 해야 되는데.
"나는 수라간 나인이야! 침방 일은 어때? 많이 힘들다고 하던데."
"뭐...괜찮아."
사실 아직까지 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뭐라고 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대충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금새 자신의 이름이 민영이라는 것을 알려 주며 친해지는 아이였다.
"너 그 말 들었어?"
"무슨 말?"
"그 요새 우리 궁에 떠도는 말 있잖아."
아까 그 옷방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좁디 좁은 방 안에,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그녀의 말로는 이곳이 궁녀들이 쉬는 곳이라 했다. 잠시 교대할 때 쉬는 곳.
그리고는 내게 묻는다. 요즘 궁에서 나오는 말이 있는데 그걸 아냐고. 모른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문을 열고 잠시 밖을 두리번대더니 다시 들어오는 민영이였다.
"어휴 감찰상궁님이나 감찰나인 귀에 우리가 이런 얘기 했다고 들어가면 바로 출궁당할 지도 몰라.."
"뭔데?"
"전하말이야."
그냥 무슨 이야기인지만 궁금했었는데. 민영이의 입에서 나온 전하 라는 단어에 국왕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눈치챘다. 왜, 더 궁금해질까. 그녀는 내게 감찰나인에게 이르지 않기라며 약속 손까지 걸었다.
"어차피 감찰나인 빼고는 궁녀들 웬만해서 다 아는 이야기긴 한데, 원래 전하께서 굉장히 엄하신 분이시잖아."
"..응. 그렇지..?"
그런 사람이었나 그가. 한없이 다정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던데. 속으로만 곱씹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그 엄한 전하께서 다정하게 다가가시는데, 중전마마께서 거들떠 보지도 않으신대."
"..어?"
"나도 이거 지밀상궁님 밑에서 일하는 궁녀한테 들은 말이야.. 세상에 선물로 주신 장갑도 안 끼고 산책하자고 하는데도 그냥 일찍 들어가 버리고 그런대. 어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민영이라는 궁녀가 하는 말에 대해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내가 국왕의 비라며 밝히는 것도 웃겼고, 함께 내 욕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전마마께서 전하를 그렇게 대하시는데, 신하들이 잘도 모시겠다. 안 그래?"
"어, 그렇지.."
그렇게 맞다고 대답해 버렸다. 맞는 말이니까. 어쩌면 내가 지금 그를 밀어내고 있는 일이, 아니 현실적으로 거들떠도 안 보는 일이 생각보다 꽤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저, 이동혁이 좋아서. 그래서 그런 것인데.
흔들리는 눈동자를 땅에 고정시켰다. 그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떄마침 밖에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그녀는 나중에 또 다시 보자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혼자 생각을 끝마친 나는 아까 그 옷방으로 가, 옷과 장갑을 챙겨 빠져나왔다. 물론, 교태전으로 가는 도중에 최상궁에게 걸려 옷이 이게 뭐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대충 둘러대고 와 버렸지만.
강녕전에 들어와 비에 젖었던 몸을 씻은 후 다시 옷을 입고는 밖에 나왔다. 달이 정말 밝았다. 이동혁이 생각이 났다. 이번에도 또.
하지만 접어야 했다. 그 생각은.
나를 위해서도 있겠지만, 현재의 국왕을 위해서.
내가 국왕을 밀어내서, 국왕만 밀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수백 번이고 더 할 수 있어. 그런데
국왕의 자존심은 지켜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무의식 중에 그의 침소인 강녕전으로 향했다. 그는 저 멀리서 정자에 서서 자신의 신하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인기척 없이 가려던 것도 아니었고, 엿들으려 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들어버린 그 이야기를 듣고
"왜 중전마마의 침소에 들러 담소를 나누시지 않으십니까."
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가 보이자
"..부담스러워 할 게 보여서. 쉽게 다가가고 싶지 않네."
".."
"마음을 열 때까지 내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 아닌가 싶어서."
처음에는 그에 대한 반감을 비우고도 보이는 것이 신기했고
"언젠가는 친구라는 명목으로라도 다가와 주지 않을까 생각해."
그에게 고맙기도 했고, 끝까지 나를 배려하려는 그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 ! |
와 2주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요..! 뭔가 감을 잃은 느낌도 들고 ㅠㅠ.. 예쁜 표현들도, 기억에 남는 화도 아닐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죠 헝헝... 그래도 독자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왔어요!! 희희 재밌게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T^T. ㅂ..분량도 괜찮다고 해 줘욧..!!!! '_'
암호닉 신청은 성공적(?) 으로 끝이 났어요! 한 분 한 분 다 답글 똑같은 걸로 달아드릴 것 같아서 죄송해요 ㅠㅠ 사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신청해 주셔서 깜짝 놀란 니퍼..
♥ 항상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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