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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시인의 '풀꽃'

 

 

 

 

아아, 아파. 얕게 탄식이 바람결에 따라 흩날렸다. 하필 많고 많은 보도블럭중에서 툭 튀어나온 부분에 걸려 넘어질건 또 뭔가. 꽤나 아팠던 탓인지 경수의 눈가엔 눈물이 글썽였다. 욱씬거려. 멋 좀 부려본답시고 입고나온 하얀바지가 핏물로 인해 무릎 부분이 빨갛게 물들었다. 으씨… 하필 흰바지 입고 나왔을때 이러는건 대체… 경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괜찮은걸로 보이세요…? 눈망울 그렁그렁한 채로 경수가 위를 올려다봤다. 빛을 등지고 있어서 인지, 유난히 검어보이는 한 사내가 자기 위에서 자길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도 크고, 쌍커풀도 짙고, 유난히 입술이 두터워 보이는 한 사내. 뭐지 외국인 같아… 경수는 아픔도 한 순간에 잊어버리곤 사내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되게 이국적이네… 한국인 인가? 신기하다. 한 번, 눈을 깜박였다. 혹여 신기루는 아닐까. 헛 것은 아닐까.

 

 

"잘생겼다…"

 

"…예? 저기 근데 지금 피가…"

 

 

아, 이런. 종인은 뒷 말을 삼키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그 사람들 많은 길가에서 부끄럽지도 않은 듯 경수를 번쩍, 안아올렸다. 어,어, 지금 뭐하시는거예요!! 발버둥을 쳐봤자, 경수보다 키도 훨씬 더 크고 덩치도 더 있으며, 겉보기에도 여리여리한 경수보다는 딱 힘이 더 쎄 보이는 종인을 경수가 어찌 이길까. 발버둥 치면 칠수록 아픈건 결국 저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경수가 가만히, 힘을 빼고 그냥 조용히 그 남자의 품에 숨어 가는 편을 택했다. 경수가 종인의 가슴팍 안으로 파고 들었다. 하필 안아도 공주님 안기자세로 안아 올리는건 뭐야, 나도 남자고 이 사람도 남자인데. 경수의 볼이 발갛게 연분홍빛 복숭아 마냥 물들었다.

 

 

 

 

"조심 좀 하고 다니세요,"

 

"아…감사합니다."

 

"뭐, 딱히 그것까지는…"

 

"나중에 시간되면 제가 꼭 밥이라도 한 끼 살게요. 연락주세요."

 

 

빙그레, 웃음 지었다. 위로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 매력적이였다. 하고 종인은 생각했다. 입술이 하트모양이네. 입술, 맞춰보고싶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어버린 종인은 살짝 움찔, 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뭐 이런… 종인이 멋쩍게 웃으며 핸드폰을 내밀자 경수가 여전히 웃은채로 종인의 폰에 자신의 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하고서 전화를 걸었다. 울리는걸 확인한 경수가 종인에게 다시 폰을 돌려줬다. 꼭 연락 주셔야해요. 다짐하듯, 경수가 다시 한번 내뱉었다.

 

 

"네, 그럼 다음에 뵈요."

 

 

쾅, 그리곤 문이 닫혔다. 그와 같이 왠지 모를 기분에 경수가 살풋 몸을 떨었다. 이 아쉬운 기분은 뭐지… 울적해, 경수가 입꼬리를 추욱 늘어뜨리곤 어깨 역시 추욱 늘어뜨리곤 늦은 밤, 잠을 청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너무 보고싶어. 경수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동기화 시킴 바로 뜰까? 뜨겠지? 망설임 없이 버튼을 꾸욱, 눌렀다. 뜬다, 뜬다! 경수의 눈이 커지며 다시 미소를 담아냈다. 음, 뭐라고 카톡으 보내야하지?

 

 

"안녕하세요? 아냐.. 이건 너무 식상해.. 집에 잘 들어가셨어요? 으.. 어려워.."

 

 

으아, 미치겠다. 경수가 머리를 헤집었다. 잠깐, 근데 나 왜 이러고 있는거지?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 의문에 경수가 눈을 도르르, 굴렸다. 어… 뭐지, 이 기분은. 아, 모르겠다. 계속 카톡을 썼다 지웠다 반복한 손가락이 연신 자판을 눌러대다 결국 카톡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저희 밥 언제 먹을래요?]

 

 

아, 으, 톡이 언제 오던 나는 못 보겠어… 경수는 끙끙 앓으며 핸드폰 화면을 꺼버리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참을 청했다. 내일 아침이면 톡이 와 있겠지?

 

 

 

 

"카톡, 카톡 카톡!"

 

 

일어나자마자 카톡을 찾았다. 톡이 와 있을까? 기대반 설렘반 확인을 해보니 어...어....어....!

 

 

"톡 왔다!"

 

 

톡 하나에 설레할 줄이야. 그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조금은 애매해 볼을 불퉁하니 부풀렸다. 오늘 주말인데 오늘 시간 되면 좋겠다… 오늘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같이 놀러 다니고 영화도 보고… 그랬으면 정말 좋겠는데, 경수의 손 끝이 살짝 떨려왔다.

 

 

[오늘 어때요? 점심때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봐요]

 

 

예쓰! 경수는 주먹을 불끈 쥐곤 재빠르게 톡을 쳤다, 좋아요. 당근 좋죠. 재빠르게 전송을 누르고서 경수는 상처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이것저것 무슨 옷을 입고가면 좋을까, 여러 옷들을 꺼내 대보기 시작했다. 최대한 잘 보이고 싶어. 이옷 저옷 대보다가 노란색 후드티에 청색 스키니진을 입었다. 그냥 무난하게 가야겠다… 옷장 안에 옷은 많은데 어째 입을 옷은 그리 많지 않은것 같은 기분이야…

 

 

 

 

"여기예요, 여기!"

 

 

경수가 신나서 손을 흔들었다. 남자치곤 자그만 키, 좁은 어깨. 혹여 안 보일까. 까치발까지 들고서 방방 손을 휘저었다. 휘적휘적, 그에 비해 키도 180이 넘고 어깨도 넓고 남자다운 종인이는 길다란 다리로 순식간에 경수에게 다가와 경수의 손을 잡으며 피식 웃었다. 작은게 하는짓도 작아서 귀엽네.

 

 

"영화 먼저 봐요, 취향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표는 미리 끊어놨거든요."

 

 

곧 시작이니까, 같이 들어가요. 팝콘이랑 콜라로 사놨는데 괜찮죠? 라 물으며 종인이 경수의 팔을 이끌었다. 어…어, 네… 가볍게, 경수는 이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수의 입가엔 미소가 여전히 머물렀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가. 어쩌지. 나. 비록 어두운지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경수의 볼에는 발간 홍조가 떠올랐다.

 

-

 

영화가 시작되었다. 많고 많은 영화들중에 하필 공포라니. 경수가 종인의 눈치를 보며 바르르 몸을 떨었다. 공포 제일 못 보는데… 아직 그리 친한 것도 아니여서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종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포를 보는데 다 큰 사내가, 그것도 내가 그러면 이상하잖아… 경수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어쩌지, 어쩌지? 입술을 잘근잘근 거리던 경수가 결국에는 스크린에 가득 비춰진 귀신의 얼굴에 소리를 냅다 지르곤 종인의 품으로 안겼다. 무서워, 라는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많이 무서워요?"

 

"무서워, 무서워… 이거 보기 싫어요…"

 

"그럼 나갈까요?"

 

 

마지막 말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손을 꽉 잡고 사슴같은 눈망울로 쳐다보는 경수에, 종인이 슬핏 웃었다. 귀엽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인이 엷게 미소를 띄우며 경수의 손을 고쳐 잡았다. 그럼, 우리 나가요.

 

-

 

"그러고보니 우리 이름도, 나이도 몰라"

 

"그러게요…어, 일단 나는 도경수. 올해로 24살."

 

"나보다 어릴 줄 알았는데, 나는 김종인이고 올해로 23살이요 형"

 

 

…헐, 대박. 경수의 눈이 더욱 커졌다. 안그래도 큰 눈인데. 진짜, 종인이 웃음을 터뜨리며 경수의 눈가를 쓸어만졌다. 귀엽다 진짜. 뭐 이렇게 귀여운 생물체가 다 있지.

 

 

"내가 좀 노안이긴 해요 형."

 

"아냐, 아냐. 그래도…"

 

"그래도 뭐요?"

 

 

다시 볼우물이 홍조를 가득 띄며 아무런 말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도경수에 김종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살짝 들었어요. 멋있다고 중얼거린거"

 

"…아,"

 

"그리 내가 좋아요 형?"

 

 

…그만 놀려, 바보야. 볼우물뿐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시뻘개져서 고개 푹 숙이고서 시선도 못 맞추는 모습이 꽤나 사랑스럽다. 슬슬 영화가 끝나는 시간인지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하자 종인이 경수를 데리고 조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형, 우리 여기서 얘기해요

 

 

"…너 좋아, 웃는 모습도 좋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좋고…"

 

 

다 멋있단 말이야, 우물우물 거리며 경수가 뒤늦게 내뱉었다. 부끄러운듯 고개를 땅으로 처박고서 들 생각을 하지 않는걸까. 결국 종인이 무릎 구부리고 앉아 아래서 위로 경수를 올려다 보았다.

 

 

"형, 나 좀 봐봐요"

 

"…왜 종인아"

 

"형 말이예요, 겉으로 보기엔 그냥 귀여워 보였는데 자세히 볼 수록 이쁘더라고요"

 

"…"

 

"오래 보면 볼 수록 또 뭐 그리 사랑스러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종인아?"

 

 

경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저에게. 떨리는 손끝을 숨기려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쥐었다. 조금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풀꽃 같아요, 자세히 볼 수록 이쁘고, 오래 볼 수록 사랑스럽고. 소박함이 잘 어울리는 그런 싱그러운 풀꽃."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나, 잘 모르겠어 종인아"

 

"형, 좋아해요"

 

 

결말은 독자님들이 제일 싫어하는 열린결말로 끝맺고... 죄송합니다 망작을 내놓았어요큐ㅠㅠㅠㅠㅠㅠ

요새 영 바빠서 계속 미루고 미루다보니 겁나 밀렸어....죄송합니다 사죄의 말씀을 드려요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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